장영수 목사 설교집

130324 운명의 갈림길에서(수24:22-28)[시내산언약-모압언약-세겜언약] / 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3. 6. 4. 15:17

 130324                         운명의 갈림길에서            

 성경본문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택하고 그를 섬기리라 하였으니 스스로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었나이다 하더라 여호수아가 이르되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치워 버리고 너희의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 하니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의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 하는지라 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였더라 여호수아가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가 거기 여호와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세우고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음이니라 그런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 하고 백성을 보내어 각기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였더라 (24:22-28)

 

 여러분이 성경을 열심히 읽으시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죠. 그런데 성경을 읽다 보면 여호수아서를 읽을 때쯤 되면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만 편애하시고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 하시는가? 진멸한다는 표현은 살아있는 모든 것을 다 죽이라는 표현이죠. 여리고성을 무너트릴 때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하시면서 진멸하라라고 하시는 표현을 쓰셨던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어찌 공평한 하나님이요 정의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는가?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 진멸하라는 하나님과 신약에서 자기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사랑의 하나님이 어찌 한 분일 수 있는가? 이것은 성경을 읽는 오늘 우리들뿐만 아니라 초대교회 때부터 있어왔던 물음입니다. 이것을 제대로 풀지 못한 사람은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을 분리시켜서 구약의 하나님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말씀을 올바로 이해해야 되는 것이죠. 이 물음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 두셨던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올바로 알아야 되는 것이죠. 창세기 1 26절에서 2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을 따라 자기의 모양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사람에게 만물을 다스리는 복을 주시고 또 그것을 행할 수 있는 지혜와 권세를 주셨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것이 태초 하나님께서 세우신 인간의 모습이죠. 제가 우리 교우들의 가정을 심방하다 보면 가끔 어느 집에 가족사진을 탁 찍은 것을 거실에 걸어놨는데 이곳 인도네시아 왕족의 복장으로 찍었어요. 근데 제법 어울리는 집도 제법 있더라고요. 정말 왕족같이. 그런 사진은 아주 마음을 두고 잘나온 사진을 걸어두지 않습니까? 자칫 거의 사기에 가까울 정도로 저렇게 다듬어 가지고 그러나 여러분 그게 사실입니다. 그게 원래 우리의 모습이에요. 하나님은 그거보다 더 건강하고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를 지으셨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사람 아담이 그러했듯이 모든 만물을 잘 다스립니다. 하나님께서 그 앞에 짐승을 이끌어 오셨을 때 그들의 그 특성에 따라서 이름을 딱딱 붙여줍니다. 그리고 그 첫 사람 아담의 가장 멋있는 모습은 그가 잠들었을 때에 갈빗대를 가지고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남자 앞으로 이끌었을 때에 아담이 하는 말을 들어보십시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남자에게서 비롯되었으니 그 이름을 여자라 하리라. 이쉬(‘ish) 남자 이솨(‘ishah) 여자. , 이거는 인간이 살되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 없고, 人間(인간) 사람 사이. 서로서로 더불어 함께하는 관계 속에서만 내가 누군가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내 몸에서 비롯된 그 여인을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그리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니라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가장 건강한 인간의 모습, 가장 멋있는 남자의 모습, 가장 아름답고 건강한 여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신분이 왕족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자녀에요. 가장 멋있는 모습인 것이죠. 이게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셨을 때 우리에게 주신 언약입니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이 사단의 유혹에 빠져서 스스로 눈이 밝아져 내가 하나님 같이 되리라 할 때에 오히려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게 되고 어둠에 갇히게 되는 것이죠. 그리하고 자기의 욕심을 쫓아서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우리는 아주 저 밑바닥에 굴러 떨어진 그런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 자기가 사랑하겠노라고 결혼하고 살면서도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되죠. 원수가 자기 집안식구다라고 하는 말이 낯설지 않잖아요. 그게 우리의 실상이 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모든 인간관계가 파탄이 나고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기는커녕 이 모든 일의 책임이 바로 너 때문이라고 원망하고 괴로워하고 미워하고 스스로 막 좌절하는 살았으나 살지 않고 죽어버린 그런 인생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구약에 보니 하나님의 사람들을 이제 부르시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입니다. 그리고 이삭 야곱을 통해서 그의 민족을 이루게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언약을 맺으시고 새로운 법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 하나님을 거부하는 이 세상문화와 세상의 종교와 이 세속적인 삶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도록 가나안 땅을 주시기로 하신 것이죠. 그러나 아직 저들은 미약해요. 노예생활 가운데 벌써 오랫동안 메였다가 벗어났기 때문에 몸은 자유롭지만 아직 생각은 옛 생각에 메여 있어요. 아직 연약한 것이죠. 그러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며 욕심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저들의 문화와 종교 속에 이들이 섞여 살면 또 세상 유혹에 넘어지고 또 실패할 것을 아셨기에 오늘 먼저 하나님의 백성을 제대로 세우기 위해서 훈련시키기 위해서 저들을 진멸하라 하셨던 것이죠.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은 학교 다니기 재미있잖아요. 학교 가서 밤낮 상 받으면 뭐가 걱정이겠어요. 진짜 훌륭한 사람들은 그게 안되는데도 아침마다 학교 가는 사람들이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죠. 정말 그렇습니다. 제가 시골에서 중학교 공부하고 고등학교 서울에 가서 떨어져 보니까 하늘이 캄캄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가뜩이나 유약했는데 떨어지고 나니까 2년 동안 말이 안 열리더라고요. 나에 대해서 내놓을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그런데 또 고3이 되니까 이건 정말 뭐 고3이 되니까 말이에요 하늘이 항상 먹구름이 있어요. 너무 괴로운 거에요. ! 어떻하지. 어떻하지. 어떻하지. 하나님께서 저에게 구원의 길을 여셔가지고 고3 추석 끝나고 나서 저를 서울로 옮기셨어요. 주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히 단절시키시고 저를 서울에 우리 사촌형 집에 탁 처박고 학원에 등록을 하고 공부하게 했단 말이에요. 지금은 막 비상시국이니까 딴거 여유가 없는 것이죠. 그렇게 공부해서 제가 대학에 들어갔어요. 기적이었죠. 기적.

 우리가 살다 보면 우리가 늘 건강하고 바르게 항상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지혜롭게 직장생활하고 잘 사업하고 이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사람은 백에 하나밖에 없는 거에요. 그럼 어떻게 해요? 위기가 오는 거에요. 그럴 때에 오히려 우리는 그게 구원의 기회에요. 비상시국이에요. 신앙도 마찬가지에요. 늘 잘 믿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풍랑이 있을 때가 있어요. 글쎄요, 저는 가만히 보니 10년에 한번은 호되게 오더라고요. 10년에 한번. 그런데 그때 어떤 자세로 그것을 내가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아주 주저앉느냐 아니면, 그것을 통해서 새롭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또 새로운 날들을 경험하느냐 하는 것이죠.

 오늘 여기 우리가 읽은 본문은 여호수아서의 마지막 장입니다. 벌써 여호수아가 벌써 나이 백십 세로 이제 곧 죽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백성을 모아놓고 마지막 유언을 하는 것입니다. 지난날을 회고합니다. 우리의 조상을 생각해보라.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저 강 건너편 유브라데스강 건너편 갈대아 지역에서 우상 장사하고 우상을 섬기던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그 가정을 이끌어내고 그 가운데 그 아들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택하셔서 새로운 민족을 세울 조상으로 세우시고 그에게 믿음을 가르치시고 믿음을 훈련하시더니 그가 이삭을 낳고 야곱을 낳고 야곱이 열두 형제를 낳고 드디어 민족을 이루고 그들이 또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세우셔서 모세를 보내시고 아론을 보내셔서 저들을 오늘날 이 땅 여기까지 인도해 오시지 않았는가. 우리 지난 광야의 40년 삶 동안, 그리고 가나안 정복을 하는 수 많은 위기 속에서 하나님이 오늘까지 우리를 지켜주셨노라 회고합니다. 이 역사를 안다면 우리 여호수아서 24 14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 역사를 돌아보고 그 상황을 이해한다면 이제는 선택하라. 유브라데스강 저쪽의 신을 섬기든지, 종살이 하던 애굽의 신을 섬기든지, 이 땅의 아모리 사람이 섬기던 가나안의 신을 섬기든지 아니면 여호와를 섬기든지. 선택하라.

여러분, 우리가 늘 교회를 다니고 하지만 선택해야 되요. 정말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되요. 완전히 다른 거잖아요. 학교를 다녀도 그냥 가방에 도시락만 가지고 덜렁덜렁 다니는 게 있잖아요. 그러다가 정신 번쩍 차려가지고 공부한다고 마음을 정하고 공부하고 학교 다닐 때가 다르잖아요. 학교야 늘 다니지만 마음이 다르잖아요. 선택하라. 그리고 결단하라. 이제까지도 하나님을 믿는다 했지만 정말 나를 돌아보고, 사실 우리가 죽기 전에 한번은 정신차리고 정말 결단하고 하나님을 믿어야 되요.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가 뭐 70을 살고 80을 살아도 의미가 없어요. 뭐 직장이 얼마나 좋고 기업이 얼마나 좋고. 아무 의미가 없는 거에요. 결단하라. 정말 온전한 마음으로 진실함으로 주님을 섬겨라. 여호수아가 말합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그랬더니 백성들이 응답합니다. 우리도 결단코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겠습니다. 우리도 역사를 배우고 알았습니다. 그는 우리의 하나님 이십니다. 우리가 증인입니다. 그랬더니 여호수아가 다시 한번 흔들어 봅니다. 아니다 너희는 죄 가운데 머물러 있고 하나님은 거룩하시니 너희는 또 하나님을 떠날 것이다. 그랬더니 백성들이 절대로 그런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전심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여호수아가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새롭게 언약을 맺자. 세겜이라고 하는 곳에서 언약을 맺어요.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사람을 끌어내가지고 모세가 시내산으로 돌아와서 시내산에서 백성들과 하나님이 언약을 맺잖아요. 그게 시내산 언약이지요. 그러나 그 광야1세대가 언약을 맺었건만 또 하나님 앞에 무지하고 불순종해서 광야40년 동안 다 죽어 버리고 그 40년 동안에 새롭게 일어난 광야 2세대를 끌고 가나안을 들어가기 전에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모압 평지에서 또 한번 언약을 맺어요. 그리고는 다시 요단을 건너 가나안을 정복하고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다 정복하고 나서 자기가 죽기 전에 다시 한번 또 언약을 맺는 것이죠. 

 시대마다 언약은 필요해요. 우리부모님들이 예수를 믿을 때 그 위기 속에서 나를 살려주시면 내가 주님을 믿겠습니다 그렇게 언약을 맺은 거에요. 그리고 오늘 우리 차례에요. 또 우리 다음 세대들도 자녀들도 언젠가는 하나님이 그것을 요청할 시간이 있을 거에요. 언약을 맺어야 되요. 그래서 언약을 맺어요. 이 모든 것들을 율법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세웁니다. 비석을 세우는 것이죠. 그러면서 뭐라고 이야기 하느냐 하나님이 오늘 너희에게 이르신 이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으니, 돌이 듣기는 뭘 듣겠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말씀을 이 자리에서 이 돌도 들었으니 너희는 그 말씀을 기억하고 이 돌로 증거를 삼으라. 단단히 언약을 맺었어요.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세요. 여호수아 2431절에 보면 이렇게 언약을 맺었는데 여호수아가 살아있는 동안 그리고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에 여호수아 살아있을 동안에 이루어졌던 수많은 이적을 기억하는 장로들이 살아 있을 때까지 백성들이 순종했다. 그럼 장로들이 다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어요? 사사기에 보면 그 다음 세대는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했어요. 그 언약을 맺어도 오래가지 못해요. 다 그런 건 아닌데요, 경험적으로 보면 교회가 40년만 가도 활력을 잃어버리더라고요. 사람이 교회가 발전하고 교회가 횟수가 더하면서 교인들의 구성원들이 점점 나이 들어가면 다 잊어버려요. 다음 세대가 또 새롭게 하나님 앞에 헌신하고 언약을 맺어야 되는 거에요. 우리 한마음교회도 마찬가지에요. 지난 10년을 돌이켜봅니다. 저는 재작년에 우리 한인 선교 인도네시아 선교 40주년 기념행사를 제가 총무가 되어가지고 섬겼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각별하게 주신 저에게 베풀어 주신 은총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우리 알다시피 세계기도성회를 섬겼습니다. 그러면서 인도네시아 교회리더들을 자꾸 만나게 되니까 할 수 없이 제가 명함을 하나 팠는데 그분들에게 제 이름 밝혀봐야 기억될 수 없으니까 영어이름을 하나 정했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할까? 뭡니까? 죠슈아(Joshua), 여호수아에요. 제 영어이름 죠슈아(Joshua)라고요.  무슨 뜻이겠어요? 모세가 죽고 새로운 시대를 책임졌던 여호수아와 같이 우리 서만수목사님 40년을 꿋꿋하게 지키고 그분이 정확하게 그곳 총회에서 파송되고 죽는 날까지 정확하게 40년이에요. ! 기가 막혀요. 참 복도 많다 그랬어요 제가. 역시 1호 개척자에게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축복이다. 그래서 저는 제 마음에 일련의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다음 세대를 잘 섬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는 열망으로 제 이름을 죠슈아라고 그랬어요. 여호수아라고 정했어요. 여호수아는 어떤 일을 하느냐? 모세가 남겼던 그 유업을 다음 세대에게 올바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갈렙과 손을 잡고 가나안정복을 이끌었듯이 연합하는 거에요. 연합. 그게 사실 연합이요 명분은 좋은데 어려운 거에요. 어렵다고요. 우리교회 비전이 있어요. 우리교회는 전세계 5000개가 넘는 수 많은 해외 한인교회 가운데 건강한 모델이 되는 게 꿈입니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는 게 꿈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자카르타가 한국사람들이 해외 나와서 살기 제일 좋은 곳이다.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가장 어두운 곳이에요. 이런 데가 없어요 세상에. 제가 솔직히 말한다면 좀 더 어려웠으면 좋겠어요. 어려워가지고 하나님을 부르짖고 찾게 되기를 원해요. 그러나 그렇게만 성경을 해석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에요.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 꼭 가난에 메여 가지고 하나님 지금 굶어 죽게 생겼습니다 하나님 먹을걸 주세요.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부르짖고 찾는 것만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절대로. 다음 세대가 있는 거에요. 다음 단계가 있는 거에요. 저 미국이나 캐나다나 이렇게 좋은 나라에 그냥 들어가가지고 막노동을 하면서 일하고 고생하는 그 많은 한인들이 있는가 하면 또 우리는 또 다른 환경을 주셨어요. 이게 무슨 의미겠어요? 오늘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가지고 우리가 즐거운 마음으로 주님의 뜻을 알고 시대에 동참하면 하나님께서 한국의 높아진 위상과 함께 하나님이 들어 쓰실 거에요. 지금 인도네시아가 코끼리같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아휴! 흥미진진합니다 어떻게 될런지. 그런데 코끼리 밑에서 어정어정하다가 그 무시무시한 발에 밟혀죽는 거에요. 그게 아니라 코끼리 등에 올라 타야 될 거 아니에요. 코끼리 등에 올라타면서 코끼리를 조정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죠. 그게 우리의 사명이에요. 그걸 위해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신 거에요. 그걸 위해서 다른 한인들에게 주지 않은 여유로운 모든 것들을 우리에게 주신 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빨리 모델을 만들어야 되요. 어떤 거냐? 부모가 직접 자기 자녀에게 믿음을 가르치는 교회여야 되요. 그건 유대인들만 이제까지 가능했어요. 한국사람들은 그렇게 못했어요. 다 교육은 학교에다 위탁했어요. 오늘 학교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러분? 엄마들이 애들이 걷기도 전에 유치원에 맡겨요. 삶의 구조가 그렇게 변하기도 했지만, 너무너무 무책임하게 무방비하게 내 아이를 다 남에게 맡겨 버렸어요. 신앙도 마찬가지에요. 다 교회에다 위탁했어요. 내 자녀에게 내가 내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

 우리 지난번에 성경세미나를 하면서 엄청난 도전을 받은 것이죠. 우리 지난주에 성경세미나를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촉구합니다. 성경을 덮고는 절대로 올바로 믿을 수 없어요 여러분. 그 어린 시절에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을 딱 깨우쳐야 평생 글을 읽으면서 살 수 있는 거에요. 그 기회를 놓치면 60이라도 나이 60이라도 저절로 눈이 열려서 글자가 보이는 법은 없어요. 그거 몇 주만 배우면 알 수 있는 것을 미루고미루고 미뤄 가지고 60년을 암흑 속에 사는 그런 우리 어머니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우리 그래서 해야 되요. 말씀을 내가 펴서 읽고 내가 듣고. 사실은 그러기에 우리성경은 그 동안 너무 어려웠어요. 그건 사실이에요. 그러나 이제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성경을 현대어로 번역하고 그 성경을 잘 읽을 수 있도록 돕는 많은 책들이 나왔어요. 그런 문명의 이기(利器)들을 우리가 이용해야 되요. 왜 그러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왕족이니까. 세상을 다스리고 만물을 다스릴 축복과 권세를 누리고 있는 자이기 때문에.

가나안족속을 진멸하라고 하는 것은 원래 하나님의 뜻이 아니에요. 그것은 아직도 하나님의 백성이 연약하기 때문에 이 연약한 백성들을 훈련시키고 보호하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에요. 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은혜로 강해지고 하나님의 복을 알게 되면 그 다음엔 그들이 받은 바 복을 가지고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에요. 우리의 비지니스를 하든지 공부를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교회 목표는 부모가 직접 자기 자녀에게 믿음을 가르치는 교회. 이래야 가정이 변화되지 않겠어요? 그 다음에 우리 한인 비즈니스 사회에 생명을 불어넣는 교회에요. 저희가 우리교회 식구들이 CBMC(한국기독실업인회)에 열심히 참여합니다. CBMC는 교회와 연결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사회와 연결된 다리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 안에 갇혀 있지 아니하고 우리 전체 사회를 우리 한인 공동체를 끌어안겠다 라고 하는 의지의 표현이에요. 그건 좀 미미해 보이지만, 그 자세와 명분은 중요한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터를 그저 내가 운영하는 기업이 아니라 하늘에 뿌리 내린 기업으로 그리고 내가 믿음을 고백하고 일하는 그 자리가 교회가 되도록 여기만이 교회가 아니라 우리의 일터가 교회가 되도록 그것이 우리 교회의 비전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위에 선교사들이 있어요. 우리교회는 현장에 나가있는 선교사들을 응원하고 후원하고 기도하고 격려하는 베이스캠프가 되어야 되요. 정상을 정복하려고 하는 사람들과 긴밀히 연락하고 그들을 안내해주고 그들을 격려해주는 그런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종려주일 이에요. 이번 주간이 고난주간이잖아요. 오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에 왕으로 나귀를 타고 입성하셔요. 그랬더니 고난 가운데 있던 많은 백성들이 만세를 불렀어요. 호산나를 불렀어요. 호산나, 여호수아, 호세아, 예수, 호산나 이건 다 뿌리가 같은 말이에요. 다 우리를 구원하소서 라는 말이에요, 구원하소서. 그랬더니 그 백성들이 만세를 부르고 우리를 구원해달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고 당대에 종교 지도자들이 막 저들을 비판하지 않습니까? 당신이 어떻게 메시아냐? 저들의 저러한 그 외침과 아우성을 금지시키시오. 예수님이 뭐라고 합니까? 만약에 저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다 일어나서 호산나를 부를 것이다. 그러나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남몰래 눈물을 흘리셔요.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시면서 눈물을 흘리셔요.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네가 진정 평화를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 것인가 그러나 그 평화가 네 눈에 숨겨졌구나 이제 돌 하나도 돌 위에 제대로 놓이지 않는 무시무시한 심판이 있을 것이로구나예루살렘, 예루샬라임(Yerushalim) 평화의 도시라는 뜻이에요. 예루살렘이 평화의 도시에요. 그런데 평화를 몰라요. 사실은 호산나 만세를 부른 사람들이거나 저들을 금지시키라고 했던 종교지도자들 모두가 다 평화를 몰랐어요. 겉으로는 서로 다른 것 같았지만, 그 근본 뿌리로는 하나님의 그 계획과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는 다 무지했어요.

우리가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를 믿는 우리가 똑바로만 믿으면 세상사람들이 저렇게 살진 않아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을 청결하게 하셨다 그랬잖아요. 그러면서 그 성전에 모여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을 향해서 여기는 만민이 모여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는 집인데 너희가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구나 처음 성전을 청결하게 하셨어요.

오늘 우리사회의 책임은 원천적으론 교회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를 향해서 돌 던지지 마세요. 그건 우리의 책임이 있는 거에요. 그 인기스타가 나타나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사진도 찍고 막 그러잖아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은혜로 새로워진다면 우리 주위는 변하게 되어 있는 거에요. 그 한국의 지난 겨울이 유독 추웠잖아요. 새벽부터 일용노동자로 일 나가야 되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 사람들 그 화면에 보면 드럼통에다 나무 집어넣어가지고 불 피우잖아요. 그 추운 겨울아침에 그 불을 외면할 사람이 어디 있어요. 너나 할 거 없이 다 그 불에 몸을 녹이죠. 그런 시 있잖아요. ‘연탄재 발로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한번이라도 언제 그렇게 뜨거워 본 적 있었느냐? 그 말이 맞지요. 우리에게 있어요. 그래서 이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눈물을 흘리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성전의 타락을 보시고 안타까워하시고 성전을 청결하게 하시고 이제 십자가를 지시기 그 남은 몇 일 동안도 말씀을 보니 누가복음 19 47절에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 앞에 언약을 맺어야 되요.  모세가 백성들과 시내산언약을 맺고 모압언약을 맺었듯이 여호수아가 죽기 전에 유언을 전하고 세겜언약을 맺었듯이 오늘도 우리 하나님 앞에 언약을 맺어야 되요. 내가 주님만 섬기겠나이다. 내가 주님의 증인이 되겠나이다. 내가 주의 말씀을 힘써 배우겠나이다.

여러분, 지금 우리 교회가 어디로 움직여 가는가 하는 것을 보셔야 되요. 하나님이 우리를 이끌어 가고 계시는 거에요. 같이 봐야 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