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불을 내려주소서 [성령은 항상 말씀과 함께 역사하심] / 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3. 09:07

080427 불을 내려주소서 (왕상 18:36-40)

성경본문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엘리야가 저희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저희를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여러분 아나기 가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 이다 그런 말이에요. 아줌마 단체 이름이에요. 프랑스의 <세계언어사전>에 의하면 아줌마란 집에서 살림하는 40대 이상의 여자들로 자녀를 다 키운 뒤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어 높은 구매력을 가진 한국 특유의 집단 이렇게 정의돼 있답니다.

최근에 서울 압구정동, 대치동, 목동, 분당, 중계동의 아줌마들을 조사해 본 결과 이런 결론이 나왔습니다. 아줌마가 진화하고 있다 단순 가사 노동자에서 훼밀리 비즈니스, 가정 경제의 최고 경영자로 탈바꿈하고 있다. 남편을 내조하고 자녀 양육을 하는 하나의 보조자가 아니라 재테크 전문가가 되고 있다. 남편 월급으로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거든요. 그것을 잘 모아서 종자돈 삼아가지고 부동산 투자도 하고 주식 투자도 해서 살림을 불린다는 거예요. 이제는 현모양처가 아니라 쩐모양처가 새로운 모델이 되고 있다 그렇게 말합니다. 또 자녀 교육에 관해서도 그저 공부 잘해라, 열심히 해라 그 정도가 아니라는 거예요. 모여 가지고 의논하고 자녀들이 다니는 학원을 순례하고 학원을 평가하고 어느 학원을 보내야 될는지 결정하고 학원에 압력을 행사한다는 거예요. 그 의식 속에는 내 자녀의 성공이 나의 행복의 척도다 이렇게 되고 있다는 거예요. 이제는 수다도 의미가 바뀌어서 시간 때우기가 아니고 돈 되는 정보들을 서로 교환하는 만남이 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 그만큼 책임이 커졌죠. 그 실패의 책임은 자기가 져야죠. 버거운 일이죠.

제가 서울에서 교회를 섬기고 있을 때에 가족 기도카드를 받아보면 다 이렇게 씁니다. 보통 여자들이 쓰잖아요. 남편을 위해서는 하는 사업이 잘되도록, 남편의 건강을 지켜 주소서 이렇게 씁니다. 또 자녀를 위해서 진학을 위해서 또 결혼을 앞둔 자녀들의 배우자를 위해서 하나님 길을 인도해 주십시오 이렇게 씁니다. 그리고 정작 본인을 위해서는 뭐라고 쓰느냐, 몸이 아픈 사람이야 건강을 위해서 쓰겠죠. 그러나 제가 확인해 보니까 공통점이 있어요. 성령 충만하게 해 주세요. 이렇게 썼더라구요. 그런데 그거 정답이에요.

아줌마가 진화해야죠. 사회가 변하는데 멈춰있으면 안되죠. 사회 흐름을 따라가야 할뿐만 아니라 멀리 내다보고 앞서가야 되겠죠. 그러나 그것이 내 맘대로 내 생각대로 되는 게 아닙니다. 세상이 그렇지 않아요. 더구나 내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내 가정과 내 남편과 내 자녀의 일을 어찌 하나님이 외면하시겠어요.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라는 거죠. 그럴 때에 비로소 진정한 진화가 이루어 진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니고데모라고 하는 당대의 유명한 랍비요, 학자가 어느 날 밤에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내가 이제까지 당신을 관찰해 보니 당신은 말하는 것도 다른 사람과 다를 뿐더러 일으키는 이적을 보니 과연 당신이 말한 대로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 아니면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할 때 예수님께서 핵심을 찔러서 이야기 합니다. 네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느니라. 아니, 거듭나다니요? 무슨 말입니까. 네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수 없느니라. 물로 난다는 말은 죄를 씻음 받는 회개와 용서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또 하나를 말씀하셨어요.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예수 믿고 신앙 생활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내 안에 오셔서 나와 함께 계시면서 나를 이끌어 가시는 것이죠. 내가 도를 닦아 가지고 특별한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에요. 착각하면 안돼요. 이건 종교가 아니에요. 편의상 종교로 분류했을 뿐이에요. 연약한 그 모습은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는 거예요. 다만 하나님께서 그 영으로 내 삶 속에 들어 오셔서 나와 함께 사신다는 거예요.

남편, 아내 이렇게 짝이 돼서 살지 않습니까. 결혼 전의 사람이 결혼해서 확 변했습니까. 그건 아니거든요. 그 모습 그대로 사는 거예요. 함께 사는 거예요. 함께 허물을 덮어 가면서 사랑하면서 사는 거예요. 신앙이란 하나님이 나와 함께 사시는 것이죠.

제가 어린 시절에 다니던 교회에서 한번 야단이 났었어요. 왜 그랬나 하면, 전도사님이 설교를 하셨는데 성령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랬더니 그 설교를 들은 장로님이 어떻게 성령님이 하나님이시냐. 이렇게 돼 버렸어요. 그런데 여러분이 헷갈릴까봐 미리 말씀 드리면 장로님이 성경을 안 읽으신 거예요. 그런데 왜 그런 실수가 생겼느냐 그전까지 우리는 성령을 어떻게 이해했느냐 하면, 많은 부흥사, 목사님들을 통해서 성령을 받아라 불 받아라 그러니까 성령을 이해할 때 그분을 인격이신 하나님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어떤 능력, 그렇게 이해했다는 말이죠.

여러분 성령을 성경의 이해대로 보면 두 가지로 나누어져 있어요. 사도행전에서 많이 보이는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 나와있는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여기서 역사(役事)라는 말은 성령이 하시는 일이라는 말이에요. 어떤 대학교수님이 어렵게 교회에 처음 나왔어요. 이분이 교회 용어에 익숙하지 못한 고로 history로 이해했어요. 헷갈렸어요. 여기서 역사라는 말은 work 성령이 하시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사도행전 2 4절에 보면 기도하는 무리들에게 성령이 급하고 강한 바람같이 그리고 불같이 역사하셨다 그래서 사도행전의 초대 교인들이 온갖 핍박과 박해를 무릅쓰고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나아갈 때 많은 이적들이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나타났다. 사도행전적 성령의 역사에요. 그러니까 이거는 은사적인 거예요.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며 또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병자도 일으키고 많은 이적을 일으키는,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역사였어요.

그런데 요한복음에 보면 오늘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와 얘기하실 때 성령의 비밀을 이렇게 말합니다. 세미하게 바람이 불 때 우리는 그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 바람은 존재한다. 그와 같이 성령도 그 누구에게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기의 의지를 가지고 일하신다. 성령으로 난 사람은 성령께 민감하게 눈을 열고 그를 따라가는 사람이다 이렇게 설명했어요. 그래서 성령을 헬라어로 프뉴마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프뉴마 라는 단어는 또 하나의 뜻이 있어요. 바람이라는 뜻이 있어요. 부드러운 바람같이 역사하시는 성령, 그래서 그 분은 우리 마음 가운데 오셔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셔요. 우리의 성품을 고쳐 가셔요. 그러니까 사도행전적인 성령의 역사는 밖으로 드러나는 성령의 역사에요. 이적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사람이 열광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밖의 세상보다 더 중요한 세상은 내 안의 세상이에요. 내면에 함께 하시고 고쳐가시는 성령의 역사가 있는 거예요. 이 두 가지 역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엘리야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이 소개되고 있어요. 이스라엘에 아합 왕이 있었습니다. 악한 왕이었어요. 우상을 숭배했어요. 하나님께서 저들을 심판하시느라 삼 년 동안 비를 내리지 않으셨어요. 가뭄이 들었어요. 삼년 기근에 백성들의 삶은 완전히 망가졌어요.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드디어는 아합 왕이 이 모든 책임을 엘리야에게 돌립니다. 이 백성의 원망과 불평이 쿠데타로 발전할까 두려워서 엘리야를 지목하고 엘리야와 갈멜 산상에서 영적 전쟁을 벌이는 거예요. 이것은 정치적 투쟁인 거예요. 과연 누가 믿는 것이 참신인지 한번 알아보자. 그래서 서로 단을 쌓고 엘리야와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850명 선지자들이 서로 자기의 신을 부르는 것입니다. 어떻게 됩니까. 850명 선지자들이 한 나절을 몸에 피를 흘리면서 바알을 불렀지만 응답이 없었어요. 그때 엘리야가 오늘 읽은 본문과 같이 하나님께 기도하죠.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 온 백성에게 하나님이 참 신인 것을 보여 주십시오. 이제 불로 응답해 주십시오 불을 내려 주십시오. 불이 떨어 졌어요. 그 바람에 어떻게 돼요. 850명 선지자들을 백성과 함께 붙들어다가 저 시냇가에 가서 목을 쳤다 말입니다. 시내가 피바다가 됐다는 말이죠. 완전한 승리를 이루었죠. 그리고 성경을 계속 읽어보면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해서 엘리야가 달려 가는데 아합왕이 타고가는 마차보다 더 빨리 갔다 그렇게 얘기 했어요. 얼마나 신났겠어요.

그러나 이 영적 전쟁에 승리했지만 엘리야가 기대했던 결과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아합 왕국이 무너지고 온 백성들이 다 하나님께 돌아오고 이렇게 할 줄 알았어요. 그러나 아합이 완강하게 저항합니다. 오히려 사신을 보내서 네가 어제 죽였던 저들과 같이 너도 죽을 것이다. 그 순간 엘리야는 두려움에 빠지고 멀리 광야로 도망하게 됩니다. 탈진했어요. 지쳤어요. 광야로 도망해요. 쓰러졌어요. 그러면서 하나님께 하나님 왜 내게 이런 수모를 겪게 하십니까. 왜 나를 내버려 두십니까. 좋습니다. 나 이제 죽어도 좋습니다. 나를 죽여 주십시오. 오히려 하나님 앞에 원망하고 불평하고 저항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가 지친 것을 아시고 아무 얘기 안하시고 천사를 통해 엘리야에게 떡과 물을 먹이고 재우시고 또 깨어나면 먹이고 또 재우십니다. 엘리야는 그 힘을 의지해서 40일을 걸어 깊은 광야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러서 동굴에 들어가서 기도하게 됩니다. 그때 엘리야가 말하죠. 하나님, 온 나라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이 선지자들을 다 죽이고 이제 나만 홀로 남았습니다. 이제 하나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너는 동굴 밖에 나와 서라. 내가 너를 만나리라. 거세고 강한 바람이 지나갑니다. 그런데 그 속에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다음에 지진이 일어납니다. 그 속에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나가고 불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 모든 것이 다 지나간 다음 하나님이 아주 세미한 음성으로 엘리야를 부르셔요.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엘리야가 다시 얘기하죠. 하나님 나만 남았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말씀하셔요. 이제 알아들을 만하니까 말씀하셔요. 너는 당시 미국이라고 할 수 있는 아람 나라에 가서 차기 왕이 될 하사엘을 찾아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 그리고 이스라엘의 아합을 꺾어뜨리고 새로 왕이 될 예후를 찾아가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 그리고 너를 대신 할 엘리사를 찾아가 기름을 부어라. 하나님이 계획을 가지고 있었어요. 세계 정치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스라엘 정치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어요. 엘리야를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어요. 너만 홀로 남았다고, 아니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명을 내가 다 예비해 놓았다. 그제야 엘리야가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합니다.

여러분 여기서 아주 중요한 것이 있어요. 엘리야가 두 번 하나님을 만나는 거예요.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어요. 그때의 감동을 말할 수 없어요. 그러나 분명히 체험했습니다마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지는 못했어요. 그 모든 것이 다 지나가고 엘리야가 지쳐 쓰러지고 하나님의 위로로 새로 힘을 얻고 이제까지의 모든 일들이 무슨 의미이며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귀기울이는 순간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돼요. 하나님의 아주 구체적인 계획을 알게 돼요. 전체와 그리고 자기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돼요. 이제는 나만 혼자 남았다고 불평할 이유가 없어요. 7천명을 하나님이 준비해 놨어요. 그것도 자기가 다 찾아 다닐 것이 아니에요. 자기는 엘리사만 찾아내면 돼요. 하나님이 어디 가서 만나라고 가르쳐 주셨어요. 가서 엘리사를 불렀더니 얼마나 준비된 사람인지 깨끗한 마음으로 엘리야를 따르는 거예요. 그 엘리사가 7천명을 찾아내고 가는 곳마다 선지학교를 만들어 훈련 시키고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는 거예요.

우리는 두 가지 성령의 역사에 주목해야 돼요. 불로 응답하시는 성령의 역사, 사도행전에 기록돼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 그 시간과 장소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있어요.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우리의 마음속에 오셔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성령의 역사는 항상 우리에게 열려있는 역사에요. 그걸 혼돈하면 안돼요. 불을 내려 달라고 그때마다 하나님이 불을 내려 주시는 거 아니에요. 그건 큰일 납니다.

역사를 보면 루터의 종교개혁 20년 전에 이탈리아의 종교개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습니다. 그 종교개혁의 주인공은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라고 하는 사람이에요. 그는 피렌체라고 하는 도시국가의 수도원장으로 부임했어요. 프랑스 왕이 이탈리아를 쳐들어올 때 그것을 이탈리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사건으로 해석했어요. 그 도시 민중들의 지지를 얻어가지고 피렌체를 다스리던 메디치 가문을 쫓아 냈어요. 공화정으로 바꿨어요. 인민정부를 만들었어요. 엄청난 대중들의 지지를 얻었어요. 피렌체가 하나님의 도시임을 선언했어요. 신권 정치를 펼쳐나갔어요. 그렇게 해서 4년을 이끌어 나갑니다. 자 그러면서 교황을 비판하고 교황과 부딪히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종교적 대립이면서도 정치적 대립이 혼합되어 있는 거죠. 그런데 이 피렌체가 고립되면서 식량이 제대로 공급이 안돼요. 기쁨도 잠깐이고 백성들이 고통에 빠지게 됐어요. 그럴수록 종교적으로 엄격하게 이들을 다스립니다. 그리스도 십자가를 준비하는 사순절을 더 엄격하게 지키게 하고 사순절을 앞두고 소위 허영의 소각이라 해서 가지고 있는 사치품들을 광장에 다 끌어 모아 놓고는 다 불질러 버립니다. 배고플수록 사람들은 더 광신적이 되기 쉬워요.

그러나 고통을 견디다 못해 그 도시 안에 반대파들이 생겼어요. 그 반대파들이 사보나롤라가 했던 설교의 꼬투리를 잡아가지고 묘한 제의를 했어요. 내 말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하나님이 불로 나를 심판하실 것이다. 그랬더니 반대파들이 어디 그런지 우리 한 번 봅시다. 우리 한번 불을 피워놓고 당신네 대표하고 우리 대표하고 불 속을 지나가게 합시다. 그래서 불에 아무런 해를 입지 않는다면 그쪽이 하나님이 지지하는 팀으로 인정하고 그걸 따릅시다. 거부할 명분이 없어졌잖아요. 좋다. 그렇게 하겠다. 그랬더니 제일 신난 사람이 누구냐, 군중들이에요. 드디어 우리가 하나님의 이적을 보게 됐구나. 다 준비했어요. 양쪽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어요. 정오에 시작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양쪽에서 서로 조건을 가지고 옥신각신 따지느라 시간이 지체됩니다. 군중들이 아우성을 칩니다. 아침부터 모여가지고 구경거리를 보려고 목이 빠지게 기다렸는데 왜 이렇게 안 나오느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요. 그러자 한쪽에서는 이거는 중지하라는 하나님의 뜻이다. 오늘 안 한다. 해산했어요. 그랬더니 이적을 열망하던 그 백성들이 이제까지 가난과 고통을 견뎌왔던 모든 것이 댐이 터지듯이 무너져 버렸어요. 4년을 다스리던 그 권세가 그날 그 사건으로 한 순간에 무너졌어요. 다 붙들려 나왔어요. 교수형 당하고 화형 당했어요. 이탈리아 종교개혁의 실패입니다.

반면에 루터는 독일어 성경을 번역해요. 성경을 인쇄하고 배포하고 읽게 해요. 스스로 성경을 읽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종교 개혁자들의 주장은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된다. 교회의 주체는 누구겠습니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죠. 우리의 신앙이 새로워질 때만이 교회는 개혁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신앙의 비밀을 알아야 돼요. 저도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자라면서 많은 분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불 같은 성령의 역사를 꽤 오랫동안 갈망해 왔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불 같은 성령의 역사도 있지만 결국 그 불 같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인 모습은 어떤 것이냐 하면, 요한복음에 나와있는 대로 성령께서 내 안에 오셔서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그 말씀에 순종하게 하시고 그 말씀을 따라갈 때 평강을 주시고.이거 아니냐. 그래서 제가 성경 공부하다 말고 잠깐 멈추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성령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영이시고 그리스도의 영이시고 그분이 내게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데 내 주장 내 고집대로 성령이 역사하게 해 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서 내게 하시는 그 말씀대로 따라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내가 가만히 생각해 봤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성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인격적으로 지정의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자 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 속에 과연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런지를 깨닫게 해 주셔요. 특별히 우리가 들은 말씀을 통해서 내게 주시는 은혜가 있어요. 그래서 성령은 항상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거예요. 말씀 중에서도 특별히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깨닫게 하셔요. 예수님이 말씀하셨어요. 성령이 오시면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를 가르치리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비밀을 깊이 알게 하시는 것이 성령이 하시는 일이죠. 그럴 때에만 평강이 있어요.

어떤 분이 사업을 잘하시는 분일까요? 돈이 굴러다니는 게 보여야 되잖아요. 제대로 사업을 하려면 돈이 굴러다니는 게 보여야 사업을 할거 아니에요. 그게 안 보이는 분들은 절대 사업하지 마세요. 신앙도 마찬가지에요. 성령이 움직이시는 게 보여야 할거 아니에요. 간단해요. 말씀에 주목하세요. 선교말씀을 오늘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으세요. 이 한 주간 내가 이 말씀에 순종하겠다 이런 마음으로 가정에서 일터에서 일하세요. 더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하나님께서 증거를 주셔요.

사실 제가 목사가 되기로 결정했던 결정적 이유는 이 체험을 한 이후에요. 성령께 순종하겠습니다. 뭐라고 말씀하시든지 내 능력 내 여건을 가지고 얘기하지 않고 순종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너무나 정확하게 아세요. 저의 모든 것을 다 아시기 때문에 저에게 딱 맞는 상황으로 저를 인도하셔요. 엉뚱한 곳으로 인도하시지 않아요. 하나님은 선하시고 지혜로우신 분이고 우리를 사랑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확신과 체험을 고백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요, 성령의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