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진목사/대대로 싸우리라! (출 17:8-16)
주요내용:죄악론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어렵고, 가장 처음부터 우리의 생이 마치기까지 가장 오랫동안 끈질기게 우리의 믿음을 대적하고 괴롭히며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게 방해하고 또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게 하고 심지어는 하나님께 능력적 의미에서 버림을 받게 하는 우리 속의 원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 육신의 정욕입니다. 여기 육신의 정욕이란 육신의 죄된 욕망을 가리킵니다. 이 육신의 죄된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약4:4에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했습니다. 또 롬8:7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무엇보다도 이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은커녕 하나님의 진노의 백성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울이 버림을 받고 다윗이 선택을 받은 것도 바로 이 아말렉의 처리 때문이었습니다. 이 처리를 잘하면 복이요 이 처리를 잘못하면 저주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원수인 아말렉을 통해서 죄의 정욕을 제거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때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지 불과 며칠 되지 않는 때였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은 피곤하고 지치고 대열과 질서가 바로 되어 있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바로 그 때에 이스라엘은 아말렉이라는 민족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데기로 올라가서 두 팔을 여호와 앞에 들었고, 여호수아는 백성들을 이끌고 아말렉과 싸웠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의 손이 내려가면 아말렉이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돌 위에 앉고 아론과 훌은 모세의 손을 잡아 해가 지도록 하여 아말렉을 모두 파했습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는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아말렉의 정체와 아말렉을 이기는 비결과 아말렉에 대한 하나님의 의지를 발견합니다.
이시간에 아말렉을 통해 죄의 정체와 승리하는 비결을 깨닫고자 합니다.
1. 우리는 이미 육신의 정욕에 있는 죄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창14:7에 "아모리 족속의 온 땅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말렉은 아브라함 시대에 벌써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죄의 세력은 아담 이후 우리가 태어 날 때부터 존재했습니다. 이것이 죄의 유전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51:5에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했습니다.
그런데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의 아들 아말렉이 이 아말렉 족속에 가세합니다. 이렇게 아말렉은 이중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는 특수한 민족입니다. 그래서 더욱 악한 족속이 됩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기 위한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인데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의 원죄와 자범죄를 상징합니다.
2. 육신의 정욕은 강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또 민24:20에 "아말렉은 열국 중에 으뜸이나"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아말렉이 그 만큼 강하고 역사가 깊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와 같이 육신의 죄도 그 욕망을 제어할 수 없을 만큼 강합니다. 아담 이후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 빼고는 아무도 이것을 이긴 사람이 없었습니다.
최근 항생제로도 이기지 못하는 강한 박테리아가 나타났다고 비상이 걸렸습니다만 그러나 죄처럼 강한 것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죄의 균은 수 천년이 지나도록 죽을지를 모르고 유전되다가 지옥까지 사람을 끌고 갑니다. 어떤 세균도 영혼에는 침투하지 못하지만 죄는 영혼까지 침투합니다. 정부가 대대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있지만 죄는 더욱 더 기승을 부립니다. 혹시 보이는 범죄는 줄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마음의 죄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이 죄와의 싸움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 죄의 세력이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죄와 싸우다가 몇 백 번이고 케이오 패 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인간 스스로는 아무도 이 죄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무념 무상 아주 자기를 목석으로 만들어 죄를 이기려고 했지만 그래도 죄는 여전히 존재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예수를 알기 전에는 방황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는 외형적으로는 율법을 준수한 흠 없는 율법주의자였습니다.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죄는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말렉의 정체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다음 세 번째입니다.
3.죄를 이기기 전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말렉이 사는 지역의 의미인데 아말렉은 가나안 남부 네겝 지역입니다. 그들의 나라는 서쪽 바다에서 동쪽 바다까지 계란 모양으로 두껍게 위치하여 이스라엘이 가는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들어가려면 반드시 이 아말렉의 땅을 거쳐야 했습니다. 참으로 고약한 상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다 뜻이 있습니다. 가나안은 미래의 천국이요 은혜요 현세천국 곧 마음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상징입니다. 육체의 정욕을 정복하지 못하면 현세천국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얼마나 중대한 문제입니까? 그래서 갈5:19-21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했습니다.
여기만 그렇습니까? 고전6:9-11에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씻어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셨습니다. 이 천국은 특히 현세천국에 그 초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회개가 중요한 것입니다.
4. 육신의 정욕은 중생을 깃점으로 더욱 대적합니다.
본문의 전후 문맥을 잘 살펴 보면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대적한 시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늘의 만나를 먹고 르비딤의 반석의 생수를 마시자마자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 전에는 숨어 있었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이와 같이 육신의 정욕은 중생하면서부터 성도들의 믿음을 대적하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본래 죄 가운데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 때는 죄의 지배를 받고 살았기에 죄는 지어도 죄에 대한 갈등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예수 믿고 중생하면서부터 속에 새로운 성품이 생기면서 죄의 갈등은 시작됩니다. 만나와 생수를 마신 이스라엘에게 아말렉이 나타났듯 육신의 정욕의 거스림도 성도들이 성령을 받을 때부터 나타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5:17에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면서 마음의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입니다. 먼저는 전쟁이 일어나야 합니다. 전쟁이 없다면 그것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그러나 항상 전쟁만 하고 있어서도 안됩니다. 그것은 승리의 비결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5. 육신의 정욕은 신앙생활이 나약할 때 반드시 나타납니다.
신25:17-18에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희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를 쳤느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진리는 육체의 정욕은 신앙생활이 나태할 때 나타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죄를 이겼다가도 신앙생활이 나약해지면 틀림없이 시험에 빠집니다. 이것이 아말렉인 것입니다. 그 공포스런 아말렉은 다른 곳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습니다. 다윗도 한가하게 처하다가 범죄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언제나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아말렉인 육신의 정욕을 이길 수 있을까요?
먼저, 여호수아처럼 아말렉을 대항하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출17:9에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했고, 출17:13에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강하고 담대한 마음의 상징입니다. 칼은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말씀에 서서 죄를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모세처럼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출17:9-13에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 오지 아니한지라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지팡이는 성령의 권능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늘 기도해야 합니다. 두 손을 들었는데 이것은 자기 포기를 의미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렇습니다. 육체의 정욕을 이기는 길은 하나님께 엎드려 죄의 마음을 제거하여 주시기를 구하는 길이 그 길입니다. 손은 행함인데 스스로 이기려고 해서는 백 번이고 집니다. 이것은 쓰는 대로 부패에 돌아갑니다. 손을 내려서 쓰면 집니다. 그래서 모세가 손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도우심의 두 손을 들고 깨끗이 씻어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깨끗이 씻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6:11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계속적인 승리를 위해서는 갈5:16처럼 성령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야 계속적인 승리가 보장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가 손을 내리지 않았던 의미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말렉은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육신의 정욕입니다. 세상의 욕망의 악한 죄를 이기십시다. 하나님의 말씀에 서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십시다. 그 때 하나님께서 더러운 우리의 심령을 깨끗이 씻어 주십니다. 그리고 성령으로만 행하여 다시는 세속에 빳지 않는 주님의 귀한 백성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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