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자족(自足)하는 마음이 행복의 통로(通路)입니다! (빌 4:10-13)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3. 9. 14:25

자족(自足)하는 마음이 행복의 통로(通路)입니다! (빌 4:10-13)

 

  아주 먼 옛날 두 눈을 실명하여 앞을 못 보는 한 소경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평생 소원이고, 가장 큰 소원은 '눈 한번 떠보았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소문을 들은 부엉이가 이 사람을 찾아 와서 말했습니다. '아저씨. 나는 아저씨가 눈 한번 떠보기를 원하는 소원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왔어요. 나는 밤에만 돌아다니고 낮에는 가만히 잠만 자기에 낮에는 눈이 필요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낮에는 내 눈을 빌려 드릴 테니 밤이면 눈을 꼭 돌려주세요. 내 눈을 교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해 드릴게요.'
  그 남자가 말했습니다. '너무나 고맙다. 밤에는 꼭 돌려 줄 테니 낮에만 빌려 다오. 나도 밤이면 잠만 자면 되니까 필요 없지' 부엉이가 말했습니다. '약속대로 밤에는 꼭 돌려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그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소경이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세상이 너무나 눈부시게 보였습니다. 딴 세상이었습니다. 그 날부터 눈은 낮이면 이 남자가, 밤이면 부엉이가 교대로 사용했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그 남자에게 욕심이 들어 왔습니다.
  '교대로 사용할 필요가 없다. 밤이 되어도 주지말고 도망가자'
  이 남자는 부엉이 눈을 가지고 멀리 도망가 버렸습니다. 밤에도 반짝이는 별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러나 날이 지날수록 점점 눈이 흐려지더니 다시 앞을 못 보는 소경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시 소경이 된 남자는 더듬더듬 부엉이를 찾아갔습니다. 부엉이가 말했습니다. '아저씨! 왜 약속을 버리고 도망쳤어요. 난 먹이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아저씨가 내 눈을 가지고 도망갔기 때문이에요. 나는 굶고 있어요. 그러니까 내 눈이 힘을 잃어버린 것이에요'
  부엉이는 이 말을 하고 그만 기운에 지쳐서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소경은 땅을 치며 회개하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부엉이는 먹지 못 하여 죽었고, 이제는 소문이 나서 자기에게 눈을 빌려 줄 부엉이도 없었습니다. 그런 좋은 동역자 부엉이를 잃어버린 아픔에 그도 울다 지쳐 죽고 말았답니다.
  그렇습니다. 욕심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자족하는 마음이 귀한 것'입니다. /할/ ◀제목 소개!▶

 

  영국에 있는 어느 작은 도시에 돈이 아주 많은 백만장자가 살고 있었답니다. 그 사람은 일평생 독신으로 지내면서 그저 돈 모으는 재미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그가 주식투자를 잘못해서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은행에 잔고를 조회해 보았더니 십만 달러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꽤 많은 돈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쓰러져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습니다.
  그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혈육은 시골에서 어렵게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조카가 한 사람 있을 뿐이었습니다. 남은 십만 달러는 자동적으로 그 조카에게 유산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가난하게 살던 그의 조카가 뜻밖에 십만 달러라는 거금을 손에 쥐게 되자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도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십장마비를 일으켜 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십만 달러인데 한 사람은 너무 적다고 죽고, 한 사람은 너무 많다고 죽고 말았습니다.
  삼촌은 비천에 처할 줄을 몰랐고, 조카는 풍부에 처할 줄을 몰랐습니다. 만약 그들이 평소에 자족하기를 배웠더라면 그와 같이 불행한 일은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할/
  오늘 우리 모두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족함의 은혜를 받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①본문의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쓴 편지로 감옥에서 기록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옥중 서신'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구구절절이 기쁨으로 감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기쁨의 서신'이라고도 부르기도 합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자신의 간증을 통해 평생 행복의 비결이 평생 감사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 11-12절을 보면,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바울은 여러 환경 조건에 처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는 귀족이요, 박사요, 로마 시민 권자이며, 부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유대교에 바리세파에 속해 있는 유망한 종교지도자로 급부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어 세상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가난과 궁핍도 경험하고 온갖 고초를 다 겪었습니다.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긴 그가 오늘 본문에서 고백하기를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는 마음을 배워, 비천에 처함도, 풍부에 처함도 모든 일체를 배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 어떤 환경이나 조건이 어떠하든지 다 적응할 수 있고, 그 가운데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을 터득했다는 고백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웨렌 위어스비'는 우리가 '온도계가 아닌 온도 조절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온도계는 주위 환경 조건에 따라 변화됩니다. 기온이 내려가면 함께 내려가고, 기온이 올라가면 함께 올라갑니다. 반면에 온도조절장치는 어떻습니까? 주위 환경 조건을 극복합니다. 기온이 내려가면 올려주고, 기온이 올라가면 내려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온도계와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형통할 때는 교만해지고, 고난의 때에는 낙심합니다. 그래서 불행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온도 조절장치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형통할 때는 스스로 낮아지고 겸손히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고난의 때에는 하나님을 앙망하며 소망 가운데 인내하고 감사했습니다. 이게 바로 범사에 감사하는 비결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전천후감사입니다. 있어도 감사, 없어도 감사, 오직 주님이 능력주시는 그 능력 안에서, 이기고 승리할 수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평생 행복의 비결입니다. '평생 감사' 할 수 있으면 '평생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할/
  다시 한번 본문의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이 말은 산전수전 다 겪어서 이제는 살아가는데 도통했다는 그런 표현입니다. /할/
  그런데 이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보다 더 깊은 고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고백은 '나는 예수의 제자로서 예수 때문이라면 비천하거나 풍부하거나 배부르거나 배가 고프거나를 막론하고 그것들이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예수를 전하는데 어떤 조건이나 어떤 환경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그런 고백입니다.  
  사도 바울이 가는 길에 장애물들이 참 많았습니다. 반대도 방해도 위험도 죽음의 위협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사도 바울에게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사도로서 신앙과 사명감이 성숙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할/

 

  ②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10).
  '여러분이 다시 나를 기억하고 도와 주니 내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합니다.'라는 감사의 인사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렇게 감사했을까요?
  빌립보교회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선교하고 있을 때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내준 선교헌금에 감사하고 있습니다(15-16). 그런데 그 헌금은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재물이라고 말합니다. 18절에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할/
  그러면서 헌금을 드린 손길에 축복하고 있습니다. 19절에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할/


  ③오늘 주제는 '일체의 비결'과 '자족하는 마음'입니다(11-12). 
  본문은 두 가지의 중요한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는 12절에 '일체의 비결'이라는 말씀이요, 또 하나는 11절에 '모든 것에서 자족하기를 배웠다'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자족하기를 배웠다'는 말은 이미 습득했다는 말입니다. 과거지사입니다. 자족하는 지혜를 터득하고 일체의 비결을 배운 것, 이것이 신앙인의 성숙한 신앙의 인격입니다. /할/
  또 여기 '어떤 형편에든지'는 '좋아도 나빠도, 많아도 적어도, 편해도 불편해도, 배고파도 배불러도, 있어도 없어도, 높아도 낮아도, 강해도 약해도, 커도 작아도, 건강하여도 아파도, 등등'입니다. /할/
  사도 바울의 '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는 고백은 어떤 수양에서 나온 고백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목적을 두었고 소망을 두었기에 나올 수 있는 고백입니다. 신앙의 삶은 소망의 삶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믿/

 

  ㉠자족하는 마음이 행복의 통로입니다.
  여기 '자족하는 마음'은 현재의 형편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만족과 행복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만족과 행복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요?
  ⑴무엇인가 필요를 충족할 때 오는 행복이 있습니다.
  목마를 때 한잔의 냉수, 허기진 상태의 소찬, 피곤할 때의 단잠은 분명 행복한 순간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친 소유욕으로 나타날 때, 이는 목이 마른 사람이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소유는 결코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얼마를 가지면 만족할까요?
  전5:10-11절에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재산이 더하면 먹는 자도 더 하나니 그 소유주가 눈으로 보는 무엇이 유익하랴'
  소득으로는 만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소유에 의한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부호였던 석유 왕 '록펠러'에게 어느 날 신문기자 한 사람이 찾아와서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현재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로 만족하십니까?' '아니오.' '그러면 얼마큼 더 가져야 만족하시겠습니까?' '조금만 더'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조금만 더'가 얼마만큼 일까요? 그 '조금만 더'에 도달하면 또 '조금만 더'하는 또 다른 욕심에 의한 목표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끝없는 욕구불만의 연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소유로는 결코 누구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소유욕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한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전1:7-8절에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 도다.'
  육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것은 마치 강물이 바다를 채우지 못함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북한에서 같이 의학을 공부한 두 분이 6,25사변 때 남한으로 내려와서 한 분은 목사가 되었고, 한 분은 의사로 서울에서 병원을 개업하고 집사의 직분으로 교회를 섬겼습니다. 집사인 친구 의사가 바쁘니까 교회를 잘 나가지 않았습니다. 친구 목사가 교회에 열심히 나오기를 권면을 하자, 친구 의사는 말하기를 '나 박사 학위 받고 열심히 나갈게'라고 했습니다.
  학위를 받은 뒤에도 역시 교회에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신앙생활 잘하기를 친구 목사가 다시 권면하자, 친구 의사가 이번에는 '병원 빌딩 하나 사고 나갈게' 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에 만나니까 얼굴이 핼쑥해졌기에 '왜 얼굴이 안 좋으냐?'라고 물었더니 '소화가 좀 안 돼서 그래. 괜찮아'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얼마 후 '간암 말기가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 그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장례식 때 가서 보니까 관 위에 '의사면허증, 박사학위증과 무슨 표창장들이 즐비하게 올려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게 부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 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고 하셨습니다. /할/
  ⑵인식의 전환으로부터 오는 행복이 있습니다.
  전에는 알지 못했는데 깨닫고 보니 감사하고 행복한 것입니다. 환경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는데 생각을 바꾸고 보니 만족하고 행복한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아내가 잠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었습니다. 깨워도 자고, 일으켜 세워도 잠을 잡니다. 아침에 먼저 일어나 밥을 지어야 하는데도 부인은 예사로 남편보다 늦게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웃에 사는 어느 부인이 불면증에 걸려 입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을 본 이 남편은 '불면증보다는 잠 많은 편이 차라리 났구나!'하고 생각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곧 인식의 전환으로부터 오는 만족과 행복입니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생각이 바뀐 것입니다. /할/
  ⑶헌신으로부터 오는 행복이 있습니다.
  내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던 삶의 영역에서 벗어나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삶, 섬기는 삶을 통해 얻게 되는 만족과 행복이 있습니다.
  봉사는 하늘의 상급으로 이어집니다. 딤전6:17-19절에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섬기는 것은 성도가 마땅히 행해야할 본분입니다. 예수님이 왜 세상에 오셨습니까? 섬기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보이신 체험적인 교훈은 남의 발을 씻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하셨습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의 바른 삶은 위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라'는 사명이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애들러' 박사는 자기를 찾아오는 우울증 환자를 치료할 때 이런 처방을 자주 한다고 합니다. '당신은 가서 2주일 동안 매일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무슨 일을 할까? 그것만 골똘히 생각하고 한 번 실천해 보세요. 2주일 동안만 그렇게 살면 당신의 병은 깨끗이 나을 것입니다.' 이 처방으로 우울증이 나은 사람이 수 없이 많다고 합니다. /할/
  ⑷오늘 주제인 자족하는 마음으로 오는 행복이 있습니다.
  ▶어느 중년 부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평소에 아주 행복했습니다. 남편은 직장 잘 다니고 월급날이 되면 꼬박 꼬박 온라인으로 입금이 됩니다. 아이들도 말썽 부리지 않고 학교에 잘 다닙니다. 큰 평수 아파트는 아니지만 전세를 면하고 내 집도 마련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고 동창회에 다녀왔습니다. 아침에 기분 좋게 차려입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동창생들이 저마다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남편 연봉이 얼마이고, 아이들이 어느 학교 다니고, 아파트 평수가 어떻고 정말 타고 온 자동차들을 보니까 하나같이 번쩍번쩍합니다.
  괜히 마음이 울적해졌습니다. '학창 시절 나보다 공부도 못한 것들이 잘도 사네, 나는 뭐야, 남편 잘 못 만나서 이 고생이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날 저녁 괜히 투정을 부리다 남편과 대판 싸웠습니다. 갑자기 집안이 지옥 같이 되었습니다. 비교의식 때문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한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아무리 환경 조건이 좋아져도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면 불평할 수밖에 없고 항상 불행합니다. 게다가 고난이 닥치면 맥을 못 춥니다. 원망하고 낙심합니다. 그래서 불행합니다.
  이 여인이 처음에는 자족하는 마음으로 살 때 얼마나 행복했습니까? 비교하지 마십시오! 그냥 주어진 환경에 조건에 감사하시기를 소원합니다. /할/
  ▶어느 사이트에서 본 정철상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 해고를 당했습니다. 하루 종일 집에 멍하니 있었습니다. 마치 머리가 정지된 것 같았습니다. 자신의 처지가 싫었고 죽고 싶었습니다. 다른 직장을 찾아보려는 의욕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자신이 있을 곳이 못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막연히 미국에 가면 다 잘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어머니가 해줄 돈이 없는 줄 알기 때문에 돈을 필요 없으니 가도록 허락만 해 달라고 어머니를 설득하여 허락을 받았습니다.
  미국에 가기 전에 15일 정도를 계획하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돈이 없으니 중고차에 먹을 것과 이불을 싣고 떠났습니다. 동해안에서 남해안으로 서해안으로 한 바퀴 돌려고 했습니다. 그가 동해안으로 돌면서 바다를 보니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3일째 되는 날부터는 외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어머니와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외국에 가서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급작스럽게 찾아온 고독함 때문에 일단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불현듯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정면으로 부딪히지 않고 도피하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 결심했습니다. '환경을 도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돌파해 보자' /할/ 그렇습니다. 환경을 피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적응하고 자족의 마음으로 가야 합니다. /아멘!/
 
  ㉡자족하는 마음은 감사하는 마음이요, 긍정하는 마음입니다.
  ▶발명왕 에디슨의 일화입니다. 그가 67세 되던 해인 1914년 실험실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평생의 연구 자료가 잿더미가 되어버렸습니다. 손해 액은 무려 2백만 달러가 넘었지만, 보상금은 겨우 23만 8천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연구자료가 사라진 것은 엄청난 손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에디슨은 잿더미가 된 실험실을 바라보며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그래 재난도 가치가 있지. 내 모든 실수가 다 타버렸으니까. 하나님께서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기도를 드렸답니다. 그로부터 정확히 3주 후에 최초의 축음기가 탄생했습니다. 감사하는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기적 같은 축복입니다. /할/
  ▶클린턴이 대통령 후보에 나서서 마침내 지명되어 지명수락 연설을 했습니다. 그때 아주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나는 아버지를 모르는 유복자입니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석 달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내 어머니는 네 살 때 재혼하였고 내 의붓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였습니다, 그런데 내 할아버지는 무식했고 가난했지만, 남부 알칸소 작은 마을에서 잡화상을 했는데 내 할아버지는 인종을 초월하고 자기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익을 따지지 않고 덤으로 더 얹어주는 모습에서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나는 이제 미국에 희망을 주려고 합니다.'
  그 연설 후에 클린턴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고 그는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때 클린턴이 '어머니가 나를 버리고 시집갔다.' 그래서 그는 고민하고 원한을 품고 불평이나 하고 술주정뱅이가 되었다면 그는 사탄의 수하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강조합니다. /아멘!/
  ⑴긍정적인 마음과 자세란 매사에 희망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긍정적인 마인드가 최고입니다.
  한 소년이 골목길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딱-' 갑자기 돌이 날아와 소년의 눈을 때렸습니다. 친구가 돌을 던졌는데 그것이 그만 한쪽 눈에 명중한 것입니다. 소년은 눈을 손으로 잡고 쓰러졌습니다. 손가락 사이에서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소년의 부모가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급히 병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크게 다쳤군요. 나머지 한쪽도 못 쓰게 되어 앞으로 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부모는 비통한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그때 소년은 말했습니다.
  '엄마, 아빠! 눈을 잃었으나 머리는 남아 있어요.' 이 소년은 평생을 시각장애자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머리'가 남아 큰 인물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 소년이 앞을 보지 못했지만 영국의 위대한 경제학자요, 캠브리지 대학교수요, 국무위원을 지낸 '헨리 포세트'라는 사람입니다. 긍정적인 마음과 자세를 갖고 사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하게 마련입니다. /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그 어려움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미래의 희망을 예견하고 말하고 사는 자세가 바로 긍정적인 자세입니다. 그래서 긍정적인 사람은 항상 좋은 것을 보고, 장점을 봅니다. 반면에 부정적인 사람은 환경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자기 자신의 미래를 비관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인간의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이 결정됩니다. 일반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긍정적인 사람이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거의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반면에 부정적인 사람은 세상 살기가 참 힘듭니다. 대개 불행하고, 가정생활이 원만하지 못하고, 대인관계도 원만하지 못해서 언제나 그 사람이 들어가면 어두워집니다. /할/
  ⑵긍정의 사람은 '아멘!'의 사람입니다.
  현대인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하는 사람과 '아니오'하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긍정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입니다. 이 부류는 정치권에도, 교육계에도, 언론분야에도 그리고 교회 안에도 존재합니다.
  아니오 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아니오의 조건을 찾게 마련이고, 예 하는 사람은 언제나 예라고 말할 조건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삶의 현장에서 결과로 드러납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매사에 할 수 없다고 비판합니다. 그런데 이런 부정적인 사람의 영향을 받으면 같이 부정적으로 됩니다. 부부도 닮아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부 중에 한 사람이라도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부부간의 관계에서는 긍정과 부정이 대립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경우에 긍정이 부정을 이기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아멘!/
  ⑶우리 모두 긍정의 사람, 아멘의 사람이 되자! /할/ 
  19세기 최고의 시인 '롱펠로우'에게 두 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부인은 오랜 투병생활을 하다가 외롭게 숨졌고, 두 번째 부인은 부엌에서 화재가 발생해 비참한 최후를 마쳤습니다.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도 '롱펠로우'의 시는 여전히 아름다웠습니다.
  임종을 앞둔 롱펠로우에게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숱한 역경과 고난을 겪으면서도 당신의 작품에는 진한 인생의 향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롱펠로우는 마당의 사과나무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 나무가 나의 스승이었습니다. 저 나무는 매우 늙었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단맛을 내는 사과가 주렁주렁 열립니다. 그것은 늙은 나뭇가지에서 새순이 돋기 때문입니다.'
  롱펠로우에게 힘을 준 것은 긍정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인생은 환경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뉩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자신을 '고목'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고목의 새순'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생각이 바로 인생의 새순입니다. /할/
  우리는 모든 신앙 생활을 긍정적으로 해야 합니다. '아니다'라는 '노멘!'보다는 '예'라고 하는 '아멘!'편을 더 택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고후1:19절에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할/
  가령 큰 쌀통에 쌀이 절반쯤 남아 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그 쌀통을 볼 때에 그 쌀을 보지 아니하고 빈 것을 바라보면서 '쌀통에 쌀이 절반이나 텅 비었구나' 그럽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람은 '야, 쌀통에 쌀이 반이나 가득하구나!' 하면서 있는 것을 봅니다.
  똑같은 쌀통을 보고 부정적인 사람은 실망을 하지만, 긍정적인 사람은 소망을 봅니다.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가진 사람만이 성공하고 승리하게 됩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큰 인물이 되거나 성공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긍정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축복을 하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두운 면보다 '밝은 면'을 생각하십시오. 할 수 없다는 생각이나 말보다는 '할 수 있다.'는 생각과 말을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나쁜 점을 보기보다는 '좋은 점'을 발견하고 칭찬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어떤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이것이 될 수 있고 안될 수도 있다고 할 때 우리는 안 된다는 편을 택하지 말고 '될 수도 있다.'는 편을 택해야 합니다. /아멘!/
  ⑷긍정적인 마음과 자세가 일의 능률을 높이고 몸을 건강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이든 플러스 발상을 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면역성이 강하여 좀처럼 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늘 마이너스 발상만 하는 사람은 한심스러울 정도로 쉽게 병에 걸리고 맙니다. 똑같은 상황, 똑같은 라이프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생기 있고 건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늘 기운이 없고, 병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같은 차이는 대부분 '마음가짐'에서 시작됩니다.
  사람의 몸은 신비합니다. 마음가짐에 따라 전혀 다른 체내(體內) 물질이 생성됩니다. 분노, 불만, 공포를 느끼면 몸을 해치는 아드레날린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지만, 웃음, 기쁨, 감사, 매사 긍정적 사고를 하면 엔 돌핀이라는 행복 호르몬이 나옵니다.
  우리 모두 긍정적인 플라스 인생이 더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⑸상황 판단을 잘 하는 것도 긍정적인 삶의 지혜입니다.
  ▶어느 시골 중년 남성이 장날에 읍내 만 갔다 오면 부인에게 못생겼다고 투정을 부렸습니다. 시골 사는 아낙네가 농사짓고 바쁘게 살아가는데 뭘 꾸몄겠습니까? 그러니까 남편이 읍내에 나가서 꾸민 사람들을 보고 와서는 아내에게 모양새가 없다고 구박을 했습니다. 그게 점점 더 심 해지자 아내가 견디다 못해 한 마디 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싫으면 친정에 가겠다.'고 하자, 남편도 '갈 테면 가라'고 했습니다. 비록 구박을 받아 친정에 가는 것이 지만 그래도 외출인지라 아내는 목욕을 하고 화장도 하고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문을 나섭니다.
  남편이 보니까 아주 딴 여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맨 날 보던 그 푸시시한 얼굴 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이 보기에 읍 내 여자들 보다 훨씬 나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농담도 못해' 그러면서 주저앉혔다고 합니다. 위기를 잘 극복하는 삶의 지혜가 절대 필요합니다. /할/
 
  ㉢일체의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⑴비천에 처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때가 더 인간적입니다. 
  ▶오래 전에 '로마의 휴일'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오드리 헵번'이라는 배우를 스타로 만들어 준 영화입니다. 그 영화를 계기로 그가 대 스타로 발돋움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배우로서는 성공을 했는데 여자로서는 불행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첫 번째 결혼해서 남편으로부터 버림받고, 두 번째 결혼했는데 이혼해서 또 버림받고 상실의 아픔을 겪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사랑 받지 못하고 버림받은 여인이라고 자책하며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 아주 삐뚤어진 자화상을 가지고 아이도 남편도 가정도 없이 혼자 노년을 살았습니다. 말년에는 우울증과 외로움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누가 그녀가 그렇게 살아가는 줄 알았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 1988년 3월 유니세프에 친선대사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에티오피아, 수단, 방글라데시, 소말리아 등 내전을 겪는 지역을 돌아다니며 어린 생명들을 돌보는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설상가상으로 직장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이 시한부 인생임을 알게 되자 더 일에 집착하여 체중이 35kg이나 빠지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는 투병하면서도 소말리아 아이들을 걱정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비로소 그때 예수 안에서 새로운 자화상을 발견하게 되고 새 삶을 살게 됩니다. 그는 배우시절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살았지만 마음은 깊이 병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자선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자화상을 발견하고 삶을 바꾸고 마음이 건강해지게 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말하기를 '정말 아름다운 헵번을 만난 것은 로마의 휴일에서가 아니고 아프리카에서 만났다.'고 하였습니다. /할/
  사도바울은 엄청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만난 후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선교 사역에 엄청난 고난과 핍박과 매맞음과 감옥 안에서의 삶을 살면서 그는 절대로 비굴해하거나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럴수가 있습니까? 비천에 처할 줄도 그는 알았습니다. /할/
  ⑵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 때 사람들은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풍부함에 처했을 때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잊지 아니했습니다. 바울의 삶의 목적은 오직 한 가지였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는 풍부할 때도 그 풍부함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아멘!/
  ⑶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몇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피해의식에 젖어 사는 사람입니다. 상황과 환경의 피해자로 사는 사람입니다. 도대체 세상에 태어난 것도 피해요, 죽는 것도 피해라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것도 피해요, 실패도 피해요, 병드는 것, 헤어지는 것도 피해입니다.
  모든 사건이 다 나를 괴롭히자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는 피해자다' 이렇게 여기고 살아갑니다. 늘 원망하고 불평하며 살아갑니다. 자기 주도적인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상황의 반응자로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상황이 변할 때마다 웃었다 울었다, 좋았다 슬펐다 합니다. 상황대로 끌려갑니다. 그래서 늘 불평입니다. 뿐만 아니라 책임은 언제나 남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게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평과 불만, 원망으로 그렇게 평생을 삽니다. '도대체 내 생(生)은 어디에 있는 것이냐?' 피해의식에 젖어 사는 사람입니다.
  ㈁항상 수련의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배우는 자세로 사는 사람입니다. 모든 경우에서 배웁니다. 사건이 있을 때마다 '왜 이 사건이 내게 있느냐? 왜 내게 이런 사건이 생겼느냐?'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 사건을 통하여 나는 오늘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라고 깊이 생각합니다.
  이렇듯 언제나 배우고 또 배우는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고백했습니다.
  ▶'논어'에 보면 공자는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기란 그래도 쉬운 편이지만, 가난하면서도 원망하지 않기란 어렵다'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부(富)하면 교만하기 쉽습니다. 그렇지 않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가하면 가난할 때에는 남을 원망하기 쉽습니다. 실패할 때에는 남을 원망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가난하면서 원망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논어'를 보면 제자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묻습니다. '선생님,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공자는 대답합니다. 그렇지만 '가난하면서도 즐길 줄 알고 부하면서도 예를 좋아할 줄 아는 것만은 못하다.' 멋진 대답입니다. /할/
  가난하여도 비굴해지지 않고 남을 원망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가난 가운데서 스스로 즐길 줄 아는 것, 부하다고 해서 건방떨지 않고, 출세했다고 해서 거만하지 않고 스스로 예를 지킬 줄 아는 것, 이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요, 더 중요한 일이라고 이 동양의 성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풍부에 처한 환경을 만날 때도 있었고, 비천한 처한 환경을 만날 때도 있었습니다. 풍부할 때는 허영과 방탕과 교만으로 기울어지지 않았지만, 비천할 때도 좌절하거나 원망하거나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체의 비결은 바로 자족하는 마음입니다. 바울은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하기를 배웠습니다. 자족(自足)은 환경에 지배받지 않고 자신의 내면의 자원으로 만족해하는 그런 태도를 말합니다. 바울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았습니다. 배고픔과 배부름, 궁핍과 풍부, 그 어떤 환경에서도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가졌습니다.
  여러분, 풍부할 때도 멸시하거나 자만하거나 방종하거나 방탕하거나 타락하지 않고, 궁핍할 때도 염려하거나 낙망하거나 비굴하거나 비방하거나 원망하지 않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이것이 바른 신앙의 성숙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신앙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다시 한번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제목은 '어쨌든'입니다.
  '사람들은 무분별하고 터무니없고 이기적이다. 그러나 어쨌든 너는 사랑하라. 당신이 선을 행하면 사람들은 당신이 혹시나 배후에 이기적인 동기가 있어서 선을 행한다고 의심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선을 행하라. 당신이 성공하면 가짜 친구들이 나타나고 적들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성공하라. 정직과 성실이 당신을 유약하게 할지라도 어쨌든 정직하고 성실 하라. 오늘 당신이 행한 선이 내일 잊혀진다 하여도 어쨌든 선을 행하라. 위대한 사람이 변변치 못한 생각을 지닌 소인들에 의해서 넘어지는 것을 볼지라도 어쨌든 크게 생각하라. 사람들은 패자의 편을 드는 것 같아도 실상은 승자를 추종한다. 그러나 어쨌든 너는 패자를 위하여 싸워라. 몇 년 걸려 지은 것이 하룻밤 사이에 파괴되는 것을 본다 할지라도 어쨌든 너는 건설하라. 당신이 가진 것 중에서 최상의 것을 세상에 주어라.'
  여러분, 환경에 좌우되지 마십시오. 세상이 변하는 것에 덩달아 맞물려 돌아가지 마십시오. 지금 바울 사도는 저 로마 감옥에 있습니다. 이대로 살다가 이대로 순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늘 자유 하였고,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좋은 환경에서, 좋은 건강, 좋은 머리, 좋은 외모를 가짐에도 인생을 최악의 실패로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좋지 못한 환경, 외모, 건강, 아무런 배경이 없음에도 성공적으로 살았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는 의식의 차이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는 할 수 없다.'의 부정적인 사고주의자가 아니라, '나는 할 수 있다.'의 긍정적인 사고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본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할

 

  ④바울의 자족하는 마음과 일체의 비결의 능력이 어디에서 왔습니까?(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도 본문의 바울처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분명한 신앙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자신의 능력이나 힘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일해야 됩니다. /아멘!/
  ⑴하나님 안에 있어야 바른 봉사의 힘도 나옵니다.
  ▶시골교회에 맹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자신과 친한 임집사가 갑자기 중풍이 걸려 거동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임집사와 친했던 맹집사는 그 집을 드나들면서 교회소식을 알려줍니다. 그때 임집사님은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들으며 맹집사님은 마음에 부담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휠체어 한 대만 내려주시면, 평생 임집사님을 밀고 다니면서 예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맹집사님이 그 기도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목사님이 휠체어를 한 대를 사주었습니다.
  맹집사도 기뻤고 임집사님도 기뻐했습니다. 이제 맹집사님은 휠체어를 끌고 임집사님을 모시고 교회에 나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맹집사님을 칭찬하고 박수를 쳐줍니다. 그런데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을 때 느꼈던 감격의 순간은 잠깐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큰짐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울퉁불퉁한 시골길에서 휠체어를 민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예배 때마다 고통이었습니다. 어느 날 비가 쏟아져 길이 다 패였습니다. 그런데 임집사님이 수요예배를 드리러 가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 날도 휠체어를 밀고 갑니다. 가면서 마음속으로 그를 살인합니다. '좀 빨리 죽어버리지. 왜 죽지도 않고 사람을 이렇게 고생시키나' 물론 그 날 밤에도 맹집사님은 교인들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 주일 아침, 임집사님을 끌고 휠체어를 밀면서 교회로 갑니다. 교회입구에 있는 가게에서 믿지 않는 동네사람들이 맹집사를 보면서 칭찬합니다. '저 사람은 천사여, 어떻게 자식도 못하는 일을 저렇게 할 수가 있나 말이여' 그 소리를 들은 임집사는 교회에 도착해서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 날도 마음으로 임집사님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제에, 내가 어떻게 예배를 드릴 수 있는가, 내가 마음으로 살인을 했는데' 맹집사는 감히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밖에서 기도를 드립니다. '주님 용서해 주십시오.'
  우리의 모습이 맹집사처럼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겉으로 보여지는 신앙생활에만 더 관심 있는 것은 아닙니까? 마음에도 없이 주를 위해 산다고 말만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의 능력 안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아멘!/
  ⑵바울의 이 고백은 '주님이 능력을 주셔서 비천에 처할 줄도, 풍부에 처할 줄을 알아 자족하는 일체를 배워 그어려운 선교 사역을 잘 감당했다.'는 고백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성공하는 날에 교만하지 않을 수 있고, 어려운 일 당할 때에 비굴하지 않을 수 있고, 가난할 때에 남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고, 성공할 때에 오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멘!/ 그러나 더 큰 의미로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면 우리 모두는 엄청난 하나님의 일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아멘!/ (2014년 3월 9일 대예배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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