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우리의 영원한 대장 예수 그리스도! (수 5:13-15)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3. 23. 09:11

우리의 영원한 대장 예수 그리스도! (수 5:13-15)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40일 간의 기념일'로 부활주일을 기점으로 역산해서 도중에 들어있는 주일을 뺀 40일간을 주의 고난과 부활을 묵상하며 경건하게 보내자고 시작된 그런 절기입니다.
  그러면 왜 하필이면 40일일까요? 성경을 보면 40일은 경건한 삶과 관련된 상징적인 수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우리 주님께서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면서 공생애를 준비하셨습니다. 모세도 40일간 시내산에서 금식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준비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40년을 저 광야에서 훈련받았습니다.
  이렇게 40이라는 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경건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한 해에 한 번은 40일 동안 절제하며 경건을 힘써 연습하자는 뜻에서 사순절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할/

  ▶그러면 사순절은 어떻게 지내야 하는가?
  ⑴자기를 보며 애통하는 기간입니다. 약4:9절에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할/ 자기의 죄를 바라보고, 자기의 믿음을 바라보고, 자기의 행실을 바라보면서 '왜 나는 이러는지 몰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 적인 쾌락과 즐거움도 애통으로, 근심으로 바꿔야 합니다. /아멘!/
  ⑵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는 기간입니다. 사순절의 주인공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고난,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죽음, 예수님의 부활, 승천을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사순절은 '오직 예수'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난 당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그 고난을 묵상하는 기간입니다. /아멘!/
  ⑶사순절은 신앙을 훈련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가장 좋은 훈련은 금식기도입니다. 금식기도는 자기를 죽이는 기도입니다. /할/ 이런 성도의 삶이 참 좋은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아멘!/

 

  ▶저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좋은 글'에 나오는 '참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사는 비결 몇 가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면 좋은 인간관계가 이루어진답니다.   
  ⑴먼저 인간이 되라! 좋은 인맥을 만들기 전에 먼저 자신의 인간성부터 살펴라. 이해 타산에 젖지 않았는지, 계산적인 만남에 물들지 않았는지 살펴보고 고쳐라. 유유상종이라 했으니 좋은 인간을 만나고 싶으면 너부터 먼저 좋은 인간이 되라.
  ⑵적을 만들지 말라! 친구는 성공을 가져오나, 적은 위기를 가져오고 성공을 무너뜨린다. 조직이 무너지는 것은 3%의 반대자 때문이며, 10명의 친구가 한 명의 적을 당하지 못한다. 쓸데없이 남을 비난하지 말고, 항상 악연을 피하여 적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
  ⑶좋은 스승부터 찾아라!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은 인생에 있어 50% 이상을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유비도 삼고초려 했으니 좋은 스승을 찾아 삼십 고초려 하라.
  ⑷만나는 사람마다 생명의 은인처럼 대하라! 항상 감사하고 어떻게 보답할 것인지 고민하라. 
  ⑸첫 만남에서는 첫사랑보다도 강렬한 이미지를 남겨라!
  ⑹헤어질 때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라!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 함께 하면 유익한 사람이 되라. 든 사람, 난사람, 된 사람, 그도 아니면 웃기는 사람이 되라.
  ⑺하루에 세 번 참고, 세 번 웃고, 세 번 칭찬하라!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 미소는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 메이킹이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세 번에 열 배라도 참고 웃고 칭찬하라. 애 경사가 생기면 진심으로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라. 네 일이 내 일 같아야 내 일도 네 일 같다.
  ⑻먼저 주고, 조건 없이 주고, 더 많이 주라! 줄 때는 아무 말을 하지 말아라! 그리고 되도록 빨리 모두 잊어버려라! Give Take 하지 마라. 받을 거 생각하고 주면 정 떨어진다.
  ⑼한 번 인맥은 영원한 인맥으로 만나라! 잘 나간다고 가까이 하고, 어렵다고 멀리 하지 마라. 한 번 인맥으로 만났으면 영원한 인맥으로 만나라. 백년을 넘어서, 대를 이어서 만나라. /할/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진입의 첫 관문인 여리고 성을 공략하기 직전에 있었던 한 특별한 사건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총사령관이 되어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 성 앞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너무 조용합니다. 적막할 정도로 고요합니다. 아무런 인기척도 없습니다. 여리고 성은 과거 여호수아가 한번 들어가 본 성입니다. 그런데 쥐 죽은 듯이 조용합니다. 그때, 여호수아 장군 앞에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14절에 자기를 소개합니다.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라고 합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해석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보낸 천사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학자들과 성경학자들은 이분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해석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셔서 사람의 몸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곳곳에서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구약 시대에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께서 여행자로 찾아오셔서 축복하셨습니다.
  야곱에게는 씨름꾼으로 오셨어요. 그래서 그의 환도 뼈를 부러트렸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과 그의 친구에게, 그리고 에스겔에게는 사랑이 많으신 인자의 모습으로 찾아오셔서 위로해주시고 힘을 복 돋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우리의 대장이십니다. 히13: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할/ ◀제목 소개!▶

 

  ①본문의 배경입니다.
  여리고 공격 준비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수5:1절 이하의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말리셔서 이스라엘 백성이 육지처럼 건너왔다는 소식을 요단강 건너 서편의 모든 나라 왕들이 듣고 간담이 서늘해지고 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과 싸울 용기를 모두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내친김에 그대로 여리고를 공격한다면 파죽지세(破竹之勢)로 가나안 땅을 모조리 정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공격에 절호의 기회를 맞은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남자는 할례를 시행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 되는 의식으로 생후 8일째 되는 남자의 포피(包皮)를 자르는 의식입니다(창17:4-14). 이 할례를 받은 사람만이 이스라엘 민족의 최대 절기인 유월절을 지킬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흔적입니다.
  할례를 받게 되면 고통스러워 적어도 일주일 이상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게 됩니다. 과거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 족에게 강간당한 일로 그의 오라비 시므온과 레위가 누이를 세겜 족에게 시집보내는 조건으로 세겜 족 남자들이 모두 할례 받을 것을 내세웠습니다.
  세겜 족은 협상 조건에 따라 모두 할례를 받았습니다. 할례 받은 지 삼 일째 되는 날, 가장 고통스러워 꼼짝하지 못하는 때에 일제히 공격하여 세겜 족 남자를 모두 몰살해버렸습니다.
  이 사건에서처럼 전투를 앞두고 할례를 행한다는 소문이 적군에 알려진다면 극히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여리고 전투를 앞두고 전 이스라엘 남자들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애굽에서 나온 남자들은 모두 할례를 받았지만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모두 광야에서 죽었고, 그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광야에서 할례 받을 기회가 없어서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약속된 축복의 땅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의 후손들일지라도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결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할례는 오늘날 예수 믿고 죄 사함을 받아 의로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세례의식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믿고 세례를 받아야 가나안 땅과 같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 남자들은 할례를 받았습니다. 할례를 받음으로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는 관계가 바로 세워지게 됩니다. 그리고 창17:4-14절에 보면 '할례를 받아야만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례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유월절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출12:48).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할례를 시행한 후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할례를 받지 못해 40여 년 동안 광야에서 지키지 못했던 유월절 절기를 감격적으로 지키게 된 것입니다.
  일반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치열한 전투를 앞두고, 그것도 적군이 가장 공포에 떨며 전의를 상실한 최고의 적기에 전세가 뒤집혀 질 수도 있는 할례의식을 행한다든가, 평안하게 유월절 절기를 지키며 공격 시기를 지연시킨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게다가 적군은 이스라엘보다 몇 배나 많은 병력과 뛰어난 전력과 지형지물(여리고 성) 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로 전투를 앞두고 할례와 유월절을 지킨다고 하는 것은 무모하기도 하며 어리석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후계자로 이스라엘의 사령관이 된 여호수아는 이러한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가나안 전투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전투의 승리를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져야만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일찍이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가나안 족속들에 대해 두려워 떨며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민14:8-9절에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여호수아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그리고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도 우리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시37:4절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할/
  그렇습니다. 여호수아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온전히 믿음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면 얼마든지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 싸우면 누가 이기겠습니까? 반드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이 승리합니다. /할/
  그렇습니다. 인간의 궁극적인 생사화복과 삶의 성패(成敗)는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성패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 자신의 힘으로 승리하는 것은 영원한 승리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므로 승리한 것만이 영원한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믿/아멘!/
  ▶여호수아가 이처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키고 나서 여리고를 공격하기 위해 진격했습니다. 가나안 전투에 있어서 최초의 전쟁이 되는 여리고 성 공격은 그 성패에 따라 남은 모든 전쟁에 미칠 영향력이 아주 큰 것입니다.
  그만큼 중대한 전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같은 전투 직전에 갑자기 정체불명의 한 사람이 칼을 빼들고 여호수아 앞에 마주 선 것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에게 여호수아가 묻습니다.
  '너는 우리편이냐? 아니면 적군 편이냐?' 그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네 편도 아니고 적군편도 아니다.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이곳에 왔노라' 그러니까 '나는 네 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적군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하나님에게 소속된 총사령관으로 오직 하나님 편이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이곳에 왔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편에서 싸우러 왔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가 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한 땅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전투는 하나님께 속한 전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군대 장관으로 왔다면 '나는 여호수아 네 편이다.'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네 편도 아니고 적군 편도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여호수아는 이 말에 당황할 만도 한데 '하나님의 군대 장관'이라는 말에 그 자리에 엎드려 절하며 '나의 주여, 주의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하십니까?'고 묻습니다.
  가나안 전투의 승리를 위해서는 '내가 너의 편이 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네가 거룩한 하나님의 편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여호수아, 네가 이스라엘의 사령관이 아니라 네가 하나님의 편이 되어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편이 되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거룩한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싸워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여호수아는 그 자리에서 '나의 주여'라고 부르며 자신을 사령관이 아니라 '주의 종'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할/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존경받는 아브라함 링컨이 흑인 노예 해방을 위한 남북 전쟁 당시 아주 힘든 전투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때 참모 하나가 와서 '각하 우리가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자, 링컨 대통령은 '하나님께서 이 전쟁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편에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자'고 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지휘하고 있는 북군이 하나님 편에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 링컨 대통령은 남북 전쟁에서 승리하므로 흑인 노예 해방을 이룩해 냈습니다. /아멘!/
  여호수아가 던진 '너는 우리편이냐? 아니면 적군 편이냐?'라는 질문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편에 서 있어야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우리는 여호수아의 이 태도와 말속에서 드러나는 몇 가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여호수아가 그를 '주'라고 높여 부르고 자기는 '종'이라고 낮추어 말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여호수아가 그를 자기의 상급지휘관으로 인정하고 자기는 그의 명령을 따라야 할 것임을 밝힌 것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하나님의 군대 대장 자신보다는 그의 사령관이신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겠다는 태도입니다. 
  둘째는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하며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물은 것입니다. 자기의 계략과 작전을 따라 행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행동할 것이니 그저 하명하시라는 것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여호수아가 바로 엎드려 '주여' 라고 고백한 것은, '가나안 전투에서 이스라엘의 사령관은 네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그 전투의 모든 작전 명령권은 너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고백입니다. /할/

 

  ②여호수아 그는 누구인가?
  여호수아는 모세의 영도 하에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장년의 나이로 참여했습니다. 모세에게 발탁되어 장수로 전쟁의 선봉에 서서 싸웠습니다. 모세가 죽은 뒤에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저 약속의 땅 가나안에 입성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 정복 전쟁을 진두지휘했습니다.

 

  ⑴여호수아는 위대한 지도자 모세 밑에서 훈련을 받은 사람입니다.
  여호수아는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모세의 특별한 지도를 받았습니다. 우선 그는 늘 모세 곁에 있었습니다. 출24:13절을 보면 '모세가 그 종자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며'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시내 산으로 올라갈 때 단 한 사람 여호수아만을 데리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모세 곁에서 특별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사람은 어떻게 그 사명에 충성해야 하는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배웠습니다.
  ▶로마가 팔레스틴을 점령하고 유대인들을 통치하고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유대인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말을 잘 따르게 할 수 있을까?'를 연구했습니다. 그 때 유대인들이 탈무드를 배우기 때문에 민족 의식도 강해지고 자기들의 말을 잘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강압적으로 탈무드를 배우지 못하게 했습니다.
  당시 유대교 지도자 랍비 아카바가 총독을 찾아가서 비유하나를 들어 말했습니다.
  여우 한 마리가 물고기들이 어디론가 도망치는 것을 보고는 물었답니다. '왜 그렇게 도망치니?' '누군가가 저쪽에 그물을 치고 이쪽으로 몰고 오기 때문입니다.' '그래 그러면 이 위 언덕 위로 나와 그러면 내가 도와줄게' 그 때 물고기들이 '참 어리석군요 우리가 물을 떠나면 죽는다는 것을 모릅니까?'
  랍비 아카바가 이어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살 수 없듯이 사람이 배움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탈무드를 배우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배우지 않고는 사람답게 살 수 없습니다. 특히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지 않고는 성도답게 살 수 없습니다. 더더욱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사람들은 늘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습니다. /아멘!/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신6:6-7절에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들을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당부했을까요? 가나안 땅의 상황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저들이 우상숭배의 문화를 이루어 놓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속에 동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명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이 당시 가나안 땅과 같습니다. 세속주의 물결, 물질주의 물결, 향락주의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습니다. 이 물결이 우리의 가치관을 뒤흔듭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지 못하게 합니다. 목적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 목표를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할/아멘!/

 

  ⑵여호수아는 믿음이 사람입니다.
  가난안 땅을 정탐할 때도 열 명의 정탐꾼은 불평하고 원망하는 불 신앙을 고백했지만 여호수아의 고백은 오직 믿음입니다. 또 한번 이 말씀을 보겠습니다. 민14:9절에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할/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하나님은 능력을 주십니다. 수1:5-6절에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이 약속 때문에 오늘 여호아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보다 앞서 여리고 성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할/ 

 

  ⑶여호수아는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12명의 정탐꾼이 가나안 땅을 돌아보고 왔습니다. 10명은 두려워 떨며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그 소리를 듣고 두려워 밤새도록 울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그러자 백성들이 돌로 여호수아와 갈렙을 치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용기를 엿볼 수가 있습니다.
  수10장에 보면 여호수아가 가나안 다섯 왕의 연합군과 전쟁을 치르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전쟁을 치르러 나아갑니다. 세상 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은 정말 힘겨운 전쟁을 치르러 나아갑니다. 다섯 나라 연합군의 위세가 너무도 당당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두려워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그들의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이 말씀을 믿고 용기 있게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박으로 저들을 치셨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우박으로 우왕좌왕하는 적들을 칠 때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능력으로 놀라운 선포를 합니다.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찌어다.' 놀랍게도 태양이 종일토록 그 자리에 멈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기도인 동시에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여호수아의 용기를 드러내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용기가 필요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앞에 수많은 장애물들이 갈 길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할/

 

  ⑷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지막 고별의; 인사도 신앙교육입니다.
  수24:14-15절에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오직 예수입니다. /할/

 

  ⑸여기서 우리의 신앙도 변화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자라나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자라는 것이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아이들의 아름다움은 자라는 데 있습니다. 식물이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것을 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신앙은 성장해야 합니다. /할/
  ㈀소극적인 신앙에서 적극적인 신앙으로 바꿔야 합니다.
  사람이 뭔가 자신이 없고 깊이가 없으면 소극적이 되어 버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앞장서지 못하고 언제나 뒷줄에 서 있기를 좋아하고 매사를 주저하고 망설이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감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그런 신앙으로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사람이 자신감이 없으면 매사가 이렇게 소극적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수동적이 되어서 뒷자리 신세를 면키 어렵습니다.
  신앙도 자신감이 없으면 그렇게 됩니다. 언제나 뒷자리를 면치 못하고, 언제나 끌려 다니고, 찾아가야만 한번 나오고, 전화해야만 한번 나오고, 등을 떼밀어야만 나오고 그럽니다. 그것은 아직 유아적 신앙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런 신앙에서는 신앙이 주는 재미도 느낄 수가 없고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고 신앙의 깊이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신앙에 자신감이 있어 보십시오. 언제나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런 사람은 생활에 발전이 있고 즐거움이 있고 진보가 나타납니다. 무엇보다도 활력이 있어서 좋고 자신감이 있어서 좋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이나 생활이 이렇게 분명하고 확실하고 적극적이 되었으면 합니다. 신앙도 그렇게 분명해야 진보가 있습니다. 그래야 도움 받던 사람이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얻어먹던 사람이 나누어주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끌려 다니던 사람이 끌고 다니는 사람으로 변하고 수동적이던 사람이 적극적인 사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할/

  ㈁듣는 자리에서 행동하는 자리로 발전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신앙 생활하는 데 있어서 큰 병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움직이지 않는 병입니다.    약1:22절에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신앙은 듣는 자리에만 머물러 있으면 병들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은 듣는 자리에서 움직이는 자리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신앙이 단단해지고 발전하여 진보하게 됩니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만병의 근원입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신앙도 썩고 몸도 병나고 물도 썩습니다.
  ▶제주도는 얼마 전만 해도 시골에서는 수도가 없어서 빗물을 받아 놓고 사용했다고 합니다. 빗물을 그냥 받아 놓으면 물이 썩으니까 물 항아리 속에 개구리 한 마리를 놓아두었다고 합니다. 이 개구리가 하루종일 항아리 속에서 움직이게 되니까 물이 썩지 않는다고 합니다. 움직이면 썩지 않습니다.
  그런데 물이 하루종일 움직이지 않고 고요하게 있으면 썩어 버립니다. 신앙도 움직이지 않으면 결국에 가서는 침체되고 병들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은 움직이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세상 적인 것에서 영적인 것으로 관심이 바꿔져야 합니다.
  세상 적인 것은 다 썩고 무너질 것들입니다. 고후4:16절에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그리고 고후4:18절에서는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할/

  ㈃지식 신앙에서 고백 신앙으로 바꿔져야 합니다.
  사람이 성경도 많이 알고 성경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신앙이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은 성경을 알고 외우는 것과는 다릅니다. 신구약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신앙이 좋은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것은 신앙은 지식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는 좋은 예입니다.
  신앙은 바른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마26:39절에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우리 주님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오늘 여호수아 장군처럼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바로 엎드려 '주여'라고 고백한 것은, '가나안 전투에서 이스라엘의 사령관은 네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라고 고백하고 의탁했습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파도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생각도 못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 장애물도 있을 수 있고 걸림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안 한숨도 쉬게 되고 걱정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정도가 심하면 밤잠을 설쳐서 불면증에 걸리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정신 질환이 발생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고집부리며 살아도 보았고 무던히 살아 보려고 애도 써 보았고 밤잠을 설쳐 가며 궁리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부질없이 고생만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다 맡기고 열심히 살아가는 생활, 그것이 가장 성숙한 신앙이고 발전된 신앙이라는 말입니다. /할/ 시37:5절에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그리고 잠16:3절에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아멘!/

 

  ③오늘 '여리고'와 같은 문제의 해결 자는 우리의 대장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여호수아에게 나타난 예수님은 어떤 모습을 하고 계십니까? 13절에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기에 아주 놀라운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군대장관이 칼을 빼어 들고 섰습니다. 그런데 누구를 마주보고 서 있나요? 여리고 성을 향해 서있지 않습니다. 여호수아를 마주보고 서있습니다.
  칼은 칼집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분명 칼을 빼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여리고 성이 아닌 이스라엘의 총 대장인 여호수아를 향해 서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칼을 빼어 여호수아를 마주 보고 서있는 것일까요? 이유는 이것입니다. '네가 대장이 아니고 내가 대장이다.'라는 것입니다. '전쟁은 네가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치르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자기가 전쟁을 치르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완전무장을 하고 전략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내가 치를 전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이 해결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성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너는 빠지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직접 나서신다는 것입니다. /할/
  우리에게도 '여리고'는 있습니다. 여러분의 힘으로나 능력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찌하고 있습니까? 마치 우리가 점령해야 할 성처럼 고민하고 걱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때로는 주님은 구경만 하고 계시라고 해놓고 내가 나가 싸우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을 구경꾼으로 만들어 놓고 내가 어떻게 싸우는지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이제까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여리고 성 앞에 올 때까지 한 번도 이스라엘 군대의 군사력으로 승리한 적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힘으로 이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승리케 하셔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구경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구경꾼으로 밀어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대장입니다. 그분이 나서시면 우리 앞에 어떤 '여리고'도 무너집니다. 그분이 싸우시면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해결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여리고'는 무엇입니까? 사업문제입니까? 자식 문제입니까? 아니면 못된 습관과 죄악입니까? 사실 '도박 마약, 노름' 같은 것은 정말 해결하기 힘든 '여리고'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힘으로는 안 됩니다. 성령을 받아 주님을 대장으로 세우시고 그분 명령에 순종하시고 나가면 어떤 여리고도 해결됨을 믿으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④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오직 순종만을 요구하십니다.
  여호수아가 엎드려 묻습니다.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그때 그가 대답합니다. 15절을 보세요.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할/
  이 말씀은 모세에게도 주신 말씀입니다. 출3:4-5절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여기서 우리는 모세에게도 여호수아에게도 '신을 벗으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향하여도 지금 주시는 말씀입니다. /아멘!/
  여기서 남의 신이 아니라 바로 너 자신의 신을 벗으라는 말씀입니다. 남이 신을 벗든지 벗지 않든지 상관말고 자신의 신을 벗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남의 신을 벗기려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문제는 자신의 신을 벗는 것이지 남의 신을 벗기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할/
  '신을 벗어라'는 무슨 의미인가? 신이란 지금까지 걸어온 그 인생의 발자취입니다. 모세나 여호수아가 '닦아놓은 것'과 '노력해 온 것'의 그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그대로 서라는 의미입니다. /할/

 

  ▶신을 벗으라는 것에는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신을 벗어야 합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러분, 높은 학문을 가지고 있습니까? 인물이 잘났습니까? 사회적인 명예가 있습니까? 지위가 있습니까? 분명한 인생관을 가지고 있습니까?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십니다.
  신을 신으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합니다. 가고 싶은 대로 갑니다. 아이들이 자라서 자기 신을 신기 시작하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신을 신지 않고 있을 때는 말을 잘 듣는데 신을 신으면 그때부터는 제 고집대로 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신을 벗으라는 말은 자기 고집과, 마음과, 인간의 모든 주장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자기라는 신을 신은 지 40년, 그것을 벗는데 40년이 걸렸습니다. 바로의 궁궐에서 자기 신을 신고 자기를 세우는데 40년이 걸렸고 이것을 벗는데 40년이 걸렸습니다.
  일반적으로 교육학에서 말하기를 '배운 것을 버리기까지는 그만큼의 세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형성된 성격과 고집과 인간성을 버리는데 그만한 햇수가 걸린다는 것입니다.
  ⑴인생의 새 출발의 신호입니다. 신을 신는다는 것은 활동을 의미하고 신을 벗는다는 것은 끝을 의미합니다. 모세에게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한 것은 네 인생은 이제 끝이 났다. 그리고 모세 너는 죽었다는 말입니다.
  어린아이는 신이 없습니다. 엄마가 업고 다닙니다. 즉 모세 스스로 걷지 않고 하나님이 걷게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걷게 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가고 하나님이 인도하는 자리에 있으라는 것입니다. 천국은 자신의 발로 걸어가는 곳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가는 곳입니다.
  시121:8절에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어떤 사람을 지켜 주십니까? 발에서 신을 벗은 자입니다.
  ⑵자기를 포기하라는 말씀입니다. 자기의 지식과 수단과 방법과 그리고 자기의 교만과 무지를 내려놓으라는 말입니다.
  ⑶인간의 죄를 벗으라는 뜻입니다. 신발은 사람들이 신고 다니므로 더러운 것이 많이 묻습니다. 그러므로 그 신을 신고는 깨끗한 곳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회개하는 심령 속에 임합니다.
  ⑷종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옛날 노예들에게는 신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종의 관계입니다. 절대 순종의 관계요, 절대 복종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전적으로 복종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자기의 주장이나 의견을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축복 받는 비결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
  여기서 모세와, 여호수아를 부르신 것은 그들을 위대한 사명자로 쓰시기 위해 부르신 것입니다. '칼 힐티'는 '사명을 받은 날은 생일날보다 더 소중한 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⑸우리가 신을 벗는 날, 하나님이 우리의 편이 되어 주십니다. 
  시118:6절에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내게 어찌할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편에 계시므로 100세에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 편에 계시므로 홍해를 가르고 육지처럼 건넜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 편에 계시므로 태양을 멈추고 적군을 물리쳤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 편에 계시므로 골리앗을 죽이고 나라를 위기에서 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 편에 계시므로 굶주린 사자의 입을 막고 살아났습니다. 하나님께서 히    스기야 왕 편에 계시므로 앗수르 군사 18만 5천명을 단숨에 물리치고 승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 편에 계시므로 주님의 능력으로 바다 위를 걸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내편에 계시면 세상의 어떠한 역경도 능히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편에 계시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믿/아멘!/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혼자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군대가 우리편에 서서 우리들의 모든 문제가 되는 여리고 앞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하시며 싸우기를 원하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 편에 온전히 바로 서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편에 바로 서지 못하면 하나님의 군대가 우리의 대적들 편에서 싸울 수도 있으며 그 빼어든 칼을 우리를 향해 들이댈 수 있음을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 신을 벗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할/ (2014년 3월 23일 대예배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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