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스크랩] 묻고 깨닫자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3. 29. 18:32

3월의 묵상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 들어라. 인자는 사람들의 손으로 넘어갈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다. … 또한 그들은 이 말씀에 대하여 그에게 묻기조차 두려워하였다 -눅9:44,45-

 

예수님은 자신이 장차 죽임을 당하고 다시 살아나시리라는 것을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예고 하셨습니다. 누가 복음만 하더라도 네 차례(9:22,44,18:32,22:22)나 예고하였으며 위 본문은 그 중 두 번째입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으며 “그에게 묻기조차 두려워”했다고 쓰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저는 예수님께서 얼마 후 십자가에 죽게 될 것이라고 사실을 말해 줄 것이 두려웠다고 생각합니다. 장차 구세주가 로마제국의 압제에서 그들을 해방시켜 새 나라를 세우게 되면 누가 큰 사람으로 쓰임을 받을지 논의 중이었음으로 예수님이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드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 힘든 일 등을 피하고 세상 흘러가는 대로 보자는 경향이 사람의 심정입니다. 좀 물어보면 되는데 게을러서 아무 것도 하기 싫어 그저 방치합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역으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물이 자연스럽게 올라갈 수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힘을 끌어 와야 합니다. 즉 전력을 이용하여 양수기로 물을 끌어 올려야 합니다. 스스로 물이 올라갈 수는 없습니다. 물이 스스로 술로 변할 수가 없습니다. 병들어 죽은 자가 스스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자연계에 이런 일이 생겼다면 외부에서 힘이 들어 왔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기도 하셨습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닙니다. 물리학에서는 자연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죽은 자가 살고 물이 술로 변했다는 이야기는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방향으로 변한 것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힘들여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일을 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물어 진실을 안다는 것은 게으른 사람에게는 괴로운 일입니다. 능력을 얻어 무엇인가 어려운 일을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브는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한 사과를 보고 식욕이 동했을 때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유혹하는 뱀의 꼬임에 빠졌습니다. 그때 하나님에게 한 번 더 “먹어도 괜찮겠습니까?”라고 물었다면 원죄는 안 지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물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죽으리라.”는 대답을 하셨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먹고 싶은 사과는 못 먹겠다는 생각이 들어 묻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게으르고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입니다.

 

우리 내부에는 선한 것이 없습니다. 게으른 자가 되어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이 속에서 내 욕심을 채우고 살까 하는 것만 생각할 뿐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습니다. 이 외부에서 들어온 힘은 우리의 삶에 기적을 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가 구하오니 다름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않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은 힘을 주십시오. 아멘.

출처 : 낮은 문턱
글쓴이 : 은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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