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늘로 올라간 에녹! (창 5:21-24/히 11:5-6)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3. 30. 08:12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늘로 올라간 에녹! (창 5:21-24/히 11:5-6)

 

  인생은 안개와 같습니다(약4:14). 그러나 안개도 자욱할 때는 그 힘이 정말 대단합니다. 비행기가 이륙하지도 착륙하지도 못합니다. 안개가 자욱할 때는 그 힘이 이렇게 대단합니다. 그러나 어느 사이에 안개는 사라지고 보이지 않습니다. 영웅호걸은 대단해 보입니다. 나폴레옹, 시저, 박정희 대통령, 다 대단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지금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어! 그 사람 안 보이네.' '아! 그 사람 죽은 것 몰라?' 이것이 인생입니다.
  '세월은 다섯 마리 말이 끌고 가는 마차 같다.'라고 합니다. 한 마리 말이 끌어도 빠른데 다섯 마리가 끄니 얼마나 빠르겠습니까? 그런 인생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신앙 안에 있어서 행복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에녹은 65세에 아들 므두셀라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 300년 간 하나님과 동행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를 하늘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승천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이름을 대할 때 언뜻 머리에 연상되는 것이 있습니다. 예컨대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하면 '노예 해방'이 연상이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컨대 스데반집사하면 '천사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하면 '눈물의 선지자'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오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 나타난 에녹이라 하면 제일 먼저 무엇이 연상이 됩니까?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운 사람'이 연상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으로 인도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제목 소개!▶

 

  창5장에 보면 아담 자손의 계보가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각 사람의 계보가 일정한 양식에 의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각 사람의 일생을 마무리할 때는 언제나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가 몇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이 말로 끝맺음을 합니다. 그런데 에녹 만큼은 예외입니다. 24절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그렇습니다.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사람입니다. 에녹처럼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으로 올라간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선지자 엘리야입니다. 왕하 2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엘리야가 그의 제자 엘리사와 더불어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홀연히 하늘에서 불 수레와 불 말들이 나타나 두 사람 사이를 떼어놓았습니다. 그러더니 엘리야는 회리바람을 타고서 하늘로 올리워 갔습니다.
  요단강 맞은편에서 이 모습을 보던 선지 생도들은 엘리야가 승천했다는 사실이 확실하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엘리야가 회리바람에 휩쓸려 올라갔다가 어디론가 그 시체가 땅에 떨어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엘리사를 강권하여 엘리야의 시체를 찾기 위해 용사 오십 인을 보냈습니다. 사흘동안이나 엘리야의 시체를 부지런히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제야 그들은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하늘나라로 인도해 가셨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습니다. /할/
  여러분!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리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일깨워주고 있습니까? 오늘 히11:5절에서 '믿음으로'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사망이 왕 노릇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망에 매여서 더 이상 종노릇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망의 권세는 우리를 결코 삼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망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요11:25-26절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이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승리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들도 사망의 권세를 이미 이겼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전15:55절에서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당당히 외쳤습니다. 그리고 승리의 비결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고백합니다. 57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할/
  히11:5절에 보면 '옮긴다.'는 단어가 세 번이나 나옵니다. 여러분, 에녹이 스스로 올라간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에녹을 천국으로 옮기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으로 살았던 에녹을 천국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도 반드시 영화로운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아멘!/

 

  ①에녹은 어떤 사람인가?
  에녹에 관한 기록은 창5장과 유다서에서 약간 나오고, 히11:5-6절에서 나옵니다. 에녹은 아담의 칠 대 손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몹시도 타락했습니다. 노아의 홍수를 기다리고 있을 그런 때에 오늘 본문의 에녹이 등장합니다. 우리 모두 에녹의 신앙을 배워서 그렇게 삽시다. /할/

 

  ㉠그는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입니다(22,24).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은 '사람과 동행하지 아니했다'는 말입니다. 에녹은 이 땅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영원한 천국으로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이 얼마나 멋있는 사람입니까? /할/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시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손을 잡으면 마음까지 따뜻하여 집니다. 누군가와 함께 가면 갈 길이 아무리 멀어도 갈 수 있습니다. 눈이 오고 바람 불고 날이 어두워도 갈 수 있습니다. 바람 부는 들판도 지날 수 있고, 위험한 강도 건널 수 있으며, 높은 산도 넘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라면 갈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동행은 기쁨이 있고, 동행은 위로가 있습니다. 특이나 하나님과의 동행은 절대 안전보장이 있습니다. /할/

 

  ㉡에녹의 생애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⑴그는 인생을 아주 '평범하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어디를 보아도 특별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아브라함이나 모세, 다윗과는 비교도 안 됩니다. 모세처럼 바다를 가르고, 기적을 행하고, 백성들을 인도하는 그런 유별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또 아브라함처럼 고향을 떠난 것도 없고, 100세에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을 번제로 드리는 그런 극적인 면도 하나 없습니다. 그저 평범하게 365세를 살면서 자녀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어느 모로 보아도 그는 평범한 인생입니다.
  그런데도 히11장을 보면 노아나 아브라함, 모세, 야곱, 요셉과 같은 신앙의 위인들을 소개하면서 에녹이라는 사람도 그들과 동등하게, 같은 위치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할/
  ⑵그는 '가정 중심의 생활'을 했습니다. 창5:21절을 보면 에녹이 365년을 살면서 자녀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365년 동안 몇 명의 아이들을 낳았는지는 모르지만, 성경은 여러 아이들 가운데서 대표로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인 '므두셀라'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에녹은 일생 동안 그저 열심히 가정을 중심으로 충실하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에녹이 아브라함처럼 첩을 얻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여러 명의 여인을 거느리고 살았다는 말도 없습니다. 그저 묵묵하게 가정에 충실해서 365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집안을 떠나지 않고 자식을 낳았다고 했습니다.
  당시는 일부 다처주의 시대입니다. 그때는 그것이 당연시되던 시대입니다. 부인이 몇 명된다고 해서 그것이 흠이 되지 않던 시대입니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가정에 충실해서 가정을 굳게 지키고 300년 동안 집을 떠나지 않고, 한 여자에게서 자녀들을 낳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이 얼마나 가정 중심의 사람입니까?
  ⑶그는 시종 일관,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입니다. /할/

 

  ㉢동행은 인생을 행복하게 합니다.
  ⑴인생의 동반자들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이웃을 주셨습니다. 좋은 배우자를 주셨고 부모를 주셨고 형제와 친구를 주셨습니다. 이들은 모두 우리들에게 소중한 동반자들입니다.
  인생은 늘 누군가와 함께 하고 동행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좋은 동반자가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입니다. 좋은 부모가 얼마나 든든한 존재이고 큰 배경이고 있음만으로도 소중한 동반자입니까? 좋은 아내와 좋은 남편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입니까? 좋은 친구는 또 얼마나 좋은 동반자입니까? 우리 삶의 풍성한 자원이고 행복의 자원입니다. /할/
  그런데 오늘날 이 좋아야 하는 동반자들이 한계를 느껴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늘 부모들도 많이 변했습니다. 옛날 같지가 않습니다. 부부와 자식, 그리고 친구들이 좋은 동반자인데 배반하고 배신하고 그럽니다. 이 시대는 가정의 위기시대요 부부도 위기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영국의 '찰스 킹슬리' 목사는 '전쟁에 나갈 때는 한번 기도하고, 항해를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고, 결혼할 때에는 세 번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목숨이 걸린 전쟁에 나갈 때는 한번 기도하라고 했고, 역시 목숨이 걸린 항해를 할 때도 두 번 기도하라고 했는데, 결혼 할 때에는 세 번 이나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결혼생활이 어쩌면 전쟁보다 더 어려운 일일 수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가정을 이끌어 가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우리 인생 길에는 좋은 동반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좋은 동반자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아멘!/ 그런데 문제는 인생의 동반자는 영원하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⑵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영원한 동반자로 모셔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을 함께 할 동반자 뿐 아니라 우리에게는 또 영원한 동반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사실 신앙이 미성숙할 때는 이 중요성을 잘 모릅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의 소중함이나 형제의 소중함을 모르듯이 또 이기적인 사람은 친구의 소중함이나 이웃의 소중함을 모르듯이 신앙이 미숙하면 하나님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얼마나 소중한 분인가를 모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에녹은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여기 '동행'이라는 말의 히브리적인 의미는 '산책하다.'라는 뜻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과 거닐었다.'는 말입니다. 에녹은 하나님에게 있어서 좋은 동행자였고 동반자였고 대화상대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에녹을 죽지 않은 채 데려가셨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내게 좋은 친구가 있음은 축복입니다. 여러분 좋은 친구가 있습니까? 오래 간직하십시오. 하찮은 것 때문에 잃어버리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좋은 동반자는 하늘이 준 복입니다. 좋은 가족, 좋은 배우자, 좋은 부모 모두 하늘이 준 복입니다. 오래오래 좋은 가족으로 살아가십시오. 그것이 축복입니다. /아멘!/
  특히 하나님을 영원한 동반자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최고의 동반자이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흥분하시게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다윗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에 대해서 언급하시면서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욥도 하나님을 흥분하게 만든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욥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욥1:1)라고 평하셨습니다. 우리도 이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멘!/
  ⑶동행의 조건은 자주 만나야 합니다.
  좋은 이웃, 좋은 친구, 좋은 부모가 있으면 자주 만나십시오. 만나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입니다. 만남이 없으면 남이 되어버립니다. 부부도 장시간 떨어져 있으면 의미가 없어집니다. 할 수 있으면 떨어져 사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오래 떨어져 살면 시험이 올 수도 있습니다.
  부모도 자주 찾아 만나야 합니다. 형제도 이웃도 자주 만나야 합니다. 에녹은 하나님을 가까이 동반한 것이 300년이라고 했습니다. 아마 그 300년을 '하루같이' 보냈을 것입니다. 야곱이 사랑하는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 머슴살이를 하는데 7년을 하루 같이 했습니다. 그만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에녹이 300년 간 하나님과 동행하는데 그 300년이 하루 같았습니다. /할/
  ⑷'하나님과 동행하면' 우리가 복을 받습니다.
  요15:7절에 보면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했습니다. 또 4절을 보면 '내 안에 거하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동행입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나의 행복이고 기쁨이고 축복의 삶입니다. /믿/아멘!/
  ▶어느 목사 가정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집에 들어오더니 '아버지, 오늘 참 감사한 일이 있었어요,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셔요, 오늘 집에 오는 길에 차 사고가 나서 차가 일곱 바퀴나 굴렀어요. 그런데 상처 한곳 없어요.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셔요'
  아들은 너무 신기하다는 듯이 흥분하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나는 너보다 훨씬 더 감사하단다.', '아니, 아버지는 더 큰 사고 났어요?', '아니 나는 한바퀴도 구르지 않았거든.' 여러분, 이것이 동행자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생각해 보면 오늘 우리는 세상을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생활의 즐거움과 기쁨과 행복함과 든든함을 아는 사람만이 동행의 삶의 의미를 아는 사람입니다. /할/
  ⑸동행의 원칙이 있습니다. '믿음으로'입니다.
  믿음은 원칙이고 방법이고 결론이라는 것을 오늘 히11:5-6절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원리가 무엇이냐? 믿음입니다. 방법이 무엇이냐? 믿음입니다. 결과가 무엇이냐?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것은 동기도 믿음으로 과정도 믿음으로 방법도 믿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자꾸 실패를 하는가? 시작은 믿음으로 하는데 방법은 내 방법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방법까지도 믿음으로 해야 결론이 믿음으로 나옵니다. 우리는 자꾸 내 방법을, 내 생각을, 내 주관을, 내 불신을 섞어서 하나님의 방법을 거부하는 거기에서 믿음의 실패가 오는 것입니다. /할/
  ⑹'동행'이란 '하나님과 같이 걷는다'는 뜻으로 '매 순간 하나님을 의식하고 날마다 그분과 대화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동행이란 '하나님이 우리 삶 전체에 개입하고 계심을 인정하고 항상 믿음 안에서 기도하는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할/
  여러분!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성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주위 사람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불경건과 죄악만을 행하고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어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된 그리스도인은 묵묵히 하나님과 동행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믿/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형통에 복을 받습니다. 창39:2-3절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동행)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동행)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아멘!/

 

  ㉣동행의 원칙이 있습니다.
  ⑴목적지가 같아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저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⑵마음이 맞아야 하고, 뜻이 맞아야 합니다. 마음과 뜻이 맞지 않는 사람들끼리 함께 있는 것처럼 고통스런 일은 정말 없습니다.  

  ⑶상대방의 의견에 자신을 조화시켜야 하고, 자기희생과 자기 자제가 있어야 철저한 연합이 가능하게 됩니다. /아멘!/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암3:3절에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주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롬8: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⑷또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은 처음과 나중이 같아야 합니다. 작심삼일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이 말대로 자주 넘어집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처음 먹은 마음을 변치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 마음의 중심은 예수님이 있어야 합니다. /아멘!/
  ▶오래 전에 영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런던의 템스 강변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산책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쪽 귀퉁이에 한 거지노인이 다 낡아빠진 바이올린을 들고 연주를 하며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낡아빠진 바이올린에서 나오는 음악소리는 신통치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았습니다. 거지노인이 벗어놓은 모자에 동전을 던져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웬 낯선 외국인 한 사람이 그 곁을 지나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거지노인이 열심히 연주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거지노인은 다 떨어진 외투를 입고 있었습니다. 신발도 떨어져서 너덜너덜했습니다. 머리도 제대로 감지 못해서 헝클어져 있었고, 또 수염도 깍지 못해서 덥수룩한 상태였습니다. 보기에도 처량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외국인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측은한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죄송하지만 지금 제 수중에 준비된 돈은 없습니다. 그러나 저도 바이올린을 좀 다룰 줄 하는데, 제가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잠시 몇 곡만 연주해 드리면 안되겠습니까?'
  거지노인은 잠시 쉬기도 할 겸해서 그 낯선 외국인에게 낡은 바이올린을 건네주었습니다. 외국인은 그것을 손에 쥐고서 천천히 활을 당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낡아빠진 바이올린에서 놀랍도록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 사람씩 두 사람씩 걸음을 멈추고서는 외국인이 연주하는 음악에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거지노인은 자기가 벗어놓은 모자를 들고서 사람들에게 다가갔습니다. 모두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노인의 모자에 넣었습니다. 순식간에 돈이 수북히 쌓였습니다. 그것도 한 푼 두 푼 던져주는 동전이 아니었습니다. 돈의 단위가 높았습니다. 모두가 지폐를 꺼내어서 모자에 넣었던 것입니다.
  갑자기 몰려든 사람들을 보고서 경찰관이 놀라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경찰관마저도 다 낡아빠진 바이올린에서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선율에 매료되어 그도 물끄러미 바라보며 감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경찰관도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거지노인의 모자에 넣었습니다.
  이제 연주가 끝났습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뜨거운 박수를 쳤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그곳에 서 있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저 사람은 바로 파가니니이다.' 이탈리아의 파가니니는 바이올린의 귀재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세계적인 바이올린의 명 연주자입니다. 그 분이 런던에 연주 차 왔다가 호텔에 머물러 있으면서 잠시 짬을 내어 템스 강변을 산책하기 위해서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불쌍한 거지노인이 바이올린을 힘겹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측은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위해 대신 몇 곡을 연주해 주었던 것입니다.
  바이올린의 명 연주자 파가니니의 마음이 참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 보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다 낡아빠진 바이올린이었지만, 그것이 누구의 손에 잡혀 연주되느냐에 따라서 그 소리는 엄청난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거지노인이 그것을 연주할 때는 형편없는 소리였지만, 전문가의 손에 들려져서 연주될 때 아름다운 소리를 내었습니다. /할/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보잘 것 없는 악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잡혀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이 될 때, 우리의 생을 통해서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할/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에 우리의 삶을 온전히 맡기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그것이 동행입니다. /아멘!/
  ▶인도의 선교사 선다 싱은 네팔에서 선교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살인강도들과 한 감방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흉악범들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예수 믿고 중생하면 몸은 비록 감옥에 있지만 마음은 천국이라고 열심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드디어 그들이 예수 안에 들어오자 살인 강도들이 감옥에서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간수가 들어와 보니, 살인강도들의 얼굴이 언제 사형 당할지 모르는 초조함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있었고, 기쁨에 넘쳐 찬송하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모두 천사 같은 얼굴이었습니다.
  간수가 말했습니다. '천국이 따로 없다. 여기가 바로 천국이다.' /할/ 하나님과 동행하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아멘!/
  ▶대통령 시절에 가장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은 이가 카터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을 마치고 나서 가장 유능하게 일한 사람이 바로 카터로 알려졌습니다.
  카터가 대통령 선거 유세를 할 때 이야기입니다. 그는 주일이면 선거 운동의 바쁜 일정을 멈추고, 고향 조지아 주에 있는 자기가 출석하는 교회로 돌아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23년 동안 가르쳐 오던 교회학교 교사직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선거 유세 중이었습니다. 기왕이면 큰 도시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 큰 교회에서 예배도 드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예배 겸 선거 운동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차분하게 자기 교회로 돌아와서 20여명 되는 작은 반의 교사직에 충실했습니다. 바로 여기에 그의 위대함과 그의 특이함이 있습니다. 그가 20여명을 앉혀 놓고 성경을 가르칠 때 취재 기자들은 70여명이나 모였습니다.
  그는 조용히 성경 공부를 가르치고 나서 기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이 우리 교회를 나왔습니다. 그러나 다음 주일부터는 각자 여러분의 교회에 나가 충성하십시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바로 주님의 뜻입니다. 내일 지구의 멸망이 온다 할 지라도 오늘 할 일을 오늘 하면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참 삶입니다. /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신앙은 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한 사람들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과 동행했던 대표적인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벗으로 불릴 정도로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했던 사람입니다. 그가 이렇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어떤 말씀이든지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보였습니다. 심지어 100세에 얻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할 때도 기꺼이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삶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의 삶입니다.
  하나님이 친구라고 부르신 또 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모세입니다. 모세는 '사람이 자기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말씀하신' 사람입니다(출33:11).
  모세가 이렇게 친밀하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믿었고, 전능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 앞에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우리들도 이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멘!/
 
  ②언제부터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는가?
  에녹은 처음부터 하나님과 동행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한 지점이 있습니다. 성경이 그것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므두셀라를 낳은 후부터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에녹은 아주 특별한 그런 인물이 아니고 우리와 똑같은 보통 인간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에녹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잘 믿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잘 하지 못 했어도 괜찮습니다. 처음보다 나중이 중요합니다. 에녹은 65세부터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성경 말씀을 보면 므두셀라를 낳기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에녹이 결정적인 결단은 유다서에 보면 나와 있습니다.
  유다서 14-1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에녹에게 분명한 심판을 예언하셨습니다. '경건치 않은 자를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정죄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에녹은 세상 종말에 대한 예언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말하자면 노아가 홍수가 일어날 것을 예언 받고 움직였던 것처럼, 에녹도 예언을 받고 움직인 것입니다. /할/

  ⑴에녹은 계시적 인물입니다.
  하나님이 에녹을 이 땅위에 보낼 때부터 그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노아 홍수 사건은 에녹과 연관시켜서 보지 않으면 그 사건은 반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노아로부터 노아 홍수를 이야기하면 노아 이전에 있었던 하나님의 계획을 하나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에녹을 연구하면 노아 홍수 이전에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드러납니다. 그러니까 에녹은 '노아 홍수를 위해서 이 땅에 보냄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아 홍수 심판에 대하여 실제로 예언한 사람이 에녹입니다. 노아는 배를 만들고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서 노아 홍수를 극복한 사람이지만, 이와 같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예언했던 사람이 바로 에녹입니다.
  므두셀라는 성경에 기록된 사람 중에 제일 오래 산 사람입니다. 969세를 산 사람인데 이 므두셀라가 369세 때 아들 라멕으로부터 손자 노아를 얻었습니다. 므두셀라가 손자 노아를 보고 육 백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나서 육 백세 되던 그 해에 홍수가 났습니다. 이것은 므두셀라가 죽던 그 해에 홍수가 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므두셀라라는 이 인물은 그냥 '이 땅에서 오래 산 사람이다'가 아니고 노아 홍수 심판에 시그날적인 인물입니다. '므두셀라가 죽는 해에는 홍수가 난다'는 하나님의 신호가 주어져 있는 그런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므두셀라가 에녹의 아들로서 에녹이 65세 때 므두셀라를 얻고 므두셀라를 얻은 그 때부터 삼 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한 것입니다.
  이 문맥을 잘 보면 에녹은 므두셀라를 얻기 전에는 하나님과 친밀한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므두셀라를 주면서 하나님은 에녹에게 상당한 의미의 영적인 계시를 주셨습니다. /할/

 ⑵에녹은 예언을 받고, 그 예언을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받은 사람은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예언을 아는 사람은 알려야 합니다. 본 사람은 말해야 합니다. 에녹은 이 세상에 환란이 올 것을 처음으로 예언으로 받았고,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환란이 올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그 때 마침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 이름을 므드셀라라고 지었습니다. 므두셀라라는 뜻은 '창을 던지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상당히 의미심장한 이름입니다. 창을 던지는 자라는 말은 군사적인 언어입니다.
  고대에는 전쟁할 때 군사들이 성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성문에 창 던지는 사람을 한 사람 세워 놓았습니다. 군사들이 밖에서 싸우다가 지게 되면 적들이 성으로 몰려옵니다. 적들의 창에 창을 들고 서 있는 마지막 그 때 창 던지는 자가 죽으면 전쟁은 끝나는 것입니다.
  이제 환란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적에게 짓밟히고 포로로 잡혀가고 집은 불태워지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창 던지는 자의 죽음은 환란의 시작입니다.
  에녹은 65세에 아들을 낳고, '창을 던지는 자'라는 뜻을 가진 므두셀라라고 지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종말 예언을 주셨는데, 그 예언은 아들 므두셀라가 죽을 때 이루어질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창 던지는 자'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할/
  에녹은 당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예언을 간직하고 믿고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 그 때 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여기 저기에 두고 같이 일하고 계십니다.
  애굽 시대에는 요셉을 붙들고 사용하셨습니다. 사사시대에는 사무엘을 하나님은 붙잡고 계셨습니다. 에녹은 아들 므두셀라를 낳았을 때 이렇게 독백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므두셀라야! 앞으로 이 세상에 재앙이 임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그렇게 알려 주셨다. 네가 마지막 사람이다. 너는 창을 던지는 자가 되라. 네가 죽으면 환란이 시작이다.'
  그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그의 경건과 하나님과 동행함이 하나님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녹으로 하여금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가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할/


  ⑶에녹은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창5장에 보면,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습니다. 므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았습니다.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았습니다. 그러므로 노아가 태어났을 때 므두셀라의 나이는 369세입니다. 그런데 노아가 600세 되던 해에 홍수가 시작되었습니다(창7;11).
  그러므로 므두셀라가 969세에 홍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므두셀라는 성경에서 제일 오래 산 사람입니다. 969세 살았습니다. 그가 죽던 해에 홍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므드셀라는 홍수에 빠져 죽었습니다. 노아 가정만 구원만 받았기 때문입니다. 므드셀라가 죽는 날 홍수가 시작되었을지 모릅니다. 반대로 홍수가 시작되며 죽었습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에녹이 예언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에녹은 하늘에서 보았습니다. 글자 그대로 므두셀라는 창 던지는 자입니다. 그는 마지막 사람입니다. 창 던지는 사람이 죽으면 환란의 시작입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신비입니다. /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떤 정점에 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노아 시대와 같습니다. 종말의 때가 임박했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SBS 뉴스에서 깜짝 놀랄만한 사실이 보도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예언하고 죽은 것이 있습니다. '꿀벌이 사라지면 지구가 멸망한다.' 그런데 지금 지구 꿀벌의 36%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양봉하는 사람들도 꿀벌이 줄었다고 야단입니다. 미국에도 꿀 벌어 사라지니까 아몬드 농장에 아몬드가 열리지 않아 120만 마리를 사서 풀어놓았다는 것입니다. 공해 때문인지 바이러스 때문인지 분석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유력한 설은 핸드폰의 전파 때문에 벌들이 집을 찾지 못 하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 주님이 오실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아멘!/

 

  ③히11:5-6절에서 에녹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⑴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겨갔습니다. 
  여기 '옮겨졌다.'는 말씀이 히11:5절에 3번이나 강조되고 있습니다. 곧장 천국 갔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창5:24절에도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에 나오는 '데려가셨다.'는 말이 히브리말로 '라카흐'입니다.
  불 수레를 타고 하늘로 간 엘리야의 승천도 '라카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거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어쨌든 에녹은 험한 죽음의 과정 없이 천국으로 직행한 특별한 사람이고 그야말로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더 이상 끝이 아닙니다. 죽음은 새로운 시작에 불과한 것뿐입니다. 죽음이란 이 땅에 살던 사람이 천국으로 옮겨가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다 죽은 사람은 그 마음에 놀라운 평화와 위로함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미 그 분이 천국에 갔고 가족들도 장차 그 곳에서 먼저 가신 분을 만나게 되기 때문에 마음의 평화와 위로함을 주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멘!/
  ▶여기 '옮기 우기 전에' 여기서 우리는 신앙의 중요한 포인트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타이밍이 있습니다. '옮기 우기 전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유일한 기회는 우리가 하늘나라 가기 전에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지상생활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유일한 기회입니다. 천국은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다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나라 가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을 누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쓰여지고 희생하고 그 분을 위해서 무언가를 바쳐드릴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굳게 믿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⑵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라고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성경의 대소요리문답은 공히 이 질문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에녹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을 달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렸기 때문입니다. /할/
  사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은 쉽습니다. 맛있는 식사를 한 끼 대접을 해 드려도 아주 기뻐합니다. 또 선물을 하나 사드려도 기뻐합니다. 또 좋은 공연티켓을 드려도 기뻐합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런데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라는 이 표현은 우리에게 대단히 어렵게 다가옵니다. 한 번 물어봅시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까?' 하나님은 선물로도 통하지 않고, 맛난 식사로도 통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보다 막연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회개입니다. 눅15:7절에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정직한자의 기도입니다. 잠15:8절에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산 제사입니다. 롬12:1절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순종입니다. 삼상15:22절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헌금입니다. 빌4:18절에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할/


  ⑶에녹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배운 것이 없어도, 인물과 배경이 없어도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에녹의 믿음의 내용은 어떠했습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 본문에서 에녹의 믿음을 두 가지로 요약을 했습니다.
  첫째, 에녹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은 것입니다.
  둘째, 에녹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은 것입니다.
  믿음의 첫 걸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믿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대로 죄도 짓고, 나쁜 짓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셔서 불꽃같은 눈초리로 살피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인생을 함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 믿음 때문에 세상에서 왕따를 당하셨습니까?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왕따라는 말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왕따란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다.' 믿음 때문에 세상에서 왕따를 당했다면 우리는 오히려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실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영화롭게 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어떤 주일학교 선생님이 자기 반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선생님이 구원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선생님의 집도 팔고, 차도 팔고 모든 것을 다 팔아서 하나님께 헌금을 바치면 선생님이 구원을 얻을까요?' 아이들은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선생님은 자기 반 아이들에게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또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이 구원을 받으려면 모든 일을 다 그만두고 교회 와서 유리창이나 닦고 청소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아이들은 또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요, 저요! 선생님이 구원을 받으시기 위해서는 선생님이 먼저 죽으셔야 해요.' 엉뚱한 대답이었지만 일리 있는 대답입니다.

  에녹은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살기 위해서입니다. 에녹은 죄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의에 대해서 살기 위해서입니다. 에녹은 육신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영에 대해서 산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도 에녹같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아멘!/ (2014년 3월 30일 대예배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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