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귀를 열어주소서[테레사수녀10주기=거룩한삶 예수님의모습요셉]/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3. 16:40

070909 귀를 열어주소서 ( 50:4~9)

성경본문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은 즉 내가 수치를 당치 아니할 줄 아노라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뇨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뇨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뇨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헤어지며 좀에게 먹히리라

 

 지난 831일은 영국의 다이애나의 10주기였다고 합니다. 가히 세계적으로 추모 열풍이 일었습니다. 추모식이 열리고 추모 콘서트가 열리고 추모협회가 조직이 되고 추모 기금을 모으고, 왜 이렇게 사람들이 그 일에 열광할까요. 다 아시겠지만 한편의 드라마 같은 인생이죠. 유치원 보모였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왕세자비로 간택되어서 신데렐라같이 화려한 성당에서 전 세계적으로 중계되는 가운데 결혼식을 거행했죠. 그러나 그가 왕궁에 들어가는 순간 수백 년 내려오는 왕실의 전통과 관습에 눌려서 새장에 갇힌 처량한 한 마리 새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간간히 여러 가지 불륜의 이야기도 들려오고, 또 아프리카의 빈민들과 병으로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선행을 하는 그런 모습도 보여주고 그러다가 서른 여섯의 짧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한 순간에 의문의 죽음을 한 것이죠. 이러한 열풍에 관해서 한 비평가가 이렇게 말했어요. ‘미인무죄미인은 모든 게 다 용납된다는 거예요. 미인은 무죄래요. 현대인의 욕망이요, 대리만족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바로 지난 며칠 전 95일은 테레사 수녀의 10주기였어요. 그러나 그냥 지나가고 있어요. 다이애나와 테레사 수녀는 한 주간 사이를 두고 죽었거든요. 그것을 꼬집어 이야기 합니다. 일평생을 인도 캘커타의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헌신했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 수도단체나 종파에서는 기억했겠죠. 여기에 현대인의 자기 중심적인 모습이 잘 드러나있다는 거예요. 충분히 공감할만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말이죠, 그걸 한 번 더 생각해 봐야 되지 않을까. 하나님을 아름답게 믿는 모습이 테레사 수녀와 같은 모습으로만 이해되어 진다면 안 믿는 세상사람에게는 물론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에게 건강한 신앙,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이 어떻게 그려질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야 되겠다. 테레사 수녀의 그런 모습이 아름답고 거룩하고 참 고귀하다지만 그렇게 해야만 한다면 하나님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는 거죠. 그건 다 은사를 따라 하는 거예요. 물론 얼마나 고생했겠어요. 그러나 분명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시는 남다른 은혜가 있었죠. 위로와 소망이 있었죠. 서로 얼굴이 다르고 삶의 처지가 다르듯이 모든 것이 다른 우리에게 각각 은사를 달리 주셔요.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이 각별히 부르셔서 테레사 수녀 같이 그런 곳으로 부르시면 그 땐 가야 되겠죠. 그러나 부르시지도 않는데 가겠다고 나서면 그건 더 문제예요. 그냥 그 자리에 계세요. 일상 속에 신앙이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것을 먼저 알아야 돼요.

사실 우리가 쓰는 용어 중에 가장 오염된 단어를 대표적으로 두 개만 꼽는다면 하나는 양반’. 양반은 원래 지체가 높은 문반과 무반 고위 관료를 가리키는 말이었어요. 그런데 조선 왕조가 흔들흔들 하고 나라가 엉망이 되고 무너지면서 동시에 양반이라는 단어도 추락했어요. 그래 조선 말기에 오면 가짜 호적을 만들어서 양반행세를 했어요. 오늘날 양반이라는 단어는 아주 가까운 친구 사이에 웃자고 쓰던지 싸움할 때 쓰는 단어가 돼버렸어요.

또 하나가 거룩이예요. 거룩한 삶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그것을 기쁘게 마음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아요. 그렇게 해야 하는 줄은 알지만 정작 원치 않아요. 왜 그런지 아세요. 거기에 깊은 오해가 있기 때문이에요. 바리새인들의 메마른 경건 그리고 겉을 꾸미는 거룩, 이런데 문제가 있는 거죠. 바리새인들이 세례 요한을 보고 뭐라고 했습니까. 세례 요한이 빈들에서 금식하며 낙타 털옷을 입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았습니까? 잘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니까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걸 보니 귀신이 들렸도다그렇게 말했어요. 반대로 예수님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말씀을 나눕니다. 같이 음식을 나누어 먹고 마셨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예수님을 향하여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다.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그랬어요. 왜 그랬을까요. 종교의 겉모습은 있지만 그 안에 생명이 없으면 이 사람도 비판하고 저 사람도 비난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이제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예수님을 어떤 눈으로 봤느냐,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고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 예수님의 모습이 여기 잘 드러나고 있어요. 바리새인들은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손을 씻고 발을 씻고 그릇을 씻으면서 더러움을 피하려 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냐 하면, 세리와 죄인에게 나아 가셨어요. 부정한 사람들에게 나아 가셨어요. 그들과 함께 먹고 마셨어요. 기뻐하셨어요. 그러면서 말씀을 전했어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와 생명이 나와 함께 만나고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퍼져 나간다고 생각했어요.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신앙이에요. 평범한 일상이지만 그 안에 넘치는 생명이 있었어요. 그리고 하늘나라를 결혼잔치에 많이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는 사건을 신랑과 신부의 비유를 들어 비유하셨어요. 예수님은 신랑이요, 우리는 신부라고 하셨어요. 그저 비유로만 쓰셨겠어요. 아니요, 정말로 예수를 올바로 발견하는 자에게 신랑 신부와 같은 넘치는 생명력, 감사, 기쁨, 행복이 있기 때문이죠.

, 이렇게 일상 속에 들어가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가지고 사람들과 더불어 나누는 삶의 모델을 또 다시 멋있게 구현한 사람 중에 하나가 바로 요셉이에요. 요셉의 이야기를 잘 아시잖아요. 성경 말씀을 잘 보면 요셉이 물론 기도했습니다마는 별나게 기도했다는 표현이 없어요. 이적을 체험했다 이런 것도 없어요. 능력을 행했다 그런 것도 없어요. 오히려 그는 이방 땅, 애굽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온갖 고통과 고난을 경험한 후에 애굽의 총리가 됐어요. 국무총리가 얼마나 바빠요. 정말 숨돌릴 겨를도 없겠죠. 가장 복잡한 세상 한 복판에 서 있는 사람이에요. 또 이방 제사장의 딸과 결혼했잖아요. 그래서 한번 헤아려 봅니다. 간혹 아직 남편이 하나님을 모르거나 또 안다고 해도 뭔가 부족하다 느껴질 때 마음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잖아요. 요셉은 아예 이방 여인하고 결혼했어요. 자기가 결혼할 때는 믿는 여자가 주위에 없었고 또 왕이 짝지어서 결혼해라 그랬으니 결혼한 거죠. 한평생 살면서 얼마나 마음에 짐이 됐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는 그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받습니다. 종살이하면서 배운 경제, 옥살이하면서 배운 정치, 그 한복판에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셨던 그 체험, 그래서 그가 바로 앞에 섰을 때 바로가 말하지 않습니까. 7년 풍년, 7년 흉년에 관한 해결책을 듣고 나서 바로가 말하기를 너 참 똑똑하다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걸 넘어서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자다. 이건 인간의 지혜가 아니다.  하나님이 이 사람과 함께 하신다.’ 얼마나 멋있어요. 가장 세속적인 생활 한복판에서 잔잔하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어요. 이런 신앙이어야 된다는 거죠. 이런 확신이어야죠. 이게 우리 삶의 원동력이죠. 이 비밀이 뭡니까.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함께 하신다. 이것을 히브리 말로 임마누엘이라고 해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이게 신앙의 본질이에요.

몇 년 전에 <우체부 프레드>라는 책을 써 화제를 모았던 마크 센번이라는 저술가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많이 돌아다니면서 강연을 하는 사람인데 언젠가 한 번 아내와 모처럼 함께 크루즈를 타고 세계여행을 했답니다. 선장과 이야기 합니다. ‘선장님, 이렇게 늘 배를 몰고 다니시는데 이제까지 가장 위험했던 때는 언제입니까했더니, 선장이 말하기를 , 한 번은 20미터가 넘는 파도 속에 배를 몰고 가는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찔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선장이 말합니다. ‘배의 엔진만 꺼지지 않으면 동력만 살아 있으면 가능합니다. 집중력을 가지고 키를 붙들고 나아가면 결국은 아무리 높은 파도라도 뚫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배가 파도를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오랫동안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지만 동력이 살아 있다면 그 방향을 분명히 하고 목적지를 분명히 하고 집중력을 가지고 상황에 침착하게 대처하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력이 꺼지면 아무리 큰 배라도 순식간에 뒤집어 집니다.’

여러분, 우리 삶의 동력은 무엇입니까. 믿는 자의 동력은 하나님이죠. 그분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 그러면 동력이 꺼진 거죠. 그러면 삶의 어려운 문제가 파도 같이 닥쳐 올 때 흔들흔들 하다가 뒤집어지지 않겠어요. 오늘 이사야 본문 50장 앞을 쭉 읽어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누가 소경이며 누가 귀머거리냐. 바로 내 백성이 아니냐. 바로 내 종이 소경이요 귀머거리가 아니냐. 야곱아 너는 어려움을 당했을 때 나를 부르지 않더구나. 이스라엘아 너는 오히려 나를 괴로워 하더구나.’ 왜 그래요.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듣지 못하니까 하나님의 증거를 제대로 보지 못하니까 환란이 올 때 하나님도 부르지 못하고 오히려 일이 어그러질 때 하나님을 원망하더라 하는 것이죠. 하나님이 탄식합니다.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들었더라면 평강이 강과 같고 의가 바다 물결 같았으리라.’ 그리고는 엄청난 이야기를 하셔요. ‘어찌 여인이 자기가 낳은 젖먹이를 잊을 수 있겠느냐. 설령 여인이 자기 젖먹이를 잊을지라도 나는 결코 너희를 잊지 않으리라하나님의 약속이에요.

제가 여러분이 제대로 알아 듣는지 IQ테스트를 하겠습니다. 제가 문제를 드릴테니까 잘 들으세요. 다만 우스개니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해외 출장을 막 다녀온 남편을 아내가 현관에서 맞으면서 이렇게 얘기해요. ‘여보, 잘 갔다 오셨어요. 그런데 당신이 나가있는 동안에 좋은 소식하고 나쁜 소식이 있어요.’ 그랬더니 남편이 바짝 긴장을 합니다. 이 여자 또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하고. ‘그래, 그러면 좋은 소식부터 얘기해 보지.’  당신 차 에어백이 제대로 작동하더라고요.’ 무슨 이야기지요? 남편 없는 동안에 그 차 몰고 나갔다가 크게 교통사고가 나서 에어백이 터졌는데 가까스로 살았다는 얘기잖아요. IQ 테스트 끝났습니다.

오늘 본문은 주의 종의 노래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자기 종으로 삼으시는가.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한다학자같이 알아 듣고 학자같이 말한다. 이렇게 뭔가 통하는 사람을 쓰시지 않겠어요. 그런데 히브리어로 라마드라는 동사가 있어요. 이게 배우다 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가르치다 라는 동사는 리메드예요. ‘라마드배우다, ‘리메드원래 많이 배우다라는 뜻이에요. ‘많이 배우다라는 뜻이 발전해서 가르치다가 됐어요. 그렇죠. 남을 가르치려고 하면 제대로 배워야 되잖아요. 학자의 특징은 집중해서 듣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듣고 제대로 깨달을 때 확신이 오고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죠.

아마 저보다는 마산에 사시던 분들이 훨씬 더 잘 아실테지만, 이야기 하나를 소개합니다. <육일약국 갑시다>라는 책이 있어요. ‘김성오라고 하는 분이 쓴 책입니다. 이분은 서울대 약대를 나오시고 자기 고향 마산으로 내려 가서 빈손으로 변두리에 약국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겨우 6백 만원을 빌려 가지고 2백 만원으로 약장을 짜고 3백 만원으로 약을 메꿨는데 약장이 형편없이 비니까 제약회사에다 얘기해서 빈 깡통, 빈 상자 이런 걸 받아다가 채워놓고 백 만원은 비상금으로 챙겨 놓고 시작합니다. 4.5, 당시 약국을 시작하려면 최소한의 면적이 4.5평이었어요. 저 변두리에 육일약국’, 이름이 참 독특해요. 이 분이 알고 보니까 크리스챤이에요. 6일 동안은 손님에게 충성하고 주일은 하나님께 충성한다 이런 뜻으로 이름을 육일약국, 또 이렇게 해야 손님들이 헛걸음 하지 않을 테니까. 이분의 전략이 있어요. 쬐끄만 변두리 약국에 누가 오겠어요. 객관적으로는 경쟁력이 없어요. 그럴 경우에는 주관적 경쟁력을 만들어야 된다. 그게 뭐냐. 고객을 영업부장으로 만들어라. 친절은 기본이고요. 오는 분들의 이름을 다 기억합니다. 애들 이름까지 다 기억해요. 그리고 특별히 약국에는 지나가면서 길 물어 보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거 짜증내지 않고 가르쳐 줍니다. 어리버리해서 모르면 가운을 벗고 좇아가서 데려다 주고 옵니다. 그리고 시골 아낙네들이 서류 쓰는 거 모르면 그걸 다 도와 줍니다. 그분 말하기를 사람들이 기대한 것보다 1.2배 친절하면 사람들이 좀 친절하다고 느끼고 1.5배 친절하면 감동을 받는대요. 그러면 그 분들이 영업부장이 된대요. 전략이에요.

또 하나 창의력이에요. 그 가게가 얼마나 좁은지 형광등 6개면 환한데, 25개를 달았대요. 그러니 어떻게 됐겠어요. 아주 환하죠.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정신이 버쩍 나겠죠. 그래서 주목하고 보더래요. 그리고 약국 간판 불을 밤새 켜놓는 것도 은행보다 자기가 먼저 시작했대요. 그렇게 해놓으면 어두운 밤길 가는 사람에게 가로등 역할도 하는 거죠. 마산에서 자동문은 두 번째로 설치했대요. 시내 나갔다가 어떤 큰 호텔에 자동문이 있는 걸 보고 그 작은 가게에 자동문을 설치했대요. 그랬더니 동네 꼬마들이 몰려와서 열려라 참깨, 열려라 참깨하고 장난하는데 그게 다 소문이 난다는 거예요. 그리고 또 하나 자기와 가족과 친구와 자기 아는 사람들에게 부탁을 해서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는 일단 육일약국 갑시다이렇게 말하도록 했대요. 그래서 기사들이 육일약국 하면 다 알도록. 얼마나 지혜롭습니까. 경제 신문에서 월마트 기사를 보면서 아, 미국은 이렇게 변하고 있구나. 자기의 꿈은 마산 시내 한복판에다가 약국을 차리는 게 꿈이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세상은 지금 변하고 있구나. 이게 시내로 들어 갈게 아니로구나, 변두리로 나가야 되겠구나. 그래서 그 당시 마산역이 변두리였는데 마산역 앞에 큰 약국을 개설하고 마산역 주차장을 다 이용할 요량으로 그렇게 시작했어요. 큰 약국을 이루었어요. 창의력이에요.

드디어 다른 기업을 인수해서 운영합니다. 그리고 온라인 학습 메가스터디 부회장이 되고 또 독립해서 엠베스트’, 중학생을 위한 온라인 교육시스템을 시작해서 지금 시가 1조원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그런데 자기는 컴맹이래요. 아니, 컴맹이 어떻게 그런 회사를 운영할까요. 그분의 지론이 있어요. 고객에 앞서 직원부터 감동시켜라. 직원들이 편안하게 마음을 붙이고 일 잘할 수 있도록 늘 살펴라. 어버이날 가까울 때 즈음이면 직원들에게 봉투를 하나씩 준대요. 부모님 선물할 때 쓰도록. 그러면 직원들이 부모님께 선물 안 할 수 있어요? 감동받죠. 만원짜리를 준비했다가 직원들 자녀를 보게 되면 꼭 준대요. 그러면서 말합니다. ‘직원이 살아야 회사가 산다. 장사는 이익보다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자기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마산 지역에서 한평생 목회하셨던 아버지 목사님의 영향이었다.  그분이 남기신 말씀 오늘의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너를 찾아온 사람은 다 네게 복을 주러 온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친절과 정직과 나눔과 베품을 통해서 저들을 섬겨라.’ 아버지의 유업을 잘 귀담아 들었더니 이런 복을 주신 거죠.

여러분,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있습니다.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삶 속에 나타나는 거예요. 이 비밀을 아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에요.

 

기도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하나님 앞에 불러 주시고 예배하게 하시고 말씀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학자같이 열린 귀로 말씀을 듣게 하시고 학자같이 지혜롭게 말로써 행함으로써 마음으로써 우리 이웃들과 어려운 자들에게 나누고 베푸는 그러한 실천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