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확실한 은혜[다윗왕=자기죄를 통해 인간의 무서운 죄악성 발견]/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3. 16:49

070902 확실한 은혜 ( 55:1-5)

성경본문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거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었나니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불의 전차>Chariot of Fire 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1981년에 제작된 영화인데요, 1921년 파리 올림픽에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에릭 리델이라고 하는 주인공이 나옵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 육상대표입니다. 그는 올림픽에 나아가서 100m 예선을 가장 좋은 성적으로 통과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100m 결승전이 주일날로 잡혔습니다. 그러자 그는 저는 주일에는 달리지 않습니다’ 100m결승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개인의 명예와 영국의 영광을 희생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비판했습니다. 다행히 동료였던 유대인 출신의 영국선수가 우승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주종목이 아닌 400m에 나가게 되었고 극적으로 우승하게 됩니다. 그는 선교사의 자녀였으며 선교사를 꿈꾸는 사람이었기에 그 후에 선교훈련을 받고 중국선교사로 파송되었고, 2차대전중에 사망했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스코틀랜드에서는 큰 영웅을 잃었다고 함께 애도했습니다.

90년 전 기독교국가인 영국의 상황이죠. 그 영화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순수한 신앙이 참 부럽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생각할 것도 많이 던져주었어요. 90년 전 기독교국가 영국의 상황입니다. 오늘 우리의 상황 속에서 과연 주일에는 달리지 않는다라고 하는 신앙고백이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물어볼 필요도 없겠죠. 예수를 믿는 우리들에게도 그것은 많은 갈등을 던져주게 될 것입니다. 

그의 신앙배경은 청교도적인 전통을 따라 내려오는 거예요. 청교도적인 전통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신앙을 지킬 수 있을까. 거룩함을 지키려고 하는 열심, 그 순수한 추구, 그것은 본받아야 될 전통이죠. 그러나 동시에 여기에는 약점이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율법적인 열심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해야 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구분하기 시작하고 지켜야 할 일과 버려야 할 일에 집착하다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더 잘 지키겠다고 했건만 더 많은 올무에 걸려들게 되는 것이죠. 죄에 더 빠져 들어가게 되는 거예요. 자칫 외식하게 되는 거예요. 

사실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이야기예요. 한국교회 역시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선교사들을 통해서 이 청교도적인 전통 위에서 신앙을 배웠기 때문이죠. 지금은 그 벽이 많이 무너졌어요. 예전에 제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주일날 여행간다 그러면 눈총 받아야 되요. 또 주일에 공무원시험이 있는데 시험 치러 가려면 쉽지 않았어요. 주일날 찬양대가 중국집 가서 짜장면 먹는다. 그거 영 시선 불편했어요. 직장인으로 근무하는데 주일날 당직을 서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저도 옛날에 교사로 있었거든요. 주일 당직이 걸리면 어떡합니까. 그러면 혹 다른 공휴일 날 걸린 분들하고 바꿀 수 있으면 바꿔야 되겠다 라고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그런 식으로 주일을 지키려고 하다 보니까 지금 어떻게 됐습니까, 다 양보해 버리고 이제는 그저 하나 남았어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 성수 주일, 이거는 성도의 의무다, 교인의 의무다 라고 생각할 때 다 양보하고 딱 하나 남았는데 그게 뭐냐. 주일날 예배 드린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한 시간 예배를 드리고 나면 이제 할 일 다 했다. 이제 맘대로 가서 골프도 치고, 잠도 자고, 쉬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여러분, 신앙의 아름다운 전통 속에는 우리가 지켜야 할 내용이 있고, 그것을 담아내는 문화라고 하는 그릇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문화는 늘 시대를 따라 변화합니다. 변화하는 문화에 맞게 옷을 갈아 입지 않으면 본질이 변하게 되요.

이런 우스개가 있어요. 어떤 사람이 의사를 찾아 갔어요. “아이고, 선생님. 저는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도대체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이 침대다리 밑에 뭔가 있는 것 같아 몸을 뒤척이다가 다리 밑을 살펴보면 아무것도 없고, 분명히 아무것도 없는데도 자려고 하면 영 신경이 쓰여서 잠을 못 자는데 벌써 열흘이 됐는데 아주 죽을 것 같습니다.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정신과 의사가 말합니다. “저하고 석 달 동안만 상담하면 고칠 수 있습니다.” “그래요? 비용은 얼마입니까?” “한번 상담할 때마다 십 만원입니다.” 그러니까 고민에 빠졌습니다. “생각 좀 해보고 오겠습니다.” 그러고는 가지 않았어요. 그런데 며칠 후에 이 두 사람이 길거리에서 만났어요. 의사가 용케 알아 보고는 , 왜 병원에 안 오십니까?” 그랬더니 머리를 긁으면서 좀 비싸서요. 그런데 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의사가 깜짝 놀라서 묻습니다. “아니, 어떡해요?” “, 글쎄 제 친구가 조언을 해 주더라고요. 침대다리를 잘라 버리라고 하더라고요. 그걸 잘랐더니 글쎄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이건 우스개입니다마는 새로운 각도에서 생각하라바로 이 말이지요.

주일의 의미가 뭡니까? 여기 말씀을 보니,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이 없으면 돈 없이 값 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이것을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이라고 하는 목회자요, 영성 신학자가 새로 번역한 the Message라고 하는 새번역 영어성경을 보면 재미있어요. ‘그 쓰잘데없는 것에 너희의 인생을 쏟아 붓지 말고 가장 좋은 것을 구하라. 가장 좋은 것을 찾으라. 그리하여 그저 잠깐 몸만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너희 영혼에 충만한 만족을 주는 것을 찾으라.’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눈을 들어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 그리고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규정에 파묻혀서 내가 얼마나 열심히 지켜야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가 하는 그런 사고방식 속에 하나님을 가둬두지 말고 고개를 들고 눈을 들어서 이 오묘한 우주의 신비와 인생의 놀라운 비밀들에 주목하고 이것을 지으시고 선물로 주신 하나님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라.

제가 지난 주간에 수마트라 람풍을 다녀 왔구요. 공항에서 차를 타고 들어오다가 모처럼 보름달을 봤습니다. , 얼마나 아름답고 멋있었는지 몰라요. 제가 새삼 아이고, 저 달은 날마다 저러고 떠 있는데, 날마다 모양을 바꿔가면서 옷을 바꿔 입으면서 공중에 떠있었는데, 그토록 오랫동안 저 달도 제대로 못보고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분, 신앙의 동기는 다양해요. 몸이 아파서 나왔을 수도 있어요. 그저 친구에게 끌려서 나왔을 수 있어요. 어떤 나름의 문제를 가지고 나왔겠죠. 그러나 출발은 다를지라도 결국 우리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하나님이 지으신 이 놀라운 신비에 눈을 여는 거예요. 이 놀라운 것을 내게 선물로 주신 은총에 감격하고 감사하는 거예요. 그럴 때 답답하게 현실에 매여 있던 생각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고, 새로운 돌파구가 열리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그저 내 열심, 그 대가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 이러다 보면 잘못하면 이것이 우상숭배가 됩니다. 미처 오늘 내가 다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하나님의 시간계획 속에서 깨닫는 날이 있으리라. 하나님께 기회를 드리세요. 오늘 당장 내 원하는 대로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지 않는다고 졸라대지 마세요. 다 때가 있는 거예요. 이제 중요한 것은 정말 가치 있고 귀한 것을 찾는 그 자세이죠. 오늘 하나님이 가장 좋은 것을 찾으라 내가 너희와 영원한 언약을 맺었다그것이 바로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다. 다윗의 예를 들어 주셨어요.

다윗이 누굽니까? 그는 소년 시절에 선지자 사무엘이 그 집에 찾아 와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어요. 앞으로 너는 왕이 될 것이다. 기름을 부었어요. 기름을 붓는 순간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했어요. 새로운 세상이 열렸어요. 오늘 마침 얼마 전에 있었던 우리 J-Kids J-Teen 수련회 영상물을 여러분들에게 보여 드릴 것입니다. 자그마한 것이지만, 우리의 기대는 공부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있다고 하는 것을 저들이 알고 듣고 그것을 고백하고 자라기를 소원하는 마음에서 수련회를 준비한 것이지요. 그러했기에 골리앗을 보고서도, 아마 어른이라면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거예요, 하나님의 영이 부어진 순수한 소년이었기에 골리앗을 맞상대하겠다고 나갔고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그에게 지혜를 주셔서 적을 무너뜨리게 하셨던 것이죠. 하나님이 그에게 꿈을 주시더니 이번에는 그 꿈을 이루게 하기 위하여 고난을 주십니다. 15년 동안 사울 왕의 핍박을 피해서 정처 없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요나단이라고 하는 좋은 친구를 만나고 우정을 나누게 되고 드디어는 나이 서른에 유대 왕이 되요. 그리고 40년 나라를 통치하게 됩니다. 고난 끝에 성취를 이루었어요. 성공했다는 말이죠.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신 은혜는 이제부터예요. 왕이 되었습니다. 외부의 적은 다 무너졌어요. 그러나 그가 비로소 왕이 되고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얻었다 할 때부터 본격적인 위기가 시작되었어요.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밧세바사건 아닙니까. 부하들이 다 전쟁터에 나가 있을 때 낮잠을 자고 일어나 정원을 거닐다가 저 멀리서 목욕하는 여인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를 부르게 됩니다. 그를 취합니다. 범죄했어요. 그 죄를 숨기기 위해서 전쟁에 나가서 싸우는 부하장수를 고립시켜서 적의 손에 죽게 합니다. 완전범죄였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그것을 들추어 내셨어요.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서 다윗의 완전 범죄를 깨뜨리시고 그 죄를 들추어 내실 때에 다윗이 무너집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서 다윗은 자기를 새롭게 발견합니다.

시편 51편 다윗의 시는 밧세바 사건으로 인해 드러난 자기의 모습을 고백합니다. ‘, 하나님 나는 죄악 중에 출생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잠깐의 실수가 아니요, 허물이 아니요, 그 여인의 유혹도 아니고 내 속에 있던 죄가 드러났던 것뿐입니다.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었습니다. 하나님,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해 주십시오.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어 가지 마십시오. 나를 긍휼이 여기시고 나를 구원해 주시고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해 주십시오. 하나님이 정말 찾으시는 제사 예물은 전쟁에서 승리한 것도 아니고 나를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쏟아 놓는 이 상한 마음인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여러분 정말 육신적으로 풍성하고 넉넉한 것은 잠깐 기쁨을 주는 것 뿐이죠. 그것이 있다고 해서 인간의 불안이 해소되지 않아요. 그것은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어요. 성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당신께 돌아 가기 전에는 참된 안식은 없습니다.’ 다윗에게 주신 은혜라는 것은 바로 이거에요. 다윗이 위대한 점은 그가 고난을 겪어가지고 끝내 왕이 되고 성공했다가 아니에요. 그가 왕이 되었어도 그의 내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어요. 그가 왕이 되어 모든 것을 얻은 줄 알았는데 뒤늦게 이제껏 몰랐던 죄악 된 본성을 깨닫게 되었어요. 권력으로 해결할 수 없고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이 무서운 죄악성을 이제야 발견하게 된 것이죠.

 오늘 이사야 55장인데요. 이사야 53장에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는 메시아의 예언이 실려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고난 받는 종,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이 실려 있어요.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만 우리의 죄가 해결되는 것이죠. 사실 저 역시 이러한 자기 발견을 하기 전에는 찬송가 102 부르기를 싫어했습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이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네 이 세상 행복과 바꿀 수 없네찬송도 말이죠. 믿음의 정도에 따라 다 다르거든요. 이거 부담스러워서 어디 부르겠어요. 부르기 어렵더라고요. 그러나 나를 발견하고 도저히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이 죄 된 본성까닭에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 피 값으로 나의 죄를 대신하시고, 그가 죽으시고 그의 생명을 내게 부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이 사건을 온전히 받아 드린 다음부터 찬송가 102장을 비로소 마음을 열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이죠.

우리가 주일 예배를 지키는 것,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전통이 정말로 내게 은혜가 되는 살아있는 전통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항상 기억할 것입니다. 부득이 사업관계로, 가족 여행으로 주일을 비울 수 있죠. 가세요. 그러나 그 마음에는 항상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고 갈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성수하는 것은 그저 하나님의 벌을 피하는 수단도 아니고, 더 많은 축복을 받기 위한 투자도 아니고, 하나의 종교적인 의무가 아니라 넘치는 생명, 은혜인 것을 감사하고 기억하며 기쁨으로 행해야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 헤셀이라고 하는 영성신학자는 이런 말을 했어요. ‘봉사마저도 피곤하게 하는 것이라면 금해야 된다라고까지 얘기했어요. 그래서 사실 주일 오후에 J-Teen 예배가 있고 또 우리 선생님들이 봉사를 하시는데 그러다 보면 많이 피곤합니다. 참 제 마음에 안타까움이 있고 미안함이 있어요. 부득이 지금 과도기적인 단계니까 어쩔 수 없다 할지라도 우리가 이 마음과 이 정신을 가지고 봉사해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 잘아는 타이거 우즈라는 골프선수가 있잖아요. 그가 1997년까지 20대에 모든 대회를 제패 했습니다. 그를 따라 올 자가 없었어요. 또 다시 우승했어요. 2위와 엄청난 격차를 두고 우승했어요. 그런데 그가 자기 비디오를 다시 보다가 안되겠다. 내 스윙 폼이 저래가지고는 너무 엉망이다. 저걸 고쳐야 되겠다.’ 그래서 코치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도저히 저게 내 마음에 들지 않아 고쳐야 되겠는데, 어떡하면 좋겠느냐?’ 그랬더니 코치가 말합니다. ‘당신이 이제까지 했던 폼을 고치려면 엄청나게 어려울 것이다. 또 그걸 고치는 동안 2년 동안은 우승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하겠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한 2년 우승 못했어요. 그러나 그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었으면 몇 번 더 우승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셔요. 예배의 의미, 예배 안에 담겨있는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과 생명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목마른 인생인 것을 아시기에 생명 샘으로 부르시고 돈 없이 값 없이 마음껏 먹고 마시라 말씀하시고 영혼의 안식을 얻으라 말씀하셨사오니, , 하나님 부질 없는 것에 인생을 쏟아 붓는 어리석음을 내버리게 하시고 하나님께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우리에게 주시는 소중한 은혜를 받아 기쁨으로 누리며 복된 인생으로 남은 날을 살아가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