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기억하신 사람, 고넬료! (행 10:1-8)
'물망초'라는 꽃말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긴 강 '다뉴브' 강가를 사랑하는 남녀가 걷고 있었습니다. 강가에 꽃이 피어있는 것을 보고 '참 꽃이 너무 예쁘네요' 하고 여자가 감탄을 하자, 남자는 손을 뻗어 그 꽃을 꺾다가 디디고 있는 흙이 무너지는 바람에 강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남자는 필사적으로 헤엄을 쳤지만 물살이 너무 세어 나올 수 없어 자꾸만 떠내려갔습니다. 여자는 강가를 따라 뛰어 갔지만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체념한 남자는 꽃을 여자에게 던지며 '나를 잊지 말아요, 제발 나를 잊지 말아요' 라며 물 속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무덤에 그 꽃을 심고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을 따서 꽃 이름을 '물망초''나를 잊지 말아요'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강물에 잠겨 세상을 떠나는 남자는 사랑하는 연인의 기억 속에 늘 살아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것은 참 보람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도 기억되면 기쁜 일인데, 하물며 하나님이 기억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기억할까요? 이 청년처럼 목숨을 버려야만 기억하실 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지극히 작은 것일지라도 잊지 않고 기억하십니다. /할/ 여러분, 하나님이 기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4절에 '기억하신 바 가 되었으니'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기의 기억했다는 것은 단순히 알고 있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무엇인들 모르시겠습니까?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 하에 이루어진다고 했으며 악인의 경우도 죄악에 대해 기억해 두셨다가 심판하신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뜻은 과연 무엇입니까?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구원해 주십니다.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잊지 않으십니다. 그런 점에서 기본적으로 성도들은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말하는 기억은 일반적 의미 이상입니다. 성도들 중에서도 특별히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축복은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삶의 행위를 통해 받습니다. 기억한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성도들의 바른 믿음의 행위를 통해 특별히 축복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할/
오늘 본문은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고넬료의 신앙의 행위를 보시고 그를 '기억'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설교 제목이 ◀하나님이 기억하신 사람이 있습니다!▶라는 제목입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고넬료입니다. 우리들도 고넬료의 신앙을 배워서 하나님 앞에 기억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사도행전을 보면, 각 장마다 특징이 나타나는데 그때마다 인물이 나타납니다. 7장에는 전체가 스데반 이야기입니다. 8장에는 빌립 집사의 전도하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9장에는 사울이 회심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인 10장에는 전체가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의 이야기입니다.
①하나님이 기억하고 있는 고넬료는 어떤 사람인가?(1)
⑴고넬료는 군인입니다. 군인 가운데서도 백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있다고 해서 백부장입니다.
신약성경에 백부장의 직위를 가진 사람이 여러 명 나오는데 모두 다 믿음이 신실하고 공명정대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가버나움의 백부장은 믿음이 좋아 그의 종이 중풍 병에 걸린 것을 예수님이 치료해 주셨습니다. 또 예수님의 사형을 집행하던 백부장은 한마디로 '예수님은 의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사도를 로마로 호송하던 백부장은 바울을 죽음에서 구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그들의 행위와 백부장이라는 직업만 기록되어 있을 뿐 이름은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안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백부장 고넬료는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고 그 이름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⑵가이사랴에 주둔한 백부장입니다. 당시 가이사랴는 두 곳에 있었는데, 하나는 본문에 나오는 가이사랴로써 욥바 항구에서 약 30Km 떨어진 곳에 있는 지형이고, 또 하나는 베드로가 위대한 신앙고백을 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입니다. 이 곳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20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가이사랴는 당시 팔레스틴 총독의 본부가 있는 곳입니다. 가이사랴란 '가이사의 고을'이란 뜻입니다. 이 도시는 대헤롯이 화려하게 만들어서 로마 황제 아구스투스에게 받친 도시입니다. 후일에 이 도시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이방인과 유대인간에 오래 동안 투쟁이 있었습니다.
⑶당시 로마 군대 1개 보병사단은 6천명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1개 사단에는 600명이나 되는 10개 대대가 있습니다. 1개 대대에는 100명의 군대를 거느린 6명의 백부장이 있습니다.
당시 유대 지역에는 5개 대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그중 4개 군대는 식민지 병사로 구성되어 있고, 고낼료의 부대는 지배국가인 로마의 정규군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백부장 고넬료는 로마정규사관학교를 나온 고급 군인입니다. 그러므로 지배국가의 백부장은 누리는 특권이 대단했습니다. 당시 로마군인들은 굉장한 세도가였습니다. 특히 로마는 점령지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 예루살렘에는 로마총독을 두었고 가이사랴에는 군인들을 주둔시켜 정치를 했었습니다. 그러니까 고넬료의 위치는 상당히 높은 지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귀하고 귀한 것은 고넬료는 하나님께서 기억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고넬료에게 말하기를 '네 구제와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 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이 얼마나 축하할 일입니까?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게는 우등상을 수여합니다. 일정기간 결석 없이 다닐 때는 개근상을 수여합니다. 국가에 무엇인가 공헌했을 때는 훈장을 수여합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 기억하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고넬료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고넬료의 생애에도 하나님의 큰 상급이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 모두의 인생도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생애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②하나님이 기억하신 고넬료의 신앙의 행위는 무엇인가?(2)
2절에서 그의 신앙의 행위가 네 가지가 나옵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경건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우리도 그의 경건을 배워야 합니다.
여기 '경건'의 헬라어 원문에 뜻을 보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경건하다는 말은 예배를 드리는 사람의 모습을 말합니다. 예배드릴 때의 마음가짐, 예배드릴
때의 태도, 예배드릴 때의 행동을 말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경건하다는 말은 평소에도 예배드릴 때의 모습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경건한 사람'이란 확신에 가득 찬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입으로만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고 생활이 예수를 따라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은 경건이 없는 사람입니다. /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타락했습니다. 타락한 세상은 우리를 여러 가지로 유혹합니다. 물질로 유혹합니다. 타락한 성으로 유혹하고 있습니다. 명예로 유혹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타락했다고 해서 거룩하게 살아야할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도 세상에 물들어서야 되겠습니까? 바닷물이 짭니다. 그러나 바다 속에 살아가는 물고기들은 짜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빛과 소금된 우리들은 세상이 어두우면 더욱더 빛을 발해야 합니다. 세상이 부패했으면 더욱더 짠맛을 내어야 합니다. 'Sunday Christian'이 되지 말고,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Everyday Christian'이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진정으로 경건한 사람입니다. /할/
▶'철가방 우수씨'라는 기부천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김우수는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7살 때 버려졌습니다. 보육원을 뛰쳐나와 구걸하며 지게꾼으로 겨우 먹고살았습니다. 그는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앵벌이 조직에 들어가 소년원을 몇 차례 다녀왔고, 40대 들어서는 웨이터로 일하던 술집에 홧김에 불을 지르려 했다가 1년 6개월 징역을 살았습니다.
최악의 인생을 산 것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를 만나 감사의 생활로 변화되었습니다. 감옥에서 어린이재단 잡지 '사과나무'를 통해 아이들의 사연을 보면서 흐느끼고 또 흐느꼈습니다.
그는 출감 후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종일 중국집 배달로 번 돈을 5명의 아이들에게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불평과 원망이 아니라 기뻐하며 감사 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2006년부터는 매달 5만원, 10만원을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을 후원했습니다. 하루에 담배 두 갑을 피우고, 소주 두 병을 마실 정도였지만 후원을 시작하면서 완전히 끊었습니다. 한 푼이라도 아껴 아이들을 후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어린이재단 앞으로 4천만 원 종신보험을 들고 보험금과 월세를 제외한 월급의 대부분을 어린이들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사후 장기 기증도 서약했습니다. 불평과 원망의 삶에서 감사의 삶으로 바뀐 그는 생전에 사람들에게 '여가 있어야 돕는다는 건 핑계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한 평도 되지 않는 고시원 방에서 5명의 후원 어린이들 사진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구절이 펼쳐진 성경이 발견되어 모두에게 감동을 주었답니다. 이런 사람이 경건하게 산 사람입니다. /할/
▶'피에타'라는 작품은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것으로 바티칸시 성 베드로성당에 보관되어 있는 르네상스 시대 조각예술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당시 로마에 체류 중이었던 프랑스 추기경 '장 드 빌레르'의 의뢰로 3년에 걸쳐 만든 것이었습니다. 피에타 상은 유일하게 미켈란젤로가 직접 자신의 이름을 새긴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시신을 무릎에 안고 비탄에 잠겨 있는 모습으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슴이 저미는 아픔과 성스러움을 느끼게 합니다.
피에타 상이 완성되었을 때 교황과 추기경, 귀족들이 제막식에 모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피에타 상에 압도되었습니다. 교황은 미켈란젤로에게 '당신이야말로 위대한 예술가요'라고 치하했습니다. 그러자 미켈란젤로가 대답하기를 '교황님, 피에타 상은 제가 조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만 하나님이 대리석 덩어리 안에 만들어 놓으신 피에타 상이 드러나도록 겉에 붙은 부스러기들을 제거했을 뿐입니다.'
피에타는 '경건한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즉 경건은 온갖 죄와 탐욕으로 얼룩진 모습을 다듬어 인간 내면의 깊은 곳에 담아 두신 하나님의 형상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할/
▶바리세인들은 이 경건을 흉내내기를 좋아했습니다. 예전에 경건한 사람들은 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자세로 길을 걸어 다니다가 나무에 이마를 부딪쳐 피를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마에 피가 흐르는 사람을 보면 경건한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나중에 이 말을 듣고 싶어하던 바리새인들이 아예 집에서 나올 때부터 자신의 이마를 벽에 찧어 피를 흘리며 나왔다고 합니다. 그들의 경건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경건이야 말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딤전4:7절에서 당부하기를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했습니다.
이 경건은 무단한 자기와의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운동선수들은 피나는 훈련과 연습 끝에 챔피언이 되고 금메달을 따고 일등을 해서 전 국민을 기쁘게 합니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선수가 지난 18일 광주구장에서 공식 은퇴를 했습니다. 그가 IMF로 엄청 힘들 때 국민들에게 얼마나 힘이 되었습니까? 그는 연습벌레라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의 명성이 이 연습에서 온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까? 그런데 그 영광과 감동은 잠시뿐입니다.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안에서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경건하게 살면 범사가 잘 풀린다는 말씀입니다. /할/ 쉽게 말하면 이 땅에서도 복을 받고 살다가 천국에 가서도 풍성한 부름의 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원한 것입니다. /믿/
그래서 우리는 경건을 연습해야 합니다. 연습은 훈련입니다. 훈련은 반복해야 효력이 나타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끊임없이 경건에 연습이 필요합니다. 기도도, 봉사도, 헌신도 다 여기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아멘!/
경건에는 두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5) /할/
▶경건에는 모양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⑴경건의 입술이 있습니다. 입술에서는 나오는 말로 금방 경건을 알 수 있습니다. 경박한 말은 경건이 아닙니다. 음담패설도 경건이 아닙니다. 쌍소리도 경건이 아닙니다. 성경적 언어가 경건의 입술입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경건의 모양이 나옵니다.
⑵경건의 옷이 있습니다. 화류계 여성들이 입고 있는 옷은 성적 충동을 자아내는 옷입니다. 미니스커트 입은 여인을 보고 경건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군복을 입고 있을 때 경건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수영복을 입고 있는 모습도 경건은 아닙니다. 어떤 옷이 경건입니까? 깨끗한 옷, 수수한 옷, 거부감이 없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대제사장은 허리부터 넓적다리까지 보이지 않는 옷을 입으라고 하나님은 명하셨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행위로 나타나는 신앙의 인격을 거룩한 옷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거룩한 옷을 입으면 거룩한 행동이 나옵니다.
⑶경건의 자세가 있습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는 경건한 자세입니다. 팔짱을 끼고 설교를 듣는다 거나, 코를 후비며 기도하는 것은 경건한 자세가 아닙니다. 조용히 앉아 경청하는 자세, 팔을 올리고 기도하는 자세, 눈을 하늘로 향하여 부르짖는 자세가 경건의 자세입니다.
그렇습니다. '경건한 말, 경건한 옷, 경건한 자세'는 '경건의 모양'입니다. 그런데 경건의 능력도 있습니다. 경건의 모습이 있는 진정한 경건이 없으면 경건의 능력이 나오지 않습니다. 외식입니다. 가식입니다. 진정으로 경건해야 합니다. 믿음에는 경건이 더해져야 좋은 믿음이 됩니다. /아멘!/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세속으로부터 불러내셨습니까? 왜 우리를 예수님 앞으로 불러내셨습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가장 큰 의무는 예배드리는 일입니다. 성도의 첫 번째 할 일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할/
여기 경외는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자세'입니다. 즉 예배드리는 자세입니다. 고넬료는 온 가족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모습을 우리 하나님이 기억하신 것입니다. /할/
여기 '온 집'이라는 말은 가족 구성원 전체를 말합니다. 자녀는 물론이고 그의 부하나 노예들까지 모두를 가리킵니다. 또 여기 '경외'는 하나님 앞에서 나타내는 '두려움, 존경, 공경'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그의 독실한 신앙상태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혼자만 독실한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이 모두 다 독실한 가족입니다.
인간들은 왜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절대자이지만 인간은 상대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원 자이지만 인간은 유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능 자이지만 인간은 무능 자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은 창조자이지만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십니다. 음부에 내리기도 하시며 올리기도 하십니다.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며 높이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이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실 고넬료는 로마의 장교로서 식민지 백성을 통치하는 장교입니다. 로마는 다신론입니다만 황제를 신봉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넬료는 유일신인 유대교의 하나님을 온 가족이 믿고 있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할/
▶중세 기독교사에 나오는 '성 안토니오'는 재산의 전부를 팔아 구제하고 자기는 빈 손 들고 사막에 가서 수도생활을 했습니다. 수도할 때 하루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안토니오야! 네가 아무리 경건하게 살고자 하지만 알렉산드리아의 신발 고치는 노인보다 못하다.' 안토니오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거룩한 삶을 드리며 전 재산을 다 드렸는데도 신발을 고치는 노인보다 못하다니' 라며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로 노인을 만나러 갔습니다. 노인을 만나자 안토니오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라고 묻자, 노인의 대답은 '저는 너무 생활이 가난하기 때문에 신발을 고쳐주고 생활을 하고 저녁에는 가정예배를 드리고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공경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이 저의 하루 일과입니다.' /할/
⑴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사33:6절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보배'라고 했습니다. 보석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시111:10절에는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이고 인정받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전12:13절에 '여호와를 경외함은 사람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시19:9절에 '여호와를 경외함이 정결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사람을 깨끗하게 보시고 귀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십니다.
⑵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사랑하시고 귀하게 여기십니다. 신5:29절에 '나를 경외함이여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할/
⑶고넬료는 주의 종에게도 최대의 경의를 표했습니다. 25절에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고넬료는 로마의 고급장교입니다. 그는 식민지 유대를 통치하려고 온 장교입니다. 로마는 다신론입니다만 제일 우선적으로 황제를 신으로 신봉합니다. 황제에게만 총성을 맹세하고 경의를 표할 때만 엎드려 절하는 것입니다. 그런 신분을 가진 고넬료가 베드로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최고의 경의를 표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고넬료의 인격의 진면목을 보게 됩니다. 아무나 그렇게 못합니다. 얼마나 겸손한 인격자입니까? 여러분 믿음을 가로막고 은혜와 축복을 가로막는 최악의 장애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교만입니다. 이 교만이 천사를 사단으로 만들었습니다. 교만은 천사를 하늘에서 땅으로, 지옥으로 떨어뜨렸습니다.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는 갈릴리 어부 베드로, 가난한 전도자 앞에 넓죽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내가 나를 낮출 때, 주님이 나를 높이시고, 은혜를 주신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기억합시다. /할/
그러니까 고넬료는 하나님의 종을 하나님으로 알고 그의 가정으로 모신 것입니다. 신앙은 마음이 중요합니다. 33절을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세가 얼마나 경건한가를 보여줍니다.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할/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구도자의 간절한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주의 종을 사모하고 기다렸던지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감사하고 있습니다.
⑷하나님은 사모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시107:9절에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로다.' 여기 '좋은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사모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내사 고칠 것을 고치시고, 모든 어려움에서 건져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말씀이 들려 오는 창문을 닫으면 안됩니다. 말씀은 눈으로 듣고, 귀로 듣고, 가슴으로 듣고, 그리고 영혼의 귀로 듣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전인적으로 들어야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오늘 고넬료의 말씀을 받는 태도를 보세요!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베드로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고, 그 설교 단이 바로 '하나님의 앞'이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신전의식' 이 자세로 우리가 살아야 합니다. 요셉이 이런 삶을 살았습니다. /할/
⑸고넬료는 예배의 자세가 바로 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받는 태도가 참 좋습니다. 우리가 성경 읽는 자세도, 듣는 자세도 바로 되어야 합니다. '칼 바르트'는 이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신다'고 했습니다.
지금 내가 성경을 읽는 것 같지만 내가 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말씀해주시는 기회를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나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듣는 자세는 그 사람의 신앙자세와 비례합니다. 말씀 듣는 자세가 바르지 못하고 불 경건하면 그 사람은 건강한 신앙인이 되기 어렵습니다. /ㅎ라/
⑹말씀 듣는 자세가 몇 가지 있습니다.
㈀말씀을 들어야 할 시간에 딴 생각이나 딴 짓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에게는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만 주시는 말씀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지 않고 어떤 철학 강좌나 교양강좌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듣긴 듣되 하나하나를 비판하고 분석하고 난도질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5번째가 고넬료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듣고 믿어야 합니다. 이런 고넬료의 예배 분위기는 경건 분위기 속에 하나님의 축복이 떨어집니다.
44절을 보세요!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우리가 살길은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믿/ 여기 '성령이 내려오시니'란 말은 '위에서 떨어지다. 덮치다. 압도하여 사로잡다'는 뜻입니다.
▶왜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십니까? 말씀과 성령은 동전 양면과 같습니다.
▶46절에서 성령을 받은 결과 '모인 사람들에게 방언'이 터졌습니다.
▶47절에 보면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할/
▶'홀리데이인' 호텔의 '클라이머' 회장이 은퇴를 하면서 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가 경영하는 호텔에 도박장인 카지노를 두지 않기로 하나님과 약속했습니다. 저는 그 약속을 오랜 세월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주주총회에서 애틀랜틱시티 지점에 카지노를 시설하도록 결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과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처지에 놓였으니 차라리 내가 회사를 떠나도록 결심한 것입니다.'
클라이머 회장의 신앙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가 바르게 하나님을 경외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우리 하나님이 꼭 기억하고 계십니다. /믿/할/
㉢그의 구제를 하나님이 기억하셨습니다. '그가 많은 백성을 구제하고'
여기 구제는 '착한 행실'을 의미하는데 '불쌍히 여기다', '측은히 여기다', '자비를 베풀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고넬료는 로마의 귀족입니다. 지체 높은 권세자입니다. 이 사람이 자기 나라 백성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나라, 유대나라, 피식민지 백성을 구제하는 것입니다.
많이 구제했다는 것은 어떤 특정 개인을 구제한 것이 아닙니다. 그 당시 로마의 지배를 받는 팔레스틴의 사람들은 대부분 노예생활을 합니다. 그 백성들을 많이 구제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로마의 규정으로나 로마의 자존심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로마의 귀족성은 절대로 타협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고넬료는 백성을 많이 구제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구호가 아니라고 봅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그 일에 헌신한 것입니다. 그는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하면서 이것 먹고 힘내라는 차원의 구호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자기의 권세와 부를 가지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영적인 사역입니다. /할/
고넬료의 구제는 구제를 조금하고 자기 이름을 과시하기 위한 오늘의 현대인을 질책하고 있습니다. 고넬료의 구제는 하나님께 기억되는 구제(4,31절)였는데 그가 베푼 구제는 눈가림이나 자신의 영광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구제를 했습니다. 이것은 곧 그의 신행일치의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성숙하게 되면 생기는 정신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초월하는 힘입니다. 신앙이 성숙하면 상대방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내 것을 나누게 됩니다. 누굴 위해서 희생할 용기가 생깁니다. 그리고 이웃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의 성숙한 모습입니다. 고넬료는 노예들까지 배려했습니다. 관심을 가졌습니다. 심지어는 유대인들까지도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둔군 장교임에도 군림하지 않고 유대인들에게까지 관심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우리는 미국의 갑부 '록펠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석유를 독점하면서 세계 최대의 거부가 된 사람입니다. 그는 아주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의 교회 목사님이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할 수 있는 데로, 많은 돈을 버십시오! 그리고 할 수 있는 데로 많이 나누어주십시오!' 그는 목사님의 말씀대로 정말 열심히 '나누는 삶, 구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인생철학은 나누기 위해 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인생철학은 그로 하여금 돈더미 위에 올라앉게 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께서 다시 이런 말씀해 주었습니다.
'당신에게 돈이 마치 눈사태가 난 것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눈사태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당신과 당신의 가족들은 그 눈사태에 깔려 죽고 말 것입니다' 그는 목사님의 이 말씀을 명심했습니다. 그러기에 그에게 쏟아져 내리는 축복은 그로 하여금 '더 큰 나눔의 사람'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그로 인해서 미국 전역에서 그의 도움을 받지 않은 자선단체가 거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의 나눔의 삶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현역에서 은퇴하면서 그는 회장직함만은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현역생활에 대한 미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회사가 잘못되어서 직원들이 감옥에 가야 할 일이 생기면 내가 대신 가기 위해서 회장직을 유지한다'고 했답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였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아멘!/
▶황상민 교수는 우리나라 부자를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배고픈 부자: 먹어도, 먹어도 또 먹으려는 사람은 배고픈 사람입니다. 돈을 벌고도 또 벌고 또 벌면서 돈만 벌려고 하지 쓰지 않는 사람은 배고픈 부자입니다. 항상 배가 고픈 사람처럼 먹으려고만 합니다.
㈁품격 부자: 자기의 품위를 유지하는 데 신경을 쓰는 부자입니다. 고급 승용차를 탑니다. 고급 옷을 입습니다. 화려한 집을 꾸밉니다. 항상 자기가 부자인 것을 들어내려고 돈을 풍성히 쓰는 부자가 있습니다.
㈂철없는 부자: 내 돈 내가 쓰는 데 누가 무어라고 하느냐고 하듯이 물 쓰듯이 씁니다. 유투브를 보니까 아랍 석유 부자는 자기 옆에 미녀 가수를 앉혀 놓고 노래를 시작하여 끝날 때까지 돈을 뿌려 줍니다. 신나게 노래를 불러댑니다. 돈이 수북히 쌓이는 재미로 노래를 마음껏 부릅니다.
빌딩 위에서 10,000원 짜리 돈을 한 상자 뿌립니다. 사람들이 돈을 주우려고 미친 듯이 모이는 모습을 보면서 통쾌감을 느낍니다. 사람들을 가지고 노는 듯한 쾌감을 가집니다. 철없는 부자입니다.
㈃존경받는 부자: 남에게 존경받는 곳에 돈을 씁니다. 누가 보아도 존경받게 행동합니다. 돈 있고, 존경이 따르고 있습니다. 오늘 고넬료가 그렇게 살았고, 록펠러가 그렇게 살았습니다. 우리 모두도 부자가 되어 존경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⑴하나님은 구제하는 자를 꼭 기억하시고 갚아주십니다. 잠19:17절에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부자가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주었다면 하나님이 꾸시는 것이고 하나님이 갚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할/
▶어느 부자가 하나님 앞에 서서 심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책망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믿지도 않았다. 그렇게 물질이 많으면서도 남에게 준 적이 없다. 지옥으로 가라.' 그 때 부자가 말했습니다. '저 한번 거지에게 500원을 준 것이 기억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행위록을 보시더니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거지에게 500원을 준 것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천사에게 말했습니다. '저 부자에게 500원을 주어서 지옥으로 보내라.'
⑵가진 부자는 순간이나 버린 부자는 영원합니다. 성경에 부자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마19장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길을 가실 때 부자 청년이 따라와서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율법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그러나 그 청년은 부자였습니다. 재물이 많았습니다. 재물이 아까워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후 영원히 그 부자 청년은 등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지금쯤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을 것입니다. 가진 부자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반대 이야기도 있습니다.
눅19장에 삭개오가 등장합니다. 그도 부자였습니다. 세리 장이었습니다. 지위도 있었고 돈도 많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키가 작아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뽕나무위로 올라갔습니다. 예수님 눈에 띠였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그를 데리고 그의 집에 가셨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 처음 고백한 말은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할/
예루살렘에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갑자기 장례를 치러야 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부자였습니다. 자기가 묻히려던 무덤을 주님에게 드렸습니다. 그 무덤은 세계인이 찾는 세계 제일 유명한 빈 무덤이 되었습니다. 주님에게 내놓으니까 영원합니다. 그렇습니다. 가진 부자는 순간이나 버린 부자는 영원합니다. /아멘!/
㉣기도의 사람을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여기서 항상 이란 말은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했습니다. 그것이 3, 6, 9시 우리 시간으로 보면 9시, 12시, 3시입니다. 또 '항상'이란 말은 '쉬지 않고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또 '항상'이란 말은 '계속해서'라는 말입니다. 다르게는 '모든 경우에'라는 말입니다. 적어도 일을 시작할 때에 기도하고 일을 끝낼 때에 기도하고, 아침에 기도하고, 저녁에 기도하고, 시간 맞춰 기도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이 항상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경우에 기도하고 시간을 정하여 기도하고 규례를 따라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고넬료는 로마 군인이면서 그랬습니다. 참으로 멋있는 사람입니다.
본문 3절을 보면 고넬료가 기도를 하되 자기 생각대로 그냥 한 것이 아니고 유대인들의 정통적으로 하는 기도를 배워서 했습니다. '제 9시쯤 되어'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것, 귀중한 신앙의 자세입니다. /할/
그런데 영적인 사람은 영적인 사람끼리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시간에 고넬료도 기도했고 욥바에 있는 베드로도 기도했습니다. 똑같은 시간에 하나님은 가이사랴의 고넬료에게 천사를 보내 말씀하시기를 '욥바에 머물고 있는 베드로를 청해다 예배를 드리라'고 하셨고 욥바의 베드로에게는 고넬료의 집에 가라고 계시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안내자의 인도를 받아서 고넬료의 집에 가 보니 온 식구가 모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배를 드릴 때 그 집에 성령이 충만하게 임했던 것입니다. 이미 준비된 집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은혜는 준비된 곳에 임합니다. /할/
▶제너럴 모터스의 최고 엔지니어 '찰스 케터링'의 일화입니다. 그는 빈틈없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동차 업계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모임에서 사회자가 그의 '신화의 손'을 높이 쳐들며 '케터링씨, 이 손으로 한 일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사회자는 물론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자동차 탄생'이라는 말을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손으로 한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은 두 손을 모아 하나님께 기도한 일입니다.' /할/
시32:6절에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경건에 이르는 방법은 기도입니다. 경건을 유지하는 방법 또한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영적인 호홉이라고 말합니다. 육신이 항상 호홉을 해야 살듯이 영혼도 항상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호홉에 장애가 있으면 건강의 적신호가 되듯이 기도에 장애가 있다면 영혼의 적신호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신앙의 깊이를 알 수 없습니다. 기도는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대화이자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만남인 기도가 많아질수록 하나님의 성품을 닮게 되어 있습니다. /아멘!/
'존 번연'은 기도에 대해 말하기를 '기도는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그만 짓도록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죄가 인간으로 하여금 기도를 그만 두도록 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도는 영혼의 방패요, 하나님께는 희생 제물이요, 사탄에게는 채찍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로마 제국이 멸망했던 원인 중에 하나가 가정의 붕괴였습니다. 로마가 무너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 철학자가 말했습니다. '애국자여, 가정을 지키시오' 그의 기도문 가운데서 이렇게 말합니다. '신이시여, 기도하는 가정을 로마에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시옵소서'
당시 로마는 술 취함과 방탕과 타락으로 가정이 무너져가고 있었습니다. 고넬료도 로마의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가정만은 지키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 해답을 유대인의 가정에서 찾았습니다. 나라를 잃어버리고, 절대적 빈곤에 허덕이면서도 가정의 가정됨을 잃지 않았던 유대인들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넬료는 하나님이 기억할 수 잇는 믿음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고넬료의 신앙을 배워서 그대로 행하며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여러분, 믿음은 지키려고 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 큰 은사를 주십니다.
▶'칼릴 지브란'은 그의 글 '인간 예수'에서 이런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구레네 시몬에게 '너는 가서 또 다시 십자가를 지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묻는 이에게 '나는 얼마든지 십자가를 다시 지겠다.'라고 대답합니다. 이에 놀란 사람들이 '어찌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또 다시 질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더니 구레네 시몬은 대답하기를 '처음 십자가를 질 때 힘든 고통에 못 이겨 쓰러지려는 순간, 뒤에 계신 예수께서 오른손으로 나의 어깨를 만져주셨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의 손이 닿는 순간부터 십자가가 더 이상 무겁지도 고통스럽지도 않게 느껴졌다.' /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경건한 자가 되려고 힘쓰며 살아갈 때마다 그 어깨 위에 예수의 오른손이 얹어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시면 우리가 수지 맞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억방법 몇 가지만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예배를 기억하십니다. 시20:3절에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으시기를 원하노라(셀라)'
㈁첫 열매 신앙을 기억하십니다. 느13:31절에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하나님의 성호는 우리가 영원히 기억해야 할 표호입니다. 출3:15절에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기억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신8:18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아멘!/
▶종교개혁자 '칼빈'의 모토는 '코람데오'(Coram Deo)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즉 신전의식을 가진 경건의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삶 속에서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라는 신전의식으로 경건에 힘쓰고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사업합니까? 하나님 앞에서 공부합니까? 하나님 앞에서 일합니까?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이런 사람은 우리 하나님이 꼭 기억하시고 축복을 주십니다. /믿/아멘!/ (2014년 7월 20일대예배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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