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복 있는 사람들[예수믿는사람에게주신자유=사단으로부터의자유]/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3. 17:04

070819 복 있는 사람들 ( 10:17~24)

성경본문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이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종용히 이르시되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여러분 ‘유레카’라는 말을 아십니까. 이게 그리스어로 ‘발견했다’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영어로는 ‘I found it.’ 이렇게 해석됩니다. 이 단어에 얽힌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르키메데스라고 하는 그리스의 수학자요 과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시라쿠사라고 하는 나라에 살았습니다. 그 나라의 히에론 왕이 왕관을 제작하려고 금세공업자에게 금을 줬습니다. 얼마 후에 제작된 왕관을 받았는데 비밀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순금을 주었는데 그 금을 다 쓰지 않고 일부를 빼돌리고 다른 것으로 섞었다는 거죠. 은을 섞었다는 거죠. 그런데 그게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어서 왕이 고민하다가 아르키메데스를 살며시 불렀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한번 알아보라. 아무리 금관을 돌려놓고 봐도 보는 것 가지고는 알 수 없죠. 왕의 명령을 이루어야 할 터인데 고민이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목욕탕에 갔어요. 목욕탕에 물을 가득 채우고 탕에 들어가는 순간 물이 탕 밖으로 넘칩니다. 그때 ‘아, 그렇구나!’ 놀라운 것을 발견합니다. 그 순간 자기도 모르게 ‘유레카, I found it, 그래 알아냈어.’ 벌거벗은 채로 집으로 뛰어가서 그 금관을 실험했다고 하는 것이죠. 1kg과 은 1kg은 질량은 같습니다만 부피가 달라요. 그것을 물속에 넣었을 때 부피가 큰 놈은 부력을 많이 받기 때문에 그만큼 물이 더 많이 넘치게 되는 거죠. 같은 60kg라도 몸집이 더 넓은 사람이 탕에 들어가면 물이 더 많이 흘러넘친다. 그런 말이죠. 그것을 가지고 금관에 은이 섞여있다고 하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고 하는 거예요.

나중에 이 시라쿠사가 로마와의 전쟁이 있었을 때 로마가 이곳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애를 먹었습니다. ? 아르키메데스가 여러 가지 과학적 원리를 가지고 적을 막아낼 수 있는 무기들을 제작했기 때문이죠. 어느 날 드디어 로마군이 기습공격을 해서 성을 함락하려고 칼을 들고 들어왔을 때 아르키메데스는 그 때에도 땅바닥에다가 뭔가 한참 도형을 그리고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밖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로마군이 가까이 왔을 때 “그거 건드리지 마.” 뭔가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만 칼에 맞아 죽었어요. 나중에 로마군 사령관이 아르키메데스의 명성을 듣고 그를 만나기를 갈망했는데 그만 그가 부하의 손에 그렇게 죽었다 하는 이야기를 듣고 탄식했다고 합니다. ‘유레카, I found it, 알아냈어. 그런 말이에요.

그런데 오늘 본문은 유일하게 예수님이 성령으로 기뻐하셨다, 이거 딱 한번 나오는 사건이에요. 굉장히 기뻐하신 사건이에요. 저는 이것을 ‘예수님의 유레카’라 부르고 싶습니다. 내용인즉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어요. 그리고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귀신을 쫓아내셨어요. 이제는 열두 제자를 불러가지고 그들만 보냅니다. 둘씩 짝지어 보냅니다. ‘너희들이 가서 내게 들은 대로 이 말을 전하라. 그리하면 귀신들이 물러가고 병자들이 나을 것이다.’ 열두 제자들이 돌아와서 감격스럽게 주님 앞에 보고를 한 거예요. ‘말씀하신대로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시험합니다. 이번에는 70명의 또 다른 사람들을 둘씩 짝지어서 보냅니다. ‘내게 들은 대로 그대로 가서 전하라.’ 예수님도 실험하시는 거죠. 어떻게 되는지를 두고 보는 거죠. 그런데 그들이 지금 돌아왔어요. 뭐라고 얘기합니까. 우리가 가서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했을 때 귀신에 억눌려 고통당하던 많은 사람들에게서 귀신이 다 쫓겨 나갔습니다. 귀신들이 우리에게 항복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수님이 너무 기뻐하셨어요. ‘내가 이미 사단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을 보았단 말이죠. 그러면서 말합니다. ‘오늘 너희가 보고자 하는 것을 지난 날 많은 왕들과 선지자들이 그토록 보고자 했지만 보지 못하였으며 듣고자 했지만 듣지 못하였느니라. 너희야말로 복 있는 자도다.’ 예수님의 유레카에요.

여러분, 사람은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어요. 같은 사람을 놓고도 서로 평이 다를 때가 있잖아요. 심지어는 부부로 20, 30년을 살고도 부부싸움하고 화가 났을 때 하는 말이지만 ‘저 사람은 도대체 그 속을 모르겠어.’ 그러잖아요. 모른다고요. 예수님에 대해서도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 쓰여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는 시각에 따라서 예수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돼요. 예를 들어 마가복음은 우리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주님이에요. 하나님의 종이신 예수 그리스도에요. 마태복음을 보면 그건 흔히 유대인의 복음이라고 얘기해요. 유대인들이 구약을 통해서 그토록 기다리고 갈망했던 다윗의 후손 메시아, 예수님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다윗의 후손 메시아로구나. 또 모세가 훗날 나와 같은 선지자를 하나님이 보내어주실 것이다 했는데 예수님이 바로 모세와 같은 하나님의 선지자로구나, 이게 바로 마태복음이에요. 요한복음은 한걸음 더 나가서 그분은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계신 분이다. 신앙고백이 점점 깊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누가복음은 뭐냐.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와 또 달리 사람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신 예수. 우리같이 인간의 조건 속에 들어오신 예수. 시간과 공간과 생명과 죽음, 그리고 인간의 고통과 아픔, 이 모든 것을 몸으로 직접 겪으시는 예수. 그래서 누가복음만은 유일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 탄생부터 자라나는 이야기, 열두 살 때 이야기, 모든 이야기들이 의사 누가의 아주 치밀한 관찰을 통해서 기록되고 있어요. 사람의 아들 예수에요. 그런데 그가 어떻게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으로 사셨는가 그 비결이 뭐냐. 성령충만이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끌림을 받으시는 예수. 이미 우리는 예수님이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나의 모든 죄를 해결하시고 나를 자유케하신 분, 이렇게 고백하잖아요. 그렇다면 이젠 조금 더 입체적으로 조금 더 여유 있게 말씀을 들여다봐야 되겠어요.

그러니까 누가복음에서는 우리와 같은 조건 속에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과연 그러한가 주목하고 실험을 통해서 영적인 발견을 하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는 거예요. 마치 전지전능한 것 같이 다 아시는 예수님이라기보다는 그건 하나님의 일이고, 인간의 조건 속에 들어오셔서 하나님께 듣고 묻고 하나하나 확인해 나가는 그런 예수님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예수님이 너무 기뻐하신 거예요. 그렇구나. 하나님이 내게 주신 그것이 나에게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주위에 가까이 있었던 열두 제자와 그 밖에 많은 사람들에게도 주의 이름으로 나아갔을 때 똑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구나. 이게 영적 과학이죠. 이 영적 원리를 발견한 거예요. 이제는 이것을 받아서 누구든지 적용하는 사람의 삶에 그대로 이루어지는 거죠.

제가 지난 주간에 책을 한 권 소개해드리지 않았습니까.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거기에 이런 대목이 있어요. 그 여자 분이 예수 믿지 않는 집에 시집을 갔잖아요. 그렇게 하나님을 떠나 살다가 그 잘나가던 사업이 부도났어요. 아주 밑바닥까지 떨어졌어요. 돈을 펑펑 쓰다가 가난에 내몰리니까 그렇게 비참할 수가 없어요. 그러나 그것은 그 가정을 다시 부르시는 하나님의 손길이었어요. 드디어 그가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예수 믿는 집안에서 기도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났건만 젊은 시절 어리석어서 돈 많은 사람하고 결혼하는 것이 행복이겠거니 하고 믿지 아니하는 집에 시집오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가 하나님의 치시는 손길 앞에서 완전히 무너졌구나.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옵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어요. 그 남편이 예수를 믿기 시작했어요. 너무 감사한 거예요. 남편이 돌아왔어요. 그런데 시어머니가 그걸 보다 못해가지고 이 며느리를 내쫓습니다.

그래가지고 어린 시누이하고 둘이서 내쫓겼어요. 아무데도 갈 데가 없는 거예요. ‘할 수 없다, 집을 구하자.’ 그래서 어린 시누이와 더불어 동네방네 돌아다니면서 집을 구합니다. 부천에서 어느 복덕방에 들어갔어요. ‘우리가 집을 구하려고 하는데요.’ 그랬더니 이집 저집 소개해줍니다. 그런데 ‘우린 가진 돈이 10만원 밖에 없어요.’ 복덕방 주인이 ‘예이, 이 양반아, 10만원을 가지고 무슨 집을 얻는다고.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당장 가요.’ 그래가지고 돌아서서 나오려고 하는데 말이죠, 복덕방 주인이 그 모습을 보다가 ‘하기는 하나 있긴 있지.’ ‘그걸 우리에게 주세요.’ 그 복덕방 주인이 다시 말합니다. ‘아니야, 내가 실수했어. 그건 안 되지.’ ‘아니 뭔지는 몰라도 그 집을 우리에게 주세요.’ ‘그 집이라면 10만원이 아니라 그냥 들어가도 돼요.알고 보니 귀신 나오는 집이에요. 벌써 몇 사람이 죽어 나온 거예요. 들어가면 사람이 죽어 나오는 거예요. 이 복덕방 주인이 얘기를 해놓고는 ‘아이쿠, 내가 실수했지. 또 사람 하나 죽이려고.’ 저 부천역 앞에 어떤 큰 집이 있는데 그저 사람만 들어가면 며칠 안에 죽어나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폐가가 됐다는 거예요. ‘아이고, 그 집을 우리에게 주세요. 우리가 거기 들어가 살겠어요.’ 결국 그 집에 들어가 살게 됐어요. 얼마나 집이 썩었는지 며칠 동안 그것을 다 청소하고는 드디어는 그냥 지쳐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번쩍 그 생각이 나는 거예요. ‘이거 정말 귀신 나오는 집이라고 했지.’ 그런데 뭔가 쳐다보는 눈길이 있는 거예요. 깜짝 놀래가지고 시누이하고 벌떡 일어났습니다. 알고 보니까 복덕방 주인이 또 사람이 죽었는지 아침에 와서 동네사람하고 몇 사람이 쳐다보고 있는 거예요. 들여다보고 있는 거예요. 그 집에서 1년을 삽니다. 아무 일이 없어요.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수 믿는 불붙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겠어요. 하나님이 약속하셨어요. 요한일서 5장에 보면 ‘예수 믿으며 불붙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는 귀신이 저를 건드리지도 못하게 하신다. 말씀하셔요.

여러분, 인간의 조건이 뭔지 아세요. 오늘 말씀에도 있고 우리의 현실에도 있어요. 이미 여러분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귀신들려 고통 당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어요. 완전히 귀신에게 붙들려 있는 거예요. 자기의 감정과 이성과 의지가 완전히 꺾여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특정한 어떤 사람들만 귀신 들리는 거 아니에요. 마치 이번에 아프간에 가서 인질로 붙들렸습니다만 그 탈레반들이 그저 미국사람이든 이태리사람이든 독일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닥치는 대로 외국인을 붙드는 거예요. 누구라도 귀신에게 붙들릴 수 있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 돼요.

또 하나는, 사실은 불교나 무속에서도 그렇게 귀신 들린 자들을 불러와가지고 푸닥거리를 한다든지 여러 가지 의식을 통해서 귀신을 쫓는 경우가 있습니다. 있어요. 그건 현실이에요. 그것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어요.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데서는 서로 끌어가고 잡아가고 포로가 될 수 있어요. 잠깐 해방이 될 수 있어요. 바로 그런 상황이죠. 영적 혼돈의 상황이죠. 그것은 일시적인 것일 뿐이에요. 더 깊이 매이는 거죠. 안전하게 되려면 그 나라에서 완전히 나와야 되는 거죠. 뭔가 그 나라에 확실한 정부가 들어서고 군대가 완전히 질서를 잡고 평화체제를 유지하기 전에는 내전상태에서는 누구도 안전하다 할 수 없는 것이죠.

세 번째는,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말씀 한마디로 귀신을 물리쳐요. 그러나 우리의 현실 속에서는 보통 그렇게 되지 않아요. 귀신들린 자가 있다면 여러 성도들이 가서 저를 위해서 같이 기도하고 찬송하고 그러면서 귀신이 나가는 거죠. 또 그에게서 잠깐 귀신이 나갔다, 아 이제 됐다, 그거 된 거 아니에요. 문제는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히 자리를 잡아야 돼요. 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말씀과 기도와 찬송과 그래서 건강해져야 돼요. 여기 제가 처음 왔을 때 많은 분들이 권고해 주시더라고요. 여기서는 운동 안 하면 병나기 쉽습니다. 여기에 있는 티푸스라든지 이런 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조심해야 됩니다. 음식도 조심해야 됩니다. 무엇보다도 운동해야 됩니다. 더운 나라인지라 늘 에어컨 밑에 살기 때문에 땀이 안나요. 운동을 해서 땀을 내서 몸이 건강하게 돌아가야 병을 이기는 거지요.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제가 그거 하나는 지키려고 애를 씁니다.

며칠 전에 이메일을 하나 받았는데요, 온갖 질병에 대한 진단과 처방법 완전히 의학백과사전이 와 있더라고요. 고혈압에는 어떻게 하고, 너무 복잡해요. 그래서 삭제했어요. 분량이 너무 많아서 삭제했어요. 대신 제가 취한 처방은 뭐냐. 날마다 운동하는 것으로 대신하자. 그거 박사같이 다 연구해가지고 건강을 지키는 게 아니고 날마다 정한 시간에 운동하세요. 그리고 1년에 한 번씩 정기검진 하세요. 그리고 그 이상의 것은 의사에게 맡기세요. 바로 그거에요. 귀신에 관한 것도 그래요. 성경이 말하고 있는 만큼만 알면 충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만큼 얘기하시는 거예요. 오늘 예수님이 말합니다. 귀신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더 중요한 게 있다고요. 네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다. 네가 누구인지, 너의 정체의식을 분명히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여러분,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돼요. 성경은 뭐라고 얘기하느냐.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에게는 이런 자유를 주셨다. 죄로부터의 자유, 진노와 심판으로부터의 자유, 지킬 수 없는 율법의 저주로부터의 자유, 죽음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죽음이 무서워 종 노릇 하던, 사단으로부터의 자유, 이게 예수 믿는 사람에게 주신 자유에요. 8.15는 정치적 자유지요. 그러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자유도 중요합니다만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이기에 그 뿌리는 영적인 자유에요. 이것을 누릴 때에 우리는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것이죠. 이제 우리 삶에는 하나님이 주신 목적이 있어요. 그게 뭐에요. 오늘 말씀 바로 뒤에 뭐라고 얘기 하냐면 사람이 지켜야 할 가장 으뜸가는 계명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그 방대한 구약을 딱 묶어가지고 한마디로 얘기합니다. 네 목숨과 힘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여러분, 가훈은 무엇입니까. 저희 집은 가훈이 뭐냐 하면 ‘경천애인(敬天愛人)’이에요. 이게 바로 이 구절이잖아요.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사랑하라.’ 이것이 온 율법을 하나로 묶어놓은 말씀이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자녀인 사람, 하나님의 은혜로, 십자가의 그 놀라운 사랑으로 자유함을 누린 사람이 붙들어야 할 삶의 목적이요,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이다.

어느 분의 글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아는 40대 남성이 암 선고를 받은 지 3주 만에 그만 돌아가셨어요.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놀랐어요. 신실한 분이었는데. 그분의 장례식이 너무나 애통했어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왜 하나님이 이분을 이렇게 일찍 불러 가셨는가.’ 참으로 무거운 장례식이었어요. 그런데 그 순서 중에 조사가 있었어요. 그분의 아들, 이제 열일곱 살짜리 고등학교 1학년짜리 아들이 조사를 하는 거예요. 그 아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왜 우리 아버지를 이렇게 불러 가셨느냐, 그렇게 묻지 마세요. 오히려 이렇게 좋으신 아버지를 불러 가신 하나님. 뒤에 남은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깨닫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물어주세요.” 여러분, 물론 우리가 왜 그렇게 되었을까 묻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물음에 사로잡혀서는 안돼요. 오늘 이 사건을 놓고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깨달음은 무엇인가,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알아야 하는 거죠.

오늘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아버지 하나님과 그 아들의 이 놀라운 신비는 계시라고 그랬어요. 이건 하나님이 가르쳐주셔야만 알 수 있는 계시라는 거예요. 이제 그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드러나는 계시라는 거예요. 예수님이 이렇게까지 말씀하세요. ‘너희가 오늘 듣는 이 말씀을 그 많은 선지자와 왕들이 그토록 듣기를 원했지만 듣지 못하였으며 보기를 원했지만 보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 너희는 지금 보고 있다. 너희는 복 있는 자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 안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비밀을 보는 자는 복되도다.

자주 얘기하죠. God loves you.’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 그러나 문화적으로 보면 이것은 서양 사람들에게 적합한 말이에요. 서양 사람들에게 God는 바로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이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God는 너무 복잡해요. 한국 사람들의 하나님은 자기 나름대로의 다양한 경험이 막 혼합되어 있어요. 그러므로 복음적으로 말하면, 성경적으로 말하면 ‘God loves you’가 아니라 ‘Jesus loves you’해야 돼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기를 들어내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자기를 계시하신 하나님.

그러므로 정말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드러내어 보여주신 것을 깊이 묵상하는 사람이에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신가?’ 그렇게 묻지 마세요. 더 구체적으로 물으려면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다면 어떤 모습이실까?’ 그럴 때 그 모습이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사셨던 그 모습이에요. 십자가를 지시는 모습이에요. 아무도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죽이기까지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저들의 죄를 용서해주십시오. 저들이 자기 죄를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자기의 생명까지 내어놓는 그 놀라운 사랑. 그래서 골로새서 2 3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지식과 지혜의 모든 보물이 감추어져 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목하는 사람, 그 안에 행복의 비밀이 있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예수 그 이름의 권세를 믿는 저희에게 귀신을 내어 쫓는 능력도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약속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장 복 있는 자가 되게 하시고 성령으로 기뻐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