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항상 인도하리라[지진에대한다양한반응,Everyday Greatness]/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3. 17:12

070812 항상 인도하리라 ( 58:6~12)

성경본문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여러분은 성경의 어떤 말씀을 좋아하십니까? 사람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들이 몇 구절씩 있지요. 저도 그런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 하나를 든다면 디모데전서 4 3-5절 말씀을 좋아 합니다.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바니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식물이란 음식물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니라옛날에 하나님을 잘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하나님을 잘 믿으려면 인간의 정욕을 피하기 위해서 혼인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극단적인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심지어는 음식도 구별해서 먹어야 된다 그랬던 거죠. 그런데 오늘 성경 말씀은 그게 아니에요. 결혼하며 자녀를 낳으며 복을 누리며 살아라. 하나님이 주시는 음식은 무엇이든지 감사함으로 받아 먹으면 다 거룩해 진다. 저는 이 말씀을 좋아합니다. 이 말씀을 좋아하게 된 내력이 있어요.

제가 신학 대학원을 다니다가 한번 남들이 다 금식도 한다는데 나도 한번 금식도 해 가면서 제대로 믿어야겠다. 그래서 방학을 이용해서 금식을 하러 기도원에 간 적이 있습니다. 제가 군을 제대하고 나서는 금식을 며칠을 해 본 경험은 있습니다만 그 외에는 그런 일이 없어서 참 오랜만에 한번 산에 올라가서 기도원에 머물면서 금식을 했는데 간단하게 얘기하면 제가 이틀도 못 해 가지고 하산했어요.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하나님한테 그랬어요. ‘하나님, 저는 금식 좀 안 하면서 예수 믿고 또 목회하는 그런 방법은 없겠습니까? 해 보니까 저는 밧데리라서 안되겠습니다. 저는 제대로 먹으면서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려 왔습니다. 그런 제 눈에 이 디모데전서 4 3-5절은 할렐루야에요.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하나님 저는 이쪽 길로 가겠습니다. 주시는 거 그저 맛있게 먹고 감사하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원래 금식이라고 하는 것은 음식을 금하면서 전심으로 기도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 그만큼 간절하게 하나님의 뜻을 찾겠다고 하는 것 아닙니까? , 그렇다면 금식의 정신이 무엇이고, 금식의 참뜻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것을 붙들고 나아가면 되지요. 오늘 본문말씀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금식도 있다는 얘기지요. 오늘 읽었던 본문 앞에 보면 하나님이 소위 금식하는 자들을 책망하는 글이 나옵니다. 왜 책망했느냐? 금식을 하는데 그 마음속으로는 왜 우리가 이렇게 하고 있는데도 하나님이 우리를 알아 주시지 않지?’ 이걸 공로주의라고 하잖아요. 자기의 의로움을 드러내려고 하는 마음이죠. 정작 금식을 하면서도 너희 안에 다툼이 있고 싸움이 있구나. 그걸 책망하고 계셔요.

여러분 며칠 전에 지진났죠. 여러분 어떠셨습니까?  피곤하신 분들이야 지진이 났는지 말았는지 그냥 주무셨겠습니다만 밤 128분으로 기억돼요. 그 시간에 책을 읽고 있었는데 흔들리더라고요. 처음에는 윗집에서 시끄럽게 떠드나 하다가 , 이게 아니구나. 지진이구나.’ 그 순간 첫 번째 드는 생각이 드디어 나도 자카르타에 산다는 말을 이제 할만 하겠구나. 자카르타 살면서 지진도 한번 경험하지 못하면 그거 어디 가서 말하겠어요. 건물이 삐걱거리고 하는데 당장 뛰어 나가는 것 보다는 지켜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130초 정도 소리도 나고 약간 흔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집 사람은 자고 있는데 이걸 깨워야 하나 그러다가 제 느낌에는 이 정도로는 무너질 것 같지 않아서 내버려 뒀어요. 놀랠까봐서. 그러다가 다 끝난 다음에 여보, 아까 지진 났었어.” 하고 얘기했습니다.

지진보다 더 놀라운 것은 하루 이틀 지나가지고 같은 아파트 살던 사람들이 지진에 대해서 일으켰던 다양한 반응들이 더 놀라웠어요. 어떤 사람들은 그야말로 속옷 바람으로 뛰쳐 나간 사람들도 있고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아예 정장을 하고 나간 사람들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래, 마침 내 남편, 내 아내, 내 아이들이 한국 가 있으니 잘 됐다. 나만 죽지.’ 이렇게 생각한 분도 있고 심지어는 어떤 분은 자기 남편이 너무 곤하게 자고 있는데 얘기해도 일어나질 않으니까 그래, 이런 고통 모르고 그냥 조용히 죽는 게 낫겠지.’ 하고 자기만 나온 사람도 있다는 거에요. 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었는데 어쩌면 그렇게 180도 달랐을까? 사람은 이렇게 달라요. 똑 같은 일을 놓고도 이렇게 다르더라고요. 그러니 여러분 정말 교회가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되는 것은 기적입니다.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비전이 아니면 그거 교회 싸우지 않는 것은 오히려 이해가 안 되는 것이죠. 거기다가 만약에 이렇게 금식까지 하고 신앙에 열심을 낸다고 하는 사람들이 금식의 참된 뜻을 잃어 버리고 그것을 통해서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 자랑 거리로 삼으려고 한다면 교회가 더 어지러워져요. 그거 아세요? 교회를 시끄럽게 하는 사람들은 절대 저 뒷자리에 앉아 있는 분들이 아니에요. 그 분들은 마음에 안 들면 조용히 떠나가요. 교회가 시끄럽게 되는 것은 앞장 서서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 자기 맘에 안 맞으니까 에이하고 돌아서서 가는 거에요. 그러므로 그거는 목사고 장로고 권사, 집사를 떠나서 다 예외가 없는 거에요. 다 늘 조심해야 되는 거에요.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같이 살펴야 되는 거에요. 결국 금식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까? 오늘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결국 한마디로 말하면 사람을 자유케 하는데 그 뜻이 있어요.

스티븐 코비(Stephen Covey)<오늘 내 인생의 최고의 날>(Everyday Greatness) 이라고 하는 책에 이런 따뜻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남태평양 어느 한 섬에 자니 링고라고 하는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가 결혼할 때가 되어서 아가씨를 골랐습니다. 이제 결혼하려고 하는데 그 동네 사람들의 관습은 여자를 데려올 때 그 몸값으로 양을 보내 줘야 되요. 그런데 그들에게는 불문율이 있어요. 보통이면 4마리를 보내주면 되요. 좀 못생겼다 그러면 3마리도 되요. 진짜 기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얼굴이다 그러면 2마리. 그런데 이 자니 링고는 8마리를 보내 줬다는 거에요. 그래 동네 사람들이 다 의아해 했어요. 듣기로는 그 아가씨는 그렇게 잘 생긴 얼굴도 아니라는데 오히려 몸이 조금 구부러 졌다는데, 아니 근데 어떻게 8마리를 보냈을까?

마침 그 섬에서 목회하시던 선교사가 자니 링고가 결혼했다는 얘기를 듣고 저를 찾아 갔습니다. 또 이미 신부에 대한 소문을 다 들었어요. 그런데 그 집에 방문했을 때 그는 깜짝 놀랐어요. 웬 예쁜 아가씨가 있는 거에요. 건강한 아가씨가 있는 거에요. 그래서 자니 링고를 조용히 불러 물었어요. “내가 듣던 것과는 다른데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자니 링고가 말합니다. “제가 결혼하기 전에 우물가를 지나다 보니까 아낙네들이 우물가에 앉아서 빨래하며 서로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시집올 때 양 4마리 받았다, 나는 5마리 받았다, 이걸  자랑하더라고요. 그리고 3마리나 2마리 받은 사람은 얼굴을 들지 못하더군요. 그래서 나하고 같이 살 사람인데 내가 최고의 신부로 만들어야지 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전 재산 양 8마리를 다 주고 데리고 왔더니 신부가 자부심으로 가득 차서 남편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날마다 날마다 예뻐지고 건강해져서 저 모습이 됐습니다.”

그 유명한 유행가 모르세요? 사랑을 하며는 예뻐져요.’ 어쩌면 그렇게 복음을 정확하게 얘기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상대방을 넉넉하게 평가하세요. 사람 안에는 하나님이 심어 놓으신 가능성이 있는 거에요. 여러분이 성경에서 그 구절을 읽어 보셨는지 모르겠어요. 이사야 41 14절에 하나님이 뭐라 했는지 아세요? ‘너 지렁이 같은 야곱아 밤낮 땅속에서 흙이나 파 먹고 우물우물하는 지렁이 같은 야곱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들어서 모든 만방에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보고 계셔요.

그러니까 금식의 참뜻은 뭐냐? 금식하면서까지 기도하면서 구하려고 한 진정한 목적은 뭐냐? 내가 하나님 안에서 이 말씀을 가지고 자유한 인생이 되고 더불어 사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는 거예요. 우리가 서로 아쉬운 점이 있죠. 사람인데 어찌 허물이 없겠어요. 그러나 여러분 진정 복음을 아는 자라면 상대방의 허물을 이야기 하지도 마세요.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어요. 그건 얘기할 필요 없어요. 내가 하나님께로 받은 자유함을 가지고 기쁨을 가지고 살면서 넘어지려고 하는 상대를 굳세고 강한 팔로 딱 붙들어 주는 거에요. 그것만이 내 책임이에요. 이게 복음이에요. 하나님의 열심을 생각해 보세요. 지렁이 같은 우리들에게 한 평생 살면서도 그저 땅이나 쳐다보고 흙이나 먹고 사는 것 같은 그런 존재들인 우리를 불러 내어서 복의 근원으로 삼으십니다. 여기에 자유함이 있습니다.

또 하나 금식의 참뜻은 어려운 자들을 돕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것이죠. 굶주린 자는 먹이고 헐벗은 자는 입히고 마음이 상한 자는 끌어 안아 주는 것이요. 그럴 때 하나님이 내가 네 기도에 응답하리라 그리고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너와 항상 함께 하리라 너를 인도하리라약속하시는 거에요.

제가 지난 주간에 정말 감동받은 책이 있어요.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여기에 이런 얘기가 나와요. 어느 가난한 개척 교회의 사모님 이야기에요. 함께 교회 섬기는 할머님 성도님이 계셔요. 근데 이 분에게 깊은 고민이 있어요. 도대체 남편이 말이죠, 이 할머니가 교회 나가는 걸 핍박하는 거에요. 교회라고 그러면 버럭 화를 내는 거에요. 걱정이 되는 거에요. 걱정하다 못해 한평생 나를 괴롭힌 양반이 더 이상 나를 다시 한번 교회 나오지 못하게 한다면 차라리 내가 죽어 버리겠어.” 하는 거에요. 그런 얘기를 들으니 이 사모님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요. 근데 사모님이 참 지혜로운 분이에요. 할머니가 말합니다. “내가 내 남편을 위해서 아무리 얘기를 해도 말을 안 듣고 때로는 내가 유명한 목사님을 모시고 가도 목사님을 무안하게 해. 말씀도 듣지 않을 뿐더러 돌려 세워 내보낸다는 말이지.” 사모님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아니, 와서 못 듣겠다면 들어가서 전하면 되지 않겠어요?” “아니, 어떻게?” “좋은 방법이 있어요. 지금 집에서 식모를 구하신다고 그랬죠? 좋아요. 제가 그 집에 식모로 들어가겠어요. 제가 한 달 작정하고 식모로 들어가서 아예 그 분 옆에서 도우면서 예수를 믿게 하겠어요.” “아니, 어떻게 그 일을 해?” “괜찮아요. 제가 해보겠습니다.” 그러고는 위장 취업했어요. 그 집에 식모로 들어 갔어요.

그런데 이 할아버지가 얼마나 까다로운 양반인지 그야말로 커피 물도 온도를 재면서 야단을 칠 만큼 까다로운 사람이에요. 이 사모님이 날마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두 시간을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저분의 마음을 움직여 주십시오.’ 신문이 배달되면 먼저 다 읽어 봅니다. 내용을 머리 속에 다 가지고 있습니다. 혹 어려운 단어 같은 건 미리 미리 다 파악해 놓고, 할아버지가 신문을 읽을 때 옆에서 대화 상대가 돼주는 거에요. 속이 후련하게 얘기해 주는 거에요. 이런 식모가 없는 거에요. 구두도 깨끗이 닦아 놓고 나가려고 할 때 그 앞에서 다시 한번 치맛자락으로 콧등을 닦아서 내미는 거에요. 이럴 수가 없어요. 그러나 그게 얼마나 어렵겠어요. 날마나 코피를 쏟으면서 그 일을 한 거에요. 며칠 지난 후에 이 할아버지가 자기 친구 회사에 자리를 만들어 놨다고 아줌마는 이런데 있기에는 아까운 사람이야. 내가 친구한테 부탁해서 자리 만들어 놨으니까 내일부터 그리로 출근하면 돼.” 아끼는 마음에 이렇게 한 거에요. “아니에요. 저는 이 집에서 아저씨를 모시는 게 훨씬 좋아요.” 그랬더니 이 할아버지가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만나는 친구들마다 자랑을 하는 거에요.  어느 날 시집간 딸이 쫓아 왔어요. 그러더니 몰아 세우면서 말하는 거에요. “도대체 우리 집에 왜 들어 온 거에요? 혹시 우리 아버지 재산을 넘겨보고 들어 온 거에요? 딸인 나도 냉정하게 매몰차게 내모는 아버지인데 아버지 마음을 다 빼앗은 것 같아요. 그리고 앞으로는 아버지하고 절대로 한 상에서 밥 먹지 말아요.” 이렇게 몰아 세웁니다. 그는 그 고된 식모생활을 경험하면서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은혜를 체험합니다. 자기가 식모살이를 해 보니까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자기가 옛날에 식모를 부렸을 때 일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무심하게 대했는지 그 사람들에게 돈을 주고 일을 시키는 것인데, 수고의 대가로 돈을 주는 것인데 마치 그 몇 푼을 주면서 자기가 그 인생의 주인인양 사람을 무시하고 대하고 했던 모든 지난 날의 잘못을 통렬하게 회개하게 된 거에요.

어느 날 하나님께서 꿈 속에 그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 청년시절, 장년시절을 그림같이 비춰 보이시는 거에요. 그런데 참 희한하죠. 그 다음날 들어간 지 2주가 된 날 그 할아버지가 이 사모님을 불러 앉혔어요. “이제 솔직히 얘기해봐. 도대체 우리 집에 왜 들어 온 거야? 아무리 봐도 당신은 식모가 아니야. 솔직하게 얘기해봐.” 그래서 솔직하게 다 이야기를 했어요. 할머니가 예수 믿고 5년 동안 남편을 위해서 얼마나 눈물로 기도하며 이제까지 예수 믿기만을 구해 왔는지 그리고 보다 못한 자기가 이렇게 뛰어든 이야기를 한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 할아버지가 머리끝까지 분노를 일으킵니다. “그래, 우리 집사람하고 짜고 들어 왔단 말이야.” 성을 냅니다. “화가 나시겠지만 이 말까지는 들어 주세요.” 지난 밤 꿈에서 보았던 그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 젊은 시절 지난 날을 이야기해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 할아버지는 머리를 떨구고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쏟기 시작하는 거예요. 도대체 울 사람이 아닌데 울어요. 한참만에 눈을 들고 말합니다. “알았어. 알았어.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셔. 지금 자기가 얘기한 그거는 내 아내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내 인생의 꼭 꼭 감춰 놓았던 비밀이었는데. 분명 하나님은 살아계셔. 내가 이제부터는 교회에 나가 하나님 믿을게.” 그리고 그 날로 고급 승용차에 사모님을 태워 가지고 돌려 보냈어요. 그리고 그 다음 주부터 아내를 따라 교회를 나오기 시작했어요.

여러분, 부자라고 인생이 편안한 게 아니에요. 다 깊은 갈등과 고민이 있어요. 우리 이웃에 있는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 앞에 한번이라도 고개를 숙이고 저를 위해서 기도한다면 그것이 바로 금식의 참 정신을 이뤄가는 겁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셔요. ‘내가 네 영혼을 먼저 만족하게 하고 네 뼈를 견고하게 하고 네 삶을 물댄 동산같이 풍성하게 하리라.’

오늘은 8.15 광복절 기념주일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우리가 해방을 얻었구요. 자유를 얻었어요. 저는 태어나고 죽는 것은 하나님 손안에 있지만 대한민국 사람으로 이 시대에 태어난 것에 대해서 너무 감사해요. 반 만년 역사라고 얘기하지만 그 반만년 역사 속에 제일 드라마틱한 시대가 알고 보면 이 시대에요. 가장 소망있는 시대에요. 왜 그런지 아세요? 백여 년 전에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 올 때만 해도 한국은 암흑의 땅이었어요. 아무런 소망이 없는 땅이었어요. 그때 조선이라는 나라도 다 몰랐어요. 언더우드(Underwood), 아펜젤러(Apenzeller), 이런 선교사들이 들어 올 때 모든 사람들이 다 말렸어요. 차라리 인도로 가라고, 차라리 중국으로 가라고 아니면 일본으로 가라고. 조선은 아직 멀었다고.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들어 왔어요. 그들의 수고와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었어요.

며칠 전에 우리 자카르타 시민들을 위해서 디아스포라의 밤’,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건 이렇게 해외 나와서 흩어져 사는 사람들을 말하는 말이죠, 한인 교민들을 위한 집회가 있었는데 한동대학의 영길 총장님이 오셨어요. 그런데 그 분이 그 말씀 중에 놀라운 얘기를 하네요. 바로 오늘 본문 중에 이사야 5812절이 한동대의 비젼이다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에요. 그러면서 거기에 황폐된 곳을 다시 세우리라(We Rebuild) 파괴된 기초를 높이 쌓으리라(Raise Up) 무너진 데를 수보하리라(Repair) 길을 수축하리라 (Restore) 이것이 한동대의 비젼입니다. 정말로 예수를 알고 하나님의 일꾼된 자녀들을 길러서 세계적인 일꾼들로 만들어 내어서 세계 각 곳에 보내어 쓰러진 나라들, 무너진 나라들, 가난하고 연약한 나라들을 세우는데 우리 학교의 설립 목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갈대 상자>라는 책을 한번 찾아서 읽어 보세요. 한동대를 어떻게 일으키시고 시작하시고 이끌어 오셨는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어요. 그러나 알고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주신 놀라운 축복이에요. 한국 사람같이 전 세계 구석 구석 들어가서 사는 민족이 없어요.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워요. 참 희한하죠. 그거는 선교 인프라 스트럭쳐(Infra Structure)를 쫘악 깔아 놓으신 거에요.

여러분 BRICs라는 말 아시잖아요? 21세기를 주도하는 나라들, 브라질, 러시아, 인디아, 차이나 그런데 작년에 BRICs, 그 끝에 K를 더 붙이자 그랬어요. 그게 왜냐? 코리아야 말로 앞선 네 나라 못지 않게 시대적인 중요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가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치적 경제적으로 일으켜 세우시고 세계 앞에 내어 놓으시는 뜻은 뭐냐? 이미 전세계에 깔려 있는 이 한인 동포들과 그리고 한인 교회라는 통로를 통해서 복음을 실어 내시려고 하는 거에요. 이것이 가난과 전쟁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은혜로 해방을 얻고 자유하게 된 우리 민족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고 이 목적을 분명히 하고 나아가는 개인과 가정과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증거를 보이시고 은혜를 보이시는 거에요. 여기에 8.15 해방을 맞는 우리의 감사, 우리 삶의 목적, 길이 여기 있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지렁이 같은 우리들 한평생 흙 속에 파묻혀서 흙을 먹고 끝날 인생들이었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십자가의 놀라운 구원으로 하나님 자녀를 삼으시고 특별히 우리 민족을 유례를 알 수 없는 놀라운 은총 속에 세우시고 전 세계 흩어져 살게 하시며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고 이제는 그길 위에 하나님의 복음을 땅끝까지 증거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로 여기에 살면서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뜻을 알게 하시고 우리의 남은 삶 주님의 인도를 따라 주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복된 인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