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때를 아는 지혜[에스더=죽으면죽으리라,조정민=촛불보다햇빛]/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3. 17:43

070715 때를 아는 지혜 ( 4:10-17)

성경본문(개역개정)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고하기를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 그가 에스더의 말을 모르드개에게 전하매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니라

 

대형 할인마트의 매출과 날씨는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어느 날이 가장 매출이 높을까요. 통계에 의하면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 매출이 제일 높아요. 그 다음 매출순서대로는 구름 낀 날, 맑은 날, 하루 종일 비 오는 날, 마지막으로는 눈 오는 날. 매출이 다르죠. 비가 오락가락하거나 구름 낀 날은 모처럼 나들이 가려고 하다가 못 간 사람들이 다 할인마트에 와가지고 때우고 가기 때문이랍니다. 또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경우엔 아예 사람들이 집에 머물기 때문에 매출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비오는 날 잘 팔리는 것은 생태, 동태, 찌개거리, 조리식품, 이런 게 많이 팔린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장사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각해야 되는 거죠.

얼마 전에 피아니스트 백건우, 영화배우 윤정희 부부, 그분들이 벌써 육십을 막 넘겼더라구요. 인터뷰 기사를 봤습니다. 백건우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화려한 무대나 요란한 콩쿠르에 초대를 받는 것보다 연구하는 연주를 즐긴다고 말하고 음악으로 서로 경쟁하고 음악으로 돈 벌고 출세한다는 사고방식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 부부는 참으로 오랫동안 파리에서 거주를 하는데 자동차도 없고 휴대폰도 없고 컴퓨터도 없어요. 자기 색깔이 뚜렷하잖아요. 더 나아가서 뭔가 자기 삶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이냐. 특별히 여자분들은 어떤 삶을 선택하시겠어요? 제가 한번 예를 들어볼까요. 요즘 유행하는 신조어에 ‘동남아족’이 있대요. ‘동네에 남아도는 아줌마’라는 뜻이래요. 또 하나 다른 선택이 있어요. ‘줌마렐라족’이래요. 아줌마 같이 남편과 자녀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쏟아내는 삶인 것 같으면서도 신데렐라 같이 자기 나름의 정체성을 가지고 진취적으로 살아가는 여성을 일컬어서 줌마렐라라고 얘기해요.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루마패션’까지도 창조적으로 활용한다는 거죠. 루마패션이 뭔지 잘 모르시네. 구루마패션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싸고 평범한 옷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나름대로 멋을 내는 거죠.

여러분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평범한 것 같고 그대로인 것 같으면서도 어제 같은 오늘이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어 나가는 또 역경을 헤쳐 나가는 그러한 모습, 바로 그게 신앙이죠. 죽은 고기는 물을 따라 떠내려가지만 살아있는 고기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죠. 성경이 말합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속사람을 새롭게 하신다. 하나님은 오늘도 작정하신 영혼을 구원하신다. 이게 하나님의 창조이고 믿는 사람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창조에 같이 동참하는 사람들이다.

오늘 본문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의 이야기에요. 역사가 또 변해가지고 바벨론이 망했어요. 바사시대가 됐어요. 즉 페르시아 시대가 됐어요. 시간이 많이 흘렀어요. 여전히 페르시아 시대에도 국적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는 유대인들의 모습이 여기 있습니다. 오늘 아하수에로 왕이 나옵니다. 세계사에서 그리스 도시국가 역사를 공부할 때 보면 페르시아 전쟁이 있어요.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페르시아 제국이 전쟁을 벌인 거죠. 3차에 걸쳐서 큰 전쟁이 있었는데 1차는 다리우스 왕이 일으켜서 패했고 2, 3차 전투에서 크게 패한 왕이 있었어요. 크세르크세스 왕인데 이 사람이 바로 오늘 여기 나오는 아하수에로 왕이에요. 그러니까 이런 세계사의 격동 속에 유다인들은 아직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흩어져 살고 있어요. 이때 바벨론 포로 중에서 일부 고국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나마 선구적인 사람들은 먼저 고향 땅을 찾아서 돌아갔어요.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은 한번 옮겨 온 이방 땅에서 쉽게 뿌리를 옮겨서 돌아가지 못하고 그냥 그 땅에 주저앉아 살고 있었어요. 그들에게는 성전도 없고 그들끼리 모여 드리는 예배도 없었어요. 맘대로 율법을 읽을 자유도 없었어요. 심지어는 여기 에스더서의 특징은 뭐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아요. 여기 그 의미가 있어요. 하나님의 이름을 마음껏 부를 자유가 없는 사람들이란 뜻이에요.

여기 에스더라고 하는 여인이 나옵니다. 이 사람은 왕후로 뽑혔어요. 그러나 그는 자기가 유다인임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어요. 페르시아 왕궁 한복판에 들어가 살고 있어요. 그들의 문화 속에 동화된 채 살아가고 있어요. 유다인의 정체성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예배라든지 말씀이라든지 이러한 것들은 그에게 허용되지 않는 것이죠. 그런 그에게 위기가 오고 있습니다. 에스더 이전에 와스디라고 하는 왕후는 그만 왕의 눈에 어긋나가지고 페르시아 법에 의거해서 쫓겨났어요. 그 대신 들어간 사람이 에스더에요. 왕후를 폐위한 법이에요. 왕이 부르기 전에 왕의 안뜰에 들어가는 자는 사형당하는 그런 비인간적인 법이에요. 왕이 금홀을 내어 밀어야만 죽음을 면할 수 있는 가부장적인 법이요, 절대왕정의 법이에요. 그리고 오늘의 상황은 그런 법의 맹점을 이용해서 유다인들을 혐오하는 자들에 의해 이제 곧 유다인들은 페르시아 전역에서 학살을 당하게 되어 있었어요. 그런 위기에요. 에스더의 사촌오빠인 모르드개가 이 위기를 당해서 옷을 찢고 베옷을 입고 광장에 앉아서 재를 뿌리고 통곡하고 기도하면서 사람을 보내어서 에스더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모두 다 죽게 되었으니 이제 이것을 돌이킬 사람은 왕밖에 없는데 왕에게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지 않느냐. 그러니 왕에게 나아가서 오늘 우리 민족의 이 위기를 이야기해다오.’ 얘기한 것입니다. 에스더가 사람을 보내서 말합니다. ‘온 백성이 다 알고 당신이 아시다시피 왕이 부르기 전에 왕에게 나아가는 자는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미 이 방탕한 왕이 나를 찾지 않은지가 벌써 한 달이 되었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왕 앞에 나아가겠느냐.’ 그때 모르드개가 다시 회답을 보냅니다.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다른 통로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 그러나 유다인은 구원받을 지라도 책임을 다하지 못한 너와 네 집은 망하게 될 것이다. 생각해보라 네가 왕후자리에 앉은 것이 바로 이러한 때를 위하여 예비하신 것이 아니냐.’ 그 말을 듣고 에스더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위기는 25백 년 전 그들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위기는 있어요. 우리가 다 평온한 것 같지만 입시를 앞둔 자녀를 둔 부모들 마음은 애가 타는 거죠. 학생들 본인은 어떠하겠어요. 또 사업을 운영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죠. 오늘 잘 나간다고 내일 잘 나간다는 보장은 없거든요. 또 우리 건강도 그렇습니다. 오늘 이렇게 건강합니다마는 내일 어떻게 될지 참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에요. 모든 것이 다 잘 돼서 자녀도 진학 잘하고, 사업도 잘 되고, 남편도 건강하고, 다 잘 되는 것 같아도 중년을 맞는 여성들이 자녀도 다 떠나고 남편도 일에 빠져있을 때 자기 정체성의 위기가 오잖아요. ‘빈둥지 증후군’이라고 그러잖아요. 그러한 순간순간의 위기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됩니까. 또 소극적으로 이런 위기를 생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모든 것이 평안하다면 그럼 이제 만사오케이입니까. 과연 그것이 정말 만족을 주고 있습니까.

오늘 가나안을 떠나 포로 되어서 먼 이방 땅에서 살면서 세월을 많이 흘려 보내 자기 나름의 예배를 드릴 수도 없고 성전도 없고 율법도 마음대로 읽을 수 없는, 마치 버려진 것과 같은 주변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유다인들에게 오늘 위기가 닥쳤을 때 하나님은 과연 이런 우리 가운데 계실까.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온전하게 충실하게 살아오지 못하고 인생을 허비하고 낭비한 오늘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과연 어디 계실까.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날마다 새롭게 만날 수가 있겠습니까. 생각을 새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흔히 상식과 통념을 넘어서야 할 것입니다. 한국의 중산층에 관한 보고서가 있습니다. 월 가구소득을 기준으로 200만원에서 499만원까지를 중산층이라고 보는데 한국 전체가구의 49%라고 그래요. 한국의 보통 가구의 절반이 중산층인데 이 중산층도 또 구분이 되는 거예요. 그것도 참 재밌게 소득만큼이나 색깔이 다 다르다는 거예요. 네 그룹으로 나누어지는데 이게 44색이라는 거예요. 중산층들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도 4가지 색깔이 있어요. , , 가족, 건강, 이 네 가지 주제를 가지고 사람들의 생각을 나눠볼 수 있다는 거예요.

월수입이 420만원에서 499만원인 사람들은 ‘예비 부유층’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는 거예요. 조금만 더 노력하면 내가 부유층이 될 수 있는데, 이거에요. 이 강박관념에 매여 있어요. 그래서 이 사람들의 관심은 돈과 일에 있어요. 성취지향적이에요. 그리고 가장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어요. 소비형태도 부유층을 추종하고 있어요. ‘조금만 더 하면 내가 이것을 넘어설 수 있는데.’ 그러면서 10, 20년 살고 있는 거예요. 그 다음, 월수 350만원에서 419만원. 이 그룹이 바로 ‘전형적인 중산층’ 이렇게 구분이 된다는 거예요. 이 사람들의 관심은 가족과 건강이에요. 다른 그룹보다는 결혼만족도가 제일 높대요. , 가족끼리 오붓하게 모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으니까. 가족끼리 모여 밥도 먹고, 예비부유층이 자녀들에게 돈으로 대신하는 것과는 달리 이 전형적인 중산층들은 부모가 자녀도 도와주지만 성인 자녀들이 부모를 챙긴다는 거예요. 자주 가족끼리 모이고 소비도 가족단위로 이루어지는 이런 행태를 보인다는 거죠. 그 아래는 270만원에서 349만원 수입을 가진 사람들의 그룹은 ‘비판적 중산층’ 이렇게 이름을 붙입니다. 성공에 대한 욕구가 낮아요. ‘나는 성공할 수 없어.’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자존감이 낮아요. 현실에 대해서 불만이 있고 체념적, 냉소적이에요. 비사회적이에요. 그래서 스스로 외톨이가 돼요. 스스로를 소외시켜요. 마지막으로 200만원에서 269만원. 이 그룹은 ‘생계형 중산층’이다. 그러니까 뭘 해보려고 하는 노력이 없다는 거죠.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가치관에 매여 있다는 거죠. 관심은 돈과 건강에 있는데 그 돈과 건강이 늘 위기 속에 있는 거예요. 자칫 잘못하면 요것마저도 다 놓쳐버리고 깨뜨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생존 지향적으로 매여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사람의 생각이 다 제각각이지만 결국 이만큼 현실에 매여 있고 돈에 매여 있고 환경에 매여 있다고 하는 거죠.

제가 얼마 전에 영화 한편을 봤는데요, 우리 제목으로는 <행복을 찾아서>입니다. <The Pursuit of Happiness> 이것은 실화에요. 미국의 한 흑인 세일즈맨이 의료기기를 들고 병원마다 다니면서 팝니다. 한 달에 최소한 2개는 팔아야 먹고 살아요. 하나 팔면 집세 내고 또 하나 팔면 겨우 먹고 사는 거죠. 그런데 이게 쉽지가 않거든요. 너무 어려운 거예요. 집세가 밀렸어요. 드디어는 석 달치 집세가 밀렸어요. 그러니까 날마다 맞벌이 하는 부부가 얼굴을 대하기만 하면 다투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여기에서 헤어날 수 있을까 고민 고민하다가, 어느 날 높은 빌딩 앞에 어떤 멋있는 사람이 자가용을 몰고 와서는 차를 세우고 빌딩으로 뛰어 올라가려고 하는데 이 흑인이 모처럼 유머스럽게 묻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두 가지를 묻겠다. 당신은 누구며,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냐? 그랬더니 나는 누구며, 나는 여기서 증권회사를 다니는 사람이다. 그럼 틀림없이 당신은 좋은 대학을 나왔겠지. 그랬더니 이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니다, 여기서는 6개월에 한 번씩 인턴사원 연수가 있고 거기서 직원 한 사람을 뽑는데 내가 뽑혀서 일하는 거다. 누구누구를 찾아가서 물어봐라. 천신만고 끝에 겨우 인턴 원서를 한 장 얻습니다. 애를 써서 가까스로 원서를 넣었어요. 기다리던 끝에 반가운 소식을 들었어요. 인턴교육을 받을 수 있다. 그것도 아주 경쟁률이 셌는데 20명을 6개월 동안 연수시켜서 가장 성적이 뛰어난 한 사람을 정식 직원으로 채용한다. 이제 여기에다가 목숨을 겁니다. 이 꿈을 안고 일합니다. 공부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한순간에 바뀌지 않아요. 집세 독촉이 들어옵니다. 드디어는 어느 날 아침에 서로 일 나가기 바빠서 준비하고 있는 부부가 이야기를 합니다. “나 증권회사의 인턴사원으로 들어가서 연수받기로 했어.” 아내에게 말합니다. 그랬더니 “아니 왜, 우주비행사를 하시지 그래.” 대못을 박고 나가는 거예요. 그러더니 끝내 아내는 떠나갑니다. “더 이상 당신하고는 못살아. 당신 보기 싫어서 뉴욕으로 가겠어요.” 그리고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으로 갑니다.

이 남자는 이제 6살짜리 남자아이 하나 덜렁 남겨진 현실을 감당해야 됩니다. 계속 추락하는 거예요. 인턴으로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런데 막 상황은 꼬입니다. 집세를 못 내서 쫓겨났어요. 모텔에 갔어요. 모텔에서 며칠 버티다가 방값이 없어서 또 쫓겨났어요. 교회에서 운영하는 노숙자 센터에 허겁지겁 뛰어가서 줄을 서서 겨우 들어가서 밥 한 그릇 얻어먹고 침대 하나 배당 받아 가지고 애하고 겨우 몸을 누입니다. 마지막에는 결국 그것도 자격이 안 되가지고 지하철을 타고 왔다 갔다 하다가 어디 가서 자야 되는데 갈 때가 없어서 지하철역 화장실에 들어가서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거기서 잡니다. 늦은 밤 거기에 몸을 기대요. 누군가 와서 문을 열라고 두드려도 문을 열 수 없어요. 여기는 지금 내 안방이기 때문에. 아이가 지금 잠들어 있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면서 그 아픔을 감수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마지막 희망이 하나 있어요. 여섯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다닙니다. 그러면서 항상 묻습니다. You trust me? (너 아빠 믿어?) 그럼 이 철없는 애가 배고프다고 하기도 하고 힘들다고 하기도 하고 칭얼거리다가도 아빠가 그 말을 하면 “I trust you. (나 아빠 믿어요) 아이와 주고받는 대화지만 알고 보면 그건 스스로에게 묻는 거예요. 영화의 마지막은 그가 인턴사원 시험에서 극적으로 뽑혀가지고 정식 직원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가 그 결과를 듣고 거리에 나왔을 때 그 많은 사람들, 예전에는 그렇게 행복해 보였던 사람들보다도 그 누구보다도 가장 행복한 사람, 가장 행복한 얼굴,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웃는 것이 마지막이에요.

오늘 현실에 내 생각을 묶지 마세요. 생각을 가둬두지 마세요. 넘어서야 돼요. 오늘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네 근본을 잊지 말라. 네가 지금 왕후인줄 아느냐. 왕후 이전에 너는 유다인이다.’ 여러분, 여러분이 어떻게 살든지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에요.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존재에요. 믿음에 관한 물음에 대한 답을 반드시 발견해야 되는 존재에요. 그리고 오늘 말합니다. ‘네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하나님이 이때를 위하여 너를 쓰시는 것이 아니냐.’ 여기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요. 하나님의 부르심을 외면하지 말아라. 오늘 하나님의 부르심을 외면하면 하나님이 다른 사람을 통해서 그 일을 이루어 가셔요. 그러나 오늘 나를 부르시는 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큰 계획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에스더가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3일간 나를 위해서 금식하며 기도해 주시오. 나도 3일간 금식하며 기도하겠습니다. 그런 후에 내가 왕 앞에 나아가겠습니다. 죽을지라도 나아가겠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나아가겠습니다.’ 여러분 결단하는 것, 쉽진 않지요. 여기 3일 금식이 뭘 말하겠습니까. 한번 과연 내가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해보자는 거예요. 그리고 삶의 방향을 정하자는 거죠. 그런데 놀랍게도 결단하는 순간부터 살길은 열립니다.

여러분, 그 분 아셔요? MBC기자이며 미국 특파원이었던 조정민이라고 하는 분이에요. 올해 쉰여섯이더라구요. 그분이 미국 특파원도 하고 MBC 사장도 하고 뭐 그렇게 잘 나갔는데 건강을 위해 새벽마다 골프 연습장에 나가서 골프를 했단 말이에요. 어느 날 아침 일찍 나갔어요. 그런데 무슨 일인지 그날 골프연습장 문이 잠겨있는 거예요. 허탕 쳤어요. 그런데 마침 그 옆에 새벽녘에 사람들이 어딘가로 많이 가길래 뭐하는 사람들인가 봤더니 교회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교회에 따라 들어갔어요. 새벽기도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말씀을 듣기 시작했어요. 그 말씀 속에서 자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쉼 없이 달려서 여기까지 왔는데 나는 과연 어떻게 살 것인가, 그 물음을 듣게 됩니다. 예수를 믿게 됩니다. 그토록 모태신앙인이었던 아내가 얘기했어도 흔들리지 않았던 마음이 그날 그 사건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돼요.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게 돼요. 그런 가운데 하나님이 그에게 은혜를 주셨나 봐요. 그를 부르셨어요. 그가 목회자의 뜻을 품고 목사님에게 가서 상담을 합니다. 그리고는 미국에 건너가서 4년간 신학공부를 하고 이제 돌아왔다는 거예요. 기자들이 인터뷰를 했어요. ‘아니 당신은 그렇게 잘 나가는 사람인데 그냥 잘 믿는 사람으로 사시지.’ ‘아니요,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습니다.’ ‘아니 그런데 그렇게 화려한 경력과 그 모든 것을 놓는데 그거 어렵지 않았습니까?’ 이분이 결정적인 얘기를 하더라구요. ‘아닙니다. 제가 햇빛을 보았기 때문에 촛불 같은 그러한 것들은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정말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는 사람 앞에는 지위와 명예와 이 모든 것은 햇빛 앞의 촛불이에요. 그게 바로 사도 바울이 고백했던 거예요. 내가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나니 내가 이제까지 자랑했던 나의 혈통과 학문과 지위와 명예는 쓰레기 같았다. 바로 그리스도를 이렇게 발견할 때에 자유로움이 있죠. 그거 내려놓는 거 남 보기에는 어렵죠. 그러나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거기에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거예요.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음의 기쁨을 주셔요. 자발적인 순종을 가지고 나아가는 삶, 거기에 그리스도인의 자유로움이 있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고 믿음으로 살게 하시고 삶에 어떤 위기가 올지라도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는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체험하는 기회가 되는 줄 믿고 감사함을 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기에 때로는 죽으면 죽으리라 이렇게 굳센 의지를 가지고 이야기하지만 알고 보면 하나님께서는 살 길을 다 예비해 놓으셨고 우리의 순종을 찾으시고 더 나아가 자발적인 순종, 기쁨으로 나아가는 순종을 원하시는 주님. 햇빛을 발견한 자의 자유로움을 가지고 촛불 같은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얽매이지 않게 하시고 기쁨을 가지고 주를 섬기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