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스크랩]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10. 23. 06:40

10월의 묵상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Cast your bread upon the waters, for after many days you will find it again.). -11:1-

 

    제가 한 번 언급한 바가 있는 일리노이 주의 계 목사님의 이야기를 다시 합니다. 이번에는 그분 아버지 계 박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1960(31)년에 학위를 받은 뒤 한국에 오셔서 1961년부터 1987(58)년 은퇴하고 미국으로 귀국하기까지 27년 가까이를 대학을 위해 헌신하고 가신 분입니다. 그는 모든 학생들에게 철저한 실험실습을 하게 하기 위해 가장 적은 시약으로 실험을 할 수 있도록 미니 실험관을 구입하여 모든 학생이 실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는데 이런 학생들의 철저한 실험 실력을 인정한 서울의 한 제약회사에서는 졸업 전에 학생을 특채하겠다고 했지만 계 박사는 이를 불법이라고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그 회사는 반년을 그 자리를 공석으로 두었다가 학생을 데려간 일도 있었습니다

 

    그는 1970(40) 안식년 때 미국으로 가서 빌 브라이트 박사의 CCC 천막 수련회에 다녀왔는데 성령으로 거듭난 체험을 하고 한국에 와서 자기 방에 기독교 서적센터를 만들어 국내외의 신앙서적을 구입하여 싼 값으로 사서 읽게 하고 조교를 두어 학생 신앙 상담을 하게하며 직접 LTC(leader training course)의 초급, 중급, 고급훈련을 교직원과 학생에게 실시하여 1976년부터 1986년까지 십년 사이에 초급 836, 중굽 329, 고급 138명을 배출하였습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주고 자기는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자기 옷도 새 옷을 산 적이 없었으며 언제나 시장에서 산 헌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은퇴하고 떠날 때 그의 삶에 감명을 받은 한 직원이 석별의 뜻으로 무엇인가 꼭 드리고 싶다고 돈을 가져 왔는데 의외로 그때 그는 양복을 원했다고 합니다. 한국에 그가 준비했던 모든 책과 시청각 자료 등 2,700만원(당시) 상당의 자재까지 주고 나니, 귀국해서 활동할 옷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 아들 목사가 루게릭 병으로 생활과 자녀교육을 감당하기 어려워 계 박사님을 모셨던 우리가 돕자는 말을 어렵게 꺼냈는데 한 자매는 200만원을 가져왔습니다. 자기는 그에게 훈련을 받고 신학을 하고 지금은 은퇴해서 전도사로 있는데 자기 기도원에 그분이 왔으면 꼭 좋겠다고 왕복 비행기 값을 낸 것입니다. 또 고등학교 영어선생인 한 자매는 자기 노후 적금을 깨고 520만원을 보내 왔습니다. $5,000을 보내려면 수수료가 20만원은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100만원 50만원씩 보내며 연락할만한 다른 주소를 알려 왔습니다. 무엇이 이런 열정을 가져오는 것일까요? 그분은 선교사로 이곳에 와서 교회를 개척한 것도 아니고 유창한 설교를 한 것도 아닙니다. 삶으로 본을 보인 것뿐입니다.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란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계 박사님의 자부에게 우리가 자녀들을 위해 작은 후원금을 보내겠다고 연락했더니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역사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 너무 기쁘다.”라고 써 보냈습니다. 이것이 여러 날 후에 떡을 도로 찾는 일이 아닐까요?

 

기도:

하나님,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아멘.

 

 

 

 

출처 : 낮은 문턱
글쓴이 : 은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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