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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복음 전도의 아버지 D. L.무디(D.L. Moody)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4. 18. 12:01

복음 전도의 아버지 D. L.무디(D.L. Moody)
미국 남북 전쟁 이전의 찰스 피니와 1950년 이후의 빌리 그레이엄에 비길 수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 전도자이다.
구둣방 점원으로 일하던 중 예수님을 만났고, 후에 주일학교 교사로 시작하여 수많은 영혼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영적인 거인이 되었다.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된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과연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 이 세상은 그것을 볼 필요가 있다"는 말에 감명을 받아 그런 삶을 살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드와이트 리먼 무디는 별로 인기 없는 배경, 즉 뉴잉글런드의 작은 농촌 출신이었다. 1837년 소작농이자 석수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4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와 8명의 아이들은 아주 가난하게 성장했다. 초등교육밖에 받지 못했지만 그는 근육질의 탄탄한 체구에 열심히 노력하며 야심있고 상당히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시카고로 이주하여 제화점에 취직한 그는 이러한 성격과 직업의식으로 일약 백반장자가 되었다. 그러나 무디는 곧 시카고의 빈민가에 사는 거친 소년들과 소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독교 사역에 심혈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부족한 교육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경을 살아있는 말씀으로 증거하는 값진 은사를 발전시켰다. 불신 영혼을 구원하려는 무디의 열망은 너무도 강했으며 무보수로 어린이들을 위한 선교와 새 YMCA를 운영하기 위하여 자신의 사업을 포기하기도 하였다.

1870년, 그는 평생의 사역자이자 동역자인 생키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하나님 사역을 위한 완전한 구도를 갖게 되었다. 1872년 시카고 화재로 그가 건설한 모든 것이 파괴되었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가진 그의 전도집회는 그 전역을 흔들곤 하였다.

그는 학식보다 경험이 녹녹히 녹아있는 재담꾼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영어는 종종 문법이 틀리기도 하고 설교 원고는 철자와 문법이 틀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해 결단을 촉구하는 그의 강한 메시지와 성령충만한 집회는 어느 것보다 강하고 능력이 있었다. 그는 복음성가와 독창곡으로 인한 방대한 매출을 두 개의 학교와 선교를 위해 모두 헌금했으며, 1886년에는 시카고에 무디 성경학교를 설립하여 직업 기독교 사역자와 선교를 위한 헌신자들을 훈련시켰다.

무디는 단순히 그의 이름을 D.L.무디라고 서명하고 결코 목사 안수를 받지 않았다. 그는 단지 평범한 무디, 혹은 부흥사 무디로 불리길 원했다. 결코 미국과 영국을 넘어 전도여행을 하지 않았지만 학생자원단체와 해외 선교를 위한 끊임없는 독려를 통해 기독교 확장에 큰 영향을 주었다.

"내가 역사에서 사라질 때 나는 얼마의 위대한 남녀를 뒤에 남겨둘 것이다." 라는 그의 말처럼 다음 세대의 지도자 교육을 위한 그의 아낌없는 헌신은 우리 후대인들의 삶에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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