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이 사람을 보라

성령충만땅에천국 2015. 8. 11. 11:57

이 사람을 보라|성경 말씀 묵상

은혜 | 조회 22 |추천 0 |2015.08.10. 18:24 http://cafe.daum.net/seungjaeoh/J75F/132 

8월의 말씀 산책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해외에 파견하고 있는(지금은 6위라고도 함) 나라다. 그런데 나는 오늘 국내에서 만난 미국 선교사 한 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계의돈(Robert Louis Goette)이라는 독일계 미국 교육 선교사다. 1953(24)년에 화학으로 학위를 받은 뒤 1960(31)년 한국에 와서 1961년부터 1987(58)년 은퇴하고 미국으로 귀국하기까지 26년을 대학을 위해 헌신하고 귀국했다. 나는 그가 떠나기까지 그가 선교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는 대학에 학생들을 가르치러 왔기 때문에 학생들을 사랑해서 어떻게 재정적으로 빈약한 대학의 학생들에게 철저한 실험실습을 하게 할 것인가를 걱정하여 가장 적은 시약으로 실험을 할 수 있도록 미니 실험관을 구입하여 모든 학생이 실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도서관에는 친구들을 통해 모금한 돈으로 Chemical Abstract를 구입하여 비치하고 많은 저널들은 미 화학회에 부탁하여 과월호를 구입하여 비치하기도 했다. 이런 대학에서 철저한 실험을 통해 양성된 학생들을 탐하여 서울의 한 제약회사에서는 졸업 전에 한 학생을 특채하겠다고 했지만 계 박사는 이를 불법이라고 허락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그 회사는 반년을 그 자리를 공석으로 두었다가 학생을 데려간 일도 있다. 그는 기독교 가치관이 철저했다.


1970(41)년 안식년 때 미국으로 가서 빌 브라이트 박사의 CCC 천막 수련회에 다녀왔는데 성령으로 거듭난 체험을 하고 한국에 와서 자기 방에 기독교 서적센터를 만들어 국내외의 신앙서적을 구입하여 싼 값으로 사서 읽게 하고 조교를 두어 학생 신앙 상담을 하게하며 직접 LTC(leader training course)의 초급, 중급, 고급훈련을 교직원과 학생에게 실시하여 1976년부터 1986년까지 십년 사이에 초급 836, 중급 329, 고급 138명을 배출하였다.


한국 사람들에게 시간과 물질을 모두 주고 자기는 가난하게 살았다. 그는 자기 옷도 새 옷을 산 적이 없었으며 언제나 시장에서 산 헌 옷을 입고 다녀 소매가 짧았다. 머리도 부인이 깎았는데 뒷머리 부분이 이상하다고 말하면 괜찮습니다. 뒤에는 눈이 없습니다.”라고 웃어넘겼다. 부인까지도 교직원에게 영어로 성경을 가르쳤는데 그 집에서 쿠키와 차를 준비하고 기다려도 한 사람도 오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기다렸다고 한다.


그가 떠난 지 28년 뒤 그의 아들 목사가 루게릭 병으로 생활과 자녀교육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소식을 SNS로 알게 되자 나는 대학 재학 중 계 박사님을 아는 사람들에게 돕자는 말을 어렵게 꺼냈는데 한 자매는 200만원을, 그리고 또 고등학교 영어선생이었던 한 자매는 자기 노후 적금을 깨고 520만원을 보내 왔다. 이에 용기를 얻어 대학 교직원에게 아들을 돕자고 호소했더니 그 아들 목사의 세 자녀의 대학 장학금을 돕자고 기부금이 모여 매월 $2,000씩 앞으로 일 년은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성경의 전도서에는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11:1)”란 말이 있다. 그는 뭔가 돌아올 것을 생각하여 학생들을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물위에 던진 떡을 도로 찾은 것이다. 그 아들은 루게릭 병 판정 후 5년 반인 201589837분에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25:21)”라는 음성을 들었다고 말하며 세상을 떠났다.

나는 만나보지도 못한 아들을 위해 이렇게 사랑의 빚을 갚으려는 열정을 보고 계 박사, 이분이야 말로 진정 선교사였다고 말하고 싶다.

 

하나님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