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하나님의 교회[핵심가치=십자가에주목하고성령의음성듣고순종]/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5. 23:29

070121 하나님의 교회 (고전 1:1~3)

성경본문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작년에 많은 주목을 받았던 <라디오스타>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거기 보니 88년 가수왕 ‘최곤’이라고 하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감독의 유머가 이름에 실려 있어요. 최고가 아니라 최곤. 세월이 흘러서 인기를 다 잃어버렸습니다. 드디어는 저 강원도 영월의 라디오방송국 DJ로 가게 됩니다. “이 88 가수왕이었던 내가 그래 거기를 가야한단 말이야.” 이렇게 불만을 터뜨리면서 마지못해 가게 되는 거예요. 그는 과거의 성공에 매여서 오늘을 낭비하며 살아가는 인생이죠. 과거의 자그마한 성공이 오늘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사람이죠. 그러나 그 곳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그 곳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마음으로 부딪히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의 삶에 동반자로 함께 했던 매니저의 아픔, 희생, 눈물도 비로소 그 곳에서 알게 됩니다. 나중에 그가 그 지역방송에서 인기를 얻자 서울에서 그를 끌어올리려 했을 때 이제는 거절합니다. “아니오, 나는 이제 여기서 살겠습니다.” 시작은 끌려왔지만 그 곳에서 허상을 벗고 진정 관심과 배려와 사랑을 나누는 삶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죠.

지난 연말 방송국에서 연기대상 시상을 했는데 어쩌다 제가 한 장면을 보니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한 여배우가 큰 상을 받았어요. 그러더니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배우여서 그랬는지 몰라도 가슴이 뭉클하더라고요. 사실 왜 그랬느냐. 인기를 먹고 사는 사람들은 절벽 꼭대기에 선 사람들이에요. 거품과 같은 인기에 매여 있는 사람들이에요. 자기 정체성이 없으면 인기가 추락하면서 인생도 추락하기 때문이죠.

인기작가 ‘공지영’이라고 하는 분이 있죠. 어떤 사람이 그 분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어떤 작가가 되고 싶습니까?” “정말 좋은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그럼 정말 좋은 작가는 어떤 작가입니까?” “그의 마지막 작품이 대표작이 되는 작가가 좋은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작가는 둘로 나눌 수 있는 거죠. 데뷔작이 대표적인 작가가 있고 마지막 작품이 대표작인 작가가 있는 거죠. 그렇다면 이것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죠. 어찌 작가뿐이겠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죠. 저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은 괜히 불안해 보여요. 그 젊은 날에 주체할 수 없는 인기와 명예를 얻어가지고 과연 어떻게 인생 마지막 날까지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끊임없이 성장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남자는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40세 이전의 남자와 40세 이후의 남자. 40세 이전의 남자는 성공을 목표로 자기의 삶을 쏟아 붓는 것이죠. 아무리 뭐라고 해도 아직은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고 패기가 있고 열망이 있는 것이죠. 그러나 이제 40이 넘었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성공이 과연 내 인생에 얼마만큼 위대한 것입니까. 40이 넘은 남자는 이젠 정신을 차려야 된다는 거예요. 인생이 결코 성공과 실패로만 이야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내 본래의 모습을 잘 갈무리하고 살아갈 때이기 때문이죠. 그러니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일 중에 하나가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거예요. 하나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시고 우리 인간의 속 사람을 새롭게 하시거든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노라. 성령께서 너희의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하옵시고 그래서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길이와 너비와 높이와 깊이를 발견하도록.” 여러분 그래서 교회를 나와야 되는 거예요.

초기 기독교의 유명한 인물이었던 ‘키프리아누스’라고 하는 분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사람에게는 교회가 바로 그의 어머니다’라고 얘기했어요. 그만큼 교회는 중요한 곳이에요. 하나님이 세우셨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현장이에요.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죠. 그러나 참으로 유감스럽게 오늘 교회의 위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심지어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교회의 위기를 얘기해요.

얼마 전에 발표된 종교인구조사에 의하면 교회를 떠나 성당으로 간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들의 눈에 비친 교회 모습은 우리도 뭔가 느끼고 있었는데 딱 꼬집어내어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그들이 자 이야기하고 있어요. 마치 바둑으로 말하면 훈수를 두는 사람은 길이 훤히 보여요. 당장 바둑판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은 영 길이 안 보이는데 말이죠. 글쎄 떠나가면서 이 양반들이 훈수를 한마디 던지고 갔어요. 한번 들어보세요. 교회는 ‘화려하고 활기차지만 가볍고 시끄럽다’ 그래서 나는 ‘조용하지만 거룩한’ 성당으로 간다. 분명 그런 면이 있습니다. 또 교회는 ‘피곤하다’ 왜 그러냐. 가족 같은 교회, 이것은 좀 부정적인 의미가 있는 거예요. 너나 나나 그저 한 가족같이 산다. 사생활이 보호가 안 되는 거예요. 시도 때도 없이 어울리는데 현대인은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기를 원해요. 그러니까 간섭이라고 느껴지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죠. 또 이번에는 반대로 시댁 같은 교회. 여러분 시댁에 가면 꼼짝 못하고 명절에 부침도 부치고 해야 되잖아요. 뭐 박사며느리면 뭐하겠습니까. 와서 앞치마 두르고 일을 거들어야 되죠. 자기의 뜻과 적성과 이런 것에 일체 배려 없이 그냥 와가지고 일을 해야 돼요. 그러니까 이런 거죠. 교회에서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가지고 나와서 밥하라고 그러고 봉사하라고 그런다 이거죠. 반면에 성당은 ‘자유롭다’ 이거죠. 또 하나는 교회는 ‘흑백논리에 매여 있다’ 뭐 이렇게 말이 많고 따지는 게 많은지. 친절하게 대하다가도 주일 한 번 빠지면 그 다음날 눈초리가 날카로워 가지고 칼 맞는 것 같다 이거죠. 거기에 비해서 성당은 ‘융통성이 있다’ 여러분 그 말이 다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건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에요. 그것은 우리가 그렇게 비춰진 거예요.

혹시 그렇다면 우리야말로 교회에 대한 어떤 오해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에 대한 오해가 있어요. 교회는 공부하는 곳이 아니에요. 교회는 학원이 아니에요. 교회는 성경공부를 많이 하기 위해 세운 곳도 아니에요. 교회는 구제기관이 아니에요. 교회가 힘써 구제합니다. 그러나 구제하기 위해서 세운 기관이 아니에요. 교회는 또 우리끼리 모여서 서로 친교하지만 친교하기 위해서 세운 기관도 아니에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신비로운 사건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결코 신비주의를 좇아서는 안돼요. 날마다 우리의 현실을 떠나서 하늘이 열리고 환상을 보고 뭔가를 듣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거예요.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죠. 하나님을 만나되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방법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거예요. 그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그리고 부활하심과 그의 재림을 주목하는 것이죠. , 그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나의 모든 죄를 하나님께서 해결하셨기 때문에. 부활하심으로 그를 믿는 우리에게 부활의 생명력이 넘치기 때문이요, 주의 재림을 믿기 때문에 우리 역시 언젠가 종말이 있고 죽어도 다시 사는 그 날이 있음을 알기에 오늘을 살아갈 때 저 종말을 미리 보고 다시 그 종말에 서서 오늘을 보기 때문에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진실을 찾아 살아가게 되는 거죠.

며칠 전에 벼락이 쳤나 봐요. 새벽 1시에 우리 아파트에 정전소동이 있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 사실 전혀 몰랐어요. 책을 읽다가 늦게 12시 반에 잠이 드는 바람에 벼락도 몰랐고 정전소동도 몰랐고 아침에서야 비로소 식사할 때 아내를 통해 얘기를 들었습니다. 새벽 1시에 불이 나가고 하니까 냉장고가 문제가 되잖아요. 그러니까 아내가 자다 말고 일어난 거죠. 도란스도 다 나가고 말이죠. 그래서 막 쫓아내려가서 기술자를 불려 올려와 가지고 이것저것 손을 보느라고 한참 잠을 설쳤다는 거예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그만 깊이 잠들었었어요. 그 얘기를 들으니 참 미안하고 고맙고 감사하고.

이천년 전 유대땅에 일어난 십자가 사건이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내 영혼의 암흑에 매여 있었어요. 무지의 한가운데 갇혀 있었어요. 그저 내 노력으로 내 수고로만 인생을 사는 줄 알고 그렇게 길을 헤매며 살고 있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놀라운 사건을 일으켜주신 거예요. 내게 오늘 이렇게 환한 대낮같은 날들이 펼쳐져 있지만 이 날이 있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있었다고 하는 것을 이제 말씀을 통해서 듣게 된 것이죠. 그래서 교회는 어떻게 해야 성장하느냐. ‘교회로 교회되게 하라.’ 우리가 구제도 하고 봉사도 하고 교제도 하고 여러 가지 많은 일을 합니다만 우리가 붙들어야 할 교회의 본질,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 재림과 그것을 말씀에 담아주시고 오늘 성령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신다고 하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자 여기 말씀이 있습니다. 교회를 교회되게 하려면 이 말씀을 우리가 새겨야 되는데 이 말씀은 문화라고 하는 그릇에 담겨있어요. 현대문화예요. 예전에 한 40년 전에 한국교회가 마룻바닥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서서히 장의자가 도입되기 시작했어요. 어느 교회에서 “우리 교회도 이제 장의자를 들입시다.” 그랬더니 어떤 분들이 반대를 하는 거예요. “어떻게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데 감히 의자에 올라앉아서 예배를 드릴 수 있냐, 무릎을 꿇고 예배를 드려야지.” 그래서 할 수 없이 타협을 했는데 예배당의 절반 뒤쪽으로는 의자를 놓고 앞에는 예전과 같이 그대로 마룻바닥을 내놓고 원하시는 대로 마루에 앉으실 분은 무릎을 꿇고 앉고 올라앉을 분은 뒤에 앉고.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강경파들은 마룻바닥에 앉습니다. 온건파들은 뒤에 올라앉고. 그러다 어떻게 되요, 한 사람 한 사람 다 뒤로 올라앉아서 결국은 예배실 가득히 다 장의자를 놓았다고 하는 것이죠. 이게 문화죠. 진리는 아니죠.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 그것이 곧 성경이 말하는 진리라고 생각하는 그런 오류를 범할 때가 많이 있어요.

저는 몇 년 전에 서울의 큰 교회 아동부 예배에 가서 축도를 해주었는데 여름방학 수련회를 한다고 해서 찾아갔습니다. 축도하기 전에 가서 한번 들여다봤는데 들어가다 말고 깜짝 놀랐어요. 어린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모두 다 일어나가지고 ‘랩’이라고 아시죠, 막 몸을 틀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노래하는 거예요. 그 전에 어린이 찬송가를 부르라고 할 때는 입도 안 떼던 애들이에요. 제가 그 때 느꼈어요. ‘아, 어린이 찬송가가 필요하지만 그건 어른들의 시각이었구나.’ 우리가 보기에 애들은 딱 요걸 불러야 경건한 예배인줄 알았는데 애들의 문화에는 전혀 안 맞는 거예요. 그러니 부르기 싫은 거예요. 안 부르는 거예요. 그런데 랩으로 바꿔가지고 부르기 시작하니까 그 애들이 다 일어나가지고 막 강단에도 올라가서 춤을 추고 아래에서도 춤을 추고, 이게 바로 문화라는 거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문화라는 그릇에 담아서 세상에 널리 증거 하려면 지혜가 필요하죠.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어요.

여러분 교회라는 단어 자체가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이것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냈다’라는 말이에요. ‘구별해서 불러냈다’ 부르심이 있어요. MBC아나운서 중에 요즘 아주 주목 받는 아나운서가 있어요. ‘김성주’라고 올해 35살인데요, 이 사람이 지난 2006년 독일 월드컵 중계를 맡았거든요. 이것은 방송국에서도 이변에 가까운 일이었어요. 그 사람은 입사한지 겨우 6년차거든요. 그런데 그런 젊은 사람에게 그런 어마어마한 일을 맡긴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었죠.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아주 대박이 터진 거예요. 대성공한 거예요. 그것이 끝나고 나서 그는 회사로부터 아주 큰 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뒷얘기가 재미있습니다. 그 사람이 MBC에 들어오려고 무려 입사시험을 여섯 번이나 봤대요. 여섯 번 만에 붙은 거예요. 다섯 번이나 떨어졌어요. 참 뚝심 있는 사람이죠. 나중에는 도저히 안 되겠기에 케이블TV로 갔답니다. 스포츠채널을 맡았는데 그 회사는 1년 만에 망했대요. 그래가지고 남아있는 몇몇 사람들이 그래도 우리 끝까지 한 번 해보자. 그리고는 3년을 그걸 그냥 죽어라고 붙들고 몸부림을 친 거예요. 3년 동안 스포츠중계를 1000번을 했다고 그래요. 그리고 MBC에 다시 여섯 번째 도전해가지고 그 입사정년에 걸려가지고 마지막 기회에 합격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신입사원이지만 이미 탄탄하게 기본기가 다져진 사람이죠. 그러니 하나님이 그를 들어가지고 월드컵에 보낸 거죠. 그가 이런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이 저를 얼마나 절묘하게 인도하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그 부르심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아나운서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 하나님이 저를 어디로 이끄시던지 제 생각을 활짝 열어놓고 하나님의 뜻을 좇으려고 합니다.’ 참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하나 그랬더니 알고 보니까 목사 아들이더라고요. 거 다 어디서 듣고 본 바가 있는 거죠.

건강한 교회의 생명은 은혜와 평강이에요. 우리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되기를 새벽마다 기도합니다. 건강한 교회, 아름다운 교회, 그리고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교회.

‘인천 유나이티드’라고 하는 프로 축구팀을 아시죠. 원래 인천시민들이 돈을 내가지고 구단을 운영하는 독특한 구단인데 말이죠. 거기에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요. 2년 동안 팀을 맡았던 ‘장외룡’이라고 하는 감독을 1년 동안 영국으로 유학을 보냈대요. 포상휴가죠. ? 변변한 스타도 없는 그 팀을 데리고 2년 동안 좋은 성적을 냈거든요. 그리고 유일하게 흑자를 냈어요. 스타도 없는데 흑자를 냈어요. 장외룡이라고 하는 양반도 왕년에 축구선수였지만 국가대표를 잠깐 하고 그냥 스러져버린 사람이에요. 일찍 지도자수업에 나서서 배우고 닦고 준비해서 자기에게 자그마한 팀을 맡겨줬을 때에 최선을 다함으로 좋은 결과를 얻은 거죠. 그래가지고 온 시민의 성원을 받아가지고 영국 프로축구에 유학을 하고 돌아와서 더 잘해보겠다, 이 얼마나 멋있습니까.

‘존 나이스빗’이라고 하는 미래학자가 최근에 <Mind Set>이라고 하는 책을 썼어요. Mind Set-마음가짐’이라고 하겠죠. 미래를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 그 첫머리에 이런 말을 합니다. ‘수 없이 변화하는 세상 같지만 그러나 그 안에 변화하지 않는 핵심가치가 있다. 성공하는 기업일수록 변화도 중요하고 브랜드도 중요하고 트렌드도 중요하지만 그 중심에는 흔들리지 않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의 흔들릴 수 없는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주목하고 오늘 내게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핵심가치죠. 건강한 교회는 예배가 살아있는 교회,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이 오늘 내게 말씀하신다고 하는 고백이 분명한 신앙공동체. 그게 건강한 교회에요. 은혜는 뭐냐, 그저 내가 바라던 것 하나님이 이루어주셨다, 이게 은혜가 아니에요. 설령 눈물이 있고 실패가 있을지라도 이게 모두 다 나를 위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다, 이게 은혜에요. 언제 우리의 마음이 평강을 누립니까. 하나님이 지금도 나를 사랑하신다는 고백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은 평강을 누리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에요. 그게 하나님의 선물이에요. 여기에 교회의 생명력이 있습니다.

 

 

기도

하나님, 창립4주년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이끄심 속에서 맞게 하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여전히 허물 많고 연약함을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를 이곳으로 부르시고 교회를 은혜와 평강으로 이끌어 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오니 온전한 마음으로 자유함으로 주님을 깨끗이 좇아가는 우리들이 되게 하시고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이 우리 삶에 큰 자랑이 되고 기쁨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