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항상 기뻐하라[인간욕구의 마지막 단계=자아실현의 욕구]/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1. 15:18

040808 항상 기뻐하라 (살전 5:16-24)

성경본문

  1. 항상 기뻐하라
  2. 쉬지 말고 기도하라
  3.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4.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5.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한 남자가 건강을 위해 술과 담배를 끊고 다이어트를 하며 조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친구가 얼마 후에 그에게 몸이 좀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그가 대답했습니다. “목마르고 초조하고 배고프고 힘들지, 뭐” 술 못마시니 목마르고 담배 못피우니 초조하고 다이어트하니 배고프고 아침마다 조깅을 하려니 힘들다는 말이지요. 심리학자 Abraham Maslow가 분석한 인간 욕구의 다섯 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생리적 욕구입니다.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과 성적인 욕구입니다. 가장 기본적 욕구입니다. 두 번째는 안전 욕구입니다. 안정된 생활을 위해 직장을 선택하고 저축을 하는 것이지요. 세 번째는 소속감과 사랑의 욕구입니다. 남들에게 존중받고 사랑받고 신뢰받기 원하는 마음이지요. 네 번째는 자존심의 욕구입니다. 나의 지위나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하고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기 원하는 욕구입니다.

한 청년이 군에 입대했습니다. 얼마 후에 사귀던 아가씨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이제 우리 그만 헤어져요. 내 사진을 돌려주세요” 청년은 너무도 화가 나고 괴로웠으나 군에 갇힌 몸인지라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부대 안에 있는 여자 사진을 모두 모아 그녀에게 보냈습니다. “나는 네가 누구인지 알 수 없어. 네 사진만 빼고 나머지는 다시 돌려 보내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그 자존심을 건강치 못한 방법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미국에 한 꼬마가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그에게 50센트 동전과 10센트 동전을 손바닥 위에 올려 놓고는 고르라고 했습니다. 그는 번번히 모양이 큰 10센트를 골랐고 그것을 본 친구들은 너무 재미있어 했습니다. 보다 못한 한 어른이 그 꼬마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얘야, 50센트 동전이 크기는 작지만 더 큰 돈이란다.” 그러자 그 꼬마가 말했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이 재미있어 하잖아요” 자기도 다 알고 있다는 이야기지요. 그 꼬마는 커서 미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가 자아실현의 욕구입니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입니다. 삶의 목적이 분명하고 더 이상 무엇에 휘둘리지 아니하고 자발적으로 행동합니다. 혼자 머물러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에는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몇몇 사람과 깊은 대인관계를 나눕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 안에서 생활할 때 많은 사람들을 잘 알아야 하고 이를 위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삶의 아픔과 고민을 함께 나눌 사람은 하나 혹 둘 셋이면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만 열린 생각과 열린 마음을 가지고 서로 만나는 사람을 대하면 되는 것입니다. 나도 하나님의 자녀요 저도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이 마지막 자아실현의 모습을 성경적으로 표현한다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삶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명언이 있습니다. “과거가 있는 여자는 용서해도 얼굴이 못생긴 여자는 용서할 수 없다.” 과연 그렇지요? 신앙이야말로 그렇습니다. “과거가 있는 사람은 용서해도 오늘 은혜 받지 못해 인상이 이그러진 사람은 용서하지 못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약속이 있는데 왜 우리의 얼굴에 어둠이 가득합니까?

한 작가 지망생이 심혈을 기울여 장편 소설을 써서는 유명한 작가에게 한번 봐달라고 보냈습니다. 그러나 유명한 작가는 처음 몇 페이지를 살펴 보고는 돌려 보냈습니다. 지망생은 너무 섭섭해서 편지를 보내 서운함을 토로했습니다. 그러자 그 작가는 이런 답장을 보냈습니다. “사과가 맛있는지 아니면 썩었는지는 한 입만 먹어보면 압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신앙이 좋은 사람입니까?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신앙 교리를 많이 알고 있거나 성경 구절을 많이 외우고 있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의 얼굴에 기쁨이 있고 그 말 한마디에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는 사람이 그가 바로 참된 신앙인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기쁨을 잃어버린 사회입니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재미있고 요란한 듯하나 속으로는 깊은 상처로 멍들어 있습니다. 진정한 기쁨을 잃어버렸습니다.

미국에 많은 사회단체 가운데 COK(Compassion Over Killing)이 있습니다. 번역하면 “도살에도 자비를”이란 뜻입니다. 즉 돼지나 닭 같은 식용동물들을 도살하는 방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단체의 대표는 재미교포인 올해 33세의 아가씨 박미현입니다. 직원은 그를 포함해 모두 3명인 초미니단체지만 일년에 30만달러의 기부금을 받는 단체입니다. 그들이 지난 2002년 워싱턴 근처에 있는 양계농장을 기습 취재해서 그 참혹한 실상을 고발했습니다. 축구장 두개 크기의 사육장에 닭 80만 마리가 사육되는데, 사육 환경이 너무 열악합니다. 좁은 우리에 가두어 놓은 닭들이 서로 상처를 입히지 못하도록 닭의 부리를 모두 제거합니다. 성장호르몬을 사용해서 닭을 최단기간에 몸집을 키우게 합니다. 2.3kg의 닭을 사육하는데 1950년대에는 84일이 걸렸지만 지금은 45일만에 자라게 합니다. 이 성장속도를 인간에게 적용한다면 마치 두 살짜리를 158kg로 만드는 꼴이라고 합니다. 또 심장에 있는 피를 모두 제거하기 위해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도살한다고 합니다. 그 동물들의 고통을 철저히 외면합니다. 모두 돈을 벌기 위해서지요. 그러면 이런 닭을 일년에 80억 마리나 먹어대는 미국인들은 어떠합니까? 인구의 30%가 비만이요, 성인의 2/3가 과체중이며, 심장병, 뇌졸증 등의 질병으로 고통당하며 살아갑니다. 동물에게 가한 고통이 인간에게 갑절로 되돌아 오고 있습니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아시아 국가 가운데 한국 사람이 자기 체중을 줄이겠다는 응답이 가장 높다고 합니다. 91%가 체중을 줄일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성인의 30%가 비만입니다. 빠르게 미국의 양상을 뒤좇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찌 식용동물이나 체중의 이야기로 그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한국의 청소년의 교육 환경이 이와 영락없이 똑같지 않습니까? 나아가 우리 모두의 직장에서의 삶이 바로 이와 같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삶의 기쁨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이 문제에 대해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고 계실까요?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은 이렇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라.” 이것은 십계명 중 하나이지요? 십계명은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 두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안식일 계명에 대한 설명이 서로 다릅니다. 출애굽기 십계명에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이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제 칠일에 안식하셨으니 너희도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신명기 십계명에서는 “너희가 애굽의 종이 되었을 때에 내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희를 건져내어 자유케 하였으니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두 가지 목적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는 창조주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기 위해서이고, 또 하나는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가지고 쉼을 얻기 위함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주일 오전에는 예배드리고 오후에는 시민들과 함께 놀이를 즐겼다고 합니다. 청교도들이 실패한 것은 놀이를 죄악시하고 기도만 강조했기 때문이요, 반면 현대인들은 삶에 쉼을 얻기 위해 놀이와 운동만 찾을 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기도의 비밀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주일 아침에는 경건하게 하나님께 예배하고 오후에는 온 가족과 함께 놀고 운동하며 즐기면서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생활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가장 달콤했던 시간은 주일 오후에 낮잠을 자던 때였습니다. 오전 예배를 다녀온 후 오후에 가족 모두가 각자 잠에 빠져듭니다. 그리고는 오후 늦게 일어나 쌓였던 피곤을 풀고 저녁식사를 하고 예배를 다녀오곤 했습니다.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낮에는 성전에서 재미있게 말씀을 가르치시고 밤에는 감람산으로 물러가셔서 쉬시고 때로는 결혼잔치에 가셔서 함께 기뻐하시고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돕기도 하셨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좋은 결과를 가지고 돌아온 제자들의 모습을 보시며 성령으로 기뻐하셨습니다. 기쁨을 외면하고 잃어버린 신앙은 병든 신앙입니다.

한국 군산에 열일곱 살 난 선호라는 학생이 살고 있습니다. 그의 부모는 이미 이혼한지 10년이 넘었고 그는 아버지와 함께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막노동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올라간 후 홀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한 때 방황도 했고 학교도 그만 두었습니다만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YWCA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다니면서 스포츠 댄스의 최고가 되고자 매일 춤추고 있습니다. 또 아르바이트를 구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고시원 지하 작은 방을 하나 얻어 지냅니다. 그곳에서는 밥을 지어 먹을 수가 없기 때문에 밥을 굶기 일쑤이고 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뜨거운 물을 부어 컵라면을 먹는 것뿐 입니다. 늦은 밤에 지친 몸과 허기진 배를 컵라면으로 때우는 그에게 취재기자가 묻습니다. 서글프지 않느냐고?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전에는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래 봐야 내 마음만 아프고 하나도 좋을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이나마 비를 피할 수 있고 희망을 가지고 춤도 추면서 컵라면으로라도 허기를 달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살아요.” 여러분, 하물며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이 있는 우리가 어찌 기쁨을 잃어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교회에서 가장 많이 듣고 쓰는 단어가 있다면 ‘은혜’일 것입니다. 또 받은 바 ‘은사’대로 일하라고 말합니다. 헬라어로 은혜는 ‘카리스’ 은사는 ‘카리스마타’입니다. 어원이 같습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기쁨입니다. 기쁨은 ‘카라’입니다. 은혜, 은사와 어원이 같습니다. 은혜 받은 자는 기뻐하게 되어 있습니다. 받은 바 은사대로 섬길 때 기쁨이 있습니다. 오늘의 어려움 속에 감춰진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깨닫고 감사할 때 은혜가 있고 기쁨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욕심을 좇는 세상 속에서 휘둘려 살면서 기쁨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기쁨을 회복할 수 있도록 주일을 주신 것 감사합니다. 예배하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가족과 이웃과 함께 운동하고 교제하여 쉼을 얻고 새 힘을 얻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오늘도 풍성한 은혜 가운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