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구원을 이루라[The Rockefellers,공병호의10년후한국]/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1. 15:30

040829 구원을 이루라 (2:12-18)

성경본문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2.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1.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2.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3.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미국의 유명한 재벌 록펠러에게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그가 어느 한 호텔에 들어가 방을 계약할 때 그가 록펠러임을 발견한 지배인이 말했습니다. “아니 더 좋은 방을 하시지요? 지난 번에 아드님은 제일 좋은 방을 쓰셨는데요” 그러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그에게는 부자 아버지가 있지만 나는 그런 아버지가 없지 않소” 이번에 두 주간 미국의 여러 교회를 둘러 보면서 느낀 것 가운데 하나는 록펠러가 세운 큰 교회가 많더라는 것입니다. 그가 엄청난 부자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는가 하는 궁금증이 일어 인천 공항에 내리기가 무섭게 공항 서점에 들러 책을 찾았습니다. 최근에 나온 <록펠러가 이야기>(The Rockefellers)라는 책입니다. 여러분도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 여행 선물로 드립니다. 교회 도서실에 내놓겠습니다. 선물 준비 때문에 제대로 여행도 못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우리 교회에서는 베스트셀러 한 두권만 사오시면 그것을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로 기쁘게 받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번 여행 중에 깊이 읽은 책이 또 하나 있습니다. <10년 후 한국>이라는 책입니다. 이미 한국에서 4,50대 남성들에게 큰 반응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기에 공항에서 미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사서 읽었습니다. 공병호라는 보수주의자의 책입니다. 흔히 한국의 보수주의는 제대로 된 이론 바탕이 없이 그저 단순한 생각이나 감상에 치우친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무식하다는 말을 듣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나름의 논리가 있고 매우 공감할 만합니다. 그는 앞으로의 10년간 한국 사회를 표현하는 단어는 ‘낮은 성장률’과 ‘높은 실업률’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빠르고 너무나 두려운 ‘세계화’라는 소용돌이에 직면해 있습니다. 우리 앞에 ‘빠른 세상’과 ‘느린 세상’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과연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세계화의 물결을 탈 것인가? 아니면 이것을 외면하고 느린 세상 속에 숨어 버릴 것인가? 저자는 한국의 서투른 세계화 대응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미 10년 전부터 대두된 쌀 개방문제를 예로 듭니다. 지난 10년간 62조를 쏟아 부으며 농촌구조개선사업을 해왔지만 93년에 농가당 부채가 683만원이었는데, 2003년에는 2,700만원으로 약 4배로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정작 본격적인 쌀 개방은 2005년부터인데 말입니다. 정치권이 우물우물 농민표를 의식하여 냉정하고 본격적인 개혁을 미루어 온 결과 일은 더욱 꼬여 해결난망이 되었습니다. 그는 한국경제가 추락하는 원인을 이렇게 일곱 가지로 분석합니다. 첫째, 위협받는 자유시장경제 둘째, 공동생산과 공동분배에 대한 환상 셋째, 조급한 이상주의 넷째, 실리보다 명분 중시 다섯째, 빈약한 개인주의 여섯째, 자기 철학의 부재 일곱째, 마르크스주의의 영향. 한 마디로 압축하면 자유주의, 자유시장경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돈을 많이 벌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고 개인의 최대한의 자유와 활동을 보장하는 자유주의여야만 부를 창출하고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개인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실천이 요구되는데, 삶의 중심 즉 사고와 행동의 기준을 개인 자신에게 두는 자세, 즉 자기가 결정하고 자기가 책임지는 것이 개인주의요, 각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수용할 때 창의력이 배양되며 이 창의력이야말로 21세기를 풀어갈 열쇠라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의 결정적인 문제는 정치 논리가 경제 논리를 우선하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평등을 꿈꾸던 공산주의 실험이 완전한 허구로 판명되었건만 아직도 정치적 규제를 통해 평등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이상주의와 집단주의의 허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판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오늘 말씀에 “구원을 이루라”고 했습니다. 현대적 의미로 풀어 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오늘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위기를, 삶의 위기를 하나님의 은혜로 바르게 판단하고 바르게 대처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승리하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에도 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필요합니다. 많은 경우 그 신앙이 이상주의나 집단주의에 빠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구원파라고 불리는 신앙집단이 있습니다. 왜 ‘구원파’라고 불릴까요? 그들은 종종 사람들에게 “당신은 언제 구원받았습니까? 몇 년 몇 월 몇 일에 구원받았습니까?”라고 묻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람이 한번 구원받으면 그 구원은 완전한 구원이기 때문에 더 이상 죄를 지을 수도 없고 죄를 회개할 필요도 없고 기도할 필요도 없다”고까지 주장합니다. 즉 구원받아도 여전히 연약하고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부정하는 이상주의에 빠진 것이지요. 또 반대로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신앙 집단도 있습니다. 그 신도들은 전도에 열심이지 않습니까? 그 열심은 우리가 배워야겠습니다. 그러나 전도하는 그들에게 구원받았느냐고 물어 본다면 그들은 아직은 알 수 없고 나중에 죽을 때쯤 되어 열심히 일한 대가로 구원받았는지의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금은 알 수 없는 구원, 즉 불안한 구원이지요. 다만 열심히 노력해서 소위 선택 받는다는 144,000명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집단주의입니다. 이 울타리 안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면 구원받으리라는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어떤 것입니까? 오늘 말씀에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했습니다. 아직 진행중인 구원입니다. 신학적으로 말한다면 'Already' and 'Not Yet'입니다. ‘이미’ 그러나 ‘아직 아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임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아직’ 어린 아기같이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하는 것 모두가 미숙합니다. 욕심에 매여 있습니다. 불완전합니다. 거듭 죄를 짓기도 합니다. 안타깝습니다만 현실입니다. 예수를 믿고 그를 따라가면서 조금씩 변화를 체험합니다. 성숙해집니다. 여기에 긴장이 있고 불안이 있습니다. 때로 현실에 낙심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위로와 희망을 얻고 용기를 내어 살아갑니다. 이것이 신앙의 현실입니다.

제가 종종 보는 TV 프로 중에 “해결, 돈이 보인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쪽박집’과 ‘대박집’이 나옵니다. 그런데 ‘쪽박집’의 사연은 왜 그리도 안타깝고 답답합니까? 병이 나서 치료해 보다가 끝내 직장을 잃고 건강도 더 나빠지고 그 어려운 중에도 살아보겠다고 마련한 식당마저 제대로 운영이 안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눈물과 탄식 밖에 남은 것이 없지요. 그러나 문제 해결 방법이 있습니다. ‘대박집’ 사장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를 만나 다시 시작합니다. 거듭된 실패로 인한 염려도 없지 않습니다만 대박 사장을 믿고 따르면서 새로운 희망을 가집니다. 왜 그는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저가 나의 모델입니다. 열심히 배웁니다. 잔소리도 달게 듣습니다. 드디어 감격의 순간이 다가 옵니다. 새롭게 가게를 꾸미고 시작한 첫날 하루의 수입을 확인하는 순간 그들 모두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드디어 가난과 실패의 질곡으로부터 해방되었음을 온몸으로 외칩니다. 그 장면을 보는 우리들에게도 참으로 감동의 시간입니다. ‘쪽박집’ 사람들이 좀 잘나고 못나고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누구라도 ‘대박집’ 사장에게 배우면 먹고 사는 단계를 훌쩍 벗어나 성공의 기쁨과 감격을 누리게 됩니다. 이제 실패의식의 굴레를 벗어 버리게 되면 비로소 삶을 제대로 바라보는 눈을 열게 되고 자기 나름의 인생을 펼쳐 나갈 용기를 얻게 됩니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합니다. 내 삶의 모델이 누구냐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에 사도 바울이 나옵니다. 그는 지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형편입니다. 또 밖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바울과 경쟁 관계에 있던 다른 교회 사람들이 바울의 형편을 내심 즐기면서 이 틈에 자기들이 더 많이 전도하고 선교해서 바울을 앞서자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바울이 세운 빌립보 교회는 서로 갈등하고 다투면서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갈수록 태산이요 첩첩산중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바울은 오늘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에 주신 소원이 있다고. 나는 오늘도 그 소원을 따라 살아가노라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에 나는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살기를 원하노라고. 오늘의 이 고난 속에서도 기뻐하노라고 말합니다. 내가 살든지 죽든지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살아계신다고. 이런 믿음과 확신이 있기에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여유를 갖고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 지난 날과 앞날을 생각하며 오늘 할 일을 계속해 나갑니다. 이 사도 바울이 바로 우리 신앙의 모델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여러 가지 형식과 훈련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겨 있는 신앙고백은 더욱 중요합니다. 어려운 현실 때문에 불안이 있고 긴장이 있습니다. 때로는 이런 현실 속에 낙담하고 좌절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모델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자기 신앙의 비밀은 그리스도라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말씀에 순종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자기 삶의 지혜와 능력이 되신다고.

몇 년 전에 유명한 광고가 있었습니다. 요즘 ‘파리의 연인들’이라는 드라마로 인기를 모은 김정은이 나와서 손을 입에 모으고 외칩니다. “여러분~ 여러분~ 부자되세요, BC로 사세요” 그런데 신용카드 남발과 무분별한 사용으로 인해 500만 신용불량자를 쏟아내게 되자 이런 패러디가 생겼습니다. “빚으로 사세요, 빚지고 사세요” 그러나 우리는 이제 이 말을 다시 고쳐 써야 하겠습니다. BC로 사세요”란 Beautiful Christian으로 사세요”란 말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