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새로운 도약[CEO의 중요역할=인재를찾아그에게맞는일을맡김]/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1. 16:13

041017 새로운 도약 ( 6:1-7)

성경본문

  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1.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2.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여러분, 브릭스(BRICs)란 말을 아십니까? Brazil, Russia, India, China를 묶어서 만든 용어입니다. 이 네 나라가 앞으로 세계 경제를 주도한다는 말입니다.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먼 삭스가 처음으로 이 용어를 사용했는데, 그들의 분석과 전망에 의하면 2050년 경에는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경제 1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며, 인도는 일본을 제치고 3위를 차지할 것이고, 브라질이 5, 러시아가 6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을 주목해 볼 만합니다. 그는 지난 2002년말 3수끝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놀랍게도 빈민가 태생에다가 학력은 국졸이며 한 손가락이 잘려 나간 금속 노동자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노동당을 만들어 정치에 뛰어 들었고 결국 대통령이 된 것이지요. 문제는 그가 대통령이 되면 좌파 정권의 출현을 우려한 외국 자본이 모두 빠져 나가게 될 것이고 나라는 완전히 붕괴의 위기에 내몰리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우향우 정책을 내놓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환율은 안정되고 외국 투자자들이 되돌아오고 수출은 증가하고 침체했던 경제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제까지 그를 지지했던 빈민들을 중심으로 그에 대한 비판이 거세어졌지만 브라질 국민 대다수는 그를 지지합니다. 이 방법만이 브라질을 되살릴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룰라 대통령의 균형 감각이 놀랍습니다. 이상과 현실을 나름대로 조화시키면서 나라를 이끌어 가는 지혜가 엿보입니다. 지도자는 반드시 균형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지도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갈고 닦아야 할 부분이 바로 균형 감각입니다.

신앙도 역시 균형 감각을 필요로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루살렘교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과 헬라파 유대인 사이에 갈등이 터져 나왔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이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유대땅에서 계속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성경과 유대 종교를 중심으로 한 전통을 지켜 내려온 보수적인 사람들입니다. 반면 헬라파 유대인들은 일찍이 유대땅을 떠나 다른 나라에 흘러 들어가 살아 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히브리말 보다는 헬라말을 쓰게 되었고 유대와는 다른 문화를 접하며 살아왔습니다. 새로운 것을 먼저 보았기에 보다 개혁적이고 진보적입니다. 오늘 가난한 과부들을 돕는 문제로 서로 갈등하게 되었지만 사실은 서로 다른 문화와 사고 방식이 문제의 근본 원인이지요.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우리 모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주로 믿는다는 그 한가지 사실 외에 일치하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과거의 삶도 다르고 성공과 실패, 기뻤던 일과 슬펐던 일도 다릅니다. 많은 것이 서로 다른 우리를 하나님께서 한 교회의 가족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지혜가 요구됩니다. 어떻게 한 가족으로 살아갈 것인가? 우리 모두의 과제입니다. 부부 역시 그렇습니다. 같이 살고는 있습니다만 알고 보면 부부만큼 서로 다른 사람들이 없습니다. 나와는 가장 다른 사람을 나의 짝으로 정해 주셨습니다. 이제 둘이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 여기에 지혜가 요구됩니다. 여기 많은 분들이 중년입니다. 모처럼 여행에 함께 갈 사람을 선택할 기회가 주어졌다면 여러분은 누구를 택하시겠습니까? 통계에 의하면 남편들은 아내를 택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내들은 누구를 선택할까요? 친구를 원한다고 합니다. 남편이 아니에요. 남편은 말도 없고 말할 줄도 모르고 말도 안 통하니까요. 남편분들 정신차려야 합니다. 남자들이야 제 아내를 택하는 이유가 뻔하지 않습니까? 맘대로 시켜먹고 부려먹고. 세상에 어느 여자를 그렇게 제 종 부리듯 한단 말입니까? 그러나 이제는 이미 아내들의 반란이 시작되었습니다. 반란이 아니라 개혁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요?

예루살렘교회는 문제가 드러났을 때 숨기려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함께 모여 기도하며 그 해결책을 깊이 논의합니다. 부부싸움을 하고 말도 안하고 지내고 계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릅니다만, 함께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함께 대화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함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남편과 아내 각자에게 조용히 말씀하시고 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대화할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야 합니다. 남자들은 아내의 이야기를 몇마디 듣기가 무섭게 말을 끊고 물어봅니다. “그래서 도대체 결론이 뭐야?” 그러나 아내는 결론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이야기할 뿐입니다. 그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또 서로 말이 어긋나거나 자그마한 부딪침이 있을 때 먼저 잘못을 인정하십시오. 그게 지혜입니다. 이제 그 정도 살았으면 남자의 역할, 여자의 역할을 따로 구분하여 상대방에게 요구하지 마세요. 이제는 서로 맞춰 사는 것입니다. 아내가 못하면 남편이 하고 남편이 부족하면 아내가 채우면서 사는 것이지요.

예루살렘교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일꾼을 세웠습니다. 문제의 해결책은 사람을 바르게 세우는데 있습니다. 20세기 최고의 경영인으로 평가받는 GE(General Electric)의 전회장 Jack Welch는 자서전에서 말하기를 자기의 스승은 Peter Drucker였다고 회고합니다. Peter Drucker가 누굽니까? 20세기 최고의 미래학자아닙니까? 제대로 배우려면 일류에게 배워야 합니다. 제대로 배워야 하고 집중해서 배워야 합니다. 그는 Peter Drucker의 말 한마디를 가슴 깊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Your back room is somebody else's front room."

“당신의 뒷방이 다른 사람의 거실이다” 당신의 약점을 채워줄 사람을 찾아라. 그를 찾아내 그와 협력하라. 회사에서 구내 식당을 직접 운영하려 하지 마라. 전문적인 업체에 맡겨라. 그리고 네가 집중할 수 있는 일에 온 힘을 쏟아라. 회장으로서 그가 할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인재를 찾아 그에게 맞는 일을 맡겨 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이것이 리더의 균형 감각입니다.

사도들은 모두 히브리파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구제를 비롯한 교회 운영을 맡을 일꾼들을 헬라파 유대인 가운데서 찾아 세웠습니다. 그들의 다양한 경험과 지혜를 높이 산 것입니다. 교회가 균형 감각을 유지하자 말씀은 점점 왕성해졌고 교회 부흥이 일어났으며 그 부흥은 교회 울타리를 넘어 가정과 직장과 사회를 변화시키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지난 번에 남선교회 주최로 부부 골프대회를 했습니다. 모두들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서 서로들 많이 가까워져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듣다 보니 서로 상대방을 집사님이라고 부르시더라고요. 물론 아직 서로를 잘 모르시니까 그렇기도 하겠습니다만 세례도 아직 안받으신 분도 계신데 다소 민망하고 불편하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불러야 하는가? 나름의 고민거리가 되었습니다. 정 그렇게 집사님이라고 불러야겠다면 ‘곧’자를 붙여서 부르십시오. ‘곧집사님’ 즉 곧 집사님이 되실 분이라는 뜻이지요. 또 그 분은 어서 집사님이 되시도록 힘쓰셔야 되겠고요. 사실 교회안에서만 크리스챤이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신앙은 가정과 직장과 사업체에서도 드러나야 합니다. 바로 그 사람이 일꾼입니다. 어디에서나 제 몫을 해내는 사람이 일꾼입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세운 일꾼들은 성령과 믿음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즉 성령의 인도를 따르기에 믿음도 날마다 새로워지고 모든 문제를 올바로 이해하고 풀어나갈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말이지요. 여러분, 어떤 사람이 믿음 있는 사람입니까? 남을 배려하는 믿음이 성숙한 믿음입니다. ‘아멘’하는 것이 상대방에게 도움이 된다면 ‘아멘’하십시오. 그러나 조용히 기도하는 것이 저에게 유익이 된다면 조용히 하십시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의 방식대로,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의 방식대로” 오늘 저 사람의 생명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지혜가 필요합니다. 결국 어떤 사람이 일꾼인가? 그 객관적인 기준은 ‘칭찬 듣는 자’입니다. 일꾼으로 선택된 자들이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한결같아야 하고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사, 장로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회장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피터의 법칙’을 아십니까?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자신의 무지와 무능이 송두리째 드러나는 자리에 이르기까지 욕심스럽게 오르려는 경향을 말합니다. 어렵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 순간의 기쁨도 잠깐 능력이 없는 사람이 교수의 역할을 하려 한다면 정작 그 사람의 불행은 그 때부터 시작되는 것이지요. 자기 능력에 맞는 자리에서 기쁨으로 최선을 다할 때에 그 인생이 행복한 것이지요. 스데반 집사는 순교자가 됩니다. 그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많은 설교 중에 가장 길면서도 가장 분명한 신앙고백을 남깁니다. 구약시대에는 율법과 성전 중심의 신앙이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에는 은혜와 성령의 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분명한 복음을 선포하고 그 복음을 위하여 목숨도 내놓게 됩니다. 짧지만 아름다운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같이 집사로 안수 받은 니골라라는 인물은 기독교 역사에서 이단자로 기억됩니다. 그는 이방인으로서 예수를 믿고 일꾼으로 선택되었지만 그가 예수 믿기 전에 가졌던 옛 생각과 문화를 깨끗이 씻어 버리지 못하고 어긋난 길을 가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는다고 옛 생각, 옛 습관을 한 순간에 버리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목사님과 장로님이 시골 양조장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코끝에 술냄새가 사악 걸려듭니다. 그러자 장로님이 숨을 크게 들이쉬면서 저도 모르게 한마디 합니다. “아 좋~다” 여러분, 옛 습관이 이토록 질긴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술을 끊었습니다만 어느 한 순간에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오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신앙생활이란 교회 생활에 익숙해져서 이 일 저 일을 많이 맡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안에서 진정한 내 모습을 발견하고 날마다 새롭게 살기 위해 힘쓰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돈을 가진 사람이 회사를 운영했습니다. ‘소유 경영’이지요. 그러나 지금은 전문 경영인이 회사를 경영합니다. 제대로 된 기업이라면 다 그렇습니다. ‘전문 경영’시대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치면 안됩니다. 진정한 경영의 목표는 ‘인격 경영’입니다. 스데반이 참으로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그가 사울이라는 청년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큰 일꾼이 되게 했던 것은 그가 마지막 순간에 보여준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돌에 맞아 쓰러지면서도 원망도 불평도 아니하는 스데반의 평안한 모습, ‘천사의 얼굴’이 사울을 변화시킨 것이었습니다. 스데반은 ‘인격 경영’을 이룬 성숙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모습을 보여준 진정한 일꾼이었습니다. 이런 일꾼을 세울 때 교회는 새로운 도약을 맞게 되고 부흥을 준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한국에서 만난 친구 목사가 제게 이런 이야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이 알고 있는 한 목사의 근황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가 일산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어려움을 참고 견디던 끝에 10년만에 전혀 생각지 못했던 길이 열려 교회를 새롭게 건축하게 되었다면서, 그가 한 말을 전해주는 것이었습니다. “한 자리에서 10년을 눈물로 지켰더니 이제야 하나님이 ‘이제 그만 됐다 내가 네 마음을 알겠다’ 하시면서 길을 열어 주셨다.” 개척교회의 어려움을 결코 모르지 않기에 그 말에 크게 공감하였습니다. 그러나 헤어져 돌아오면서 그 일을 달리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 자리에서 어려움을 견디며 10년을 버티는 것,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러나 무조건 10년을 버틴다고만 되는 것도 아니지요.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것을 잘 살피는 지혜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올바른 목적과 올바른 방법과 올바른 노력이 함께 모아질 때 부흥과 변화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