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여호와의 유월절[죄사함의 은혜를 발견한후 처음웃고찍은사진]/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2. 14:50

060129 여호와의 유월절 (12:1-14)

성경본문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너희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 양을 취할찌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인수를 따라서 하나를 취하며 각 사람의 식량을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이 달 십 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 두지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찌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화와로라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찌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찌니라

 

  지난 해에 한국에서 크게 히트한 영화 한 편이 있습니다. <너는 내 운명> 입니다. 농촌 총각 석중이라는 친구가 다방 아가씨를 사랑한다는 이야기지요. 아주 우직하고 순진하게. 처음에 영화를 보면서 요즘 한국 영화의 수준이 얼마나 스토리가 아기자기하고 짜임새가 있고 화면이 영상미가 넘치데, 그 영화는 그런 어떤 기교보다도 단 하나, 한 사람의 우직한 사랑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겁니다. 그런데 실화에 바탕을 한 영화라는 거에요. 티켓 다방 아가씨와의 사랑,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비웃고 특히, 가족들이 펄쩍 뛰고 난리를 칩니다. 그러나 끝까지 사랑하는 거지요. 그들은 서로 사랑했습니다만 그들의 과거로 인해 부득이 헤어지게 되었고, 이 아가씨는 나중에 에이즈 환자로 판명이 나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에이즈가 감염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실형을 선고 받고 1년간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거에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녀가 1년간 감옥살이를 하고 나왔을 때, 그 남자가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녀를 맞아주는 해피엔딩으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요즘같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현대인들의 그 마음에 순수함을 되찾아준 까닭에 작년에 이 영화는 대박을 이루었고, 남녀주인공들은 큰 상을 받았고, 또 남자 주인공은 처음으로 CF광고에도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은 실화에 기초했다는 거지요. ‘실제로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요즘 얼마나 호기심들이 많아요? 추적을 했더니 감옥에서 나왔지만 가족들이 반대해서 그들은 따로 살아야 했고, 또 이 여인이 전 남편에게서 얻었던 아이는 고아원에 보내야 했다 라고 하는 거지요. 영화와 그 실화의 현실은 또 거리감이 있는 거지요. 사실 삶의 자유를 억압하는 장애물은 참으로 많습니다. 정치적 안정도 그러하고, 경제적 가난도 그러하고, 사회적 편견도 그러하고, 심지어는 종교적인 억압도 우리의 자유를 얽매고 부러뜨릴 수 있는 거지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하나님의 유월절 사건을 설명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한지 아주 오래되었어요. 그들이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부르짖다가 이제는 그 부르짖음마저도 시들하게 되었어요. 이제는 절망에 빠졌어요. 포기했어요. 체념합니다. 이제는  희망조차 사치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가마솥 옆에서 떡 하나라도 더 얻어먹을 수 있을까? 고기 한 점이라도 더 먹을 수 있을까 ?’ 이렇게 살아가는 인생들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누르는 사람들은 또한 어떠합니까? 그들은 상대적으로 가진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만 하나님은 애굽사회의 가진 자이건 그들에게 눌려서 못 가진 자이건 그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십니다. 왜 그러냐? 가진 자로 살든 못 가진 자로 살든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의 그 뜻으로부터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어그러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가진 자로 보이고 하나는 빼앗긴 자로 보이지만 그 내면은 자유를 잃어버린 사람이에요. 자기 나름의 욕망에 매여서 살아가는 사람이에요.

  욕망에 이끌리는 삶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자기 욕심에 매여 살아가는 삶은 하나님이 판단하실 때, 하나님의 영을 잃어버린 한낱 고깃덩어리이다. 언젠가는 썩어버릴 고깃덩어리이다.’ 성경적 표현으로 육체가 되었다이렇게 표현해요. 쓰레기가 되었다는 거지요. 살아있는 것 같으나 죽어있는 거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들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구원을 또 한 번 계획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구원사건이 바로 유월절’ (the LORD’s Passover)이라는 거에요. 바로 오늘 그 자세한 절차를 이야기하고 있는 거에요. 마치 우리가 오늘 새해요, 설날이니까 믿지 않는 많은 분들은 고향에 내려가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까? 그러면 상을 차릴 때, 그 여러 제물들을 배치하는 절차와 법도가 있지 않습니까?

  오늘 성경에도 유월절을 지키는 그 법을 하나님이 설명하십니다. ‘일 년 된 깨끗한 양을 준비해 두었다가 정월 14일 밤에 그 양을 잡으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다 불에 구워서 먹고 그 피를 너희가 거하고 있는 그 집의 문 좌우와 인방에 피를 바르라.’ 하나님의 구원이에요. ‘양의 피를 바르라.’ 이 의미는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은 돈으로도 안 되고, 지위나 명예로도 안 되고, 오직 생명은 생명으로만 갚을 수 있는 것이기에, 순수하고 깨끗한 양을 잡아서 양의 생명으로 너희의 죽음을 대신하고 양의 죽음으로 너희에게 구원과 생명을 베풀겠다. 그래서 하나님의 천사가 애굽 온 땅을 심판하러 오실 때에 피 바른 집은 천사가 들어가서 그들을 죽이지 아니하고 그들을 넘어가겠다. 유월’(Passover)이라는 말은 넘는다는 뜻이에요. 재앙과 저주가 아니라 그것을 넘어간다. 그래서 그들에게 생명을 주겠다.

  여러분, 사실 성경의 유월절은 우리가 구정, 설날로 기억하는 이 날과 아주 뜻이 일맥상통합니다. 새해의 의미가 뭡니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하고 우리가 덕담을 많이 나눕니다만 진정한 그 의미가 뭡니까? ‘Gong Xi Fa Cai’  (恭喜發財) 중국 사람들 이렇게 많이 말하지 않습니까? ‘새해 즐거운 일이 많고 돈 많이 버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은 가진 자로 살든 못 가진 자로 살든 그것보다 더 귀한 복을 주시려고 하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유월절 사건이 왜 중요하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어떻게 증거합니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유월절 어린 양이로다.’ 어린 양이 죽어서 그 피를 바름으로 그 피로 그 가정이 구원을 얻었듯이, 이제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저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구원을 주신다. 그 구원의 본질적 의미는 뭡니까? 죽어서 천국에 간다. 그건 하나님이 약속한 사실이니까 그렇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 사는 동안 구원의 참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자유이지요.

  그 유명한 에리히 프롬의 <Escape from Freedom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을 쓰게 된 이유는 왜 독일 민족이 히틀러라고 하는 독재자를 성원하고 지지해서 급기야는 2차대전의 주범이 되어서 온 인류에게 이런 재앙을 가져오게 되었는가? 왜 그들이 그러했던가?’ 하는 물음으로부터 시작해서 쓴 책입니다. 르네상스 이후에 인간이 자기에게 눈뜬 이후로 개인을 발견하고 정치적 억압과 가난과 사회적 편견과 종교적 굴레로부터 자유를 얻기 시작합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게 됩니다. 드디어는 인간의 성취에 만족해서 계몽주의가 나오게 됩니다. 인간의 이성을 가지고 이 땅 위에 행복한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고 하는 자신감 넘치는 그들의 철학이론이지요. 그런데 종래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영국이나 프랑스같이 자본주의가 앞선 사회와 독일이나 이탈리아같이 자본주의 후발국가들 사이에 식민지경쟁이 일어나고 그것이 격화되어서 12차대전이 일어났고, 어마어마한 생명을 죽이는 그러한 일들이 일어났고, 특별히 독일에서는 기독교인들마저도 히틀러에게 하일, 히틀러!” “히틀러는 우리의 구세주라는 뜻이에요. 어떻게 그렇게 매몰되게 되었을까? 에리히 프롬은 말합니다. 인간에게 정치∙경제∙종교적 자유가 주어지고 이제 억압으로부터 벗어난 듯 보였지만, 자유라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선택이 있고 책임이 따르는 거에요.

  어느 분이 그래요. “우리 사장님은 별로 열심히 일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월급은 많이 받아 가십니다.” 여러분, 모르시는 말씀이에요. CEO(chief executive officer)가 높은 월급을 받는 이유가 있는 거에요. 최종적 결정과 그 책임은 그가 전적으로 지는 거에요. 제가 예전에 큰 교회 부목사로 있었을 때는 살이 이만큼 올랐어요. 지금보다 10킬로가 더 나갔어요. 그 땐 멋있었어요. 열심히 돌아다니고 심방하고 일은 많았습니다만 너무나 마음이 즐거웠어요. 그런데 이렇게 담임목사를 하다 보니 자꾸 살이 어디로 도망가는 거에요. 왜 일까? 담임이 된다는 것은 최종적 책임을 지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이 너무나 정확하게 말씀하셨어요.  귀신들린 사람의 이야기를 하셨어요. 어떤 사람에게 귀신이 들어와서 그를 너무 고통스럽게 했어요. 그러다가 이 귀신이 다른 장소를 찾으러 나갔어요. 귀신에게 풀려난 이 사람이 너무나 기뻐서 깨끗하게 마음을 청소하고 준비하고 있었더니 이 귀신이 돌다 돌다 더 이상 머물 곳이 없어서 그래도 옛 집이 낫겠구나.’ 하고 돌아와 보니, 그 사람이 깨끗하게 되어 있는 거에요. 그래서 귀신이 이 놈이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하는구나. 요놈 맛 좀 봐라.’ 하고 다시 가서 자기보다 더 악한 일곱 귀신을 몰고 그 사람에게 들어가니 그 사람이 더 악하게 되었다. 여러분, 여기서 자유는 정치∙경제∙사회∙종교로부터의 자유지만 여기에 핵심이 빠졌어요. 청소해 놓고 마음을 비워놓고 도만 닦으면 되는 게 아니에요. 거기에 하나님의 은총이 있어야 돼요. 그걸 비워놓고 있어선 더 악하게 되는 거에요.

어떤 분이 제가 찍힌 사진을 한 3년 만에 주시면서 그런데 사진을 보니 목사님은 항상 웃고 계시네요?” 그런데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어요. 제가 군대에 갈 때 아무 것도 못 가지고 가고 포켓 성경 하나를 제 아버님이 출발하는 날 아침에 군 생활 잘 하라고 주셨는데, 그게 너무 작아서 시원하게 볼 수가 없었어요. 제가 기본 훈련을 마치고 대구의 군의 학교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기도했어요. ‘하나님, 제가 성경을 갖고 싶으니 성경 하나만 좀 주십시오.’ 졸병이 함부로 나돌아 다닐 수가 없으니까요. 그때 대구의 국군 의무사령부 교회에 다녔는데 마침 성경암송대회를 한다는 거에요.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 시편 23편 등등 이렇게 열 군데 장을 정해서 그 범위 안에서 외우는 거에요. 그 다음에 쭉 앞으로 나와서 한 20여명이 섰는데 한 절씩 외우는 거에요. 그러다가 틀리면 빠지는 거에요. 많이 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 틀리고 똑바로 외우는 것이 중요해요. ? 한 바퀴 돌고 오면 20명 중에 한 다섯 명 쯤은 빠지거든요. 마지막 제가 간호장교후보생하고 딱 둘이 남았어요. 그런데 사실 제가 밑천이 딱 떨어졌어요. 그런데 그만 이 여학생이 많이 외운 걸로 알고 있는데 당황해서 틀렸어요. 그래서 제가 우승을 해서 상을 받게 되었는데 그 상이 뭐였나면 성경이었어요. 그래서 , 하나님이 잘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시기도 하지만 필요한 사람에게도 이렇게 상을 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성경을 받았어요. 얼마나 감사했는지.

그날 예배가 다 끝나고 많은 분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글쎄 제 눈에 한 분이 딱 들어오는 거에요. 중년 여자분이었는데 그 분이 누구였느냐 하면 제 어린 시절 주일학교 여름성경학교 때, 서울에서 한 번 오셔서 아이들에게 동화구연을 해주셨던 아주 예쁘시던 선생님이셨어요.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한 눈에 알아보겠더군요. 제가 아무개라는 것을 얘기했어요. 그랬더니 이 분이 너무나 기뻐하고 반가워하시면서 언제 가느냐고 묻는데 사실 그날이 주일이었어요. 이틀 후면 동대구역에서 기차를 타고 전방으로 가야 했어요. 만나자 이별이라고 이 분이 아쉬워하면서 그러면 화요일 저녁에 교회로 나오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친구와 둘이 나갔더니 교회 밖의 장교관사에서 밥을 한 상 해가지고 오셨어요. 이 분이 장교 부인이었어요. 그것을 친구와 퍼먹는데 저는 일생 그렇게 맛있는 밥을 먹어본 적이 없었어요. 밥을 씹을 수가 없었어요. 왜냐면 넣자마자 바로 넘어갔기 때문에. 얼마나 맛있었는지. 세상에 똑같은 밥이었는데 어쩌면 그렇게 맛있었을까?

  그러나 알고 보면 그것은 제 군생활의 예고편이었어요. 무슨 예고편이냐? 내 마음대로 시간을 쓸 수 없는 그런 자유를 다 유보한 군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이 성경을 읽고, 설교 말씀을 읽고, 자기 전에 기도일기를 쓰면서 지냈었는데 하나님이 그 때부터 제대하는 날까지 계속 불붙는 마음과 은혜를 주신 거에요. 제가 굉장히 소극적이고 아주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그러나 그 말씀을 읽고 듣는 어느 날 죄사함의 은혜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그렇구나. 이 죄라는 것은 내가 몸부림 쳐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죄인은 죽어야 하는 것이고 이 죽음의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유월절 어린 양같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시고 그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셨구나.’ 그 사실을 발견한 순간 제가 무릎을 쳤어요. ‘, 그렇구나. 내 안에 있는 그 끝없는 불안과 두려움이 죄였고 죄의식이었는데 하나님이 이렇게 해결해 주셨구나.’

  그리고 나서 제 얼굴이 밝아졌어요. 기분이 좋아서 본부 막사 앞에서 사진을 하나 찍었어요. 저는 그렇게 웃고 찍은 사진이 그 날이 처음이었어요. 왜 그랬느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내 죄를 그리스도의 피로 해결하셨구나.’ 그래서 그 이후로부터 제가 갑자기 카메라가 나타나면 자동적으로 웃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웃음을 돌려주시고 기쁨을 돌려주시고 평강을 돌려주신 것이지요.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그러나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설날의 참 의미가 뭡니까? 더불어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고 서로 소망과 기쁨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러나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시니 약속을 붙들어야겠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이것이 바로 우리 신앙의 비밀입니다. 죄와 저주와 죽음으로부터 자유한 삶!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입니다.

 

 기도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또 우리에게 이렇게 명절을 허락하셔서 하던 일들을 잠시 멈추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더불어 모여서 음식을 나누고, 삶의 애환을 나누고 소망을 나누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사건으로 은총을 주시고 진리이신 그 아들을 우리에게 주시고,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신 그 놀라운 말씀을 감사합니다. 올 한 해에도 이 믿음으로 살게 하시고 이 자유함으로 승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