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떡을 주소서[제3의물결은지식혁명=창의력,임마누엘]/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3. 20:10

060917 떡을 주소서 ( 6:26-35)

성경본문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기록된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가끔 손님이 오시거나 해서 함께 식사를 하고 영수증을 이렇게 들여다보며 그저 한 끼 식사가 집에서 일하는 식모의 한 달 월급을 훌쩍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순간 ‘이렇게 서로의 삶이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현재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연명하는 인구가 10억이라고 해요. 이 화폐경제 속에 생존하는 7가지 방식이 있다고 합니다. 물건을 만들어 팔아라. 두 번째는 직장을 구하라. 부모로부터 상속을 받아라. 아니면 누군가로부터 큰 선물을 받아라. 그렇지 않으면 부자와 결혼하라. 또는 정부의 복지혜택을 받아라. 마지막 일곱 번째는 이것도 저것도 안 되면 훔쳐라. 그렇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죠.

우리나라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이어오면서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몸부림쳤습니다. 사실 인류가 살아온 이날까지 가난은 영원한 친구였습니다. 가난을 벗은 지 얼마 되지 않아요. 가난을 벗어버리고 출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고시’였지요. 또는 회사에 들어가서 일하는 것이었지요. 그러다보니 남자들은 다 '회사인간'이 됐어요. 가정은 기숙사고 회사인간이 된 거예요. 그래서 예전의 결혼 조건은 능력 있는 남자가 예쁜 여자를 데리고 사는 것, 이것이 결혼의 모습이었어요. 그렇지 못하면 여자들도 광주리장사라도 해서 입에 풀칠하며 살아야 했던 것이죠. 능력 있는 남자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 돈을 벌고, 예쁜 여자를 얻어다가 집에 딱 앉혀놓고 그러고 살았지요. 혹 가난은 벗었을는지 몰라도 ‘왜 사는가?’ 하는 물음은 또 다른 과제였습니다.

요즘은 분위기가 또 바뀌었어요. 세상이 더 살기가 어려워졌거든요. 이제는 남자 혼자 벌어서는 살기 어려운 세상이 됐어요. 그래서 연상녀들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의 낭만이 아니에요. 아주 실제적인 필요에 의한 해결방식이라고 할 수 있죠. 연상녀와 결혼한 남자들에게 묻습니다. ‘왜 그렇게 결혼을 했느냐?’ 그랬더니 이렇게 살기 어려운데 연상녀들은 그래도 ‘품어준다’ 이거죠. 마음 편하고, 심지어는 남자들이 기대기까지 한대요. 든든하다는 거죠. 그럼 연상녀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래, 어떠냐?’ ‘아, 젊은 남자와 사니까 나도 더 젊어질 뿐 아니라 대등하게 평등하게 살 수 있어서 좋다.’라고 하는 것이죠. 이것이 다 시대의 급속한 변화에 발맞춰 나타나는 하나의 결혼양태죠.

그럼 그 동안 교회는 어떠했습니까? 가난을 벗어보려고 전 국민이 매달려서 몸부림치고 살아갈 때에 교회는 그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영적인 힘을 공급했다고 볼 수 있어요. 또는 교회에 나와서 봉사하고 일하므로 사람들의 마음에 허무가 자리 잡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로 그들을 붙들어준 것이죠. 특별히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시집가는 순간 자기 이름은 실종되는 세상이었는데 유독 교회에서는 그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존재를 인정하고 자기를 찾아주었던 것이죠. 육적인 가난은 이제 많이 벗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시대의 급속한 변화에 발맞추어 교회가 시대의 흐름을 읽고 앞장서 나가야겠습니다. 이제까지는 나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만을 부르짖고 찾았다면, 이제부터는 영적 가난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영적 풍요로움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최근에 발매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Revolutionary Wealth> (부의 미래)라는 책이 있습니다. ‘혁명적인 부’라는 뜻이에요. 이미 그는 1980년에 <3의 물결>이라는 책으로 다가오고 있는 새로운 사회를 그려냈고, 이번에 <부의 미래>라는 책에서는 그것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제 3의 물결’이란 무엇입니까? 1의 물결, 그것은 농업혁명이에요. 수렵하고 채집하던 인류가 농업을 시작하면서 정착하기 시작하죠. 그리고 저장하기 시작하죠. 분배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2의 물결은 산업혁명입니다. 공장 중심으로 도시화되고 재편되는 거예요. 대량생산, 대량유통, 대량소비, 대중매체 그리고 여기에 적합한 학교구조가 만들어졌어요. 유니폼을 입히고 같은 시간에 일하고 같은 시간에 자고 같은  시간에 뉴스보고 이렇게 함으로써 공장에서 기계조립 하는데 차질이 없는 인간을 길러냈던 것이죠.

그러나 3의 물결은 지식혁명이다. 이미 전 세계에서 8억대의 PC, 컴퓨터가 쓰여지고 있어요. 인터넷 사용인구가 10억입니다. 휴대폰을 들고 있는 사람이 17억이에요. 이 컴퓨터와 휴대폰은 새로운 시대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리고 있어요. 여러분,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발명품이 뭡니까? 앨빈 토플러는 뭐라고 이야기 하냐 하면 그것은 바로 ‘부를 창출하는 시스템’이다. 수렵하고 채집하던 인간이 씨 뿌리고 농사지어 더 풍성한 부를 얻게 되었고, 그 이후에 기계를 발명하고 공장을 세워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을 대량생산하게 되었다. 이제는 어떻게 되느냐? 지식혁명으로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방법으로 생각하는 것들을 만들어내는 세상이 되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부’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돈이나 자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인간이 욕망하는 모든 것들을 말하는 것이죠. 앨빈 토플러는 인류가 시작하면서부터 이때까지의 모든 발전단계를 통하여 항상 존재해 있으면서 가장 중요했던 요소들이 무엇인가를 구분해서, 그것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제대로 파악할 때 우리는 이 시대를 대비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심층기반인데, 그것이 뭐냐? 첫째는 시간, 두 번째는 공간, 세 번째는 지식이라고 말합니다.

시간, 지금 얼마나 무섭게 변하는지 몰라요. 지금 막 변하고 있어요. 문제는 변하기는 변하는데 ‘같이’ 변하지를 못해요. 앞서가는 데가 있고 뒤떨어지는 데가 있어요. ‘동시화’, 같이 변해야 되는데 이것이 일치하지 않는 까닭에 이 부조화로 세상은 굉장히 혼란에 빠져 있다는 거죠. 그는 미국의 예를 이렇게 듭니다. 시속 100km로 달리는 것을 가장 빠른 속도라고 규정해 본다면 그건 ‘기업’이다. 기업이 가장 먼저 변하고 가장 앞장서서 변하고 있다. 거기에 비해서 60km 쯤 변하고 있는 것은 ‘가족’이다. 산업화시대에는 핵가족이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가족의 형태가 너무나 다양해졌어요. 동성애가족도 생겼어요. 30km로 달리는 것을 ‘노조’라고 봤습니다. 20km는 ‘정부조직’ 그리고 10km는 ‘학교’, 미국유학을 많이 갑니다만 그가 볼 때는 미국의 학교제도야말로 너무나 시대에 뒤떨어져있다고 보는 것이죠. 5km로 달리는 것은 UN과 같은 ‘세계기구’들,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거예요. 3km로 달리는 것은 정치조직, ‘의회’, 1km로 가장 느린 속도의 변화를 보이는 것이 바로 ‘법제도’라고 하는 것이죠. 속도가 일치하지 않아요. 이 세계화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며, 세계 각 나라는 그 속도가 다 달라요. 이것이 곧 전 지구적인 혼란을 초래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변화의 속도에 있어서 한국은 또 굉장히 빠르다는 것이죠. 더구나 인터넷은 또 얼마나 빠릅니까? 한국에 오래 산 외국인들이 꼽은 ‘한국인의 빨리빨리 베스트10이 있습니다.

하나, 자판기 컵 나오는 데다 손 집어넣고 기다린다.

,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와 추격전을 벌인다.

, 화장실에 들어가기도 전에 지퍼를 내린다.

, 삼겹살이 익기도 전에 먹는다.

다섯,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닫힘’버튼을 누르고 있다.

여섯, 3분 컵라면을 3분도 되기 전에 뚜껑 열고 먹어버린다.

일곱, Ending Title이 다 끝나기도 전에 영화관을 나와 버린다.

여덟,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서 양치질을 한다.

아홉, 인터넷 초기화면이 3초 안에 안 뜨면 닫아버린다.

,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나서 계산을 한다.

얼마나 성질이 급합니까? 이 앨빈 토플러는 책의 마지막에서 우리나라를 전망합니다. 우리나라의 문제는 ‘시간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남한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북한은 가장 더디게 뒤처지고 있다는 거죠. 이 두 나라가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과연 어떻게 될 것이냐? 독일의 통일도 그러했고 러시아의 붕괴도 그러했듯이 정치지도자들이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순간에 순식간에 문이 열리고 무너졌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분석하고 대처하느냐 하는 것이 한국민의 과제다’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시간입니다.

두 번째는 공간이에요. 공간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서 부를 캘 것이냐? 500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의 부를 창출하는 곳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였어요. 그것이 지리상의 발견 이후에 부의 중심이 점점 유럽으로 옮겨갔어요. 그것이 한 바퀴 돌아서 지금 미국으로 왔어요. 지금 소위 BRICs라고 해서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이런 나라들에게서 급속하게 경제가 일어나고 있어요. 부가 움직이고 있다는 거죠. 이 말은 ‘어디 가서 장사해야 돈 벌 것이냐?’ 이걸 알려주는 것이죠. 21세기야말로 우주개척시대가 되고 우주식민시대가 될 것이다. 우주에서 엄청난 부를 찾아오게 될 것이다.

세 번째는 지식이에요. 너무 빨리 변하니까 예전에 알았던 것이 돌아서면 다 쓸모없는 지식이 되어 버려요.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이제까지 우리는 아이작 뉴튼의 과학적인 이해에 맞추어서 어떤 과학적인 틀 안에서 인과관계를 가지고 이해하려 했지만 이젠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거예요. 지식의 특성이 뭐냐? 어떤 농부가 밭을 갈고 있다. 거기다 콩을 심고 있다면 동시에 다른 것을 심을 수는 없습니다. 공장에서 TV를 조립하고 있다면 그 조립대 위에서 다른 것을 동시에 작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식은 동시에 많은 사람이 함께 나눌 수 있고 그것은 절대 고갈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무궁무진하게 쏟아지는 거예요. 지식은 서로 결합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많이 만들어내게 되는 거예요. 지식혁명시대의 무기는 ‘창의력’이라고 하는 것이죠. 여러분,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별게 다 돈이 되는구나’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엮어내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수요를 창출하고 거기서 돈을 얻어내는 것이죠. 시간과 공간과 지식, 그것이 변화하는 시대를 읽는 암호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더 중요한 얘기를 합니다.

우리가 흔히 경제라는 것을 이해할 때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있어요. 그러나 우리의 생각이 놓치고 있는 어마어마하게 숨겨져 있는 부분이 있다. 마치 빙산과 같이. 숨겨진 절반이 뭐냐? 경제학자들이 측정하는 것은 화폐경제이지만 정작 우리의 실생활 속의 더 많은 부분은 ‘비화폐경제’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이런 것이죠. 내가 떡을 만들어 먹는다. 내가 직접 생산하고 내가 직접 소비한다. 그래서 produce consume을 합성해가지고 'Prosumer'라는 표현을 썼어요. 자기가 직접 만들어 먹어요. 남들에게도 나누어줘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일, 병든 부모를 돌보는 일, 돈으로 일일이 환산하지는 않지만 어마어마한 인간의 활동들이 있다는 것이죠. 거기에서 우리 삶에 필요한 모든 부를 다 끌어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 이것이야말로 다가오는 시대에 새로운 경제의 이름없는 주인공이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섬기고 봉사활동 하는 것, 이것은 알고 보면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목마르게 생각했던 ‘행복’을 창출하는 일이라는 것이죠.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신 자리에서 하신 말씀이에요.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어리로 많은 사람을 먹인 사건. , 사람들이 그걸 보고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왜 찾아옵니까? 주님이 말씀하세요.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 옛날에 왕은 세 가지를 해결해야 돼요. 첫째는 떡 문제를 해결해줘야 돼요. 두 번째는 전쟁으로부터 막아낼 수 있어야 돼요. 그리고 전염병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해 줄 수 있어야 돼요. 이것이 국가를 흔드는 가장 위험한 요소였고 왕에게 기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예수님을 보니까 병자를 고치시고 떡을 만들어 먹이시고, 저런 능력이라면 로마의 식민지배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실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했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을 삼으려고 지금 몰려온 것입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떡을 주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썩을 양식만 구하지 말고 정말로 영생하는 떡을 찾으라.’ ‘그러면 그 떡을 우리에게 주십시오.’ ‘이게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떡인데 하나님이 보내신 자 곧 나를 믿는 것이, 인자(人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생명의 떡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여러분, 앨빈 토플러는 경제를 이야기하면서 숨겨져 있는 비화폐경제를 드러내어서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운 것입니다. 역시 미래학자예요.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또 하나, 숨겨져 있는 나머지 절반의 세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떡’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도 중요한 세 가지 영적인 심층기반이 있어요. 똑같이 시간과 공간과 지식이에요. 시간이란 뭡니까? 하나님이 오늘 이 시간 나와 함께 하신다. 공간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오늘 내게 맡겨주신 이 일 속에 함께 하신다. 지식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오늘도 나를 사랑하신다.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를 원하신다. 이 시간과 공간과 지식을 한마디로 엮으면 그게 바로 ‘임마누엘’이에요.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예수께서 아기로 태어난 사건을 뭐라고 말합니까? ‘이것은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이루신 사건이다. 이것은 임마누엘의 사건이다.

오병이어의 이적에 대해서 어떤 분이 그런 물음을 던져요. “목사님, 그게 말입니다. 애 도시락 하나를 가지고 남자 어른만 오천 명을 먹였다는 것... 글쎄요. 이렇게 보면 좀 안 될까요? 예수님 말씀을 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들 배고프고 어려운데 어린아이가 자기 먹을 도시락, 지극히 작은 것을 내어놓는 모습을 보고 주위에 있던 어른들이 감동을 받아가지고 부끄러워서, 자기가 가져왔지만 내놓지 못하고 숨겼던 도시락들을 다 꺼내가지고 두루두루 나눠 먹은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실 하나님은 두 가지 방식으로 다 일하십니다. 그래서 이것을 단순히 이적이라고 얘기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가리키는 ‘표적’이라고 합니다. 기적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것을 통해 무엇을 가르치시려 했느냐? 그 떡을 통해서 생명의 떡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가르치려 하셨어요.

이런 표현이 있어요. ‘순간마다 하나님이 내게 직접 말씀하신다.’ 그걸 기다리는 것, 그것은 건강한 신앙이 아니에요. 그럼 난 로봇이 되거든요. ‘너무 많은 기적은 우리를 약하게 한다.기적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많은 기적과 그것만을 목매어 기다리는 것은 우리를 약하게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성도 주시고 감성도 주시고 의지도 주셨어요. 성경에 하나님 말씀의 원리가 있어요. 오늘 예배를 가야 되는데 무슨 옷을 입고 갈까? 성경을 아무리 찾아봐야 답이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결정하세요. 예쁜 옷을 입고 오세요. 머리를 어떤 모양으로 하고 갈까? 그것도 여러분이 결정하세요. 하나님은 원리를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주셔서 생각하고 느끼고 표현하고 살아가게 하셨어요. 그러니 하나님이 이적으로 역사하시는 순간도 있고, 또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손을 펴서 나누면서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가게도 하시는 거죠.

제가 예전에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받은 바 은혜가 커서 왕성하게 전도하러 다닌 적이 있어요. 그때 일기를 넘겨보니까 버스 안에서도 전도하고 기차를 타고도 하고. 한번은 미국여자가 큰 짐을 가지고 쩔쩔 매길래 제가 좀 도와줬어요. 그리고 물어봤더니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야 해서 지금 용산까지 올라가야 되는데 자기는 지리도 잘 모르고 ... 그래서 제가 좀 도와줬습니다. 도와주면서 헤어질 때까지 영어로 복음을 좌악 전했어요. 그걸 끝내고 나니 저도 신기하더라고요.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 내 마음이 막 불붙어 있을 때는 그런 일이 가능해져요. 너무 그러다가 보니까 어느 날은 목욕탕에 갔는데, ‘오늘은 누구에게 복음을 전해야 되나?’ 그러다가 때도 제대로 못 밀고 그냥 나온 적이 있어요. ‘내가 무얼 해야 된다’는 것이 너무 앞서다 보면 그것이 부담이 돼요. 그렇게 하지 마세요. 목욕탕에 가면 그냥 때를 미세요. 그리고 기회가 주어지면 옆에 있는 분 등도 밀어드리고, 그러다가 어떻게 말이 이어지면 교회도 자랑하고 목사도 자랑하고 이러고 오세요. 그걸로 충분해요. 하나님은 내가 먼저 자유함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내가 누구에게 복음을 전할까?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너무 그렇게 매일 필요는 없어요. 알고 보면, 눈뜨고 보면 오늘 내가 호흡하며 살아서 숨쉬고 예배하고 먹고 마시는 이 모든 것이 이적이요, 하나님의 선물이에요. 하나님의 은혜에요. 감사하며 자유한 마음으로 사세요. 모든 게 다 이적이에요. 순간순간 듣고 느끼고 반응하는 내 안에 엄청난 우주가 들어앉아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에게 영생의 떡과 더불어 은혜와 지혜와 기쁨과 평강을 더하시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떡을 구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을 너무나 잘 아시기에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듯이 떡을 주시고, 썩어질 떡만으로 살 수 없기에 영원한 생명의 떡, 우리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게 하시는 이 놀라운 은혜를 감사합니다. 생명을 얻어 오늘 이 시간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이적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키는 표적입니다. 감사하고 감격하며 오늘을 살게 하시고 승리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