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인생경영[내생명의주인되신하나님께나의모든것을맡겨야함]/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3. 21:27

060924 인생경영 (16:1-9)

성경본문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2005년 사회통계조사 결과에 의하면 장애인에 관한 의식조사에서 ‘나는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다’라는 물음에 ‘그렇다’라고 대답한 사람은 89.1%.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장애인을 차별한다’가 그렇다 74.6%에요. ‘나는 법을 지킨다’ 64.3%, ‘다른 사람도 법을 잘 지킨다’, 28%. 이중성이 잘 드러나는 것이죠. 사회심리학적 용어로 이런 것을 ‘자기본위적 편향’이라고 합니다. 자기중심적 사고죠.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 그런 말이죠. ‘나는 잘하는데 남들이 문제다.

그런데 이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거든요. 1866년 대원군 시대에 천주교 대박해가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병인박해’였어요. 수천 명이 죽었어요. 그 때 들어왔던 프랑스 신부들도 죽었어요. , 이 소식이 프랑스 극동함대에 전해지자 출동했어요. 그래서 그 군대가 배를 타고 강화도에 침입했어요. 그리고 강화도의 왕묘를 파헤치고 보물이 있나 다 뒤집은 거죠. 그런데 강화도 농민들은 그냥 그걸 보고만 있었어요. 그러다가 이 군대가 민가에 들어가서 송아지 한 마리를 끌어가려고 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벌떼같이 일어나가지고 덤벼들었다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느냐, 없느냐? 자기중심적 사고의 표본이죠. 그래서 몇 년 전에 유행한 영화에서 나온 유명한 대목이 있잖아요. ‘너나 잘 하세요.’ 남의 일에 왜 간섭이냐 이거죠. 이런 냉소주의야말로 우리 사회의 암이죠. 신앙인들이 먼저 이것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소망이 없는 것이죠. 오늘 본문 말씀 2절을 보니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이것을 ‘유진 피터슨’이라고 하는 신학자요, 목사님이 몇 년 전에 미국에서 <메시지>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번역성경을 냈는데 거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what looks good', 좋게 보이는 그것으로 만족하지만 하나님은 ‘what is good', 정말 진실한 것을 깊이 살피시고 찾으신다.

, 이런 마음, 이런 중심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경영해야 합니다. 두 가지 경영이 있겠지요. 하나는 기업을 경영하든 또 자기의 가게를 경영하든 능력을 요구하는 경영이 있을 것이고 또 하나는 내면의 경영이죠. 내 마음의 경영이고 내 삶의 경영이겠죠.

신문보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경기 싸이클, 호황과 불황의 순환주기가 2000년 이전에는 평균 4년이었는데 2000년 이후에는 27개월로 짧아졌다고 합니다. 이제 너무 짧아져가지고 전문가들도 제대로 예측을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예측불허예요. 얼마나 어렵습니까? 식당 하나 차리기가 쉽습니까?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는 문 닫는 식당이 하루에 200개랍니다. 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길거리 경제>라고 하는 책을 재밌게 읽었습니다. 거기에 보니 IMF 때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주부들이 지출을 줄여야 하니까 고액과외를 시키던 사람들은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고 학원 보내던 사람들은 그걸 줄여야 되는데 공부를 아예 안 시킬 순 없으니까 학습지로 돌리고. 그래서 그 불황 속에서도 학습지 시장은 급신장했다는 거예요. 이 바람에 덩달아 날벼락을 맞은 데가 어디냐? 요구르트에요. 요구르트를 끊으면서 학습지를 택한 것이지요. 종목이 다르고 품목이 다르다고 안심할 상황이 아니에요.

그래서 거기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몇 가지를 조언을 하고 있어요. 한 사람의 예를 듭니다. 여의도에 랍스터, 바다가재 식당을 차렸다가 IMF를 맞았어요. 매출격감이에요. 고민고민 하다가 업종을 바꿨어요. 소위 말하면 잡어횟집이에요. 여의도에 보니까 정통 일식을 표방하는 고급식당들만 있는데, ‘안되겠다’ 틈새시장을 찾아서 전어, 병어, 송어, 잡어로 값싸게 하는 전략이 들어맞았다는 거죠. , 그러면서 이렇게 업종변경을 할 때 사람들이 망설이게 되는 이유는 매물비용’, 이제까지 쏟아 부은 그 투자가 아까워가지고 그걸 움켜쥐고 있다가 보면 다 들어먹는다 이거죠. 도박하는 심리죠. 본전 아까워서 연연하다가 결국 다 털리는 거죠.

옛날에 ‘올인’이라는 드라마의 실제 주인공이었던 사람이 그렇게 조언을 하더군요. “도박기계와 싸워가지고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돈을 딴다는 것은 잠깐 돈 딸 때 그때 얼른 손 놔야 따는 거지 끝까지 가면 백전백패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벌써 이런 사람의 심리를 다 알기 때문에 이제 그만 막 일어나려고 할 때 그때 한번 탕 터진다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떠나려고 하는 사람을 다시 주저앉히고 결국 완전히 빈털터리를 만들어 버리는 것이죠.

여러분, 그 순간의 판단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매물비용의 오류에서 벗어나라. 본전 아까워서 우물쭈물 하다가는 다 들어먹는 거예요. 그러면서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사람들이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지갑이 두툼할 때 찾는 물건이 있고 지갑이 얄팍할 때 찾는 물건이 있는 것이죠. 냉정하게 그 현실을 직시하라고 조언합니다.

호황을 맞을 때에는 고객의 허영심을 잘 다루어라.’ 싱가폴의 수상이었던 ‘리콴유’가 <아시아인의 허영심>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할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보니 그 양복 왼쪽 소매를 오른쪽보다 그저 약간 짧게 하면 아마 많이 팔릴겁니다. 요걸 약간 짧게 하면 롤렉스 금딱지 시계가 탁 보인단 말이죠.” 노련한 정치가의 안목이죠.

여러분, 가수 ‘태진아’를 아시지 않습니까. 그 사람이 미국에 가서 고생했던 이야기를 훗날 방송에서 이야기하는데요, 이태리 의류를 수입해서 팔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에 공연오는 동료 연예인들이 그가 고생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가지고 뭐 하나 옷을 좀 사주려고 하는데 영 시큰둥해 한다는 거예요. 옷을 그저 한두 장 사가고 만다는 거예요. 그러다가 자기가 그 가격에다 0을 하나 더 붙였답니다. 그랬더니 아주 좋다고 하면서 많이 사가더라는 것이죠. 연예인들의 허영심을 딱 찌른 것이죠. 돈 벌려면 그것까지 알아야 되는 것이죠.

그러나 마음을 경영하는 문제에 있어서 허영심은 얘기가 다릅니다. 인생경영에 가장 치명적인 암이 바로 허영심이기 때문이죠. 그것은 교만에서 나오는 거예요. 그 교만의 뿌리는 놀랍게도 무지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거예요.

몇 년 전 한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요. 충청도의 국도에서 볼보 승용차하고 프레스토하고 둘이 속도 경쟁을 한 거에요. 서로 막 추월하다가 드디어 볼보 탄 사람이 열을 받아가지고 공기총으로 쐈잖아요. 중상을 입혔잖아요. 왜 그랬을까요. ‘프레스토 타는 주제에 감히’, 바로 이거죠. 이 유치한 허영심.

그러나 거룩함으로 포장된 허영심도 있어요. '고든 맥도날드'라고 하는 미국의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분이 쓴 책이 있어요.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이라는 책입니다. 거기에서 일 중심의 카리스마적인 남자들의 특징을 설명합니다. 야망을 좇는 사람들의 특징이에요. 그 사람들은 일을 해냄으로써 만족을 얻는 사람이에요. 뭐든지 성장, 확장 여기에 몰두하는 사람이에요. 그 과정에서 정직함, 깨끗함은 다 뒷전인 것이죠.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그 일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보고 있어요. 실수와 연약함에 대해는 분노를 터뜨리는 사람들이죠. 뭐든지 매사를 경쟁관계로 이해하는 사람이죠. 골프 치시는 분들 얘기를 들어보니까요, 그것도 내기를 해야 재밌다고 그러더군요. 그런 심성이 우리에게 있죠.

, 그리고 항상 바쁩니다. 자기를 잃어버릴 정도로 바쁘다. 소위 정치, 종교, 사회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는 병이 뭐냐면 '구세주 콤플렉스'라는 거에요. 나 아니면 안 된다. 모든 문제를 내가 다 끌어안고 책임져야 한다. 이제 이렇게 조언합니다. 과연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느냐? 교회에서 섬긴다고 할 때, 누구를 위하여 일하고 있느냐?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고 있고 주님을 위하여 일하고자 한다면 주님은 어떻게 일하셨는가 하는 것을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을 경영의 눈으로 본다면 그건 어찌 보면 철저한 실패죠. 실패자 예수죠. 때로는 이적도 있었습니다. 구름같이 모이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러나 결국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맥없이 죽으셨어요. 남은 12명의 제자도 시원찮아요. 다 도망가버리고 말았어요. 실패자 예수였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상황에 매몰되지 않았어요. 그것으로 인하여 죄책감에 눌리고 고민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는 말합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아무것도 정돈되지 않은 것 같은 그러한 현실을 보면서도 '다 이루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 떠나려고 눈을 감을 때 뭐 두루두루 집 안팎의 모든 일들이 깨끗하게 정돈되는 것을 보면서 세상을 떠난다면 참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 그건 우리의 기대일 뿐이에요. 마지막 하나님께 부름 받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찾으세요. 아직 아들이 방탕하고 돌아오지 않았어요. 아직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어요. 아직도 여러 가지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나를 지켜주시고 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만족합니다. 나머지 모든 일들은 주님께 내어 맡기고 가겠습니다.’ 그런 신앙이 꼭 필요하죠.

또 주님을 위해서 일한다면 어떻게 일해야 되느냐. 주님이 말씀하셔요. 먼저 너의 영혼부터 바로 세워라. 성경을 보면 이적을 체험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왕으로 삼으려고 막 몰려왔어요. 식사할 겨를도 없었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시고 무리들과 떨어졌어요. 지금 놀라운 이적으로 사람들이 다 흥분하고 있어요. 예수님을 우리의 왕이라고 소리를 높이고 있어요. 그런데 그런 것으로부터 스스로 물러가셨어요. 그 환호성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어요. 과연 이 시간에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는지를 다시 한 번 조용한 곳으로 물러가서 들으셨어요. 먼저 자기의 영혼을 세워라. 그래서 이 '구세주 콤플렉스'를 이렇게 얘기합니다. '불건전한 자기희생 증후군'이다. 희생을 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뭐든지 다 내가 하겠다.’ 하나님한테 물어보고 하세요. 하나님이 싸인을 하셨어요? 내 영혼을 스스로 관리하지 못하고 일에 지쳐있다면 그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죠.

교회가 서서히 커지면서 어쩔 수 없이 이런 저런 일들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이 서로 일을 나누어 맡아야 됩니다. 바라기는 일하시는 분들은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자기 영혼을 건강하게 관리하면서 그 은혜로 일하시기를 바랍니다. 절대로 인간적인 욕심을 가지고 또는 열심만 가지고 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쉼이 필요해요. 묵상이 필요해요. 그리고 함께 일하는 거예요. 참 신기합니다. 우리가 다 허물이 많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이렇게 다 불러 모으셨어요.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은혜받고 함께 일하도록. 우리가 하나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어느 파트의 일을 맡든지, 물론 예외는 있겠습니다만 가능한 한 2년간 맡는 거예요. 그래서 서툴면 서툰 대로 잘하면 잘하는 대로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들은 같이 거들어주고 도와주는 거예요. 그래서 그 2년이 지나면 또 서로 은사를 따라 일을 바꿔가면서 하는 거예요. 교회는 기업이 아니거든요. 물론 잘하면 좋겠습니다만 일 때문에 사람을 다치면 안 되거든요. 일 때문에 갈등이 생겨서 교회를 떠나는 것만큼 비참한 일이 없어요. 사실 교회 때문이 아니에요. 그 자신 때문이죠.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에 상처를 입어서 스스로 떠나갑니다. 그렇게 떠나간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건강하게 한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그 마음 그대로 가지고 가봐야 그곳에서 또 새로운 문제를 야기시킬 뿐이에요. 정말 내 영혼을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가. 이건 너무나 중요합니다.

제가 지난 주간에 한 장례식을 다녀왔어요. 현지인 목사님의 장례식을 다녀왔습니다. 그분은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이에요. 장례식에 가보니까 현지인도 있고 중국사람들도 있고 한국사람들도 있고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여서 그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하나피’목사님입니다. 그분은 수마트라 람뿡의 ‘샬롬신학교’, 한국 선교사들이 팀을 이루어서 사역하는 신학교의 학장을 맡고 있습니다. 제가 그분을 몇 번 만나 뵈었는데 키도 작은데다가 옷차림이 얼마나 수수하고 털털한지 그냥 평범한 사람인줄 알았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영국 유학을 하고 학위도 받고 공부도 많이 한 분이더라고요. 한 번도 교만한 모습을 보지 못했어요. 그리고 그분은 특별히 쓰나미와 지진 등 연이은 재난으로 인해서 니아스 교회들이 다 무너졌는데, 한국교회가 건축을 후원하는 일의 실무책임을 맡아가지고 현장에서 뛰면서 많은 교회들을 증축하고 건축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쉴 새 없이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어요. 올해 마흔일곱이에요. 공부하고 어쩌고 하다보니까 결혼도 늦어가지고 이제 애가 세 살짜리에다가 갓난아기, 젖먹이 하나 있더라고요. 그 소식을 듣고서 깜짝 놀랐어요. 앞으로 몇 십 년 많은 일을 할 것같이 준비된 사람까지도 한 순간에 불러가시다니.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이렇게 다른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1절에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이것을 ‘유진 피터슨’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죽을 인생은 여러 가지 많은 것을 복잡하게 계획하지만 하나님은 마지막 말을 쥐고 계신다. ‘그만 와’ 한마디 하시면 아무리 화려하고 복잡하고 치밀한 계획일지라도 내려놓아야 돼요. ? 죽을 인생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진정으로 만족한 인생을 경영하려면 내 생명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들을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그 경영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시는 것이죠.

정직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전 일본 수상이었던 ‘이케다 하야또’가 ‘리더에게는 세 친구가 필요하다. 사심 없이 충고할 수 있는 종교인, 솔직한 여론을 그대로 전할 수 있는 언론인, 그리고 건강을 챙겨줄 수 있는 의사가 필요하다.’ 자기와의 관계에 있어서 진실하고 정직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을 과대평가해도 안 되고 과소평가해도 안 되고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용서받은 죄인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착각하면 안됩니다. 이건 뭐 도 닦는 게 아니에요. 도통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에요. 여전히 연약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도 용서받은 죄인으로 자유함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웃과 가족과 더불어 화평을 이루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풍족해져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그 원수까지라도 저와 화목하게 하신다. 왜 그럴까요? 저를 위해 기도했으니까.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로 부드러운 눈을 가지고 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를 위해 숨어서 기도하고 있었으므로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그 마음을 열어주신다는 거죠.

어떤 사람이 멋있는 남자입니까. 그 아내가 인정하는 사람이에요. 어떤 여자가 정말로 멋있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까. 그 남편이 인정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기업경영에 있어서 원칙이 있잖아요. 내부고객의 신뢰를 얻으라. 내부고객이 뭡니까? 부하직원들, 아내, 가족들, 그리고 이웃들이 인정하는 사람. 여러분 오늘 성경이 말합니다. ‘마음의 경영하는 바를 네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맡기라.’ 이것이 지혜입니다.

 

기도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오늘도 하나님 앞에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어리석게 내 삶이 내 것인 줄 알고 궁리하고 근심하며 잠 못 이루는 우리들에게 그 어리석음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아뢰고 그에게 내어 맡기라고 말씀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이 말씀을 받게 하시고 순종하고 실천함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날마다 체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