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풍족하게 되리라 [개신교의 쇠퇴 원인,새 바람 강한 불길]/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4. 13:56

061022 풍족하게 되리라 ( 25:22-30)

성경본문

두 달란트를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얼마 전에 태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탁신 총리가 실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시민들이 나와서 쿠데타군에게 장미꽃을 주면서 환영했다고 합니다. 어느 신문의 칼럼에서 장미와 기관총이라고 그 사건을 표현했습니다. 장미와 기관총은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없는 존재입니다. 태국은 독특한 정치적 특수성을 가지고 있지요. 거기는 국민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국왕이 있고 국왕이 군부나 시민사회 어느 쪽에 힘을 실어주느냐에 따라서 권력이 바뀌는 특수성이 있지만, 쿠데타로 정권을 뒤집는 것을 시민들이 환영한다는 것은 일반적이라 할 수 없는 것이지요.

미국의 정치학자 쉐보르스키가 쿠데타 경제지배론이란 이론을 내어놓았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국민소득이 2,000달러가 되면 쿠데타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지요. 2,000달러는 쿠데타가 일어나기 어렵고 일어났다 하더라도 곧 민주화 과정을 밟게 된다는 것이지요. 1979 12.12사태가 일어났을 때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은 1,600달러였습니다. 1987년 민주화 운동 때 개헌이냐 호헌이냐 하며 다시 한 번 무력으로 누르려 하다가 끝내 시민의 저항에 부딪혀서 6.29선언을 발표하면서 한 발 물러섰습니다. 그 때 국민소득은 4,000달러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 모든 죄를 물어서 백담사로 보낼 때 국민소득은 7,000달러였습니다. ‘쿠데타의 적은 경제성장과 그로 인해서 만들어지는 중산층이다.’ 중산층은 사회변화를 거부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양날의 칼이에요.

 쿠데타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조금 방향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좋은 의미의 영적인 갱신 역시 거부한다는 뜻이지요. 국민소득이 어느 정도가 되면 더 이상 교회는 성장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분석입니다. 사회변화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쥐고 있는 것에 만족하면서 내면의 변화도 거부하는 것이지요.

얼마 전 발표된 한국 사회의 종교 변화그 특징 첫째는 종교인구가 과반을 넘었어요. 어떤 종교를 가졌든지 종교를 가지고 있는 인구가 1985년에는 42.6%였어요. 그런데 20년이 지난 2005년에는 53.1%에요. 종교인구가 10.5% 증가했어요. 특별히 1997 IMF이후부터 50%를 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경제와 신앙의 관계가 뚜렸하게 보이지요. 특별히 여성 종교인구의 증가보다는 남성 종교인구가 훨씬 늘었어요. 1985년에 남성들은 39.3%였어요. 그런데 2005년에 와서는 49.7%, 10.4%가 증가했어요. 소위 체면이라든지 전통적인 남성다움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자유로워진 것이지요.

그런데 이 종교변화의 특징은 한국의 3대종교라고 할 수 있는 불교와 천주교와 개신교를 놓고 볼 때 개신교가 두드러지게 쇠퇴했다는 점이지요. 1985 648만 명이었는데 10년이 지난 1995년에는 876만 명, 많이 늘었다가 작년 2005년도 통계로는 861 6천 명으로 나왔습니다. 정부통계로 14만 명이 줄었어요. 굉장히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1천만 기독교인을 이야기하지만 그건 부정확한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그 흐름이 내리막이 되어가고 있다는 거지요. 왜 이렇게 됐느냐? 부정적인 이미지. 교회가 지나치게 교세확장에 치중하고 헌금을 강요하고 지도자의 영적 자질에 문제가 생기고 교회가 지역사회와 분리되어서 자기들만의 성을 쌓아가고 있다는 것, 이게 학자들의 분석이지요.

오래전에 나왔던 카를로스 오르티즈 목사님의 책이 있습니다. <제자입니까?> 그 책의 첫 대목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 분이 목회를 했을 때 교회가 성장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목회에 지쳐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 엎드렸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 지금 뭐하고 있느냐? 너 지금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냐?” 깜짝 놀랬지요.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너의 교회에 들어온 사람을 보라. 그 안에서 제대로 자라나고 있는 사람이 있느냐? 전에 200명이 모이고 400명이 모이고 600명이 모였다. 젖먹이 200명이 있었는데 또 젖먹이 200명이 더해지고 또 젖먹이들이 더해져서 600명이 되고 진정으로 자라나는 사람이 있느냐?” 그러니까 성장이 아니고 살이 찐 것이지요. 비대해진 것이지요.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게 된 것이지요. 개신교 쇠퇴에 여러 가지 원인들을 지적했습니다만 제가 보기엔 이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숨어있는 원인이 있어요.

미국 뉴욕 부룩클린에 가보면 부룩클린 태버내클 교회가 있습니다. 제가 2년 전에 그 교회의 기도회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90 4층짜리 극장을 사서 약 4천석 극장에 가득 모여서 기도회를 하는데 그 교회는 기도회로 유명해요. 짐 씸발라 목사님인데요. 그 분의 목회 이야기는 <새 바람, 강한 불길- Fresh Wind, Fresh Fire> 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부룩클린이 어떤 곳입니까? 미국 뉴욕의 슬럼가에요. 그야말로 도심 한 가운데에 고립되어있는 섬이에요. 거기는 알콜 중독과 마약과 매춘과 깨어진 가정들로 가득한 곳이에요. 날마다 사건이 터지고 살인이 일어나는 곳이지요.

이 목사님은 원래 농구선수에요. 대학농구선수였어요. 대학도 농구장학금으로 다닌 사람이에요. 그래서 농구대회에 우승하려는 꿈을 좇다가 직장인이 되었어요. 직장생활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자꾸 부르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 부름을 좇아서 부룩클린의 다 쓰러져가는 교회를 맡게 되었는데 모인 사람은 20명도 안됐습니다. 그리고 예배 분위기는 엉망이에요. 교회를 둘러싸고 있는 지역의 형편은 더 엉망이에요. 어떻게 감당할 수가 없어요. 첫 주의 헌금을 털어보니까 85. 그런데 그 교회 건물의 임대료만 매달 230불을 줘야 하고 거기다 수도세, 전기세 기타 등등 나가야 할 돈이 많아요. 오기가 무섭게 돈에 매이게 된 것이지요. 월말이 다 되어가는데 아무런 대책이 없어요. 너무 답답해서 교회에 나가서 울면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때 생각이 납니다. ‘그래, 내가 읽었던 책 중에 조지 뮐러의 책이 있었지. 하나님은 그가 엎드려 기도만 하면 응답을 주셨다고 하셨지. 오늘 나도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을 주시겠지.’ 그리고 그날 하루가 다 가도록 기도를 하는데 응답이 없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교회 편지함을 열어봐야 돈 내라는 고지서만 있지 아무 것도 없어요. 그 다음날 다시 나와 기도합니다. 그 때 번쩍 하고 생각이 납니다. ‘, 그렇지. 우체국에도 우리 교회 사서함이 있었지. 거기 준비되어 있을 거야.’ 가서 열어봤는데 아무 것도 없었어요. 이젠 아무런 소망이 없어요. 그가 길을 다시 건너오는데 큰 트럭이 자기 앞에 휙 하고 지나가는 거에요. ‘내가 이 트럭에 깔려 죽어도 지금같이 비참하진 않을 거야.’ 너무 답답한 거에요. 그리고 교회 문을 열었어요. 그런데 교회 현관문을 열었을 때 발 아래 하얀 봉투가 떨어져 있어요. 열어보니까 거기에 100불이 있는 거에요. 그래서 남은 돈과 합쳐서 그 첫 달의 모든 비용을 낼 수가 있었어요.

,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누가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게 도우세요. 이런 것을 흔히 까마귀가 돕는다고 해요. 여러분, 엘리야가 저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이 까마귀를 통해 먹을 것을 싣어 날랐다고 해요. 신학교에 온 많은 사람들, 그리고 개척교회를 시작한 분들의 고백이 있습니다. 자기를 도와주리라고 기대했던 사람들은 뜻밖에 하나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거지요. 그래가지고 막 실망하구요. 누가 도와주느냐? 까마귀가 도와줍니다. ‘까맣게 모르는 사람들이 도와줍니다. ?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그러나 날마다 돈에 시달리는 일은 너무 불안합니다. 지쳤어요. 장인이 아무래도 사위가 너무 무리하는 것 같으니까 비용을 대어서 티켓을 끊어 며칠이라도 어디 가서 쉬고 오라고 보내 줬어요. 그곳에 가서 조용히 기도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낚시하고 즐겁게 지내는데 혼자 뱃전에 낚싯대를 붙들고 낚시를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놀랍게도 이 분은 신학대학도 안 나왔어요. 왜 그랬을 것 같습니까? 전통적인 신학을 배워 목회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 부룩클린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그들이 어설프게 배운 것 가지고는 부룩클린은 손댈 수 없는 곳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생짜배기를 심어놓은 거에요. 그저 하나님 앞에 메달리도록. ‘하나님, 저는 공부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을 여기에 보내셨습니까?’ 그런데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그곳에 보냈으니 너는 이제 나만 의지하고 일해라. 이제부터는 내 이름을 부르며 찬양으로 기도해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먹고 마실 것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네게로 보내줄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어떤 일이 일어난 줄 압니까?

수중에 돈 한 푼 없어도 말할 수 없는 평강이 있는 거에요.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분이 뜨거운 마음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주일을 기다리다가 강단에서 얘기를 해요. ‘이제는 주의 이름을 부르며 찬양하며 기도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 예배도 드리지만 주중에도 하루를 정해서 기도해야겠습니다.’ 그런데 그 회중 가운데 호주에서 잠깐 방문한 목사님이 계셨어요. 그 분에게 한 말씀 좀 부탁드립니다.’ 그랬더니 이 분이 나와서 하시는 말씀이 그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를 알려면 주일예배에 참석해보면 압니다. 어떤 사람들이 왔는가를 보면  그 교회가 그 사회에서 어떤 교회인가를 알 수 있지요. 또 그 목사님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려면 주일 저녁 예배에 와보면 압니다. 그러나 정말 이들이 예수를 사랑하는가를 알려면 기도하는 자리에 누가 와있는가를 보면 압니다.’ 그러고는 가버렸습니다. 그 교회는 그 때부터 이제까지 그렇게 기도회를 계속하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대로 많은 사람들을 계속 보내주셨니다.

이 분이 얼마 전에 불가능한 전도는 없다라는 주제의 집회를 위해서 오셨어요. 그 분이 그때 미국교회의 딜레마를 얘기합니다. 미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이 뭐냐하면 기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된다는 기도의 공식은 알고 있지만 정작 무릎을 꿇고 하진 않는다는 거지요. 어떤 집에 가면 오디오 시스템이 요란하지 않습니까? 근데 틀어보지 않았어요. 어떤 집은 책장에 전집이 쫙 있잖습니까? 그런데 뚜껑도 열어보지 않았습니다. 그것과 똑같습니다. 기도는 그냥 엎드려 기도하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집주인의 양해를 얻어서 이 좁은 공간을 넓히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지혜를 모으고 있습니다. 부득이 벽을 터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벽을 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갇혀 있는 생각을 열어야 합니다. 오늘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인생을 살려고 하지 말고 하늘을 향해 창을 열어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기도해야겠습니다. 엎드려서 기도하는 것은 교회 기초를 든든하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지요.

또 하나 미국 교회가 갖는 딜레마는 말씀이에요. 내 귀에 즐거운 말씀만 좇아가는 거예요. 정작 내 삶에 변화를 원하지 않는 거예요. 성도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불편하게 할 것이냐? 예수님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성도들을 불편하게 할 것이냐? 물론 제일 좋은 것은 예수님도 즐겁게 하고 성도들도 즐겁게 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신앙은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이게 미국교회의 딜레마이지요. 그 딜레마는 오늘 우리의 딜레마이지요.

세 번째 딜레마는 닫힌 생각이에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생전에 뭐라고 했냐면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가장 심한 시간은 주일 오전 11시이다. 예배 드리는 시간이에요. 백인 교회에 흑인이 못 들어가요. 흑인교회에 동양인들이 못 들어가요. 다 벽이 있어요. 장벽이 있어요. 행여나 우리 교회는 문제 있는 사람들은 오지 말고 가정도 편안하고 돈도 있고 공부도 좀 하고 좀 세련되고 분위기 있고 예쁜 사람들만 와라.’ 우리 자카르타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두기만 해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 것입니다. 벽을 깨뜨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각을 열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분이 미국 양키즈의 구원 투수로 유명한 마리아나 리베로라고 하는 선수를 잘 알고 있는데 그 선수와 만났을 때 그 선수가 대뜸 이렇게 말하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니, 목사님, 어째 교회가 우리 야구팀보다 차별이 심합니까? 우리 야구팀에는 그 사람의 피부색을 말하지 않습니다. 야구를 어떻게 하면 잘 하느냐 그것만 묻습니다.” 교회도 마땅히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똑바로 믿고 섬길까 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묻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교회를 하나님이 들어서 쓰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간도 확장하고 전도사님도 모셔 오고 일꾼들도 세우고 해야 하겠습니다만 오히려 이제부터라도 정말 우리가 해야 할 것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한 달란트 받은 종의 착각이 뭡니까? 다른 사람 5달란트, 2달란트 받았는데 나는 시시하게 한 달란트 받았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뭐냐면 주인에 대한 오해에요. 뭐라고 말했습니까? 주인은 굳은 사람이다. 주인은 엄한 사람이다. 자기 돈을 한 푼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요구하는 수준은 높고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두려워서 잃어버릴까봐 안전한 곳에 파묻어 두었다가 이제 가지고 왔다. 주인이 책망하지 않습니까? 주인이 볼 때는 5달란트 받았거나 2달란트 받았거나 모두가 작은 일이라고 했어요. 다 주인이 정확하게 알고 준 거에요. 그 일을 기쁘게 감당할 때 하나님이 더 큰 걸 주시는 거예요.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어요.

저는 며칠 전에 TV프로 하나를 보고 감동했어요. 억척소녀 상경기였어요. 20대 아가씨 네 명이서 살아가는 얘기에요. 29, 24, 24, 22살이에요. 슈퍼마켓에서 시음 도우미로, 또 병원에서 잡일을 하고 인터넷에서 무슨 물건을 팔면서 살아가요. 가난하기 때문에 대학도 쉬면서 자비로 다녀야 해요. 이 아가씨들이 한 아파트를 얻어서 공동으로 살아가는 거에요. 경비가 적게 드니까요. 4등분하는 거에요. 공동 부담금이 20만원이에요. 그러고서 살아가는데 얼마나 짠순이인지 몰라요. 낮에 그렇게 일하다가도 밤에 또 나가서 일해요. 단돈 만 원, 이만 원을 벌기 위해서. 그런데 단순히 돈으로만 측정할 수 없는 놀라운 것들을 가지고 있어요. 모두 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거나  집안의 고통과 경제적 어려움을 이미 겪었어요. 다 철들었어요. 이제는 부모를 원망하지 않아요. 스스로 개척하겠다고 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왔어요. 그리고 콘서트에서 만나가지고 의기투합해서 모여서 사는 거예요. 한 아가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혼자서 지방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엄마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난대요. 나는 아직도 젊기 때문에 얼마든지 해낼 수 있지만 우리 엄마는 이제 그 나이에 넉넉하게 안정을 누려야 할 그 시간에 고생을 하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눈물을 쏟는 거예요. 그들은 외식 한번 안 하더라고요. 도시락에다가 차비도 아까워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쿠폰을 모으고 경품으로 살림살이를 장만하고. 더 중요한 것은 철저하게 하나가 되어서 살아가는 거예요. 생일도 그냥 안 넘어가더라고요. 깜짝쇼를 해서 즐겁게 하고 당사자는 너무 고마워서 눈물을 펑펑 쏟습니다. 정말 가난한 집 딸들인데도 놀랍게 자기들 안에서 행복을 창출하고 있어요. 서로 꿈을 예기해요. 서로 격려해줘요. 제가 그걸 보면서, 어쩌면 저렇게 함께 모여서 기쁨을 크게 하고 슬픔을 나누어 갖는 저런 지혜를 가졌을까.

그게 바로 교회의 모습이죠. 그 안에 더더욱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을 때 우리에게 그런 지혜가 있어야 되고 그런 은혜가 넘쳐야 하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생각을 열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모두 다 세상 살기가 어렵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 험한 세상을 능히 이길 수 있는 하늘로부터의 은혜가 있고, 말씀이 있고, 기도가 있고, 응답이 있고,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하심이 있는데 알지 못하고 홀로 외로이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는 우리의 처량한 모습을 안타까워하시며 오늘도 말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믿음으로 우리의 모습을 회복하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