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성령이 함께하는 사람[상황을하나님의지혜따라성령의열매로만듬]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8. 11:23

061213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 ( 41:37-57)

성경본문

바로와 그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니라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로 애굽 온 땅을 총리하게 하노라 하고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 앞에서 소리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로 애굽 전국을 총리하게 하였더라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하고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일곱 해 풍년에 토지 소출이 심히 많은지라 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칠 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축하되 각 성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성중에 저장하매 저장한 곡식이 바다 모래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었더라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을 낳되 곧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 낳은지라 요셉이 그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차자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애굽 땅에 일곱 해 풍년이 그치고 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식물이 있더니 애굽 온 땅이 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지라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하니라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쌔 애굽땅에 기근이 심하며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여러분 이 앞에 꽃을 보세요. 이 꽃이 무슨 꽃일 것 같습니까? 어제 제 생일이라고 어느 분이 꽃을 선물해 주셨는데 감사함으로 받음과 동시에 저도 아 이쁘다그랬지만 아마 이걸 여러분에게 보여드리면 여러분은 더 좋아하실 것 같아서 가져왔습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보고 좋아하시라고 기뻐하시라고. 사람이 꽃을 보면 반응이 있어야 돼요. 무덤덤한 사람은 그건 뭐 죽은 거죠. 반응이 있어야 돼요. 좋을 땐 좋고 또 싫을 땐 낯 빛이 변하고 그게 건강한 거에요. 다 참는 거 그거 미덕이지만 그렇게 건강한 건 아니에요. 안 좋은 거에요. 대신 화를 내는 것도 세련되게 표현해야 되겠죠. 그런걸 배워야 되겠죠. 찬양도 마찬가지겠죠. 사실은 하나님에게 드리는 찬양이기 때문에 저는 그 흑인들이 영가를 부르는 것을 보면 부러울 때가 있어요. 그 시켜서 하겠어요 몸 흔들고. ‘시스터 액트라는 영화 보셨어요? 그 사람들은 피가 원래 그렇게 뛰니까 할 수 없이 그렇게 움직이는 거지만. 우리도 원래 춤과 노래를 참 좋아하는 민족이었는데 유교적인 그런 많은 틀 속에 매인 거죠. 그것도 원래 사실은 양반들이 그렇게 한 거고 아랫사람들은 그렇게 안 했어요. 그냥 편안하게 살았는데 어떻게 족보가 없어지면서부터 다 양반으로 수직상승 해가지고 그렇게들 몸과 마음이 굳어서 얻은 것 보다는 잃은 것이 많은 거죠.

어제 한인회 송년잔치가 있었는데요 제가 거기를 갔었습니다. 특별히 인상적인 점은 트럼펫 부는 분들이 제목을 잘 모르겠어요. 고향노래였던가요 타향살이. 많이 불러보신 분은 아셔요. 타향살이 그 표정들이 나오는데 뭐 이 기술이 문제가 아니에요. 마음을 다 쏟아가지고 중년남자들이 자기를 온 몸으로 다 표현하고 있는 거에요. 참 감동이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예전에 그런걸 좋아하지 않았는데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그 가사가 마음에 다가 오구요. 그래. 그렇지. 그런데 제가 뭘 발견하느냐 하면.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감정과 이런 것을 다 잘라내 버리고 거룩하게 경건하게 그게 신앙이 아니라는 거에요. 그게 아니고 그런 타향살이와 같은 감정과 그런 모든 생각 속에서도 하나님을 또한 생각 할 수 있는  그러니까 현실을 살면서 그 현실에 발을 붙이면서도 하나님을 향해 갈망하는. 그런 그 갈등과 긴장 속에서 어떻게 신앙으로 해석할 것인가 그게 가장 중요한 거죠. 사실 거룩함 그러면 사람들이 싫어해요. 그 단어는 변질됐어요. 거룩하다 그러는데 다들 싫어해요. 경건하다 그러는데 싫어해요. 하나님이 원래 그 단어를 주실 때 뜻이 변질된 거에요. 왜 그랬느냐. 그 본래 뜻을 우리가 잘 못 이해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하나가 망쳐진 거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그런데 그분이 왕족으로 귀족으로 사시지 않고 아주 가난하고 평범한. 얼마나 가난했으면 말 구유 통에서 태어나야 했을 정도로. 그리고 그가 목수로 살았다. 그게 굉장히 의미가 있어요. 삶을 몸으로 다 체험하고 겪었다는 거에요. 어떤 고통을 가지고 어떤 아픔을 가지고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을 그냥 쳐다 본 것이 아니라 몸소 겪었다는 거에요. 이게 참 중요한 거에요.

그래서 히브리서 2 18절에 뭐라고 하고 있느냐면 그리스도께서 먼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오늘 또한 시험 받는 우리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다. 제가 사실 병원에 신방가면 별로 할말이 없어요. 아직 그렇게 병원에 드러누워 본적이 없거든요. 수술 받아 본 적이 없거든요. 그러니 뭐 얼마나 아픈지 알아야 위로를 하지. 그 마음으로 사실 전달 한다는 게 어려운 거죠. 겪어 봐야 알죠. 시험 떨어진 사람은 제가 이해할 수 있어요. 전 시험에 떨어져 봤거든요. 아주 집이 그냥 어둠 구름 하늘도 없더라고요.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저는 아주 내성적인 사람이었는데 고등학교 시험에서 떨어지니까 1년 동안 말을 안하고 살았어요. 말이 하기 싫더라고요. 스스로가 부끄러워 가지고. 그걸 헤어나오는데도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어요.

주님께서 몸소 삶의 고통을 다 겪으셨다. 그리고 그 아버지 요셉은 일찍 죽었거든요. 그러니까 집안의 그 모든걸 다 떠맡아 가지고 무거운 짐을 가장의 책임을 지고 살아야 했다. 예수님께서 30세에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공생애 출발 했을 때에 집을 두고 나왔을 때 마음이 후련했으리라고 생각진 않아요.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기에 그 뒤의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또한 나왔어요. 아마 동생들이 다 자라났으니까 이제 그 일을 감당 할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어찌 그래도 육신으로는 그 집의 장남인데 그 맘이 편하겠어요. 서살 제가 장남이거든요 저는 이렇게 해외에 나오리라고 생각지 못했어요. 부모님이 계시니까. 다행히 이제 그나마 어머님 한 분 계신데 건강하시고. 또 인도네시아는 이게 어떻게 된 게 해외라기 보다는 서울시 자카르타 구 같아서  무슨 일이 터졌다 하면 그날 밤으로 당장 갈수 있으니까 미국이나 이런데 하고 다르니까 벌써 심리적으로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나와 있을 수 있는 거죠. 예수님이 하나님의 일을 하시지만 우리가 흔히 겪을 수 있는 그런 아픔과 그런 것을 먼저 다 겪으셨다. 참 중요하죠.

요셉이 나오는데 요셉의 이야기의 특징이 뭐냐 아주 세속적이라는 거에요. 창세기에서 네 사람의 인물이 나오는 거에요. 창세기에 중요한 인물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셉이 나오는데요 요셉의 이야기의 비중은 아브라함 못지않게 커요. 굉장히 중요해요. 그런데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는 아주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요. 어떤 모습이냐고 하면 한마디로 압축하면 아주 세속적이에요. 성경 잘 읽어보면 요셉이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런 구절이 단 한 구절도 없어요. 사실. 하나님께 예배 드렸다 그런 구절도 없어요. 아브라함은 뭐 가는 곳 마다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삶이 그렇게 이루어져 있다면 그렇게 드러나 있다면 요셉은 그런 표현이 없어요. 제사 드렸다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이런 거 없어요. 그 삶에 기적이 있었다 그런 거 없어요. 그는 오히려 삶의 현실 속에 깊숙이 들어와있어요. 한 나라의 총리가 되어있으니 총리가 얼마나 바쁩니까. 그렇죠. 아침에 회의하고 현장 갔다 와서 또 회의하고. 얼마나 바빠요. 여기 남자분들 못 오셨어요. 거의 못 오셨어요. 다 일 나갔으니까. 그게 현실이잖아요. 같이 예배 드리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못해요. 이게 현실이잖아요. 요셉은 그것보다 더 바쁜 거에요. 더 복잡한 거에요. 그는 아주 세속의 한 복판에 있어요. 그리고 말씀을 보면 언제 뭐 하나님이 요셉에게 나타나셔서 직접 말씀하셨다 그런 대목도 사실 뭐 한마디도 없어요. 그리고 요셉은 이방여인과 결혼해요 그것도 바로가 그냥 짝지어준 그런 여인하고 결혼해요. 그것도 자기가 마음에 품고 좋아하던 여자도 아니고 아무게 하고 결혼하시오. 그냥 결혼하고 살아요. 우리 같으면 저쪽에 계신 분들이야 그렇게 시집 갔다지만 여기 계신 분들이야 그렇지 않죠. 그렇죠? 지금은 세상이 바뀌어서 부모가 그렇게 결혼하라고 그러면 그거 받아들일 사람 없죠. 내 인생은 나의 것. 그런데 요셉은 이방여인과 결혼해요. 갈등이 없었겠어요? 제법 갈등이 있었을 것 같아요. 자 요셉의 이야기의 특징이에요. 그런데 여기에 숨겨진 비밀이 있어요. 흔히 구약성경을 신약성경과 연결해서 많이들 해석을 해요. 특별히 요셉이라는 인물은 예수님과 연결해서 많이 해석해요. 요셉의 고난과 요셉의 성품과 요셉이 민족을 구하는 큰 삶의 스토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렇게 많이들 해석해요. 우습잖아요. 어쩌면 가장 세속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요셉이 예수님의 모델로 보여진다 이거죠. 그런 눈으로 예수님을 보니까 예수님이야 말로 또한 그렇게 사셨어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서 그 자신이 목수로 살았어요. 가난한 자와 더불어 살았어요. 그래서 그는 제사장이나 바리새인이나 이런 사람들과 같이 일반백성들을 무시하고 또 너희들은 속되다 하고 우리는 거룩하다 하고 거룩한 옷을 입고 구별되게 살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과는 예수님은 전혀 달랐어요. 죄인들에게 나가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어요. 심지어는 그들과 더불어 대화하고 그들과 더불어 식사하고 그들의 집을 찾아가고 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어요. 그럼 우리도 어떻게 해야 해요?

사실은 우리가 안 믿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해야 해요. 그런데 이제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안 믿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점점 약해지는 것이 현실이에요. 사실은 왜냐하면 끼리끼리 사귄다고, 자꾸 관심이 같고 취미가 같고 하는 사람하고 모이게 되어 있으니까. 그러나 할 수 있다면 우리가 좀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내다 봐야 해요. 하나님이 우리를 복의 통로로 쓰시기 때문에 복의 근원으로 쓰시기 때문에 그리고 나를 통해서 내 이웃에 있는 사람이 예수를 알게 될 때 그게 사실 상급이 큰 거에요. 그거야 말로 다단계에요. 진짜 그거야 말로 다단계에요. 내가 그저 조금 도와줘서 저 사람이 교회 나왔는데 예수 믿고 세례 받고 그러더니 잘 믿어가지고 그 사람이 더 많은 사람들 전도했다고 그러면 그 사람이 전도한 모든 거엔 거의 내 지분이 들어가 있는 거에요. 거의 다. 그거야 말로 뒤탈 없는 다단계죠.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김장완 목사님이 그런 얘기를 하셨다고 그래요. 수원에 와가지고 YFC 10대선교회를 세워가지고 청소년들 사역을 힘있게 하셨어요. 영어성경 공부한다고 학생들을 모으고 이래가지고 잘 됐는데 그 중에 어떤 학생 하나가 대학에 떨어져 안경 시커먼 거 끼고 얼굴 시커먼 학생이 하나 찾아 들어 왔어요. 그 학생을 붙들어 가지고 가르치고 또 활동을 하고 그래가지고 다시 이 사람이 예수를 믿고 힘들 얻고 그래 어떻게 해요 싹이 보이니까 추천해서 유학 보내서 공부시키고. 그 사람이 누구냐 이동원 목사님이에요. 그 이동원 목사님이 오늘날 얼마나 큰 일을 합니까. 네가 아무리 그래도 그 절반은 다 내꺼다. 그럴 꺼 아니겠어요. 그 마땅한 타당한 얘기죠. 복의 근원을 심으신 거에요. 그래서 그런 생각만 가지고도 생각을 닫지 마세요. 열어놓으세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가난한 집 친구들이 있었어요. 제가 그 친구들하고 같이 그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어요. 저희는 그래도 읍내중심에 살았고 이 친구는 저 변두리에 살았는데 그 친구네 집에 한번 놀러 갔는데 집도 멀어. 한번 갔거든요. 그 다음부터는 이 친구들이 저를 따라가지고 교회를 나왔어요. 그러니 교회가 얼마나 좋아요. 공부 못한다고 야단도 안하고 얼마나 좋아. 격려하고 칭찬하고 그러니 거기서 함께 어우러져서 같이 생활하고 같이 공부하고. 그래서 다 같이 목사가 됐어요. 제가 그걸 생각하면서 뭐 사실 제가 어려서 복음을 전했겠어요. 그저 친구한 것 뿐이죠. 그러나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큰 일을 이루어 가시는 것이죠.

요셉이라고 하는 이름의 뜻을 생각해 봐야 해요. 요셉이라고 하는 것은 더한다는 뜻이에요. 플러스. 그 엄마 라헬이 어렵게 아들 하나 얻었을 때 얼마나 그 엄마가 욕심이 많아요. 나 이거 하나로는 만족을 못한다 내 언니는 여섯이나 낳았는데. 하나 더 달라고 하는 뜻으로 이름을 요셉으로 지은 거죠. 엄마는 자기 욕심에 요셉이라고 지은 거에요 그러나 거기에 하나님의 큰 뜻이 있었어요. 요셉의 인생에 하나님이 어려움을 더하셨지만 그저 어려움을 어려움으로만 그치게 하지 아니하시고 그 속에 축복을 더하셨어요. 오늘 총리가 됐어요. 요셉이 총리가 된 것은 바로가 임명을 했는데 바로가 요셉을 통해서 뭘 발견했느냐.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네게 알게 하셨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살림을 맡아라. 그래서 요셉을 총리로 삼았어요.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 하나님이 알게 해주시지만 너무 단순하게 이렇게 생각 할 수 있어요.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시죠. 보세요. 의사가 환자를 고치는데 이거 뭐 죽을병에 걸린 환자에요. 가망이 없어요. 그런데 그 사람을 놓고 많은 사람들이 교우들이 막 붙들고 눈물로 기도하면 아 글쎄 하나님이 고쳐주세요. 기적이에요. 할렐루야하고 만세를 부르고 난리가 났어요. 의사도 깜짝 놀랬어요. 세상에 이런 일이 있다니. 그 다음이 중요해요. 자 그 다음에 어떨 것 같아요. 의사가. 아 하나님이 고쳐주시는구나. 그리고 그 다음부터 의학 책을 연구하는 것을 게을리하고 그러는 건 어떻겠어요. 그건 안 되는 거에요. 내가 배우고 연구하고 해야 하는 것은 계속 해야 하는 거에요. 확률로 말하면 암에 걸린 사람 살아나는 것보다 그대로 죽는 확률이 훨씬 많죠. 또 사실은 울고불고 해가지고 기도해서 응답으로 살아났다고 하면 그게 또 은혜가 되느냐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어요. 성경의 좋은 예가 히스기야 왕의 경우죠. 히스기야가 서른 아홉에 죽게 됐어요. 아 글쎄 아수르의 침략을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해가지고 아수르가 떠나가고 나라가 구원 받는 놀라운 사건이 있었어요. 이 얼마나 할렐루야 할 사건이에요. 그런데 아마 그게 너무 극도의 긴장이 왔던지 그것이 끝나고 나서 들여다 보니까 자기에게는 암이 온 거에요. 죽게 된 거에요. 그래 어떻게 돼요. 하나님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하고 울고불고 기도 했는데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15년 연장해 주셨어요. 그런데 히스기야의 남은 15년은 그렇게 살 이유가 있었는가 생각 할만큼 실수했어요. 구약성경 역대하를 잘 읽어보면 히스기야가 그런 놀라운 체험을 하고 나서 전쟁에서 구원 받았지 병으로 부터도 구원받았지. 자기도 모르게 교만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사자들이 왔을 때 자기 왕궁의 모든 보물 창고를 다 열어 보였는데. 성경은 지적하기를 그것은 히스기야가 교만한 마음으로 그렇게 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뭐라고 했냐고 하면. 네가 열어 보인 그 모든 보물을 바벨론이 다 가져 갈 것이다. 네 생전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겠지만 네 후대에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 성경은 지적했어요. 히스기야의 교만을. 그러니까 암에 걸렸을 때 인간적으로야 울부짖고 기도 해가지고 응답 받으면 할렐루야 만세고 좋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보다 계산이 고단수에요. 그냥 데려가는 게 너희들을 위해 낫다 생각하면 그렇게 하시는 거죠. 그것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과 준비를 해야 되는 거죠. 준비를 해야 돼요. 그러잖아요 어떤 분이. 나이가 많이 연로하시거든요. 이제는 의학적으로 링거를 맞고 이렇게 해서 버티는 거죠. 그런 상황이 왔어요. 그러니까 그분이 그래요. 내가 이렇게 해서 더 살 이유가 뭐 있습니까. 이미 구원 받았고 예수를 알고 은혜를 아는데. 나를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감사하면서 맞이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이거 다 뽑고 정리하고 하늘나라로 갔어요. 그렇게 가야지요. 이걸 그냥 막 주렁주렁 매달고 본인은 혼수상탠데 그걸 어떻게 하겠다는 거에요. 가족도 괴롭고 깨끗하게 믿음으로 정리하고 내가 의식을 잃으면. 정리하고 나를 보내달라고 그래야죠. 자 우리가 기도해서 응답을 얻지만 또 하나 하나님은 일상적인 삶 속에서 배우고 익히고 깨달으면서 지혜를 얻게 하셔요. 아 총리를 만드는데 하나님이 물론 꿈속에서 가르쳐 주실 수 있죠. 그러나 하나님이 그렇게만 한 건 아니에요. 그 형들과의 불화를 통해서 인간의 허물과 죄악을 알게 하셨죠. 그리고 보디발의 집에 종살이를 하면서 그 집의 살림을 다 겪으면서 경제를 알게 하셨죠. 색동옷 입고 아버지 무릎에나 앉아 있었던 철없는 소년을 하나님이 아주 호되게 연단을 시키는 거에요. 그리고 왕의 감옥에 집어넣어가지고 정치를 알게 하셔요. 때가 되니까 하나님이 총리로 세우셨죠. 나이가 서른 이였지만 그는 남다른 고난과 역경을 격은 거에요.

제가 그때 언젠가 김학중 목사님이라고 안산의 새안산교회 목사님의 책을 오래 전에 읽었는데 아유 그분 젊은 분인데 말이에요 목회를 크게 하더라고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별히 나이에 약하잖아요. 남자들만 그런 줄 알았더니 여자들도 알고 보니 심하더라고요. 그래가지고 나이별로 줄 세우고 소띠 모여라 양띠 모여라 그러는데 야, 재밌게 살려고 그러는 거겠지요. 그런데 뭐 나이가 뭐 대수에요? 지혜가 있어야지. 요셉이 30에 총리가 됐잖아요. 이 목사님이 젊은 나이에 그렇게 됐어요. 그런데 제가 그분의 책을 읽어보고. 그래. 다 이유가 있지. 어려서부터 일찍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동생들은 많지 아버지는 병들었지 청소년 때부터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면서 가장으로서 온갖 고생을 다 한 거에요.그 젊은 나이에 고생을 압축해가지고 다 겪은 거에요. 그러고 목회를 하니 그 사람의 고민이 다 읽어지고 그렇죠. 그게 다른 거에요 같이 50이면 똑같이 50이 아니에요. 고되게 살아온 사람이 있고요 놀면서 살아온 사람이 있고요 게으르게 살아온 사람이 있는 거에요. 거 다 다른 거에요. 그러니까 무조건 소띠 모임은 안 돼요. 그게. 다 이렇게 수준이 다른 거에요. 물론 다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맞게 은혜를 주신 것이죠. 남들은 저렇게 지금 잘 나가는데. 그럴 것 없어요. 그 잘 나가는 게 그대로 행복은 아니니까. 오늘 내게 주신 게 나의 기질과 나의 성격을 다 알고 그렇게 주신 거에요. 그러니 하나님이 총리로 세우셨지만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지만 그저 기도한다고 응답을 주신 게 아니라 그 기도가 되도록 하나님이 연단을 시키셨다 이거죠. 그러니까 배우려면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거에요. 부끄럽지만 제가 요즘 수영을 배우고 있거든요. 근데 첫 시간에 뭘 깨달았냐고 하면. 야 내가 그 동안 어려서 친구들하고 물에 텀벙 들어가서 허우적거리는 걸 가지고 50년을 용케도 버티고 살았구나. 물에 빠져 죽지도 않고. 이러고 하는데 이거 안 죽는 게 기적이었다. 숨쉬지도 않고 물에서 텀벙거리면 몇 분이나 버티겠어요. 제가 요즘 하는 게 뭐냐고 하면. 물속에 들어가서 숨쉬고 나오는 거에요. 기초 제대로 배워야 오래가는 거죠. 늦었지만 제대로 배워야 제대로 하는 거죠. 신앙도 제대로여야 하는 거죠. 많은 사람들이 불 받기를 원해요. 그 불 떨어진다고 다 좋은 거 아니에요. 뭘 알아야 해요. 뭘 하나 체험을 했으면 말씀으로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죠. 그저 무조건 몸이 달아오르는 체험만으로 전부가 아니에요. 그거야 말로 이단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요. 성경을 읽고 듣고 생각해야 되는 거에요.

결혼했어요 이방인하고. 그것도 왕이 짝지어준 여인하고. 행복하겠어요? 귀족이니까 행복하겠지 착각이잖아요. 여러분도 결혼 해 봤잖아요. 그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보세요 요셉은 보니까 그런 것 까지도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였다. 내가 왜 이 남자랑 결혼했을까. 그건 불신앙이에요. 거기에 하나님의 뜻을 전제하고 받아들이고 어떻게 하면 내가 이 사람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까. 그게 여러분이 생각해야 할 일이지 내가 왜 이 남자와 결혼했을까. 그거는 죽을 때 까지도 답이  안 나오는 거에요. 그건 하나님의 신빈데 여러분의 작은 머리로 어떻게 알겠어요. 저도 알지 못하는데. 그거는 미스터리에요. 그건 천국에 가서 물어 보는 거고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이 사람과 짝을 이뤘으니 어떻게 하면 내가 이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기쁜 마음으로 행복을 가꾸어 가며 살 것인가. 그게 신앙이죠. 자녀를 주셨어요. 므낫세라고 했어요. 하나님이 나의 지난 날의 고난도 잊게 하시고 내가 이 땅에 이제 자식 낳고 사는 거 보니까 고향도 잊게 하시는구나. 고향생각이에요. 므낫세가. 에브라임. 둘째 에브라임. 오히려 갑절의 열매를 주시는구나. 내가 이렇게 타향살이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나를 외롭게 내버려 두시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갑절의 은혜로 나를 붙들어 주시는 구나. 요셉의 의미는 플러스 인생이에요. 신앙은 오늘의 이 상황을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따라 삶의 현실 속에서 성령의 열매로 만들어 나가는 사람. 그 사람이 신앙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