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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愚民)이라고 속일 수 있으랴 / 박석무(다산연구소 이사장)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2. 6. 10:42

- 제 949 회 -

우민(愚民)이라고 속일 수 있으랴

   세상만사는 진실을 속일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마음속에 숨겨 두어도 사람의 양심은 속일 수 없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려면 반드시 낌새가 있기 마련이고, 양심과 어긋나는 행위를 하다 보면 겉으로야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끝내는 행위와 양심이 달랐다는 징표는 발현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 진실을 영원히 감출 수 있고 양심조차 영구히 속일 수 있다면, 인류의 역사가 이렇게라도 발전해 올 수 있었겠는지요.

   1801년 초봄, 신유옥사(辛酉獄事)가 일어나, 다산은 참으로 억울하게도 무고와 모함에 걸려 갓 40세의 나이로 저 멀고 먼 경상도의 장기현, 지금의 포항시 장기면 바닷가 마을로 귀양을 떠났습니다. 황량하기 짝이 없는 쓸쓸한 갯가 마을에 귀양살이 짐을 풀고 수심과 근심에 젖어 고달픈 귀양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정조 임금의 생존 시에 임금의 칭찬을 한 몸에 받으며 화려한 벼슬살이를 하던 천재적인 관료 다산은 세상에서 비교될 바 없는 궁한 처지로 몰락하여 가슴이 막히는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시름과 고통을 이겨내려고 다산은 고통을 삭이는 많은 시를 지었고 수준 높은 학문연구로 논문까지 써냈습니다. 굽힐 줄 모르던 그의 의지를 그런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시절의 「고시(古詩) 27수」라는 제목의 시에서 한편을 읽어보겠습니다.

숲속에 표범이 엎드려 있으면
나무위에서 까막까치 짖어대고
울타리에 긴 뱀이 걸렸으면
참새떼 조잘조잘 사람에게 알리네
개 잡는 사람 올가미 들고 지나가면
뭇 개들 요란하게 짖어대지
새와 짐승 성냄을 숨기지 않아
귀신처럼 모든 것 알아낸다오
마음이 포악하면 겉으로 보여지는 법
어리석은 백성인들 어떻게 속일 것인가
네 가지 덕 모두 아름답지만
군자는 인(仁)을 우선으로 여기네
어질도다 기린들
살아있는 풀도 밟지 않는다니

文豹伏林中
烏鵲樹頭嗔
長蛇掛籬間
瓦雀噪報人
狗屠帶索過
群吠鬧四隣
禽獸不藏怒
其知乃如神
內虐必外著
何以欺愚民
四德雖竝美
君子每先仁
生草猶不履
賢哉彼麒麟

   그렇습니다. 살아있는 풀도 모질게 밟지 않는다는 기린의 덕을 칭송하면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무려 300여 명의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신유박해’의 비참한 포악상을 넌지시 비판한 내용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유교주의 국가에서 부모의 제사를 폐지하는 천주교 신자들이야 체제수호를 위해 탄압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신자도 아닌 다산 일파를 천주교 신자라는 무고한 모함에 의해 죽이고 귀양 보낸 일은 어진 사람이 하던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집권층은 정치적 반대파들이기 때문에 탄압한다는 이유를 감추고 천주교 신자이기 때문에 탄압한다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진실과 양심을 숨기고 겉을 포장하여 정치적 반대파들을 숙청한 사건임에 분명합니다.

   아무도 몰래 기어오는 표범, 슬그머니 숨어 있는 뱀, 몰래 지나가는 개잡이 백정, 겉으로 숨겨도 모두가 발각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진실과 양심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큰 ‘게이트’도 이제는 속일 수 없이 모든 것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어리석은 백성이라고 속일 수 없는 상태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기린조차 어진 마음으로 살아 있는 풀을 밟지 않는다고 했으니 짓밟힌 국민들의 주권을 회복해주는 뜻에서라도 진실과 양심을 고백하여 사태가 종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박석무 드림

     


글쓴이 / 박석무

· (사)다산연구소 이사장
· 실학박물관 석좌교수
· 전 성균관대 석좌교수
· 고산서원 원장

· 저서
『다산 정약용 평전』, 민음사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역주), 창비
『다산 산문선』(역주), 창비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한길사
『조선의 의인들』, 한길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