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영혼의 닻(하나님의 맹세,속죄의 은총, 퍼얼 벅) / 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1. 22:39

2009 6 7 주일예배

영혼의 닻

( 6:13-20)

1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14.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주고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15.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 받았느니라

 

 

 

  1. 사람들은 자기보다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2. 하나님은 약속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일을 맹세 보증하셨나니
  3. 이는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실 없는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 얻으려고 피난처 찾은 우리에게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4. 우리가 소망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5.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인터넷에서 본 내용입니다. 홍콩 맞은편에 있는 중국 광동성 선전시의 어느 공원 입구에 열세 살 난 소년이 BMW 자동차를 대놓고 선글라스를 끼고 조수석에 앉아있습니다. 그리고 우산대로 만든 낚싯대 광고판을 걸어놨습니다. 거기에는 `애정부족, 새 엄마 구함'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현대인의 모습을 희화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열세 살 난 소년이 BMW를 타고 있는 모습은 돈과 명예와 권력을 구하면서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살짝 비틀어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미 어린 시절에 부모가 이혼을 한 까닭에 새 엄마를 구하는 거예요. 자기의 생활과 공부를 지도해주기만 하면 된다고 인터뷰를 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지음 받은 존재예요. 그래서 세상 살면서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이 다 필요하지만 원초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면 불쌍한 인생이에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셔요.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자기 이름을 걸고 맹세하세요. 원래 맹세라는 것은 하늘에 맹세하거나 자기보다 더 큰 것을 빌어서 맹세하는 법인데 하나님보다 더 큰 존재는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걸고 반드시 너에게 복을 주리라,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흔히 대통령 주위에서 대통령의 이름을 파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5년이면 무너지는 권력에도 그렇게 기대면서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 그건 그저 5년 간 유효한 복이 아니에요. 영원한 복이에요. 그 복을 주시는 분은 온전하신 분이에요.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복일 뿐만 아니라 우리 내면을 넉넉하게 채워주는 복이라고 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복을 주리라' 그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자기 이름을 걸고 맹세까지 하셨어요. 참 놀라운 일이에요. 오늘 본문에 `하나님은 거짓말 하실 수 없는 분이시다.' 이 변할 수 없는 사실에 의거하여 두 가지를 기억하라는 거예요. 하나는 하나님의 약속, `내가 네게 반드시 복을 주리라' 이게 하나님의 약속이에요. 또 하나는 맹세, 두 사람이 다투다가도“나 맹세해”그러면 더 이상 싸움은 없어요. 맹세했으므로. 맹세는 모든 다투는 것에 최후 확정이다. 우리가 다투다가도“맹세해”그러면“좋아, 맹세한다고 그랬어. 한 번 볼 거야”하고 물러나잖아요. 하나님께서 맹세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어요.

   사실 이 이야기는 창세기 15장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셨어요. 원래 우상숭배하던 집안이었어요. 그 아버지가 우상을 만들어 팔던 사람이었어요. 하나님을 전혀 모르던 아브라함이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냈어요. 오랜 여정을 통해서 그를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어요. `내가 이 땅을 네게 주리라. 너에게 아들을 주리라' 약속하셨어요. 그러나 현실에서는 좀처럼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아브라함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어요. 현실을 따라 때로는 기근을 피해서 애굽으로 가기도 하고 거기서 어려운 일을 당하고 하나님께서 또 건져주시고 돌아왔더니 이번엔 또 전쟁에 휘말려 가지고 죽음의 위기를 넘겼어요. 두려움이 있었어요.

   ,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셨어요. 그러면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주셨던 그 약속을 다시 말씀하시는 거예요. `내가 반드시 너에게 아들을 주리라' 그랬더니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괜찮습니다.' 포기했어요. `제가 이렇게 늙어가지고 어떻게 아들을 바라겠습니까? 저희 집에 종이 많은데 그 중에 아들같이 아주 충성스러운 종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그를 양자 삼아서 저의 모든 것을 다 물려주겠습니다. 이게 바로 제 계획입니다. 어떻습니까?' 아브라함도 나름대로 판단한 거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니다. 반드시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아들이 되리라.' 그런데 창세기 15 6절에 보면 놀라운 구절이 하나 있어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 그랬어요. 그 이전까지는 듣기는 들었어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거예요. 참 오랜 세월이 걸렸어요.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말씀을 믿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잘했다고 여기시고 너무 기뻐서 아브라함을 집 밖으로 이끌어내서는 중동의 밤하늘을 보게 해요. 별이 쏟아지는 광경을 보게 하면서 `네 자손이 이렇게 많아지리라.' 그리고 아브라함을 끌어다가 중동의 관습을 따라 언약을 맺으셔요. 중동 사람들은 아주 중요한 맹세를 할 때 짐승을 잡아 두 쪽을 내요. 죽은 짐승의 양쪽 끝에 서요. 그러면서 맹세를 해요. 무슨 말이에요. 이 약속을 어기면 이 짐승같이 두 쪽이 나리라 이거예요. 하나님께서 짐승을 쪼개시고 불꽃으로 나타나셔서 쪼갠 짐승 사이로 지나가셨어요. 우리가 비록 작지만 믿음을 보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기뻐하신단 말이에요.

   어느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 분이 교회를 잘 나가려 하지 않아요. 아내가 너무 안타깝고 답답해했어요. 어느 날 부득이 아내가 교회를 가지 못할 일이 생겼어요. 그래서 남편에게 부탁했어요. 오늘 내가 부득이 예배를 가지 못하니 당신이 오늘만큼은 졸지 말고 목사님 말씀을 잘 듣고 내게 전해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남편 혼자 교회에 갔습니다. 모처럼 받은 부탁이니까 서둘러 가다 보니 일찍 갔어요. 맨 앞자리에 앉아서 말씀을 들었어요. 은혜를 받았어요. 집에 돌아가서 문을 열자마자 아내를 꼭 껴안으면서“여보, 사랑해”그랬어요. 아내가 너무 놀란 거예요. 평생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 다음날 생각해보니까 남편이 무슨 말씀을 들었는지는 미처 물어보지 못했어요. 너무 감동이 돼가지고. 그래서 남편이 출근한 이후에 목사님을 찾아갔어요.“목사님, 어제 도대체 무슨 말씀을 전하셨나요? 우리 남편이 갑자기 이렇게 하던데,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나요?”그랬더니 목사님이 말씀하십니다.“아니요,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는데요.

   여러분, 우리가 자세를 바르게 하고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임해요. 많은 분들이 아무개는 원래 믿음이 좋아,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말씀을 많이 들으면 그 말씀의 능력이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바꾸고, 현실 보는 눈을 바꾸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의 약속이에요. 아브라함이 작지만 믿음을 보일 때 하나님께서 너무 기뻐하셨어요.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엄청난 약속과 맹세를 하신 거예요. 이게 우리의 진정한 소망이에요.

   , 우리 삶에 소망이 필요해요. 어린 시절에는 소풍 간다고 하면 얼마나 가슴이 설렙니까? 그 전날 잠을 못 자잖아요. 어린 아이들의 꿈은 그저 고만하니까. 아마 철없는 중학생이라면 수학여행 간다고 하면 가서 춤추고 놀 생각에 얼마나 가슴이 뜁니까. 그러나 인생이 그렇게 대학 진학하는 것, 직장에 들어가는 것, 결혼하는 것, 이렇게 거치면서 나이 사십이 넘으면 더 이상 별로 소망할 게 없어요. 그때 현실을 알게 돼요. 인간 소망에는 한계가 있어요.

유교에서는 사십을 불혹(不惑)이라고 해요.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건 잘못 본거예요. 그건 그야말로 희망사항이에요. 사십이야말로 유혹의 계절이에요. , 내 자신이 흔들리기 때문에. 심리학에서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사십을 넘어서게 되면 현실을 알게 돼요. 몸부림 치고 수고하는 것 가지고 해결이 안 되는 현실을 절실히 깨닫게 돼요. 서서히 현실을 받아들이게 돼요. 현실에 순응하게 돼요. 꿈이 깨졌어요. 소망이 무너졌어요. 혹 지위가 있고 성취한 게 있을지 모릅니다만 그것이 주는 기쁨은 잠깐이고, 내면을 들춰보면 진정한 꿈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좌절감이 있고 분노가 있어요. 그게 우리의 현실이에요. 그래서 남자 분들이 집에 들어와서는 고집을 부려요. 왜냐하면 이 고집마저 포기하면 내 삶이 다 무너지는 것 같은 위기감을 느끼기 때문에. 아내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구구절절이 맞는대도 맞다고 말하기가 싫더라고요. 그 자리에서만큼은 얘기하고 싶지 않더라구요. 그게 남자의 모습이죠.

   여러분, 인간 소망에는 한계가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축복이에요. 너의 한계를 알라고 우리 몸에 변화를 일으켜주시는 거예요. 남자들이 나이 들수록 감성화되잖아요. 저는 예전에는 추리영화를 참 좋아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말이죠, 한 번 볼까 하고 사다 놨는데도 보게 되지 않더라구요. 결국 그거 봐야 뭐하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런데 `인간극장'같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왜 그렇게 공감이 가고 꼭 내 얘기하는 것 같고 감성화 돼요. 이게 인간의 자연스런 변화예요. 그래서 십대들은 사춘기가 있지만 사십 대는 사추기가 있어요. 사십 대의 특징은 흔들림이고 피곤함이다. 이제 나를 발견해야 돼요. 하나님의 소망을 알아야 돼요. 하나님의 소망을 붙들라는 하나님의 싸인이 우리의 생각, 감정, 몸에 변화로 나타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망, 그게 뭐냐. 그리스도다.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의 모든 허물을 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셔서 자기 몸을 희생제물로 내어 놓으셨다.

   흔히 우리가 예수 믿을 때에 십자가를 말합니다만 그게 잘 현실로 다가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여러분, 돈의 능력은 아시죠? 돈의 능력. 제가 어린 시절에 한 초등학교 3학년이나 됐을까요. 저희 집에 손님이 오셨어요. 저희 부모님이 젊었던 시절에 아셨던 분이라고 해요. 아주 큰 부자예요. 영등포에 있는 땅을 다 가진 부자라고 했어요. 그 분이 모처럼 한 번 들르셨어요. 저는 처음 보는 분이었어요. 그런데“얘가 아들이구만”그러시더니 용돈을 주시는데 천원을 주시더라구요. 그땐 백 원도 큰돈이었어요. 저는 숨이 멎는 줄 알았어요. 그렇게 큰 용돈을 주시는 분은 처음 봤거든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그분은 또 다시 안 오시나.' 두 번 다시 안 오셨어요. 이게 돈의 위력이에요. 돈의 능력이에요. 세 살짜리 어린이도 돈이 얼마나 힘센가를 잘 알아요.

   그렇다면 십자가의 능력은 뭐냐? 어느 날 어떤 목사님이 방송에서 이런 설교를 하셨어요.“저에게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습니다. 나를 아빠로 따르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나를 섬기고 존경해주는 많은 교인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들이 너무나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만약에 내가 이제까지 지은 죄를 이야기한다면 아내는 결코 나를 사랑할 수 없을 것이고 아이들은 결코 나를 아빠로 존경할 수 없을 것이고 많은 교인들은 결코 나를 목사로 인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난날의 나의 모든 죄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너무나 두렵고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모든 죄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짊어지시고 죽으심을 믿을 때 내 죄를 용서해주시니 속죄의 은총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가장 큰 복입니다.

   여러분, TV에서 잘 나가던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감옥에 가는 모습을 볼 때 뭘 느끼십니까? 우리 모두 다 허물과 죄가 있어요. 그런데 십자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어요. 속죄의 은총, 그게 가장 큰 복이에요. `나는 예수를 믿는데 별로 복 받은 게 없어요.'라고 하는 분은 생각이 짧은 거예요. 죄로부터의 자유로움이 얼마나 우리를 온전케 하고 새롭게 하는가.

   오늘 말씀에서 얘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십자가의 소망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 영혼의 닻과 같이 우리를 흔들리는 세상 속에 든든히 세운다. 여러분, 그 말 아세요? 삿대질 한다. 싸울 때 삿대질 하지 말라고 그러잖아요. 원래 삿대란 나룻배가 물가에 있을 때 배를 강으로 밀어 넣기 위해서 쓰는 긴 작대기가 삿대잖아요. 배가 물을 타서 흐르기 시작하면 이제 삿대를 조용히 내려놔야지, 배가 흔들리고 내려가는 데 삿대를 들고 설치면 어떻게 되겠어요? 사람들이 다치죠. 그래서 삿대질 하지 말라는 거예요. 또 하나, 배가 머무를 때 큰 배일수록 큰 닻을 내리잖아요. 그래야 흔들리는 물속에서도 배는 안정을 찾게 되지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소망은 우리 영혼의 닻과 같아요.

   <대지>를 쓴 `퍼얼 벅'을 아실 겁니다. 어린 시절 퍼얼 벅은 중국에서 살았습니다. 선교사의 딸이었어요. 그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이야기를 이렇게 고백해요. 중국 내륙에 있는 자그마한 도시에 살았어요. 그 도시에 백인이라고는 자기 식구들밖에 없었어요. 어느 날 아버지는 선교를 위해서 멀리 집을 떠났어요. 그런데 그 해 여름에 지독한 가뭄이 들었어요. 너무나 비가 오지 않으니까 민심이 흉흉해졌어요. 이렇게 가뭄이 들고 비가 오지 않는 것은 저 백인들 때문이다 라고 하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어요. 유언비어가 퍼지더니 드디어 사람들이 이 집을 해하려고 하는 거예요. 종이 와서 알려준 거예요. 드디어 심상치 않게 됐어요. 퍼얼 벅의 젊은 어머니는 깊이 생각하다가 어느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아이들을 깨끗이 목욕을 시키고 머리를 빗겨주고 깨끗한 옷을 입히고 자기도 제일 좋은 옷을 입고는 대문을 활짝 열어놓았습니다. 드디어 사람들이 몽둥이를 들고 몰려들었어요. 소리를 지르며 몰려들었어요. 그런데 덤덤히 나가서 종들에게 미리 준비시킨 차와 다과를 내놓으며 사람들을 안방으로 모셨어요. 차를 대접했어요. 아직 철모르는 어린 애들은 그저 이웃 아저씨들이니까 가서 막 안기는 거예요. 몽둥이를 들고 들어왔던 사람들이 할 말이 없었어요. 차를 묵묵히 받아 마시더니 조용히 한 사람, 두 사람 다 물러갔어요. 그들이 다 물러간 다음에 문을 닫아걸고 젊은 엄마는 털썩 하고 주저앉았어요. 그 날 밤에 비가 오기 시작했어요. 엄마에게는 천상의 음악이었어요. 퍼얼 벅이 나중에 그 이야기를 하면서 물어봤어요.“엄마, 그때 무섭지 않았어요?” “너무나 무서웠지.” “그런데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나요?” “그건 절망했기 때문이란다. 이제 도저히 내 방법으로 어떻게 할 수 없구나 하는 절망 가운데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담대함을 주셨단다.

   여러분, 마태복음 10장에 하나님께서 이런 약속을 하셨어요.

 

너희가 어려움에 처할 때 절대로 두려워하지 말라.

성령께서 너희를 지키시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가르쳐 주시리라.

 

어떤 환란과 풍파가 올지라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어요. 맹세까지 하셨어요.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번성케 하며 너를 이끌어서 천국으로 인도하리라'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이에요. 이것을 믿을 때 우리의 영혼은 닻을 내린 배와 같이 든든히 오늘을 이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