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피살로 본 ‘암살의 정치’
암살 장면 공개돼 충격
케네디 피격 소식, TV로 전세계 전파
이집트 사다트, 군대 사열 중 피살
공산국가 독살 흔해
2006년 영국 망명 러시아 정보요원
체내서 우라늄 100억배 방사능 검출
역사적인 비운 초래
오스트리아 황손 피살로 1차대전
40차례 암살 모면 히틀러, 유대인 학살
지난 13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피살됐다. 현재로선 암살 배후 세력으로 북한을 의심하는 이가 많다. 이른바 ‘정치적 암살’ 가능성이다.
킹 목사 사건으로 대표되는, 역사에 기록된 정치적 암살은 일정한 구성 요소를 갖춘다.
첫째, 당한 표적이 거물이다. 엄호 세력과 반대 세력이 그만큼 강력하다. 둘째, 범인의 살해 동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게 많다. 킹 목사의 경우 반세기가 지나도 미 연방수사국(FBI) 개입설 등 음모론이 끊이지 않는다. 셋째, 그의 죽음으로 인해 당대 상황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긴다. 킹 목사의 피살로 미국 내 분열과 대립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로버트 케네디(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 당시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가 두 달 뒤인 6월 5일 또 다른 총격범에게 희생당했다.뒤집어 보면 암살의 정치는 이 같은 요소들을 고려해 벌어진다. 죽은 사람은 바로 ‘그’이기 때문에 죽었다. 전쟁터에서 아무 상대나 없애고 보는 것과 다르다. 타깃이 명확한 살인이란 얘기다. 간혹 비틀스의 존 레넌 같은 셀레브리티도 암살당하긴 하지만 그럴 땐 아무래도 개인적 동기(정신질환자 포함)가 우선이다. 반면 암살의 정치는 특정한 정치적 목표와 떼려야 뗄 수 없다. 미국의 저명한 군사정치학자 조지 프리드먼은 근본적으로 암살이 “적을 어떤 식으로든 약화시키려는 의도”라고 설명한다. 성공할 경우 선거 같은 합법적 방식이나 숙청·처형 등의 폭압적 형식보다 ‘저비용 고효율’의 효과를 낸다. 거물이 ‘모르고 당했다’는 것은 그게 가능할 정도의 세력 불균형을 의미하기 때문 이다.
암살의 사전적 의미는 ‘몰래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이는 ‘당하는 상대가 모르게’라는 뜻이지 ‘세상 사람 모르게’는 아니다. 오히려 광장 집회 등 열린 공간에서 벌어질 때 암살은 정치적 퍼포먼스 효과를 더한다.
특히 암살의 책임을 역이용해 더 큰 정치적 이익을 노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황위 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을 암살한 것은 세르비아 민족주의 단체 ‘흑수단’의 19세 단원이었다. 그러자 오스트리아는 사건의 책임을 신생 세르비아 정부에 돌려 세르비아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려 했다. 불행히도 이런 시도는 양국의 후견인 격이던 독일과 러시아의 대리전으로 번져 약 2000만 명(후방 민간인 포함)이 사망한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됐다.
암살 수단으론 율리우스 카이사르 때만 해도 칼이나 독약이 꼽혔다. 하지만 현대엔 총이 압도적이다. 거리를 둔 채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암살의 역사』에서 조명한 20세기 23건의 암살 가운데 18건이 총을 동원했다. 독살은 3건, 수류탄(폭탄) 2건, 송곳 1건이었다.
마하트마 간디(인도·1948년), 맬컴 X(미국·65년), 이츠하크 라빈(이스라엘·95년), 베나지르 부토(파키스탄·2007년)….
많은 학자는 이 역사적 거물들이 더 오래 살았더라면 세계사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가정하곤 한다. 반면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처럼 많은 이의 열망과 염원을 담은 저격도 허다했다.
암살 실패가 역사의 비운을 초래하기도 한다. 아돌프 히틀러를 겨냥한 암살 계획 및 미수는 영국·소련의 첩보기관, 폴란드의 지하조직 등 밝혀진 것만 40여 차례에 이른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영화로도 제작된 1944년 7월 ‘발퀴레 작전’이다. 회의실 테이블 아래에서 폭탄이 터졌음에도 히틀러는 살아남았다. 암살 실패의 부작용은 컸다. 이후 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의 1년간 전사자 수는 그 이전의 5년을 합친 숫자보다 많았고, 유대인 학살은 전쟁 종반 극에 달했다. 히틀러는 나치 독일 패망 직전인 1945년 4월 30일 권총으로 자살했다.
[S BOX] 레이건 총격범, 여배우 조디 포스터 관심 끌려고 범행
국가 지도자나 정치인들은 끊임없는 암살 위협에 시달린다. 다만 최고 수준의 경호를 받기 때문에 실제 암살 성공률은 높지 않다. 2007년 하버드대의 벤저민 존스와 벤저민 올켄이 발표한 암살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1875년부터 2004년 사이에 전 세계 지도자를 상대로 298건의 암살이 시도됐는데 이 중 59건만 성공했다.
1999년 미국 『법과학 저널』에 발표된 논문 ‘20세기 후반 미국의 암살 사례 연구’는 대부분의 암살이 장기간에 걸쳐 치밀하게 계획됐으며 충동적 암살은 거의 없다고 분석했다. 또 범인 중 25%가 일종의 망상증상을 보였다고 한다. 특히 표적에게 근접해 범행을 저지르는 범인의 경우 60%가 이런 증세를 나타냈다. 이들 중 44%는 우울증, 39%는 학대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암살범의 3분의 2는 다른 범죄로 체포된 전력을 갖고 있었다.
정치적 동기 없이 개인적인 과시용으로 대통령을 공격한 대표 사례는 1981년 3월 30일 로널드 레이건을 저격한 존 헝클리다. 25세의 헝클리는 단지 여배우 조디 포스터의 열광적인 팬으로서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이 같은 대담한 짓을 벌였다고 진술했다. 더 이상의 배후 세력도 밝혀지지 않았다. 레이건은 왼쪽 폐에 총알을 맞았지만 수술 끝에 회복했고 동정 여론에 힘입어 지지율이 급상승하는 등 피습사건이 전화위복이 됐다.
1999년 미국 『법과학 저널』에 발표된 논문 ‘20세기 후반 미국의 암살 사례 연구’는 대부분의 암살이 장기간에 걸쳐 치밀하게 계획됐으며 충동적 암살은 거의 없다고 분석했다. 또 범인 중 25%가 일종의 망상증상을 보였다고 한다. 특히 표적에게 근접해 범행을 저지르는 범인의 경우 60%가 이런 증세를 나타냈다. 이들 중 44%는 우울증, 39%는 학대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암살범의 3분의 2는 다른 범죄로 체포된 전력을 갖고 있었다.
정치적 동기 없이 개인적인 과시용으로 대통령을 공격한 대표 사례는 1981년 3월 30일 로널드 레이건을 저격한 존 헝클리다. 25세의 헝클리는 단지 여배우 조디 포스터의 열광적인 팬으로서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이 같은 대담한 짓을 벌였다고 진술했다. 더 이상의 배후 세력도 밝혀지지 않았다. 레이건은 왼쪽 폐에 총알을 맞았지만 수술 끝에 회복했고 동정 여론에 힘입어 지지율이 급상승하는 등 피습사건이 전화위복이 됐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