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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부르심에 합당한 성도의 삶(2월19일 주일 설교)(엡 4:1-6) / 서대장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2. 19. 08:11

부르심에 익숙한 생활 엡4:1-6

주신 말씀 엡4:1-6을 중심으로 [부르심에 익숙한 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제목으로 큰 은혜의 시간되기 원합니다.

본문은 교회전체와 성도 각자의 모습과 관련된 사도적 훈계 중에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연합과 성장에 관련된 내용 중 일부입니다.

에베소에서 말하는 교회는 생명체로서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가 말하는 교회의 성장은 한 생명체로서의 강건함과 성숙함이며, 모든 지체가 함께 자라는 성장입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로서,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서 영적 생명력을 공급 받을 뿐 아니라 , 그 몸 안에서 지체 간에 돌봄과 사랑을 주고받아야 할 존재로써 지체와 몸이 하나이기에, 성도는 공동체 전체를 공동체는 성도 개개인을 돌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엡4:1-3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여 교회의 일치를 이루라고 합니다.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한다는 것은 겸손온유오래 참음으로 서로 사랑가운데 용납하고 , 평안의 매는 줄로써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입니다.

4-6절에서 성도들이 연합과 일치를 이루어야 할 당위성과 근거를 제시한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성령, 성도들이 부르심을 받은 소망, 주이신 예수그리스도, 믿음, 세례 , 하나님이 모두 하나이며, 또한 하나님은 만유의 아버지로서 만유 위에 초월하여 계시면서 만유를 통해 역사하시고 또한 만유 가운데 내재하여 계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성도가 교회 공동체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 어떻게 생활해야 할까요?

첫째로 작은 순간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1)

성도 행실의 대원칙은 무엇보다도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생활하는데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대원칙은 내가 판단하고 행동하는 지극히 작은 일 하나라도 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부름에 합치하느냐를 따져서 그에 부합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절에서 그러므로(οὒν 운)는 전반부(1:3-3:21) 교리적인 면과 후반부(4:1-6:20) 교회전체의 일치와 그 구성원인 성도 각자의 바른 모습에 관하여 훈계하는 내용을 운(그러므로)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즉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를 이룬 교회가 어떻게 교회의 하나됨을 지키고 교회의 거룩성을 지켜야하는 지에 대해 실천지침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교회의 일원이 된 성도는 한 몸을 이루는 지체로써 다른 지체들과 함께 연합과 일치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먼저 교회는 연합해야 합니다.

한 몸으로 부름을 받은 각 지체가 서로 연합하지 못한다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요? 당연히 교회가 강건하지 못하고 교회를 이루는 지체로써 성도 각자도 강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 몸을 이룬 지체들이 서로 분쟁하고 다투는 일은 자연계의 생명체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다음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자라가는 것입니다.(13)

교회가 그리스도의 완전한 수준까지 자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 이 세상에서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끊임없이 그 목표를 지향하며 성숙되고 성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절에서 권하노니 (Παρβκβλώ 파라칼로)는 요청하다, 촉구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 권고의 의미가 우선이지만, 바울의 강력한 의지가 포함된 명령적 요소도 가지고 있다 할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비록 감옥에 갇혀 있지만 ,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그들이 주님에 의해 부름 받은 자답게 합당한 삶을 살기 바란다는 간절한 사랑의 호소이면서도 연약하지 않은 강력한 의지를 함께 실어 보낸 것입니다.

내가 (ἐϒώ) 즉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자신이 세운 에베소 교회를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그들을 향한 염려를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 멀리 감옥 속에서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부름에 합당히 행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는 사람이나 성도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고 , 사람이 하나님이란 개념을 만들어낸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자신이 창조한 사람들 가운데(창1:1) 구원하기로 선택하신 자들을 부르셨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셨으며,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장차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롬8:30)라 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구원 과정은 개인의 구원 차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개인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형성된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부름을 받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름에 합당하게 행한다는 것은 부름에 적합한 삶의 방식을 갖는다는 의미로 하나님의 부르심은 사망에서 생명에로의 부르심이요, 죄에서 성결로 ,어두움에서 빛으로, 그리고 분리에서 연합에로의 부르심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부르심을 받은 교회와 성도는 그에 걸 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도 행실의 대원칙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목욕탕 같은 곳이어서 어떤 사람은 이제 때를 불구는 사람, 미는 사람, 다 씻고 마무리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제 막 들어가서 때를 불구는 사람이 아직도 때가 있다고 탓할 것이 아니라, 내가 물속에 들어가 충분히 불려 회개와 말씀의 수건으로 내 몸을 깨끗이 씻어내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새로 입사한 회사가 내 생활 방식과 다르다고 회사보고 내 생활 습관대로 늦잠자고 늦게 일어나서 게으름을 피우다 밤새워 일 할테니 회사시스템을 바꾸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요. 그 회사의 시스템에 내가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영광 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영광스러워만 하고 회사 제복만 입고 아무일도하지 않는다면 멀지 않아 해고될 것입니다.

컴퍼니 웨어를 입고 사원증을 달았다면 이제부터 내가 맡은 일을 잘 감당하여 회사에 이익을 창출해야 합니다. 성도는 교회가 어떤 요구를 했을 때 마지못해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요구하고 가르치기 전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익숙해지고 숙달되어 있어 맡겨 주신 사명을 자원하여 잘 감당해야 합니다. 작은 순간일지라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야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가 아니라 잘해야 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가 아니라 성과를 내야 합니다.

알아보겠습니다가 아니라 지금 당장 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가 아니라 마음의 준비와 결단이 항상 되어야 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성도가 교회 공동체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 어떻게 생활해야 할까요?

둘째로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용납해야 합니다. (2-3)

교회 안에서 한 성도가 다른 성도를 사랑 가운데 용납하기 위해서는 모든 겸손과 온유, 그리고 오래 참음 이라는 성품을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가장 강조되는 품성은 겸손(ταπεινοΦροσύνης타페이노프로쉬네스)으로 기독교의 핵심 진리인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춤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이 낮아짐이란 뜻을 가진 가장 큰 겸손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동등 되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낮추어 인간이 되셨고,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겸손의 극치를 보여 주셨습니다.(빌2:7-8)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성도들은 날마다 자기의 옛 본성과 자아를 부인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마16:24)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을 세우십니다.(약4:6)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성도 각자가 소유하고 있을 때 교회 구성원 각자가 서로를 세워 줌으로써 교회 공동체 전체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됨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유(πραύτηυος 프라우테토스meekness) 는 사랑의 특성이면서 (고전13:4사랑은 온유하며)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중 하나이며(갈5:22-23 사.희.화.오.자.양.충.온유. 절) 구원 받은 자들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성품입니다.(골3:12,딤전6:11). 온유함은 약함으로 인한 온순함을 의미하지 않고 강함을 절제함으로 나타내는 부드러움을 의미합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동일한 본체로서 전능하신 분이시면서도 온유하셔서 무력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으로써 심판의 능력과 권세를 지니셨으면서도 온유하셔서 죄인들을 참으시면서 그들을 구원으로 인도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온유함으로 우리를 대하셨기에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우리의 이웃을 향해 동일한 온유함으로 , 즉 성도의 심령 내부에는 그리스도의 강한 심장을 가지고 외부에서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과 행동으로 대하도록 연습하고 반복해야 될 줄 믿습니다.

오래참음(μακροθυμίας마크로뒤미아스)도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로 사랑의 덕목입니다. 이 말의 어원은 μακρός(멀다, 길다)+θυμός(진노, 분)의 합성어로써 분노로부터 거리가 먼 감정 즉 분노를 자제할 수 있는 감정으로 하나님의 성품이기도 합니다(롬2:4 길이 참으심). 우리들이 삶속에서 죄를 많이 지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과정 중에서 달라지지 않고 계속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지닐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해 길이 참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연히 다른 지체들이나 자기 자신을 향해 오래 참아 하나님의 성품을 닮고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άγάπη)은 자신의 이기적 감정을 충족시키는 욕망적 사람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여 타인의 유익을 이루는 이타적 사랑으로서 하나님의 핵심적 속성입니다. 이 사랑으로 하나님은 자신이시며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된 우리를 위해 기꺼이 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공동체를 이룬 성도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그 사랑 안에서 지체된 자들을 마땅히 용납하되 사랑으로 용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용납하고 (άνεχόμενοι아네코메노이)는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관대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다양하고 이질적인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 안에는 나와 다른 생각과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 문화적 사상적 배경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예수 이름 아래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여 상대방을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서로 용납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한몸된 교회는 결코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반드시 서로 용납하라는 것입니다.

3절에서 평안(είρήνης΄에이레네스)은 히브리어 솰롬의 번역어로써 신변의 안전이나 물질적 평안뿐 아니라 정신적이고 영적인 의미의 평안도 포함됩니다.

개인이 안전과 평안만이 아니라 국가나 공동체의 평화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안은 성도 개인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다른 지체들과 함께 나누고 누려야 하는 평안인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 되어야 하는데 평안 즉 이질적인 지체들을 하나로 묶어 교회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평안의 끈으로 꽁꽁 묶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는 말은 성령이 주신 연합을 지키기 위해 힘쓰라는 말입니다. 교회 안의 성도가 서로 화평하기 위해 애를 쓴다면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 즉 지체의 연합이 지속될 수 있다 합니다.

여기에서 힘써σπουδάζοντες(스푸다존테스)는 명령분사현재형으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지키기 위해 힘써야 하는 기간이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 무관하고 이질적인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통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서로 간에 막힌 담을 허물고 함께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라 하십니다. 이러한 하나 됨이 끝까지 유지되기 위해서는 지체된 각자의 지속적인 노력 즉 분열과 다툼, 반목과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내가 먼저 양보하고 내가 먼저 이해하고 내가 먼저 손해보고 다가가 단순한 통합이 아닌 융합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하나 됨은 저절로 이루어지거나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구성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 마음을 같이하고 뜻을 같이하여 서로 다른 출신, 관습, 지위, 신분 등으로 서로 의심하고 미워하고 비난하고 원망하는 대신 깊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분열이나 의심 미움 없이 기쁨으로 배려하고 용서하고 사랑으로 용납하여 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셋째로 교회 공동체의 일치와 연합의 당위성을 인정하라 (4-6)

바울은 교회를 사람의 몸에 비유하여 교회 공동체가 일치와 연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4절에서 몸(σώμα)은 생물체로써 인간의 육체를 가리키기도 하지만(고전6:16둘이 한 육체가 ), 인간의 죄성을 강조(고전9:27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하는 육신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몸은 인간의 육체가 지체 간에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유기체이며,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몸은 비가시적인 교회로써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 몸은 이스라엘과 유대인이라는 두 개의 몸으로 나뉘어져 있었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통해 하나의 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된 몸에는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등 다양한 지체가 있지만 몸의 각 부분을 이루는 지체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의 몸을 세우기 위하여 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지체들과 분쟁하지 않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는 삶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교회가 연합의 근거와 당위성에서 먼저 몸이 하나라고 말한 다음 성령이 하나라고 말합니다.

성령(πνεύμα)이 하나라는 당연한 사실을 굳이 밝히는 것은 교회가 교회답게 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하나 됨이며, 하나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성령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사역을 통해 비로소 교회가 하나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분리의 영이 아니라 화평의 영이며, 하나 되게 하는 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성령으로 하나 된 교회는 그 성령의 부르심에 합당한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몸이 하나이듯 성령이 하나인 것과 같은 자연스런 이치로 성도 역시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다는 사실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부르심을 입었다(έκλήθητε에클레데테)는 말은 부르심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 간에만 해당되는 그 부르심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한 소망 안에서 έν μιά έλπίδι]라는 말은 성도들 각자의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망 안에서라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구원하고자 한 자들을 부르신 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이 소망은 전지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자 십자가를 지신 하나님의 소망이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궁극적으로 성도의 구원으로 나타날 줄 믿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한 소망으로 성도들을 부르셨기에 부름 받은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마땅히 하나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5절에서 성령으로 하나된 성도들은 한 주님을 모시고 한 믿음 안에서 동일한 신앙고백으로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된 하나가 됩니다.

주가 즉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이기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하나 즉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하나 되어야 합니다.

세례 즉 신앙고백을 통하여 동일한 세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자신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하신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시고 마지막 날 심판주로 다시 오실 분이 곧 하나님이신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은 만유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가운데 계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초월성, 편재성, 그리고 내재성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 즉 만유위에 초월하여 계신 주권자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통과하시고 통하여 편재하시는 즉 무소부재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 안에 우리 안에 함께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유일성과 절대성을 가진 분으로 오직 홀로 계신 하나님이시면서도 온 우주 안에 모든 곳에 계시고 온 우주 만물을 직접 다스리시는 왕이신 하나님이시며, 특별히 자신이 구속하신 백성들 안에서 직적 거하시며 자녀와 백성 삼아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듯 교회는 당연히 한 몸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성도가 교회 공동체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 어떻게 생활해야 할까요?

첫째로 작은 순간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1)

둘째로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용납해야 합니다. (2-3)

셋째로 교회 공동체의 일치와 연합의 당위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4-6)

교회의 지체를 이루고 있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이 바뀔 때 삶도 바뀌고 신앙행태도 바뀌고 교회의 모습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각과 판단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받은 성도답게 하나님의 뜻과 목적과 의도를 파악하고 하나님이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일을 잘 감당하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루므로 그 지체된 성도 여러분이 영원한 천국의 상급을 누리는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서대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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