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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주 예수를 믿는 자에게(눅8:43-48, 행16:25-34) / 호현낙선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3. 20. 05:18

주 예수를 믿는 자에게 눅8:43-48, 행16:25-34

오래 전 소련의 어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려고 하는데. 예배당 문을 걷어차면서 두 명의 소련 군인이 들어 닥쳤습니다. 기관단총의 총 뿌리를 겨누는 두 군인은 “5분간의 시간을 준다. 예수를 버리고 살 사람은 5분 내로 예배당 밖으로 나가라. 예배당 안에 남아 있는 자들은 5분 후에는 모두 죽음을 맛볼 것이다.” 소리쳤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이 무서운 시험에서 이길 수 있는 용기의 믿음을 위해 조용히 기도하며 견디고 있는 순간, 몇 사람이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시계를 바라보고 서 있던 군인들은, “마지막 50초다. 또 나갈 사람은 없느냐?”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남아 있는 성도들의 얼굴은 모두 거룩한 표정으로 자기들의 주님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비장한 모습들이었습니다. 드디어 군인들은 안으로 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그러더니 총을 땅에다 내려놓은 두 군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형제들이여, 우리 두 사람은 크리스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 진정으로 헌신하고 주님을 위해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크리스천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는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자, 이제 우리 주님께 함께 경배를 드리실까요.” 주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때로는 결정적인 순간에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고 믿음을 고백하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세상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것들을 얻게 됨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사순절 세 번째 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주 예수를 믿는 자에게”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주 예수를 믿는 자에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현대인에게 건강은 중요한 관심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크고 작은 병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신 사건은 언제 생각해도 감사한 일이고 우리에게도 주님께서 그런 이적을 베풀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합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을 고쳐주시고, 죽은 자를 살리는 권세를 가지셨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한 청년이 어느 목사님을 찾아와 상담을 했습니다. “목사님 기도원에 가서 한 20일쯤 물도 먹지 않고 기도하다가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금식을 하다가 은혜 받고, 능력 받고, 치료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금식하다가 죽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목사는 깜짝 놀라서 “아니 살려고 금식을 해야지 죽으려고 금식을 합니까?”그랬더니 “자기의 상태가 도저히 살 것 같지가 않다”는 말을 계속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유인즉 허리디스크를 수술했는데, 시험공부를 한다고 너무 많은 시간을 의자에 앉아서 공부했더니 디스크가 재발해서 얼마나 아픈지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는데, 자살하면 지옥을 갈 것 같고 그렇다고 누구한테 죽여 달라고 할 수도 없는 실정이고 생각하다 못해 ‘금식기도 하다가 죽으면 순교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한 다음 그 젊은이는 계속 “하나님 저 좀 어떻게 죽여주시옵소서!” 이런 기도만 드렸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아프면 그런 기도를 했겠습니까? 아마 우리 가운데도 이런 고민이나 문제로“주님 저를 좀 데려가 주시옵소서.”하는 기도를 해 보신 분이 계실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말 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할 때가 있고, 말을 해도 알아주는 이도 없는 혼자만의 고통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절망적인 생각이 들어 이 젊은이와 같은 생각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 눅8:43-44에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했습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 받았으나 좋다는 약을 다 써보아도 소용이 없었고, 이름 있는 의사를 찾아가 치료를 받아 보아도 치료를 받지 못했던 불치의 병을 가진 여인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소망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 분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고침을 받겠다는 생각이 들어 혼신의 힘을 다하여 주님 곁으로 다가와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대자 혈루증이 즉시 그쳤습니다. 순간적으로 지긋 지긋한 질병의 고통에서 치유함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한 일을 무리들 앞에서 드러내어 48절에서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예수님에게는 치유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네 사람에 의해 침상채로 운반되어 왔던 중풍병자가 주님의 말씀 한마디에 곧 침상에서 일어나서 자기의 침구를 들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38년 동안 중풍 병에 시달린 자도 주님 말씀 한 마디에 일어나 침상을 들고 걸어갔습니다. 심한 열병을 앓아 꼼짝 못하고 누워 있던 베드로의 장모가 즉시 일어나 접대할 수 있었습니다. 백부장의 하인이 곧 강건해졌습니다. 소경이 눈을 뜨고, 귀신들린 자가 온전해 지고, 주께서 명하시매 죽은 자가 살아 일어났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영,육 간에 치유함을 받아 강건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주 예수를 믿는 자에게 구원 받는 은혜가 주어집니다.

질병의 치유 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가 구원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이 구원을 받기 위한 길을 어정쩡하게 여러 통로를 통해 마련해 놓으신 것이 아니라 분명하고 확실한 한 가지 길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그 사실에 대해 행4:12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했습니다. 서신서 본문 행16:31에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로 간수가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려 구원의 길을 물었을 때 사도 바울이 가르쳐준 구원의 길입니다.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먼저 예수라는 이름 자체가 구원자시기 때문입니다. 마1:21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했습니다. 생명의 떡이 되신 예수님은 떡 집이라는 뜻을 가진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는다는 이 진리는 초대 교회 복음 증거자들이 전한 메시지의 대 주제인 동시에 이 말은 시대를 초월하여 영원한 기독교 진리의 핵심입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진정한 믿음을 갖게 되는 그 순간, 구원은 그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항상 예수께 신뢰와 의탁을 두는 것을 뜻합니다. 다음에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께서 내 죄를 대신하여 죽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 53:5-6 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하였습니다. 세상에 어느 누구도 죄 사함의 자격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짊어지고 자기를 희생해 죽어 준 사람은 예수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친히 마련하신 길이고, 보증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하였습니다. 인간에게는 멸망과 영생이 있는데 그 사이에 생명 되신 예수가 개입되면 영생이고 예수가 빠지면 멸망입니다. 그래서 요일 5:12에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그에게 가는 자는 멸망의 그림자도 없고 다만 영생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믿는 자들에게 영생의 보증이 되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고 나를 죄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항상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미국의 흑백갈등이 깊었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기차에서 백인과 흑인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백인이 칼을 던져 흑인을 죽이려 할 때 옆에 있던 백인 목사가 손을 들어 칼을 막아주었습니다. 칼은 목사의 손에 꼽혔고 피가 낭자하게 흘렀습니다. 싸움은 멈추어졌고 흑인은 목사의 희생으로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고마움을 느낀 흑인은 일생동안 그 목사의 곁에서 자질구레한 일을 돕게 되었습니다. 종종 일에 싫증이 나면 흑인은 불평과 원망을 하곤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목사는 칼 맞은 자신의 손을 그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면 흑인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었는데 그 손은 바로 자신의 생명을 구원한 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도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주님을 통해 구원받은 은총을 생각할 때마다 불평과 원망을 그치고 감사하는 성도가 되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성도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구원 받은 은총을 감사하며 기쁨으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3.주 예수를 믿는 자들은 영원히 복을 받습니다.

아라비아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탐심은 벗어난 욕망이다. 그의 딸은 부정이요, 그의 친구는 폭력이다." 또한 "탐욕과 행복은 한 번도 얼굴을 마주친 적이 없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대부호이면서 미국의 대통령이 된 도널드 트럼프는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부자였던지 하루는 장난감 하나 사는 기분으로 2천9백만 달러짜리 요트 한척을 샀습니다. 이배는 5층으로 되어 있으며, 100개의 방이 있고, 초대형 냉장고 6대에는 1백 명이 3개월 동안 먹을 음식을 저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발관, 미장원, 병원, 당구장, 식당, 오락실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고, 영화관에는 800개의 영화 필름 도서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배를 사고 겨우 1년 만에 트럼프 씨는 "이 배에 있어도 전혀 즐겁지 않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돈으로 행복을 사려고 했으나 기쁨은 그런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찍이 독일의 신학자 알프레드 델프는 "빵은 중요하다. 자유는 더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없는 자유는 방종, 방탕, 탈선에 이르게 합니다. 물질이 선한 물질이 되게 하고, 자유로 참자유가 되게 하고, 지식을 선하게 만들고, 권력을 봉사의 수단이 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에서 옵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고 복 된 것은 주 예수님을 믿는 신앙에서 오는 신령한 복입니다.

주 예수를 믿는 신앙에서 오는 영원한 복은 먼저 구원의 복입니다. 서신서 본문 34절에 보면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하였습니다. 바울 사도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간수가 바울과 실라를 자기 집에 초청하여 온 가족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으니 그 가정에 큰 기쁨이 있게 된 것입니다. 온 천하를 얻고도 구원 받지 못한 자들은 불행한 자들입니다.

구원은 넓은 의미로 12년 된 혈루병에서 고침 받은 여인처럼 질병에서 놓임을 받는 것, 고난과 가난과 억압에서 건짐 받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출 23:25-26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니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잉태치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하였습니다.

다음에 선을 행하고 사랑으로 섬기는 자로 사는 복입니다. 서신서 본문 33-34절에 “밤 2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가다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주고"라고 했습니다. 이는 기쁨을 찾고 행복을 얻은 결과의 행동입니다. 간수의 가정은 바울과 실라를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받은 은혜 찾은 행복이 감사해 두 사람을 대접한 것입니다. 전날 매질하던 사람이 예수님 믿고 구원의 은혜를 받고 나서 사랑으로 섬기는 자로 변했습니다. 전 3:13-14에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하였습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도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영생의 복을 누리는 복입니다. 히9:27에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일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시 사는 부활의 때를 맞게 되는데 예수 믿고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은 자는 생명의 부활로, 믿음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산 불신앙의 사람은 심판의 부활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생명의 부활에 참여한 자들에게는 세상에서 쌓아 놓은 선한 행실에 대한 칭찬과 상급과 면류관을 심은 대로 거둡니다.

심판의 부활에 참여한 자들은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한 불신앙의 죄와 마음으로, 입술로, 몸으로 행한 모든 죄로 인해 무서운 지옥의 형벌을 받고 영원토록 고통당하는 돌이킬 수 없는 저주 아래 처하게 됨을 성경 곳곳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칭찬 받을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을지라도, 상급 받을 만한 선행과 충성이 없을지라도, 면류관 받을 소망이 전혀 없을지라도 주님 안에서 믿음을 고백하고 십자가의 우편 강도처럼 겨우 얻는 부끄러운 구원이라도 받은 사람들은 정말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가운데에는 심판의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이 없이 예수님 잘 믿다가 모두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오늘 사순절 세 번째 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주 예수를 믿는 자에게”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주 예수를 믿는 자에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 예수를 믿는 자에게 구원 받는 은혜가 주어집니다.

◈.주 예수를 믿는 자들은 영원히 복을 받습니다.

아멘.

<2017. 3.19. 성산 교회. http://cafe.daum.net/sungsansarang>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호현낙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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