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아침마다 새로우니[순수하고정직한자의로운자를찾으시는 하나님]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9. 18. 13:21

아침마다 새로우니 (3:19-29)    설교집Ⅰ<아침마다 새로우니> 1 No.1

성경본문[개역개정]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새해를 맞았습니다마는 올해는 추도예배로 시작합니다. 이제까지 하도 사건 사고가 많아서 이제는 어지간한 화면을 봐도 실감이 나지를 않습니다만 이번 지진참사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북단에 있는 반다아체라고 하는 도시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위성사진을 TV로 보고, 또 신문에 나온 사진을 볼 때 너무 놀라웠습니다. 30만 도시가 사라져갈 때 한 순간에 8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람이 언젠가 죽어야 하겠지만 그 고단한 삶에 슬픔과 아픔과 또 심지어는 가족끼리도 나누지 못하고 가슴에 맺혀있는 여러 가지 원망과 이런 것들을 한마디 사랑한다는 말도 남기지 못한 채 죽었습니다.

이번의 재난은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재앙의 규모도, 그 속도도, 그 파괴력도 충분히 충격을 줄 만합니다. 지진이 일어난 그 진앙지의 파괴력은 히로시마 핵폭탄의 250만 배라고 합니다. 얼마나 심했는지 지구 축이 흔들리고 수마트라 섬 전체가 30미터 움직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14시간 만에 그 해일이 아프리카 소말리아 해변까지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파동이 지구를 세 바퀴나 돌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하늘이 흔들리고 별이 떨어진다는 것을 하나의 시적인 귀절로만 알았는데 그것이 현실이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번에 일어난 재난을 과학자들은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대륙을 형성하는 12개의 지각 판 중에 유라시아 판과 인도 호주 판이 부딪치면서 일어난 사고라고.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그런 과학적 설명보다도 왜 그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느냐? 도대체 무슨 죄가 있어서 그런 재난을 당했는가?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인데 왜 그들이 그러한 재난을 당하는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예레미야 애가의 본문 상황과 같습니다. 여기 유다라는 나라가 있고 예루살렘 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이라고 하는 강대국이 쳐들어와서 성을 다 무너뜨립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리고 수많은 사람을 잔인하게 죽입니다. 그리고 잘난 사람들은 다 묶어서 포로로 끌어갑니다. 이제 티끌같이 남은 사람들이 탄식하며 하나님께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 오늘 이 재난이 분명 우리의 잘못, 우리의 불신앙, 우리의 불순종, 우리의 죄값이라고 하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심했습니다. 아무리 우리의 죄가 많았지만 이렇게까지 다 송두리째 죽이고 무너뜨린다면 이것은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그들의 물음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지었던 그 화려한 성전이 돌 하나 남지 않고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여간 충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것은 하나님의 성전이요,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곳이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인데 성전마저 무너진다면 이제까지 성전에 기초를 두고 살아온 우리의 신앙은, 우리의 믿음은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래도 우리가 믿는 사람들인데 저렇게 믿지 않는 사람들의 공격으로 이 나라가 송두리째 무너져야 한다면 믿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도대체 믿음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왜 오늘 우리에게 이런 재난이 왔습니까?

여러분, 만약에 오늘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다면, 여러분은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하나님, 이건 너무 이릅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아주 중요합니다. 또 사랑하는 가족들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엔 내 나이가 너무 아깝고 젊습니다.’ 이렇게 얘기하시겠습니까? 그런 외적인 조건을 가지고가 아니라 한 발 더 들어가서, ‘하나님, 다른 사람을 불러가십시오. 나는 정말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라고 얘기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스갯소리 하나 하겠습니다. 여러분, 어떤 인생이 가장 행복한 인생일까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미국 사람이 받는 연봉을 받으면서, 독일 사람 일하듯이 조금 일하면서, 프랑스 요리를 먹으면서, 영국 집에서 그리고 마지막이 중요해요. 일본 아내와 더불어 사는 것이 최고래요. 동의하십니까? 최악의 인생도 있어요. 북한 사람 월급 받듯이 받으면서, 한국 사람 일하듯이 일하면서, 영국 음식 먹으면서, 일본 집에서, 이것도 마지막이 제일 중요합니다. 한국 남자와 사는 것이랍니다.

제가 며칠 전에 드라마를 한 편 봤습니다. 정말 마음이 찡했습니다. 거기에 보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공부도 많이 못하고, 일찍 경찰에 투신했지만 만년 파출소장으로 일하다가 퇴직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동생이 있습니다. 그 동생은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를 악물고 공부를 하더니 드디어 대학을 들어가고, 또 대학에서도 열심히 해서 좋은 기업에 입사해 고속승진을 합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열심히 밤늦게까지 1 365일 쉬는 날 없이 일을 합니다. 드디어 나이 40에 사장이 되었습니다. 성공스토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신뢰해주던 오너(owner)가 나이가 들어서 바뀌었습니다. 그 아들이 새로운 오너가 되면서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함께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그와 경쟁하고 경계하던 사람들의 충동질에 의해 새로운 오너는 그를 퇴출시켰습니다. 그는 좌절합니다. ‘내가 한 평생을 회사에 바쳤는데 왜 나를 이렇게 쫓아내는가? 이것은 너무나 불공정한 것이다.’ 그리고는 이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숙집 같은 집에 방 한 칸을 차지하고 들어앉아 있습니다. 아내의 눈초리가 정말 따갑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진작 줄을 잘 서라고 말했는데. 그렇게 바보같이 미련하게…’ 온 가족이 외면합니다. 너무 화가 나서 술을 먹고 집에 들어와 가구들을 때려부숩니다. 그리고는 가출합니다. 집을 나가서 헤매는 동안 자기를 되돌아봅니다. 그 때 자기의 잘못을 깨닫게 됩니다. 나는 이제까지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누구보다도 어리석게 살았다. 회사에서 고속승진 한다고, 결혼한 후 집에 있는 아내가 말 한마디 하면 알지도 못하는 게.’ 라고 소리지르며 마치 자기의 직위가 자기의 인격인 양, 그것이 온전히 자기의 능력인 양, 아내를 철저하게 소외시키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들도 어려서부터 일찌감치 모두 유학 보내어 언제 한 번 따뜻하게 안아주고 얘기한 적이 없었습니다. 내가 오늘 아내로부터 아이들로부터 이렇게 철저하게 소외 당하고 따돌림을 당하는 것은 바로 내가 지은 내 죄값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을 비우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내가 잘못했노라고. 그리고 멀리 미국에 있는 자녀들에게 잠깐 가서 아이들을 보고 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공항에서 아내를 떠나 보내고는 그대로 한강으로 가서 떨어져 죽습니다. 새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자신이 없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 이상 잘 나가도 여전히 그렇게 자기 욕망에 매인 존재요, 이제 자기의 현실을 깨닫고 한계에 부딪혀보니 스스로 살아갈 용기와 자신이 없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살아서나 죽어서나 결국은 죽은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까지 어떻게 살았습니까? 정말 내가 한걸음 한걸음 사는 것이 내 삶만큼은 정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이었다고 무엇을 가지고 말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한 순간 재난으로 몰아버리신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언성을 높이고 항의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명한 이유를 들이대셨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 비로 모든 것을 쓸어버리시면서 명확하게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의 영으로 인간을 지으셨건만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하나님을 떠나서 어두운 생각, 어두운 마음으로 살면서 인간은 이제 더 이상 고귀한 영적인 존재가 아니고 육체가 되었다.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자기 욕망을 좇아 살아가는 나방과 같은 인생이 되었다. 무슨 가치가 있는가?

이제 신앙의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 한계를 알게 되고 죽음 앞에 서는 이 두려운 자리에서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총,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고 감사하며 기쁨으로 찬양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사실 잘 나갈 때는 하나님을 믿을 이유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참으로 어려울 때, 절망에 빠질 때, 좌절하게 될 때, 그제야 비로소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얼마나 교만하고 어리석은지 이제는 신앙마저도 내 나름대로 해석하고 내 나름대로 주장합니다. 자기만족을 채우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기에 그렇게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는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어그러져 있는가 하는 것은, 자그마한 통계 하나로도 여실히 알 수가 있습니다. 이번에 일어난 재난 때문에 전 세계에서 온정의 손길이 모아지고 있어요. 통계에 의하면 한 사람이 1년 평균 얼마나 기부금을 내느냐? 미국사람은 70만 원을 낸답니다. 사회보장이 잘 되어 있는 영국이라 그런지 영국사람은 24만 원이라고 합니다. 그럼 한국사람은 얼마냐? 6천 원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천만 기독교인을 자랑하는 한국의 실상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겠습니까? 지극히 자기중심적으로 내 울타리 안에서 나만 잘 살겠다고 하는 이 신앙이 어떻게 순수하고 정직한 자를 찾으시고, 의로운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앞에 내 믿음을 보시고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 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악하고 무지한 우리를 하나님이 끝까지 참으시고 오늘까지 이 자리까지 지켜주셨습니다. 화려한 성전의 허상이 무너질 때 순수한 신앙이 비로소 시작됩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자리다툼하지 마십시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에요. , 나가서 열심히 장사하고 돈 많이 벌어서 좀 귀하게 쓰세요. 이 조그마한 교회에 뭐가 있습니까? 요즘 추세는 슬림형입니다. 작게 하는 거예요. 간편하게 하는 거예요. 사실은 교회에 구름 떼같이 모여서 교회를 크게 하는 것. 그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인가 하고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습니다마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목사가 경계해야 할 가장 큰 유혹은 사람들을 많이 모으고, 교회를 크게 하고, 자기의 이름을 높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는 것이죠.

여러분, 저를 위해서 기도 많이 해 주십시오. 정말로 처음 가졌던 그 초심을 잃지 않도록. 우리 모두 다 마찬가지예요. 교회가 큰 것을 자랑해요. 그것을 자랑할 수도 있죠. 그러나 자랑하는 것은 좋습니다만 그렇다면, 하나님과 나와의 정말 솔직한 내면의 신앙고백이 반드시 살아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있고야 나머지 모든 환경을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죠. 대학입시가 한창입니다만 간혹 떨어지는 학생이 있어요. 꼭 붙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사실은 한 번 떨어지는 것도 유익합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떨어졌거든요. 그래서 절대로 떨어진 사람 무시하지 않습니다. 미련해서 떨어졌건, 공부 안 해서 떨어졌건, 그날 배탈이 나서 떨어졌건,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그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실패를 통하여 하나님에게 한 발 더 가까이 겸손하게 나아가고 이제 그렇게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살 길을 열어주십니다.

소경을 보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저 사람이 저렇게 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본인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누구의 죄 때문도 아니다. 이제 저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리라.’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재난이 도대체 누구의 죄냐 여기에서 그쳐 버립니다. 그러나 겸손하게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는 자에게는 더 이상 그것이 누구의 죄 때문이냐 그렇게 묻지 않죠. 다시 한 번 새롭게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그 삶이 새로워지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영광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새해를 맞으려고 많은 사람들이 정동진도 가고 설악산 대청봉 꼭대기에도 올라가고 심지어 어떤 분들은 정말 새롭게 맞이하겠다고 성지 순례라 하여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다는 시내 산 꼭대기에서 1 1일을 맞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나의 눈물과 아픔과 그리고 나의 한계와 부족함,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공손히 머리 숙여 기도하는 이 자리가 새해를 새롭게 맞는 그 자리인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 가운데 일어나는 수많은 재난 속에서도 지켜주시고 참으로 우리가 이렇게 호흡하며 살아서 하나님 앞에 예배하게 하시니, 이 놀라운 은총을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겸손하게 내 마음을 비워 주님의 은혜가 임하게 하시고, 성령으로 이끄시겠다고 말씀하신 그 약속을 붙들고 믿음으로 살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