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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동호 목사 Facebook. 2017. 11. 2. 목요일4 [목사 독재가 더 무섭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11. 5. 02:05


김동호 목사 Facebook. 2017. 11. 2. 목요일4


생사를 건 교회개혁 읽기 (14)


목사 독재가 더 무섭다.

목사를 목회의 전문가로 인정해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거기에도 매우 위험한 함정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목사를 목회의 전문가로 인정해 주고 선장처럼 세워 줄 때 자칫 잘못하면 목사가 시험에 들어 교회의 독재자로 군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목사가 독재를 하게 되면 그것은 세상의 그 어떤 독재자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 독재중의 가장 나쁜 독재는 목사의 독재다. 세상의 독재자들은 삼권만 장악하지만 교회의 독재자들은 삼권과 삼권보다 더 무서운 영권까지 장악하며 무당과 같은 행동도 서슴치 않기 때문이다.

좀 거칠고 험한 말이 될지 모르나 잘못된 교회의 독재자들은 대개 무당과 비슷하다. "목회자를 잘 섬기면 자자손손 복을 받고 목회자를 잘 섬기지 못하고 거스르면 자자손손 벌을 받는다"식의 공갈(?)도 서슴치 않는다.

목사가 목회의 전문가인 것을 빙자하여 독재를 하는 목회자가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교회는 목사가 독재자가 되는 것을 막는다고 목사의 전문성을 부인해도 문제가 되고, 그렇다고해서 전문성을 인정한다고 목사 마음대로 교회를 전횡하고 독재하게 내버려 두어서도 안된다. 이 딜렘마를 어떻게 푸는가에 교회의 성패와 사활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목사를 독재자가 아닌 전문가로 세우기 위해 나름대로 다음과 같은 제도적인 장치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건강한 당회이다.

선배 목회자들 중에는 당회 없는 목회를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 분들이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는 충분히 이해한다. 당회의 지나친 견제와 월권 때문에 정말 소신껏 목회를 할 수 없는 일이 한국 교회에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당회와 장로의 월권이 문제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당회가 없다면 목사의 월권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월권은 장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도 똑같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당한 견제장치가 없다면 언제나 위험할 수 밖에 없다.

소신껏 목회를 하려고 하는 성향이 강한 목사들 중에 당회를 경히 여기거나 지나치게 기능을 약화시키려고 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무용담처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당회를 무시하거나 약화시키는 목회를 하려는 분들은 소신목회 또는 전문목회를 빙자하여 독재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건강하고 깨끗한 목회를 위해서는 반드시 당회가 필요하다. 당회가 없는 목회와 교회는 마치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아서 달리기는 잘 하지만 막상 멈춰야 할 때 제대로 멈출 수가 없기 때문에 결국 크게 사고를 낼 수 밖에 없다. 당회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는 견제이다.

그러나 당회가 브레이크의 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에는 액셀레이터와 브레이크가 있다. 이것은 자동차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기능들이다. 액셀레이터는 있는데 브레이크가 없다거나, 브레이크는 있는데 액셀레이터가 없다면 그것은 자동차가 아니다.

당회에는 액셀레이터의 기능과 브레이크의 기능이 있어야 한다. 브레이크의 기능은 하지 못하고 액셀레이터의 기능만 감당하는 당회는 좋은 당회가 아니다. 당회는 절대로 목사와 목회의 시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좋은 협조자와 동반자와 되어야지 목회의 시녀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당회가 목회의 시녀 노릇을 하게 되면 발 빠르게 교회의 일을 추친 할 수 있다. 그것은 매력적인 일일 수 있다. 특히 목회자에게는. 그러나 그것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를 탄 것과 같아서 반드시 큰 사고를 내고 실패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당회가 언제나 브레이크 역할만 해서도 안 된다. 브레이크를 열심히 밟고 있으면 사고는 안 나지만 일을 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차라리 내려서 걸어가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고 능률적일 것이다.

한국 교회는 액셀레이터 기능만 하는 당회나 브레이크 기능만 하는 당회인 경우가 많다. 목사와 장로 사이의 파워게임(?)에서 목사의 힘이 강하면 전자가 되고, 장로의 힘이 강하면 후자가 된다. 목사의 힘이 강하면 교회는 '목사의 교회'(pastor's church)가 되고, 장로의 힘이 강하면 교회는 '장로의 교회'(elder's church)가 된다. 한국 교회는 장로교와 감리교 그리고 성결교 등등 여러 교단의 교회가 있지만 엄밀히 구별하면 두 종류의 교회만이 있을 분이다. 하나는 목사교회요 또 다른 하나는 장로들의 교회이다.

둘째, 위임목사 제도를 폐지하고 정기적으로 목사 재신임을 묻는 것이다.

한국 교회에는 목사 위임이라는 제도가 있다. 한번 위임목사가 되면 정년 은퇴까지 신임을 묻지 않고 목회를 위임하는 제도이다. 안정적인 목회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는 점에서 장점을 인정하고 싶지만 그에 따르는 폐해도 만만치 않다. 전문가로서 소신껏 목회를 하는 것은 좋으나 교인들의 중간 평가와 신임을 묻지 않고 은퇴할 때까지 목히를 해 나간다면 십중팔구가 아니라 열이면 열 다 나태한 독재자가 되고 말 것이다.

전문가로서 소신껏 목회를 하면서도 독재에 빠지지 않으려면 몇 년에 한 번 씩 교인들의 중간 평가를 받아야먄 한다. 그래야 나태하지 않고 함부로 독재의 칼날을 휘두르지 않게 될 것이다.

몇 년 전 IBM이 회사 문을 닫을 위기에까지 몰리게 된 적이 있었다. IBM이 그토록 위기에 몰리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었는데 그 중 첫째가 "한번 IBM에 입사하면 절대로 퇴사를 시키지 않는다"는 독특한 IBM의 경영원칙 때문이었다. 스스로 퇴직하기 전에는 절대로 쫓아내지 않았으며 스스로 사표를 내고 회사를 떠났던 사람이라도 언제든지 다시 돌아오겠다고만 하면 누구나 언제든지 다시 받아 준다는 것이 회사의 방침이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회사의 방침이 IBM사 직원들을 안일하고 나태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고 그것이 IBM을 그와 같은 위기로 몰아갔던 것이다. 새로운 회장이 부임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40만 명의 직원 중 85천 명을 일시에 퇴직시킨 것이었다. 일시적으로 많은 경제적인 손실과 혼란이 있었지만 IBM은 그와 같은 강경한 정책을 통하여 다시 살아났다.

목사도 사람인지라 별 차이가 없다. 잘못하면 교인들로부터 불신임을 받을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있을 때 성실하고 겸손한 목회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번만 위임을 받으면 70세가 될 때까지 요지부동인 제도 아래서는 목사가 하나님과 교인들의 종이 되는 사역을 하기는 힘들 것이다.

전문적인 목회를 소신껏 하면서도 목회가 독재로 흐르지 않게 하려면 위임제도를 없애고 몇 년에 한 번씩 교인들의 평가를 받는 것이 좋다. 그리고 교인들의 재신임을 얻지 못하면 교회를 물러날 각오를 가져야만 한다. 교인들이 목회자 무서운 줄도 알아야 하지만, 목회자들도 교인 무서운 줄을 알아야 한다. 나는 그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교인들에게 위임 목사를 포기하고 정기적으로 교인들의 재신임을 받겠다고 선포하였다.

(
오래 전 일이라 정확한 숫자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40여 표의 반대표와 그보다 훨씬 많은 기권표를 받았다. 한국 교회 정서상 담임목사에게 반대표를 던지는 것이 불편했던 사람들이 기권표를 던진 것인데 그것은 사실상 반대표와 같은 것이었다.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나를 겸손하게 하고 더욱 더 목회를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높은 뜻 교회는 매 6년 마다 담임목사의 신임투표를 실시하고 있다. 높은 뜻 교회에는 담임목사의 위임도 없고, 은퇴한 후 원로도 없다. 목사의 지나친 월권과 독재를 막고자 함이다.)


출처 : 삶과 신앙
글쓴이 : 스티그마 원글보기
메모 :  목사 독재가 더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