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이 노래를 부르리라[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의지이다]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9. 19. 17:58

이 노래를 부르리라 (26:1-9)    설교집Ⅰ<아침마다 새로우니> 1 No.6

성경본문[개역개정]

1.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높은 데에 거주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6.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리로다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또 주를 기억하려고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올 해는 광복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곽선희 목사님의 회고에 의하면 그 분이 13살이었던 어느 날 그 동네 목사님이 집을 찾아오셨대요. 할아버지를 찾아오셨습니다. 그 할아버지가 그 동네 교회를 일으키신 장로님이셨거든요. 목사님께서 할아버지의 손을 잡으시고, ‘장로님, 해방아 되었답니다.’ 그리고는 두 분이 우셨대요. 그리고 그 동네에서 한 달 동안 해방을 기뻐하는 잔치를 했대요. 1945 8 15, 그 당시는 모두 가난했습니다. 배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 땅에서 내가 주인 노릇하며 살게 되었다는 그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이토록 감격해서 한 달 동안 잔치를 했다는 것입니다.  자유를 빼앗긴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 가 하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전에 본 영화가 기억납니다. <Bloody Sunday> ‘피의 일요일 이죠. 인간 역사상 피의 일요일이 한둘이 아닙니다만, 이 영화는 1972 1 30일 북아일랜드의 런던데리에서 일어난, 자유를 갈구하는 시민들의 평화행진이 어떻게 피바다로 끝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한 것입니다. 인도네시아도 350년 간 화란의 지배를 받았습니다만 사실 아시아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영국 옆에 있는 아일랜드도 이미 17세기에 역사적으로 유명한 크롬웰이 지배하기 시작한 이후로부터 수백 년 동안 고통 당하고 짓눌려왔습니다. 가까스로 독립을 했지만 북아일랜드는 지금도 회복되지 못하고 영국 땅으로 남아있습니다. ? 수백 년 동안 영국의 이주정책으로 인해서 그 땅에는 영국 사람이 너무나 오래 동안 살고 있는 것이죠. 우리는 2차 대전이 극적으로 끝나면서 일본사람들의 지배가 100년이 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털고 나갔습니다만, 만약 아직도 경상도 지방에 일본사람들이 남아서 섞여 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문제는 아주 심각해지죠. 영국인들과 아일랜드 사람들의 공존이 불안합니다. 거기에다가 영국사람들은 신교이고, 아일랜드 사람들은 전통적인 카톨릭입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원수가 되어 살고 있는 것이지요. 그 오랜 투쟁의 역사 속에 과격파들이 있습니다. 영국 정부군이 있고, IRA 아일랜드 독립 해방군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화해를 모색하려는 온건파들이 있습니다. 그 영화의 주인공으로 한 하원의원이 나옵니다. 그는 영국사람입니다만, 그와 함께 일하는 여인은 아일랜드인이에요. 천주교인이에요. 서로 사랑합니다. 그 사회에서는 신교도와 구교도가 드러내놓고 교제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기본적인 시민의 자유를 돌려달라.’ 고 행진을 하다가, 군인들에게 비참하게 진압되고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는 그러한 영화입니다. 가슴이 떨려서 그것을 다 못 보겠더라구요. 그들이 행진을 하면서 노래를 합니다. 우린 승리하리 언젠가 (We shall overcome someday)’ 그 영화를 보고나니, 오늘 우리가 이렇게 마음대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이 모든 것, 자칫 지루하기까지 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요. 얼마나 소중한 하루이고 얼마나 소중한 인생인지요.

우리가 주중에는 교회공간을 이용해서 한마음노인대학을 운영합니다. 그래서 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일주일에 4번 어르신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운동도 하고, 점심도 먹고, 가요도 부르고 합니다. 제 방에 앉아서 들어보면 오전에는 찬송이 흘러나오고 오후에는 가요가 흘러나옵니다. 그런데 느낌이 다릅니다. 유행가를 부르실 때는 흥이 나고 신바람이 납니다. 유행가라는 것이 알고 보면 가사는 조금씩 다르겠습니다만, 주제는 항상 같아요. 깨어진 내 사랑 무너진 내 인생, 나이가 이미 7, 8, 9학년이 되어서도 그것이 영원한 주제입니다. 거기에 내 이름이 있고, 눈물이 있고, 내 인생이 있는 거지요. 그런데 찬송할 때는 그 느낌이 전달이 안돼요. 열심히 애를 써서 부르시는데 별로 다가오는 것이 없어요. 솔직히 말하면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지요. 어려서부터 유행가에 젖어 살았고, 또 그 중에 어떤 노래는 그것이 바로 내 노래요, 그것이 바로 내 고백이라며 정작 그 노래를 부르는 가수보다 내가 더 잘 부를 수 있다고까지 나서는그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여러분, 요즘 유행하는 올챙이 송을 아십니까? 제가 그 가사를 불러드리겠습니다.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 앞다리가 쏘옥 뒷다리가 쏘옥/ 팔딱팔딱 개구리 됐네.’ 아주 간단한 노래인데 아이들이 매우 좋아합니다. 흔히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한다.’ 고 자기의 옛 모습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올챙이가 개구리로 바뀌는 결정적인 사건은 뭡니까? 개구리에게는 앞다리 뒷다리가 나와서 물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뭍에 올라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개구리는 물과 뭍의 두 세계를 함께 공유하며 살게 된 것이지요. 아주 중요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올챙이처럼 꼬물꼬물 좁은 웅덩이에서 사는 것이지요. 그러나 믿음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또 하나, 그 다리로 딛고 서 있는 또 하나의 세상이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이지요. 믿음이라고 하는 다리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유대 백성들의 노래입니다. 앗수르의 침략이 지금 눈 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선지자의 눈으로 볼 때 이런 위기 속에서도 백성은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불신앙과 세속과 타락에 매몰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곧 전쟁이 납니다. 이제 곧 심판이 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입니다. 절망입니다. 그러나 그날이 오면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시지만, 다시 그 심판 뒤에 그날이 오면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새롭게 하십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바라는 것을 채워주십니다. 그러니 이 노래의 주제는 주님을 의지하라 입니다. 왜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까? 그 분만이 공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만이 진정 정의이시기 때문입니다.

직장 다니시는 분들이 퇴근 후에 삼삼오오 모여서 술 한 잔 나눌 때 안주거리가 무엇입니까? 오징어 뒷다리가 안주거리겠습니까? 아니요. 직장 상사들이 안주거리가 되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면서 하루에 쌓였던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지요. 그 핵심이 무엇이겠습니까? 억울하다는 것이지요.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내가 진급해야 하는데그렇습니다. 세상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실리를 추구합니다. 좋은 대학을 가려고 애를 쓰고, 좋은 직장을 얻으려고 애를 쓰고, 승진하려고 애를 쓰고, 그 욕심이 지나쳐서 때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언젠가는 내가 저 사람을 밟은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나도 누군가에 의해 밟히고 있습니다. 힘을 남용하고 있습니다.

지난 번 기아자동차 노조의 채용비리를 보면서 힘이 있는 곳은 정부든지, 군대든지, 노조든지, 시민단체든지, 두 세 사람이 모여 있는 자그마한 모임일지라도 힘의 남용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더 고생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 세상입니다. 과연 우리는 전혀 없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때로는 억울한 일을 당합니다. 눈물을 뿌립니다. 이건 정말 억울하다고 호소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판단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분은 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직하신 분입니다. 그 분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 분의 판단은 항상 옳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의 판단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고통의 밤을 보내는 그 시간에만 우리는 그분에게 귀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비로소 주님의 의로움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며칠 전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노숙자끼리 싸움이 붙었습니다. 이유는 밥을 타먹을 때 한 사람이 두 번 타먹었대요. 다른 한 사람이 그것을 보고 왜 두 번 타먹느냐고 했더니, 그 말을 듣고 화가 나서 그 사람을 밀어버렸는데,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서 죽어버렸어요. 계획적인 사고였습니까? 아니에요. 그 말 한마디에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그랬습니다. 그가 죽으리라고 생각했겠습니까? 그냥 밀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언젠가는 남편이 아내를 한 대 때렸는데 그만 아내가 죽어버렸습니다. 평생 그 멍에를 어떻게 메고 살아갈 것입니까? 우리 잘난 체 할 것 하나도 없어요. 순간순간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셔서 이렇게 살고 있지, 우리가 잘나서 이렇게 살고 있는 것 아닙니다.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분노를 다스릴 사람이 우리 중에 몇 사람이 있겠습니까? 없어요. 나의 죄를 발견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사회의 규칙을 어겼다. 이것만이 죄가 아닙니다. 성경은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넘어서서, 마땅히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 것이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하나님의 그 사랑을 받았는데 너는 어찌 사랑 받지 못한 자 같이 메마른 마음으로 사람에게 칼을 들이대면서 판단하고 심판하느냐?

전쟁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의 가정이 전쟁터에요. 아내가 내뱉는 그 말 한마디가 가슴을 찢는 것이지요. 우리가 고통이 있을 때, 억울한 일이 잇을 때,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는 것 같아서 절망합니다. 여러분, 절망도 교만이에요. 절망할 처지가 아니에요. 순간 우리에게 일어나는 유혹과 시험을 이길 아무런 능력도 없는 주제에 하나님이 지켜주셔서 오늘까지 살았는데 뭐 그렇게 대단한 존재라고 절망을 합니까? 거기서 더 낮아져야 해요.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해요. 나를 이 세상에 보낸 여기에 하나님의 은총이 있고 섭리가 있습니다. 내가 저 남자를 만나 사는 여기에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받고 살아야 합니다. 저가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그를 사랑하지 못했고 품지 못했던 것이에요. 우리는 흔히 조개의 진주를 말합니다만 진주 없는 조개야 껍데기이지 뭡니까? 당장 조개 하나를 주워서 펴봤는데 진주가 없다면 어떻게 합니까? 당장 버립니다. 껍데기 같은 인생이지요. 모래를 삼켜서 진주를 만들어내는 그 아픔을 겪고 나서야 그 인생이 비로소 참다운 인생이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아내를 통해서 남편을 연단하시고 남편을 통해서 아내를 연단하십니다. 그래서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여러분, 성질이 날 때는 싸워야겠죠. 그래도 기도하면서 싸우십시오. ‘하나님, 이것 잘 수습해주십시오. 저도 제 마음이 어디로 갈지 모릅니다. 절 좀 붙들어주십시오.’ 이것이 중요합니다.

주의 은총으로 사는 인생. 오늘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한결 같은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평강을 주신다. 그 유명한 기독교 변증가인 C.S 루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한 순간의 감정이나 느낌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이다.  

저는 찬송 432장을 부를 때마다 생각나는 일화가 있습니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제가 서울 소망교회에서 교구를 맡고 있을 때 구역심방을 갔습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얼굴이 있어요. 중년여자 분인데 얘기를 들어보니, 그 날 병원을 가는 날인데 그 어둡고 괴로운 마음을 구역식구가 눈치를 채고 마침 목사님도 오시니까 기도를 드리고 병원에 가자고 해서 왔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고 병원에 가셨습니다. 며칠 후에 입원했다는 얘기를 듣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수술 전에 간단하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자리에 웬 남자가 서 있더라고요. 남편이었어요. 예배를 드릴 때, 찬송가를 하나 불렀는데 그것이 바로 432장이었습니다. 성경 한 구절 읽고 기도를 하고 수술을 했습니다. 그런데 두 주 정도 지나서 수술을 잘 받고 회복이 되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리고는 그 다음부터는 두 분이 같이 교회를 나오시더라고요. 그리고는 구역장을 통해서 그 뒷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분들은 두 분 다 재혼을 하신 분이었답니다. 자녀가 있는데 재혼을 하려니 쉽지 않았대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갈등이 심해졌어요.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어서 여자분이 병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수술까지 한 것이지요. 그러니 그 자리에 누워서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나지 않았겠습니까? 수술 전 예배를 드릴 때, 이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남편 분이 일년에 한 번 정도 교회를 나왔답니다. 아마 아내의 생일선물로 교회를 나갔나 봅니다. 그런데 이 분이 딱 한 곡 기억하는 찬송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432장이었다는 것이지요. 그 때, 이 분이 마음을 돌이키게 된 이유가 그 찬송을 들으면서 그 찬송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찬송은 무엇입니까?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그 찬송을 부름으로 해서 그 찬송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여러분이 늘 즐겨 부르시는, 여러분의 눈물이 담겨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담겨있는 찬송은 몇 장입니까? 그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한 순간의 감동을 통해서도 우리를 구원하시지만 이제 그것을 발판으로 한결 같은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은혜 받으면 찬송이 나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분은 은혜를 받기 위해서 계속 찬송합니다. 유행가에 젖어 사는 그런 인생으로 살지 맙시다. 그렇다고 제가 유행가 부르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유행가 두 곡 부르실 때 찬송 한 곡 부르세요. 찬송을 통해서 우리의 앞날을 내다 볼 수 있습니다. 유행가치고 미래를 노래한 것이 없어요. 다 지나간 깨어진 과거를 아파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닥쳐오는 미래를 용기 있게 맞설 수 있으려면 하나님의 은혜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한결 같은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자를 평강으로 지키신다.

 

기도

하나님,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고통을 겪는 우리에게 새로운 약속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 마음을 그대로 내버려두면 눈물과 고통과 아픔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붙들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거기에 새로운 은혜가 있고, 살아가는 지혜와 용기가 있음을 기억합니다. 하나님, 한결 같은 마음으로 주를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