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목사
Facebook. 2018. 1. 14. 주일
마닐라 평강교회에서의 설교
원고입니다.
빨리 날이 밝았으면 좋겠습니다.
교인들이 이 설교를 들으며 은혜 받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목사에게는 교인들이 말씀을 들으면 은혜 받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 더 큰 보람과 기쁨과 행복은 없습니다. 원고를 작성하는 내내 은혜의 흥분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것을
느끼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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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1-6.
1.
믿음의 사람 다윗은 자신의
삶을 아주 기막히게 표현하였습니다.
부족함이 없다.
차고 넘친다.
한 마디로 다윗은 자신의 삶에 대하여 100% 만족한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2.
다윗은 정말 그런 삶을 살았던 사람일까요?
다윗은 정말 아무런 문제도, 어려움도, 부족함도
없는 그런 완벽한 삶을 살았던 사람일까요?
제가 아는 다윗은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입니다.
임금인 사울에게 밑보여 아무런 죄 없이 광야를 떠돌며 목숨을 겨우 겨우 부지하던 때도 있었구요.
아들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하여 신발도 신지 못한채 원수들에게 조룽을 당하며 얼굴도 들지 못하고 피난을 가야만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고난과 역경
그리고 삶의 고단함과 두려움은 그 누구 못지 않게 당하며 살았던 다윗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어떻게
부족함이 없다.
차고 넘친다라고 고백했을까요?
거짓말일까요?
허풍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며
그 때문에 늘 만족한
100% 만족한 삶을 살았던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3.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 비결이 뭘까요?
너무 싱겁지만
믿음 때문입니다.
다윗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의 믿음은 무엇이었을까요?
복잡하지 않습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그런데 아주 확고합니다.
그것은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목자시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의 목자가 되셔서 언제나 자신의 삶을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는
믿음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목동이었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쓸 수 있었습니다.
4.
다윗은 자신의 삶에 때때로 들이닥쳤던 고난과 역경과 어려움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죄로 인한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하여 받은 수모와 역경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죄로 말지 않은 고난도 있었습니다.
오히려 의로웠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도 있었습니다.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백성들에게 칭송받는 것을 시기한 사울 때문에 당한 고난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죄로 인하여 받는 고난은 당연한 것이라 여겼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셔서 죄에 대하여 눈감아 주시지 않으시고 그렇게 하신다는 것을 알고 순순히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철저히 회개함으로 그 고난의 줄을 끊어 냅니다. 끊어 낼
줄 알았습니다. 회개하면 결국 하나님이 그 고난의 줄을 끊어 주신다는 믿음이 다윗에게는 있었습니다.
다윗은 죄 없이 당하는 고난도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연단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정금같이 연단하기 위하여 그러시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고난을 당해도 억울해 하지 않았고
불안해 하지 않았고
두려워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믿음 때문에
다윗에게 임했던 이런 저런 고난과 역경과 아픔과 어려움은 다윗의 삶에 아무런 상처도 남길 수가 없었습니다. 다윗을 전혀 흔들 수가 없었습니다.
5.
다윗은 많은 고난을 당하였으나
그 고난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그 모든 고난에서 하나님이 반드시 자신을 구해 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막내가 여섯 살 때 골목길을 함께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골목 아래 쪽에서 5학년 짜리 아이 하나가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를 보자 우리 막내가 저에게 일렀습니다.
'저 형아가 나 때렸어'
현행범(?)도 아닌데 어른이 복수해 주는 것이 마땅치 않아서 못들은척 하였습니다.
막내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 억울했습니다.
내 손을 뿌리치고 그 아이에게로 걸어가 그 5학년 짜리를 발로 탁 차주고 돌아왔습니다.
우리 막내
무사했을까요?
당현히 무사했지요.
왜 무사했을까요?
제가 옆에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 때 저는 다윗이 골리앗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워 이길 수 있었던 이유를 알았습니다.
다윗 여섯 살
골리앗 5학년
하나님이 80kg
정말 이런 믿음만 있다면
우리는 여섯 살 짜리이고
세상은 골리앗만 하다해도 두려울게 없겠지요.
고난 좀 당한다하여도 억울할 것도 두려울 것도 없겠지요?
시편 11편에는 다윗의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악인이 화살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데서 쏘려하는도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다윗을 향하여 악인의 화살을 겨누고 있는데 사람들 보기에는 다윗이 천하 태평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빨리 도망하라고. 산으로 도망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도망했는데 뭘 또 도망하느냐 묻습니다.
어디로 도망했느냐 물으니
하나님께로 도망했다 대답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보이지도 않고 믿어지지도 않으니 다윗이 하나님께 피한 것은 피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을겁니다.
그러면
다윗은 하나님이 보였을까요?
아니요.
다윗도 안 보였을겁니다.
하나님은 보이시는 분이 아니니까요.
믿었습니다.
믿고 피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피하였다면 다윗은 죽고 망했을겁니다.
6.
다윗이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된 데에는 또 다른 중요한 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삶의 만족을 우리와 같은 세상의 것에서 찾지 않았다는 겁니다.
다윗의 시편 4편 7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우리들의 대부분의 삶의 의미와 목적과 만족을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함에 두고 삽니다. 저도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함이 좋습니다. 쉽게 말해 돈이 좋습니다. 물질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에서 삶의 만족을 취하려고 하는 자들은 언제나 실패합니다.
지금 필리핀의 임금 수준을 보니 우리나라 80년 대 초쯤 되는 것 같습니다. 50년대는 물론이고 60년대까지도 우리나라가 필리핀보다 오히려 가난했었을겁니다. 저는 상고를 졸업하고 대학진학에 실패한 후 69년 세운상가 점원이
되었었습니다. 그 때 제가 처음 받은 월급은 만 원이었습니다.
77년도 결혼했을 당시 교육전도사로 교회에서 받은 월급은 3만 5천 원이었고 78년 신대원을 졸업하고 처음 전임전도사가 되었을 때
제 월급은 7만 원이었습니다. 그리고 81년 부목사가 되어서 월급이 30만 원으로까지 올랐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과 중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참 가난했었습니다. 학생들의 생활 환경을 알아보기
위한 설문지가 당시에 있었는데 질문들이 웃겼습니다. 라디오 있냐? 선풍기
있냐? 텔레비젼 있냐? 전화 있냐?
뭐 있으면 부자였을까요?
그 때는 아무거나 있으면 부자였습니다.
선풍기 하나 변변히 없었던 때였습니다.
지금은 뭐 있으면 부잘까요?
지금은 뭐 있으면 부자라는 시점을 지나도 훨씬 지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올해 우리나라는 드디어 국민소득 3만 불을 넘어선답니다.
필리핀에 며칠 살아보니
내가 어마 어마한 부자입니다.
저는 부자가 솔직히 좋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전보다 더 행복해진건 아닙니다.
지나가는 100사람에게 물어보십시오.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
뭐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았을까요?
1등 그럭저럭 삽니다.
2등 마지 못해 삽니다.
3등 뭘까요?
네 죽지 못해 삽니다일껍니다.
7.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천하보다 크고 귀하게 창조하셨기 때문에
사람은 천하를 다 얻어도 채워지지 않는답니다.
그러므로 삶의 만족을 세상과 천하에서 얻으려 한다면 천하를 다 얻어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늘 부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인물 중에 1등으로 부귀와 영화와 쾌락을 누리며 산 사람이 있습니다.
솔로몬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모든 강물은 연하여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는도다.
다윗이 부족함이 없는 살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삶의 의미와 목적과 만족을 세상에서 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있습니다.
그것을 누리게 되면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있거나 없거나
외양간에 소가 있거나 없거나
우리에 양이 있거나 없거나
큰 상관 없습니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큰 상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것을 뛰어 넘어 사는 사람이라
항상 기쁘고 감사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부한데도 처할 줄 알고
비천할데도 처할 줄 압니다.
늘 자족할 줄 압니다.
8.
바울은 천막깁는 막 노동자였습니다.
그런데 전혀 기죽지 않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삶의 부족함을 전혀 느끼지 않았습니다.
저는 재작년 말 은퇴를 하였습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은퇴를 해도 원로목사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내도 동의해 주었습니다.
은퇴하기 전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한 달에 얼마면 살 수 있겠어?
아내가 대답하였습니다.
150만 원이면 충분히 살지 뭐.
안심이 되었습니다.
저도 150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의 대부분을 포기해야 할 것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얻은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가난해진다고 빼앗기는 것들이 아닙니다.
저는 자녀들과 사이가 좋습니다.
아내와도 사이가 괜찮습니다.
예수 믿고 사는 재마도 압니다.
자가용도 없어지겠고
집도 줄여야하겠지만
그게 꼭 유쾌한 것만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못 살 것 같지는 않습니다.
9.
다윗이 부족함이 없고 차고 넘치는 삶이라고 고백한 단 하나의 이유와 조건은
오늘 본문 1절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구절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시기 때문에
그게 전붑니다.
그거 하나면 되는 겁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말씀 속에는
그래서 다윗 자기는 죽으나 사나 하나님만 따라갈꺼라는 다짐과 고백이 있습니다.
하나님만 따라 살꺼니까
부족함이 없을꺼라는 겁니다.
입으로 목자라 하면서도
따라 살지 않고
자기 멋대로
세상을 좇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늘 불안할겁니다.
늘 부족할겁니다.
늘 허무할겁니다.
마셔도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삶의 갈증을 느끼실겁니다.
10.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하였습니다.
사람은 믿음으로 사는 겁니다.
다윗처럼 믿으면 다윗처럼 살 수 있습니다.
다윗만큼 믿으면 다윗만큼 살 수 있습니다.
저는 다윗처럼 살고 싶습니다.
믿음에 제 인생 전부를 걸고 하나님을 좇아 살겁니다.
따라 살겁니다.
그리고 다윗처럼 고백할겁니다.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제 삶의 잔도 넘칩니다.
여러분들도 그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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