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배우고 가르치며(감옥과 수도원의 차이,어거스틴,괴테) / 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1. 23:14

2009 5 17 주일예배

배우고 가르치며

 

   (딤후 2:1-7)

  1.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2.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있으리라
  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얻지 못할 것이며

 

 

 

  1. 수고하는 농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2.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제가 어렸을 때에는 유년주일학교 예배가 주일 아침에도 있었지만 주일 오후 5시에도 있었고 수요일 오후 5시에도 있었어요. 제가 4남매 맏이였기 때문에 동생들을 데리고 교회를 다녔습니다. 주일 아침에야 선생님들이 다 나오지만 주일 오후예배나 수요일 오후예배에 나오시는 선생님은 한 분이나 두 분이에요. 참 대단한 분들이에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분이 한 분 계셔요. 수요일 오후에 아이들을 데리고 예배를 드리던 남자 선생님이셨는데요, 아마 이분이 열심은 있었는데 말씀을 많이 준비하고 공부하는 분은 아니셨던 것 같아요. 수요일 날 아이들을 모아놓고 예배를 간단하게 드린 다음에 2부 순서로 서부활극을 얘기하기 시작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는 저희 집에 TV가 없었기 때문에 그 이상 재미있는 게 없었어요. 저만 그런 게 아니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처지가 똑같아서 목을 빼고 그 활극을 듣습니다. 그런데 꼭 총을 뽑는 순간 딱 끝내시는 거예요.“자, 과연 어떻게 될까요? 다음 시간에 계속합시다.”그래서 그 다음 수요일을 기다렸던 기억이 납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 생각해 보면 기독교 교육의 원칙에서는 사실 많이 빗나갔지만 그러나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 교회를 가면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고 칭찬을 듣고 좀 잘못해도 참아주시는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서부활극을 듣고도 목사가 됐구나.' 그러나 언제까지 서부활극만 듣고 있어선 안 되죠. 언젠가는 제대로 된 말씀을 들어야 되는 거죠.

   오늘 사도 바울이 아들 같은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디모데야, 세상에 환란풍파가 많지만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를 알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 이게 비밀이에요.

   오늘은 선생님 주일이에요. 원래 스승의 날이 있었잖습니까? 신문기사를 보니까 평균 연령 63세 늦깎이 주부들이 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글을 쓰지 못해서 한평생 고통당했던 분들이 뒤늦게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를 해서 스승의 날을 맞아 선생님에게 편지를 한 장 써야 합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씁니다. 어설프게 편지 한 장을 써서 선생님께 드리면서 너무나 즐거워하고 기뻐해요. 그 중에 나이 70인 어머니가 계시는데 그 분이 이렇게 말합니다.“내가 예전에 우리 아들이 군에 가서 고생할 때 좀 힘내라고 그 한마디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글을 몰라서 쓰지 못한 게 마음에 한이었는데 이제라도 글을 알게 되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여러분, 글을 모르고 세상을 살 수 있어요?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그 많은 간판들이 얼마나 스트레스가 됐겠어요?

   오늘 권사님이 기도하시면서 저보고 안식년 동안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니까 스트레스가 확 오네요. 좀 쉬었다 오시라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저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러셨으려니 하고 감사함을 드립니다.

   여러분, 글을 모르고는 세상을 살 수 없어요. 그런데 우리 신앙생활이 그래요. 성경에 지명도 많고 연대도 많고 인물도 많고 숫자도 많고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거 외우라는 거 아니에요. 그 안에 핵심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십자가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에요. 그거를 날마다 먹고 마시고 힘을 얻어 살아라, 그런 얘기에요. 그런 점에서 먼저 믿는 우리는 다 교사에요. 우리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이 직접 하나님을 만나는 거 아니에요. 먼저 믿는 사람들의 믿음을 보고 믿게 돼있어요.

   오늘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합니다. `내가 네게 전한 것을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이게 하나님 만나는 방법이에요. 예수 잘 믿는 방법은 예수를 잘 믿는 사람과 친구가 되는 거예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에요.

   기독교 교육이란 뭐냐, 예수를 만나고 그를 통하여 은혜를 받은 사람이 아직 그 예수를 모르는 자에게 예수를 전해주는 것, 이게 기독교 교육이에요. 기독교 교육의 원칙을 사도 바울이 세 가지 얘기합니다. `군사같이, 경기자같이, 농부같이 배우고 가르치라.' 우리가 의도적으로 교육을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 주위에 많은 사람들을 보고 배우게 되고 또 내 모습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가르치게 되는 거죠. 배우고 가르치면서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군사같이, 군에 가기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거기에는 훈련이 있고 연단이 있고 고난이 있잖아요. 제가 논산훈련소에 들어갔는데, 군에 들어간 첫날입니다. 자다 말고 일어나 불침번 서라고 하더라고요. 집에서는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자다 말고 눈을 비비고 막사 앞에 나가서 밤하늘의 달을 바라보니까 그제야 집이 그립더라고요. 그래도 내 마음대로 집에 갈 수 없어요.

   제가 8월에 입대했었는데 복더위에 논산훈련소에서 겪은 목마름의 서러움을 잊을 수 없어요. 제식훈련을 하는데 잠깐 휴식시간이 됐어요. 연병장 저 끝에 있는 주전자를 향해 수많은 훈련병들이 덤벼드는 거예요. 그러니 어떡해요. 단 한 사람도 물 한 모금 못 먹었어요. 서로 먹겠다고 싸우다가 물 다 쏟아지고. 보다 못한 교관이 나오더라고요.“물마시고 싶은 사람, 집합”그러더라고요. 좍 줄을 섰습니다. 안서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뒤늦게 `물 좀 마셔야지'하고 줄을 섰더니“차렷”하더니 앞에서부터 주먹으로 한대씩 때려 주는 거예요. 물을 주는 게 아니라 아구통을 먹이는 거예요. 순간 `아차' 했습니다. 요령이 모자랐던 것이죠. 눈치를 살피고 나갔어야 되는데 물 마시려고 하는 순진한 마음에 나갔다가 매만 얻어맞으니 눈물이 핑 도는 거예요. 이제는 아무리 목말라도 그때 생각하면 넉넉히 참을 수 있어요.

   여기 인도네시아가 선교지라고 단기 선교 팀들이 오잖아요. 이 분들이 와서는 간혹 깜짝 놀라잖아요. 왜냐하면 보통 선교사님들도 기사도 부리고 식모도 부리고 또 여기는 대체로 집들이 크잖아요.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사람부리면서 산다고 놀라죠.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래서 어떤 선교사들은 특별히 젊은 팀들이 오면 그대로 깔리만탄에 데리고 가서 원주민 마을에 두 명씩 뿌린대요. 그리고 34일 지내게 한 다음에 다시 가서 찾아 온대요. 그러면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곳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못 가서 막 뒤틀리고 고통 받고 있다가 선교사님을 만나면 눈물을 흘리며 반가워한대요. 희한하죠. 그러고 돌아가면 은혜 받았다고 한대요. 그리고 선교비를 보낸대요.

   눈높이를 잘 맞춰야 돼요. 저 사람의 필요가 뭔가를 잘 알아야 되요. 고난에 유익이 있는 거예요. 그렇게 고난을 겪어봐야 군기가 딱 서는 거예요. 내 주장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공통된 목표를 향해서 자기를 낮추고 마음을 모으는 거예요. 절대 복종하는 거예요.

   참 반가운 소식이 있어요. 이렇게 경제가 어려울 때 해병대에는 지원하는 사람이 넘쳐난다는 거예요. 해병대 들어가기가 서울대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거예요. 뭐냐, 한 번 나 자신을 시험해 보겠다. 참 대단한 거예요.

   여러분,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를 아세요? 사실 객관적 조건은 똑같아요. 한번 들어가면 마음대로 못 나와요. 정해진 시간대로 주는 밥 먹어야 되고 움직여야 돼요. 그런데 하나는 감옥이고 하나는 수도원이에요. 결정적 차이는 마음이에요. 한쪽은 억지로 끌려간 거고 한쪽은 자기가 깊이 생각하고 선택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간 거예요. 군대도 어떤 사람은 끌려가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어렵다고 하는 데를 자원해서 들어갔으니 그 인생의 결말은 뻔하지 않아요.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에요.

   <삼국지>를 읽어보면 다양한 인물들이 나옵니다. 유비, 조조, 손권, 이 사람들은 천하를 쥐려고 하는 주군들이에요. 이 사람들에게는 두 그룹의 무리가 필요해요. 한쪽에는 지식인, 문신들이 필요해요. 모사요, 재사들이 필요한 거예요. 그러나 또 한쪽에는 무신들, 장수들이 필요한 거예요. 이 사람들을 잘 불러 모아야 천하를 경영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다고 주군이 `, 이리와' 이렇게 부르지 않아요. 혼란한 시대이기 때문에 문신과 장수들도 `이 혼란한 시대에 어떻게 해야 내 꿈을 펼칠 수 있을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요. 신하들도 주군을 선택하는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유비가 천하를 얻기 위해서 제갈공명을 세 번이나 찾아간단 말이에요. `삼고초려'지요. 심지어는 조조도 얼마나 관우를 탐냅니까? 몇 번이나 관우에게“내게 오시오”라고 청을 합니까? 깊이 생각해야 돼요. 내 인생이 걸려있기 때문에.

   여러분, 그러나 오늘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네 인생의 주인으로 붙들어라. 그리스도 예수가 주시는 은혜로 세상을 살아가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어라.' 예수님을 붙드세요. 좋은 군사가 되세요. 좋은 군사라는 것은 태도를 말하는 거예요. 일편단심의 태도를 말하는 거예요. 그러려면 그가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마음을 활짝 열고 그 말씀을 들어야 해요.

   우리가 예배를 드립니다. 주일 단 한 번의 예배지만 자세가 문제를 결정해요. 마음을 열고 들어야 돼요. 우리가 마음을 열기 전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요. 여기서는 비가 쏟아지면 얼마나 요란합니까? 그런데 항아리에 물 한 방울도 안 들어갔어요. ? 뚜껑을 닫아 놨기에. 뚜껑만 열면 한 순간에 차고 넘칠 텐데. 여러분의 선택이에요.

   , 경기자같이 배우고 가르치라. 법대로 달려야 된다. 규칙대로. 그러나 눈에 보이는 규칙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자기와의 싸움이에요. 얼마 전에 프로야구선수들이 원정경기 가서는 경기 외에는 호텔에 숙박해야 하고 이러다 보니까 무료해져서 인터넷 도박을 하다가 많은 사람이 적발되고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때로 승리에 대한 욕심이 지나쳐서 슬럼프에 빠져요. 그걸 극복해 보려고 약물을 쓰잖아요. 실패하는 거예요. 자기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거예요.

   `보아'라고 하는 가수가 있더군요. 어려서부터 만들어진 연예인이더라고요. 일본에 가서 스타가 돼서 이제는 일본과 한국을 아우르는 스타가 됐는데 얼마나 인기에 휘둘리고 마음이 힘들겠어요, 이제 갓 스물이 넘은 것 같은데. 그런데 차를 타고 이동하고 힘든 중에도 책 읽기를 즐긴다는 거예요. 기자가 묻습니다.“피곤할 텐데 책을 읽습니까?”그랬더니“저는 책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세계를 보면서 도전을 받고 영감을 얻습니다.”내가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한 것도 중요합니다만 보다 더 넓은 관점에서 볼 수 있어야 돼요. 또 다른 세상과 소통해야 돼요.

   , 우리가 인생을 달려갈 때 어떤 법을 따라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셔요. 하나님의 법이 있어요. 예수님께서 발견한 법이에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저를 기뻐하노라.'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늘 들어야 돼요. 말씀을 들으면서 그걸 들어야 돼요.

   기도원에 어떤 문제를 가지고 올라갔던지 눈물 콧물 흘리고 그러다가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난리가 나잖아요.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서 말씀하셨다'고 하잖아요. 그 기쁨으로 인해서 문제는 작아졌어요. 하나님을 만나니까 문제는 작아지고 태산 같은 문제일지라도 내가 만난 하나님께서 분명히 해결해 주신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여유가 생기고 눈이 열리고 모든 것이 제대로 보이는 것이죠. 성경이야말로 수많은 사람들이 시대와 문화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대하드라마가 펼쳐져 있는 거잖아요. 왜 그것을 분별하는 눈은 없을까? 말씀 속에 다 담겨 있는 거죠.

   그 유명한 중세 신학자 `어거스틴'이 이런 말을 했어요.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마음대로 해라.' 그의 신학을 한 마디로 묶은 거예요.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마음대로 해라.'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은 먼저 하나님이 너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그 사랑을 발견하라. 그 십자가 사랑에 빠져들어라.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사랑하고 나면 율법은 더 이상 율법이 아니에요. `10시에 예배드리러 와라.' 시간을 보고 온다면 그건 아직 율법이죠. 사랑하는 사람은 시간에 매이지 않아요. 만나고 싶은 열망에 일찍 가서 기다리고 있어요. 은혜가 있을 때에 율법은 비로소 율법이 되는 거예요.

   더 이상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 빠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각 사람을 아름답게 지으시고 은사를 나누어 주셨기 때문에. 링컨이 사실은 못생겼잖아요, 키만 훌쩍 크고. 링컨이 외모 때문에 조롱을 많이 당했어요. 어떤 사람이 그 앞에서 대놓고 얘기합니다.“사람의 다리는 어느 정도가 제일 적당할까요?”비꼬면서 그랬더니 링컨이 말합니다.“글쎄요, 허리에서 발목까지면 적당하지 않을까요?”얼마나 여유가 있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께 감사해야 돼요. 사람은 다 자기가 잘생긴 줄 안대요. 아침마다 세수하려고 거울을 보잖아요. 날마다 들여다보는 거울 속의 자기 얼굴에 익숙해져서 `사람들의 얼굴 표준은 이거다' 그렇게 생각한대요. 그래서 다 자기 얼굴을 표준으로 생각한다는 거예요. 이거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에요. 얼굴만 그런 게 아니에요.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에요.

   1937년 하버드대학 남학생 286명을 대상으로 그들의 인생을 총체적으로 연구하면서 `어떤 조건이 인생의 행복을 결정할까' 72년 동안 연구하고 얼마 전에 그 결과를 발표했어요. 연구하는 사람들도 자료를 물려가면서 연구한 거예요. 마침 거기에는 나중에 대통령이 된 케네디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결과가 나왔느냐. 70여 년 동안 그들을 관찰한 결과, 행복의 요소를 7가지로 뽑을 수 있겠다. 고통을 맞이하는 성숙한 자세, 교육, 안정된 결혼, 금연, 금주, 운동 그리고 적당한 체중. 나이 50이 되기 전에 이 조건을 잘 갖춘 사람은 아주 행복하대요. 하버드라고 하는 무거운 이름에 눌려서 정신병을 앓은 사람도 1/3이나 됐대요. 인생을 끝까지 지켜보니까 평범한 듯 보이는 사람이 안정적인 성취감 속에 살더라. 이렇게 결론 내립니다. `결국 인생의 핵심은 인간관계다.'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인생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에 대한 열정을 절대로 놓치지 마세요.

   여러분, 몇 년 전에 <이산>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잖아요. 정조 얘기에요. 거기 보면 정조의 할아버지 영조가 나오고 정조를 그토록 죽이려고 했던 정순왕후가 나오는데 정순왕후란 영조의 둘째 부인이거든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정순왕후가 시집 갈 때 나이가 열다섯이고요, 영조는 예순 여섯이었어요. 그래서 이런 유머가 있어요. 환갑이 넘은 어떤 사람이 스무 살 난 처녀하고 새 장가를 들려고 해요. 친구가 좇아가서“지금 정신이 있나 없나. 자네 나이가 몇인가? 더구나 20년 후를 생각해 봐. 자네는 여든이 넘고 그 여자는 이제 마흔이 넘을 텐데. 그때는 어쩔 셈인가?”그랬더니“나도 그게 문제라고 생각해. 그러나 하나 생각해 둔 게 있어. 우리 마누라가 나이가 마흔이 넘어 늙으면 그냥 이혼하고 새로 스무 살 처녀하고 다시 결혼하지, .”여러분, 사랑에 대한 열정은 잃어버리지 마세요. `괴테'는 팔십이 넘어서도 십대 아가씨하고 연애했다고 하잖아요. 시인의 열정, 그건 좀 지나치고, 하나님에 대한 열정, 그 열정으로 사세요. 그 열정으로 사람을 품으세요.

   농부같이 배우고 가르치라. 시편 126 5-6절에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인내하라는 말이에요. 사람에게 어떻게 행복한 일만 있겠어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30년 후를 생각해 보자.' 30년 후란 시적인 표현이에요. 내가 죽는 그날,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오늘은 태산 같은 문제일는지 모르지만 내가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서는 그 순간에는 이런 건 일도 되지 않는 거죠. 다 인생의 지나가는 일일 뿐이죠. 인내하라는 거예요.

   어떤 시골사람이 서울에 가서 살겠다고 그래요. 그랬더니 친구가“이보게, 서울에서는 물 한 모금도 돈을 내야 된다는데 어떻게 그런데 가서 살려고 그래.”그랬더니“어, 그래? 그렇다면 물 한 모금만 팔아도 살겠네.”역발상을 가지고 인생을 생각해 보세요. 남은 내 인생을 농부같이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소망을 가지고 일심으로 주님을 섬겨요. 그러면 하나님이 어떤 약속을 주시느냐, 갑절의 은혜를 주신다.

   히브리어로 배우다 라는 말이 있어요. `라마드'라고 해요. 가르치다는 `림매드'라고 해요. 사실 자음은 똑같아요. 모음만 다른 거예요. `림매드'라는 말은 `가르치다'인데 원뜻은 `많이 배우다' 그런 뜻이에요. 가르치려면 제대로 공부해야 되니까 결국 자기가 많이 배우게 돼요. 이게 선생님들의 축복이에요. 목사의 축복이에요. 제가 뭐 잘나서가 아니에요. 어쩔 수 없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되므로 더 들여다봐야 되고 더 생각해 봐야 되고 더 기도해야 되고 그러다 보니 제가 은혜를 받는 거예요. 그게 바로 `내가 네게 복을 주리라. 그러므로 너는 복의 근원이 되리라.' 여기에 교사의 축복이 있어요.

   우리 자녀를 맡아 수고 하시는 분들에게 진정으로 감사를 드려요. 그러나 그 분들만이 교사가 아니에요. 예수를 믿는 우리 모두가 다 우리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의 교사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 은혜로 강해지라.'

† 기도

   하나님, 우리가 신앙의 선배들의 모습을 따라서 믿음을 배웠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십대의 어려운 시기에 반항하며 지냈을 때 우리를 묵묵히 기다려 주고 도와주고 세워주었던 선생님들의 눈물과 손길이 있었기에 우리가 있음을 기억합니다. 이제 우리 뒤를 따라오는 우리 자녀들과 후대들과 사랑하는 많은 청소년들을 생각합니다.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우리의 남은 날을 주님 앞에 은혜로 승리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