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어머니, 엄마(성령충만의 내용, 록펠러인생,시=어미곰처럼)/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1. 23:21

2009 5 10 주일예배

어머니, 엄마

    ( 19:25-27)

25.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1.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인기작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칠순의 엄마가 아버지와 함께 아들딸 집에 찾아가느라고 서울에 올라왔다가 서울 지하철역에서 그만 한 사람은 지하철을 타고 한 사람은 못 타는 바람에 헤어졌어요. 엄마가 실종됐어요. 온 가족이 엄마를 찾아 나섭니다. 그러나 결국 찾지 못합니다. 엄마의 부재상황이에요.

   엄마가 실종되면서 비로소 엄마의 존재가 부각돼요. 엄마는 늘 우리 곁에 있으면서도 잊혀진 존재였어요.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가 하는 것을 여러 사람의 시각으로 좇아가고 있습니다. 4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큰딸, 큰아들, 남편, 마지막으로는 엄마 자신의 눈으로 엄마가 어떤 존재인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네 가지 소제목이 그 상황을 너무나 명확하게 이야기해 줍니다.

   큰딸이 보는 엄마, `아무도 모른다.' 자녀들을 길러내느라 온갖 고생을 하고 이제 자녀들이 모두 떠나가고 시골 빈집에 홀로 남았지만 엄마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몸이 아프고 마음도 아파서 괴로워하건만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큰아들의 눈에 비친 엄마는 늘 말합니다.“미안하다, 아들아.”엄마도 시대의 산물이에요. 남아선호의 생각 속에 갇혀서 그저 큰아들이 잘되기만을 소원합니다. 그렇게 희생하고도 뭐가 그렇게 미안한지 아들만 보면“미안하다, 아들아”이게 엄마의 모습이에요.

   3부는 남편이 본 엄마에요. 결혼은 했습니다만 관심을 두지 않는 남편이에요. 무심한 남편이에요. 훌쩍 집을 떠나 돌아다니다가 모든 것이 떨어지면 그제서야 계면쩍게 돌아와서 한마디 던집니다.“나 왔네.”그리고 밥상을 받는 남편이에요.

   그러나 이렇게 가족들의 눈에 비친 모습과는 다른 엄마 자신의 생각이 있어요. `또 다른 여인'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가 아니었어요. 그에게도 엄마가 필요해요. 그에게도 위로가 필요해요.

   작가는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이러한 것을 구상하면서 펜을 들었지만 도대체 글이 풀리지가 않았다는 거예요. `어머니'라고 불러보았지만 생각이 막혀서 한마디도 풀리지 않았다는 거예요. `어머니'라고 불러보았지만 생각이 막혀서 한마디도 풀리지 않았는데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 생각의 문이 확 열린 거예요. 어머니와 엄마는 다르지 않습니까? 어머니, 그에게 부여된 모습이에요. 지위에요. 의무를 따라서 살아야 했던 모습이에요. 그러나 그 속에는 엄마가 있어요. 벽을 허물고 마음을 열고 다가갈 때 발견하는 엄마가 있었다고요. 위로받지 못한 채 한평생 살다가 소외된 채 세상을 떠난다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또 지금 살아계시지만 자녀들로부터 소외되진 않았습니까?

   오늘 십자가의 현장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어요. 그 십자가 바로 아래에 여인들이 모여 있어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의 이모, 귀신 들렸다가 고침 받고 예수를 따르는 막달라 마리아가 있어요. 의와 명분을 외칠 때는 남자들이 따랐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다 떠나버리고 여인들만 모여 있어요. 그 한 복판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고통이 있습니다. 아무런 죄 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고통당하며 죽어가는 아들을 보아야 하는 어머니의 아픔이 있어요.

   그러나 성경을 꼼꼼히 읽어보면 감사하게도 어머니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있었어요. 아기가 태어날 때 성령으로 잉태되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내 몸에서 일어나고 그것은 곧 자기 목숨과 맞바꿀 만큼 위험한 일이었는데 하나님이 용기를 주시고 위로를 주셔서 그 아이를 품고 낳을 수 있었어요. 남편 요셉이 일찍 죽었기에 그 아들은 소년가장이 되었어요. 많은 동생들과 어머니를 먹여 살리는 책임을 져야 했어요. 그 아들은 남편 같은 아들이었어요. 온전히 의지하던 아들이었어요. 그러나 어느 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홀연히 그 가난한 가정을 떠나갔어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떠나갔어요. 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아들을 믿었기에 아들을 떠나보낸 거예요.

   가나 혼인잔치에서는 함께 만났어요.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놀라운 이적의 현장에 같이 있었어요. `내 아들이 과연 하나님이 말씀하셨던 대로 예사로운 아들이 아니로구나'하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 아들이 멀리 예루살렘에서 지내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는데 좋은 소문만 들리는 게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소문들도 들렸어요. 예수님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를 고치시는 것을 보면서 `저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내쫓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미쳤다고 했어요. 마리아는 그 소문에 놀라서 자녀들을 데리고 멀리 나사렛에서 예루살렘까지 찾아왔어요. 아들 예수를 만나러 찾아왔어요. 가까스로 사람들의 도움으로 예수에게 자기들이 왔다는 소식을 알렸어요. `어머니와 당신의 형제들이 찾아왔습니다. 지금 저기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요, 누가 내 형제들이냐. 여기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을 보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모든 사람이 내 어머니요, 내 형제다.' 이럴 때는 예수님도 좀 얄미워요. 따뜻하게 형제들을 맞이하고 나서 말씀하셨어도 늦지 않았을 텐데. 애써 좋게 해석하자면 아마 부모형제를 따뜻하게 맞아주셨을 거예요. 그리고 주위에 둘러서서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이들이 내 어머니, 내 형제가 아니라 여러분 모두가 다 내 어머니, 내 형제다.'라고 말씀하셨을 거예요. 그런데 이걸 기록하는 사람이 드라마틱하게 표현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있었어요. 그러나 십자가의 고통 가운데 죽어가는 아들을 보니 너무나 안타까워요. 그때 예수님께서 고통 속에서 숨을 거두시기 직전에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여자여', 헬라어로 `귀나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표현으로는 어색해요. 아니, 어머니를 무슨 `여자여'라고 해요. 그러나 이것은 왕이 왕후를 높여서 부르는 표현이에요. 당시에 여자를 최고로 높여서 부르는 표현이에요. 자기의 어머니를 어머니 또는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데 `여자여'라고 존칭을 쓴 것은 그 어머니 마리아의 고통과 눈물을 위로하는 말이에요. `내가 당신의 눈물을 압니다. 내가 당신의 아픔을 압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는 이렇게 죽지만 하늘의 영광이 있습니다. 내가 먼저 가지만 나로 인하여 눈물만 흘리지 마시고 영광도 보시고 위로를 얻으십시오.' 그 옆에 함께 서 있는 요한을 보면서 `여자여, 그 옆에 있는 요한이 이제는 당신의 아들입니다.' 또 요한에게 말합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 , 그래서 교회 전설에 의하면 그날 이후로 요한이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고 돌아가실 때까지 돌보았다고 합니다.

   세상살이란 고난의 연속이죠. 특별히 지난 한 세대 동안 어머니들은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었어요. 가장 소외된 사람들이었어요. 사람의 위로로 그걸 다 보상할 수 없어요. 먼저는 하나님의 위로가 있어야 돼요. 하늘의 위로가 있어야 돼요. 그리고 또 하나 그를 기억하는 아들딸들의 위로가 필요한 거죠.

   여러분, 진정한 효가 무엇입니까? 효도가 뭐예요? 첫째는, 부부가 행복하게 잘 살아야 돼요. 그게 부모님의 뜻이에요. `내가 오늘 이렇게 수고하고 애를 써서 너희들을 위하여 살았으니 부디 행복하게 살아다오.' 행복하게 살아야 돼요. 부모님을 섬긴다는 명분은 조금도 흠이 없는 것이지만 부부가 싸우면서 어떻게 부모님을 모시겠습니까? 부부의 마음이 하나가 된 다음에 아내의 손길과 남편의 손길을 통해서 부모님을 받들 수 있어야 돼요. 부부중심 구조, 이게 성경적 구조에요.

   여러분, 에베소서 5장 말씀에 보면 `성령 충만하라'고 말씀하면서 성령 충만의 내용을 세 가지로 얘기해요. 첫째,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을 예배하라. 둘째, 모든 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라. 셋째, 주님을 섬기듯이 서로를 섬겨라. 그리고 이것을 실천하는 첫 번째 현장이 어디냐, 부부에요.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남편들이여, 아내 사랑하기를 주께서 자기 몸을 교회를 위하여 내어 주심같이 하라.'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우리의 신앙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라는 부부관계로 비유하셨어요. 부부관계 속에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할 수 있어요. 어떤 사람이 예수를 잘 믿는 여자냐, 남편을 잘 섬기는 여자에요. 그게 성경이 말하고 있는 거예요. 교회보다 가정이 먼저 지어졌어요. 교회는 가정의 연합이에요. 부부중심 구조에요.

   남자들이 결혼을 하면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 끼잖아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끼잖아요. 그거 어렵습니다. 정말 어려워요. 그러나 성경적인 원리를 따라야 해요. 아내가 먼저에요. 남편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직장생활 하듯이 가정을 가꾸라.' 우리가 직장생활을 어떻게 합니까? 혼신의 힘을 기울여 하잖아요. 그 절반만 아니 십 분의 일만이라도 가정으로 물줄기를 돌려 보세요. 가정이 달라져요.

   예전에 <딴지일보> 라는 언론이 있었어요. 지금은 영향력을 잃어버렸습니다만 기존 언론을 패러디하면서 인기를 얻어서 한때는 시가 총액 100억이었어요. 그 총수가 `김어준'이라는 아주 젊은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의 글을 읽어보니까 참 기발해요. 그런데 그게 타고난 거더라고요. 이 사람이 고등학생 때 집에 가서 문을 여니까 엄마, 아빠가 통닭을 뜯고 있는 거예요.“왜 나는 안주시고 두 분만 드셔요?”그랬더니 아버지가 그러더래요.“임마, 너는 살 날이 많이 남았으니까 나중에 먹어라.”웃자고 한 얘기지만 바로 그 역발상, 그걸로 백억 기업을 이룬 거예요. 그런데 그게 웃는 이야기만은 아니에요. 그거 사실이에요. 부부중심 구조로 가야 돼요. 남자들은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아내 편을 들어야 돼요. 어머니가 피눈물을 흘릴지라도 일단은 아내 편을 들어야 돼요. 아내의 마음을 얻고 나서 아내의 손길을 통해서 어머니의 눈물을 씻겨야 돼요. 그러니 전략이 필요하죠. 그게 소리쳐서 될 일입니까? 어머니와 살아보지도 않은 아내가 어떻게 어머니를 이해하겠어요.

   어머니와 전화를 하다보면 어머니 말씀은 늘 똑같습니다. 저는 그래도 듣습니다. 들을 수 있는 까닭은 함께 살아온 세월이 있잖아요? 뭐라고 얘기하면 척척 알아들을 수 있잖아요? 그러나 며느리가 그 전화를 어떻게 감당하겠어요. 그거 힘든 거예요. 어려운 거예요. 그러니 어떡해요. 남편이 아내를 도와서 그 손길을 통해서 어머니의 눈물을 씻겨야 되는 거죠. 또 아내들은 남편들에게 받지 못한 관심의 물줄기를 애들에게 쏟아서 애들에게서 만족을 찾으려고 하면 안돼요. 부부중심 구조로 가야 돼요.

   두 번째, 정말 효를 이루려면 부모님을 위로하고 인정하고 그분을 격려해야 돼요.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자녀로 인해서 상처받는 말이 뭐냐 하면“도대체 말이 안 통해요.”이 말이 제일 괴로운 말이에요. 당연히 말이 안 통하죠. 세대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데 말이 통하겠어요. 그럼, 누구 책임이에요? 아버지 책임이에요? 어머니 책임이에요? 똑똑한 자식들 책임이죠. 그런데“말이 안 통해요.”상처를 주는 말이에요.

   그러면 어떡해야 부모님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느냐?“어떤 말을 들었을 때 가장 기쁘셨나요?”그랬더니“우리를 이렇게 길러주신 것 정말 감사합니다.”그 말에 한평생의 수고가 씻은 듯이 사라지는 거예요.“자녀들에게 무슨 선물을 받고 싶으십니까?”여러분, 뭐라고 생각하세요? 힌트를 하나 드리겠어요. 대학 졸업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했어요.“졸업식 날 제일 받고 싶지 않은 선물이 무엇이냐?3위 만년필, 2위 꽃다발, 1위 마음의 선물. 요즘 세상이 이런 거예요. 그러면 어르신들은 받고 싶은 선물 1위가 뭐냐? 돈이에요. 나이 드신 분들에게 필요한 것 네 가지가 뭔지 아세요? , 현찰, 수표, 머니. 빨리 용돈 보내드리세요. 빨리 보내드리세요. , 사람은 어쩔 수 없어요. 내리사랑이라고 자식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쓰지만 부모님을 위해서는 왜 이렇게 아까운지 몰라요. 죄인이 따로 없는 거예요. 정말 지혜 있는 사람은 부모님의 자존심을 높여 드리는 사람이에요.

   여러분, `록펠러' 아시지 않습니까? 미국의 교회 선교단체를 순례하는 프로그램을 따라서 미국 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깜짝 놀랐어요. 가는 곳마다 록펠러가 세운 교회, 록펠러가 세운 대학, 너무 많은 거예요. `, 록펠러가 부자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대단하구나.'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인천공항서점에서 록펠러에 관한 책이 뭐가 있나 하고 찾았더니 마침 막 나온 <록펠러가의 사람들>이라고 하는 아주 방대한 책을 찾았습니다. 록펠러 4대의 이야기를 기록했더라고요. 그것을 다 읽어 봤어요. 미국이 19세기 중반에 남북전쟁 전후로 서부개척시대가 열립니다. `골드 러쉬', 그리고 19세기 후반기에 석유가 터지기 시작했어요. 당시 록펠러가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미국의 석유시장의 95%를 장악했어요. 지금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게이츠의 최고로 많았던 재산보다 3배나 많았어요. 그러니 얼마나 부자에요.

   이미 7살 때부터 사업을 시작했어요. 야생 칠면조를 붙들어다가 우리에서 기르면서 알을 받아서 부화시켜서 새끼 칠면조를 팔아서 3달러 50센트를 벌었어요. 7살에 사업을 시작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가는 곳마다 기부를 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 사람이 평생 동안 어머니와 맺은 약속을 지켰다는 거예요. 3가지 약속이 있었대요.“네가 버는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드려라.”여섯 살 때 처음으로 20센트 용돈을 받습니다. 아이가 좋아서 주머니에 받아 넣었을 때“잠깐, 다시 꺼내라. 그 중에 십 분의 일은 하나님께 드리는 거란다.”여섯 살 때부터 십일조를 하기 시작했어요. 한 평생 십일조를 했어요. 말년에는 너무 재산이 많아서 십일조만 관리하는 직원이 40명이었대요. 기업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철저하게 지키느라고.

   두 번째 약속은 예배 30분 전에 일찍 가서 맨 앞자리에서 예배를 드려라. 어머니가 그 아들이 어릴 때부터 훈련시켜서 지키게 했다는 거예요. 세 번째는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여러분, 목사하고 등져서 행복할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목사가 똑똑하고 공정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렇지 못해요. 허물이 있어요. 그러기에 기도하고 바라봐야 돼요. 눈 나쁜 사람이 안경 끼고 바라봐야 똑바로 볼 수 있듯이 맨 눈으로 저를 보면 저의 허물이 다 드러나요. 은혜의 안경을 쓰고 봐야 돼요. `우리 서로 만난 이 자리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고 은총이 있고 계획이 있다.' 이 믿음을 가지고 보지 않는 한 누구를 세워도 여러분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 있나요. 저도 은혜의 안경으로 여러분을 봐야 돼요. 그냥 맨 눈으로 보면 제가 시험 들어요. 하나님의 은혜로만 서로 사는 거예요. 이 세 가지 약속을 록펠러에게 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세계 최고 부자인 그가 많이 배우지도 못한 어머니가 얘기하는 것, 어쩌면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놀랍게 한평생 그것을 지켰다는 거예요. 그게 효도에요. 부모님의 말씀을 잘 새겨듣고 사는 것.

   여러분, 진정한 효는 무엇입니까? 마지막으로는 내가 건강한 부모가 돼야 해요. 어느 분이 글을 썼는데 참 충격을 받았어요. `자녀에게 있어서 부모란 그가 인생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다. 그러니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부모의 삶의 모습은 자녀의 삶의 기준이 된다.' 그렇죠. 그래서 우리가 부모로 올바로 살아야 돼요. 그게 효도의 길이에요. 한 가지 훗날 자녀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 부모들이 돼야 해요. 그런 점에서 자녀들을 사랑할 때 지혜롭게 하세요. 여러분의 노후자금은 좀 떼어놓고 하시라고요. 다 털어 넣고 나중에 빈털터리 되면 그래서 서러운 거예요. 나이 드신 분이 왜 서러운지 아세요? 정말 돈이 없어서 서러운 거예요. 손에 현찰이 없기 때문에 아들이 한 마디만 해도 마음이 상해서 그러는 거예요.

   `이어령'씨의 <어미 곰처럼>이라는 시가 있어요.

 

어미 곰은

어린 것이 두 살쯤 되면

새끼를 데리고

먼 숲으로 간다고 해요.

눈 여겨 보아두었던

산딸기 밭.

어린 곰은

산딸기에 눈이 팔려서 어미 곰을 잊고

그 틈을 타서 어미 곰은

애지중지 침 발라 키우던 새끼를 버리고

매정스럽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려요.

발톱이 자라고 이빨이 자라

이제 혼자서 살아갈 힘이 붙으면

혼자 살아가라고

버리고 와요.

새끼 곰을 껴안는 것이 어미 곰 사랑이듯이

새끼 곰 버리는 것도 어미 곰 사랑.

불같은 사랑과

얼음장 같은 사랑.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산딸기밭을 보아 두세요.

아이들이 정신을 팔고 있는 동안

몰래 떠나는 헤어지는 연습도 해두세요.

눈물이 나도 뒤돌아보지 않는.

그게 언제냐고요?

벌써 시작되었어요.

탯줄을 끊을 때부터

걸음마를 배울 때부터

손을 놓아 주었던 그때부터

무릎을 깨뜨려도

잡은 손 놓아 주었던 날을 기억하세요.

 

좀 냉정해야 돼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믿음의 유산을 남겨주세요. 우리 믿는 사람들은 두 세계에 발을 디디고 있는 거예요. 현실, 상식의 세계가 있어요. 또 하나는 하나님의 계시의 세계에 머물고 있는 거예요. 현실의 세계, 상식의 세계 속에서는 지적인 호기심과 능력이 우선하지만 하나님의 계시의 세계 속에서는 순종이 우선이에요.

   요한복음 7 17절에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내가 하는 말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내가 그냥 마음대로 하는 것인지 알게 되리라.

 

태어나봐야 생명을 알 수 있어요. 구원받아야 구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요. 말씀에 순종해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어요. 우리 자녀들에게 건강한 믿음을 유산으로 주는 것, 그것이 나를 위해 고생했던 우리 부모에게 드리는 효가 되는 것입니다.

 

† 기도

   하나님, 생명을 받아 태어났고 사랑의 손길로 자라났습니다. 마땅히 갚아야 할 은혜를 다 갚지 못하고 부모님을 떠나보냈습니다. 우리야말로 죄인입니다. 그러나 이제 부모님이 남기셨던 말씀과 유산을 기억하며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행복한 가정, 행복한 부부로 살아갈 수 있는 믿음과 지혜를 주시고 또 우리 뒤에 서 있는 사랑하는 자녀를 지혜로 가르치고 양육하고 믿음의 유산을 남겨주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