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일하고도 교회 간증하는 것 보기 너무 힘들었다”
서지현 검사, 30일 본지에 입장 밝혀와
"8년 간 잠을 이룰수도 없고 유산까지"
대검 "응분의 책임 묻겠다" 했지만
검찰 내 '젠더 갈등' 수면 위 급부상
서 검사가 밝힌 당시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8년 전인 2010년의 10월의 한 토요일, 절친한 동료 여검사의 부친 장례식장에 이귀남 당시 법무부 장관이 왔고, 서 검사는 선배 검사의 권유로 얼떨결에 이 장관이 있는 테이블에 같이앉게 됐다. 당시 이 장관을 수행한 안 전 국장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허리를 휘감고 엉덩이를 만졌다는 것이 서 검사의 주장이다. 그는 “그날 충격이 너무 커 화장실에 쓰러져 있다가 집에 있는 아이 생각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귀가했다”며 “이후 그날의 트라우마로 유산을 했을 정도”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2010년 10월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에 고소기한(발생 후 1년)이 지났고 성범죄 관련 친고죄 조항도 2012년에서야 삭제돼 처벌이 어렵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그간 성범죄 관련 피해를 겪고도 말하지 못한 여검사들 사이에서 ‘미투’ 캠페인이 더욱 확산될 수 있다. 한 수도권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젠더(성)’라는 파급력으로 예전의 항명 사태 이상으로 검찰 내 분열과 동요가 급속도로 번질 수 있다”며 “수사 지휘나 방향을 놓고 상층부와 일선 수사가 대립했던 2000년대 식 항명 사태보다도 폭발력을 띨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영민·정진우 기자 bradkim@joongang.co.kr
아래 첨부 자료는 서 검사가 지난 29일 이프로스 게시판에 올려 성추행 피해 사실을 처음 알린 글과 당시 장례식장 상황과 자신의 심경을 제 3자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묘사한 일기 글이다.
서지현 검사가 1월 29일 검찰 내부망에 올린 글
-내딛으며-
흔히 쓰는 게시판 유학인사, 경조사 감사인사도 용기가 없어 쓰지 못하였고, 댓글 하나 다는 것도 매우 주저하던 제가 매우 큰 용기를 내어 글을 써봅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잠 못 이루는 밤들을 보내고 어렵게 쓰는 글입니다.
생각이 다른 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고, 저만의 생각이라 비난하실 수도 있겠지만, 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들이 자유롭게 개진되어야 검찰의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넓은 마음으로 이해 부탁드립니다.
-고백 1-
나는 고백합니다.
저는 임은정 부부장님의 게시판 글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 유려한 글솜씨가 부럽기도 하고, 그 내용이나 취지에 공감을 하기도 하였으나,
‘저런 극단적인 과격한(?) 방법밖에 없나....’하는 생각을 하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나는 고백합니다.
저는 그저 맡은 일 양심에 따라 최선을 다해 처리하면 내 할 일 다 하는 것이라고,
언론에 나오는 권력 하수인 같은 부끄러운 모습은 아주 극히 일부 검사들의 잘못일 뿐이고,
검찰 개혁은 나 따위 나서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이루어 질 것이라고,
일부 과격한(?) 검사들이 겪는 억울한 일 따위는 나한테 닥치는 일 결코 없을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매우 안이하게 생각을 하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야 알았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과격한(?)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거대한 권력을 거머쥐고, 어떠한 짓도 서슴치 않는 그들
정권이 바뀌어도 항상 코어 1%의 흔들리지 않는 위치를 차지하고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검사 하나 문제검사 만들거나, 심지어 옷을 벗게 하는 것까지도 손쉽게 해내면서
그들의 행동이 부당하다고, 나는 그저 성실히 일하는 평범한 검사일 뿐이고, 그저 내가 바라는 것은 정당한 대우를 바라는 것 뿐이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봤자
힘 없고 빽 없는 일개 검사의 절규 따윈 비웃으며 무시하는 그들
그들 앞에 달리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다른 방법이라는 것은 결코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고백 2-
저는 2010. 10. 30. 한 장례식장에서 법무부장관을 수행하고 온 당시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인 안태근(추후 검찰국장)에게 강제추행을 당했습니다.
공공연한 곳에서 갑자기 당한 일로 모욕감과 수치심이 이루 말할 수 없었으나, 당시만 해도 성추행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운 검찰 분위기, 성추행 사실이 언론에 보도될 경우 검찰조직의 이미지 실추, 피해자에게 가해질 2차 피해 등의 이유로 고민하던 중,
당시 소속청 간부들을 통해 사과를 받기로 하는 선에서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 후 어떠한 사과나 연락도 받지 못하였으나,
저는 법무부장관 표창 2회, 대검 우수사례 다수 선정뿐 아니라, 영상녹화 매뉴얼, 장애인 조사 매뉴얼 작성 등 검찰의 조사 문화 개선에 고민을 많이 하면서, 미흡하나마 최선의 노력을 하는 그냥 평범한 검사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사무감사에서 다수 사건을 지적받고,
사무감사 지적을 이유로 검찰총장 경고를 받고,
검찰총장 경고를 이유로 전결권을 박탈당하고,
검찰총장 경고를 이유로 통상적이지 않은 인사 발령을 받았습니다.
(이 부분에 관하여는 첨부한 문서에 상세히 기재를 하였습니다)
납득하기 어려운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진 이유를 알기 위해 노력하던 중
(그들의 결속력은 매우 견고하여, 명확히 전 과정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였으나,)
인사발령의 배후에는 안태근 검찰국장이 있다는 것을,
안태근의 성추행 사실을 당시 검찰국장이던 최교일이 나서서 덮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임은정 부부장님의 여러 글에 등장하는 검찰간부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불이익을 받은 여검사 사건이 이 내용입니다)
너무나 부당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말렸습니다.
“너 하나 병신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지금 떠들었다가는 그들은 너를 더더욱 무능하고 문제 있고 이상한 검사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입 다물고 그냥 근무해라“
저는 그저 제 무능을 탓하며 입 다물고 근무하는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순진하게도 저는 믿었습니다.
그냥 내가 성실히 근무를 하고, 열심히 맡은 사건을 처리하면 나의 진실성과 성실성을 알아줄 것이라고,
검사직에 미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10년 넘게 열심히 일해 왔는데 명예는 회복하고 나가자고 입술을 깨물며 일을 계속하였습니다.
언론에 이야기를 해보라는 권유나 기자의 접촉도 있었으나, 조직을 위하겠다는 마음에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나는 평범하게 성실히 일하는 검사이고, 내가 겪은 일련의 일들은 부당하다고 법무부 등에 조용히 의사를 표시해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들은 답변은 ‘검사 생활 얼마나 더 하고 싶냐, 검사 생활 오래 하고 싶으면 조용히 상사 평가나 잘 받아라’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이제는 알겠습니다.
저의 믿음이 얼마나 어리석고 순진한 것이었는지,
그들에게 힘없고 빽없는 일개 검사가 얼마나 우습고 하찮은 존재인지...
-소망-
정의로운 검찰, 국민의 신뢰를 받는 검찰
투명한 인사제도, 상벌 절차의 객관화
이러한 검찰의 모습을 바라지 않는 검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인사제도, 상벌절차가 투명해지지 않는 한,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우리 검찰에서 정의를 바로 세우기는 힘들다는 것은
제가 굳이 긴 말을 하지 않아도 모두 공감하실 것입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개혁위 등에서 검찰 인사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하면
‘그 썩어빠진 것들 그냥 그대로 살라고 냅둬라’라는 의견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암담함을 느낍니다.
‘빽 젤 쎈 놈이 젤 좋은데 간다’는 인사제도
빽 센 놈이 밀고 들어오면 인사발표 당일에도 요직 자리가 바뀌는 인사제도
그래서 빽 없고 힘 없으면 간부 말 잘 들어서 평가라도 잘 받아야 하니, 간부의 그 어떤 갑질, 폭언, 부당한 지시에도 눈감고 입 다물게 하는 인사제도
제대로 소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명확한 이유도 알 수 없는 상벌제도
가해자들은 당당히 잘 살아가고 피해자들만 박해를 받고 위축되어야 하는 성폭력 성추행 성희롱......
우리는 언제까지 ‘그 썩어빠진 것들 그냥 그대로 살라고 냅둬라’라는 국민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걸까요
제가 너무 검찰에 오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모르게 뭔가 튀는 행동은 자제하게 되고,
그저 묵묵히 내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내가 겪는 불의와 폭력에는 눈 감고 입 다물며,
평범하고 힘없는 일개 검사가 무엇을 바꿀 수 있나 체념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제가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검사라는 사실을 잊고 조직의 작은 부품으로 생활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저는 아직도 너무나 검찰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검찰이 조금이나마 달라질 것을 기대하면서 이런 글을 쓰고 있으니 말입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너가 뭐라고 해봤자 검찰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너가 떠들면 그들은 눈깜짝 하지 않고 너를 더 문제 있는 검사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인사에 불만 품고 떠드는 검사 취급이나 할 것이다. 그냥 조용히 있어라........’
저도 그분들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냥 조용히 나 혼자 검찰을 나가면 되지 않을까...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10년전 한 흑인 여성의 작은 외침이었던 Me Too 운동이 전 세상을 울리는 큰 경종이 되는 것을 보면서,
‘과거의 잘못을 단죄하지 않는 것은 미래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이다’라는 Albert Camus의 글을 읽으면서,
아무리 제 존재가 너무나 작고 미미하더라도,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 스스로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내부로부터의 개혁을 이룰 수 있는 아주 작은 발걸음이라도 된다면 하는 소망으로,
미래의 범죄에 용기는 주어서는 안되겠다는 간절함으로 이렇게 힘겹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목소리 내어 이야기하는 검사도, 묵묵히 일만 하는 검사도, 또 소위 코어의 귀족검사도
모두 각자 다른 모습으로 검찰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아무도 우리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미미한 발걸음일망정 한발씩 한발씩 우리 스스로 나아가야만 우리 모두가 원하는 진정한 내부의 정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나에게 일어난 불의와 부당을 참고 견디는 것이 조직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드러내야만 이 조직이 발전해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됩니다.
나는 소망합니다.
우리가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검찰, 진정 정의를 실현하는 검찰로 우뚝 서기를....
저는 아직도 검찰을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희망을 이렇게 품고 있으니 말입니다.
#MeToo, # 검찰인사제도, # 검찰내성폭력
흔히 쓰는 게시판 유학인사, 경조사 감사인사도 용기가 없어 쓰지 못하였고, 댓글 하나 다는 것도 매우 주저하던 제가 매우 큰 용기를 내어 글을 써봅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잠 못 이루는 밤들을 보내고 어렵게 쓰는 글입니다.
생각이 다른 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고, 저만의 생각이라 비난하실 수도 있겠지만, 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들이 자유롭게 개진되어야 검찰의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넓은 마음으로 이해 부탁드립니다.
-고백 1-
나는 고백합니다.
저는 임은정 부부장님의 게시판 글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 유려한 글솜씨가 부럽기도 하고, 그 내용이나 취지에 공감을 하기도 하였으나,
‘저런 극단적인 과격한(?) 방법밖에 없나....’하는 생각을 하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나는 고백합니다.
저는 그저 맡은 일 양심에 따라 최선을 다해 처리하면 내 할 일 다 하는 것이라고,
언론에 나오는 권력 하수인 같은 부끄러운 모습은 아주 극히 일부 검사들의 잘못일 뿐이고,
검찰 개혁은 나 따위 나서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이루어 질 것이라고,
일부 과격한(?) 검사들이 겪는 억울한 일 따위는 나한테 닥치는 일 결코 없을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매우 안이하게 생각을 하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야 알았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과격한(?)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거대한 권력을 거머쥐고, 어떠한 짓도 서슴치 않는 그들
정권이 바뀌어도 항상 코어 1%의 흔들리지 않는 위치를 차지하고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검사 하나 문제검사 만들거나, 심지어 옷을 벗게 하는 것까지도 손쉽게 해내면서
그들의 행동이 부당하다고, 나는 그저 성실히 일하는 평범한 검사일 뿐이고, 그저 내가 바라는 것은 정당한 대우를 바라는 것 뿐이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봤자
힘 없고 빽 없는 일개 검사의 절규 따윈 비웃으며 무시하는 그들
그들 앞에 달리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다른 방법이라는 것은 결코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고백 2-
저는 2010. 10. 30. 한 장례식장에서 법무부장관을 수행하고 온 당시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인 안태근(추후 검찰국장)에게 강제추행을 당했습니다.
공공연한 곳에서 갑자기 당한 일로 모욕감과 수치심이 이루 말할 수 없었으나, 당시만 해도 성추행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운 검찰 분위기, 성추행 사실이 언론에 보도될 경우 검찰조직의 이미지 실추, 피해자에게 가해질 2차 피해 등의 이유로 고민하던 중,
당시 소속청 간부들을 통해 사과를 받기로 하는 선에서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 후 어떠한 사과나 연락도 받지 못하였으나,
저는 법무부장관 표창 2회, 대검 우수사례 다수 선정뿐 아니라, 영상녹화 매뉴얼, 장애인 조사 매뉴얼 작성 등 검찰의 조사 문화 개선에 고민을 많이 하면서, 미흡하나마 최선의 노력을 하는 그냥 평범한 검사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사무감사에서 다수 사건을 지적받고,
사무감사 지적을 이유로 검찰총장 경고를 받고,
검찰총장 경고를 이유로 전결권을 박탈당하고,
검찰총장 경고를 이유로 통상적이지 않은 인사 발령을 받았습니다.
(이 부분에 관하여는 첨부한 문서에 상세히 기재를 하였습니다)
납득하기 어려운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진 이유를 알기 위해 노력하던 중
(그들의 결속력은 매우 견고하여, 명확히 전 과정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였으나,)
인사발령의 배후에는 안태근 검찰국장이 있다는 것을,
안태근의 성추행 사실을 당시 검찰국장이던 최교일이 나서서 덮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임은정 부부장님의 여러 글에 등장하는 검찰간부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불이익을 받은 여검사 사건이 이 내용입니다)
너무나 부당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말렸습니다.
“너 하나 병신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지금 떠들었다가는 그들은 너를 더더욱 무능하고 문제 있고 이상한 검사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입 다물고 그냥 근무해라“
저는 그저 제 무능을 탓하며 입 다물고 근무하는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순진하게도 저는 믿었습니다.
그냥 내가 성실히 근무를 하고, 열심히 맡은 사건을 처리하면 나의 진실성과 성실성을 알아줄 것이라고,
검사직에 미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10년 넘게 열심히 일해 왔는데 명예는 회복하고 나가자고 입술을 깨물며 일을 계속하였습니다.
언론에 이야기를 해보라는 권유나 기자의 접촉도 있었으나, 조직을 위하겠다는 마음에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나는 평범하게 성실히 일하는 검사이고, 내가 겪은 일련의 일들은 부당하다고 법무부 등에 조용히 의사를 표시해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들은 답변은 ‘검사 생활 얼마나 더 하고 싶냐, 검사 생활 오래 하고 싶으면 조용히 상사 평가나 잘 받아라’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이제는 알겠습니다.
저의 믿음이 얼마나 어리석고 순진한 것이었는지,
그들에게 힘없고 빽없는 일개 검사가 얼마나 우습고 하찮은 존재인지...
-소망-
정의로운 검찰, 국민의 신뢰를 받는 검찰
투명한 인사제도, 상벌 절차의 객관화
이러한 검찰의 모습을 바라지 않는 검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인사제도, 상벌절차가 투명해지지 않는 한,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우리 검찰에서 정의를 바로 세우기는 힘들다는 것은
제가 굳이 긴 말을 하지 않아도 모두 공감하실 것입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개혁위 등에서 검찰 인사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하면
‘그 썩어빠진 것들 그냥 그대로 살라고 냅둬라’라는 의견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암담함을 느낍니다.
‘빽 젤 쎈 놈이 젤 좋은데 간다’는 인사제도
빽 센 놈이 밀고 들어오면 인사발표 당일에도 요직 자리가 바뀌는 인사제도
그래서 빽 없고 힘 없으면 간부 말 잘 들어서 평가라도 잘 받아야 하니, 간부의 그 어떤 갑질, 폭언, 부당한 지시에도 눈감고 입 다물게 하는 인사제도
제대로 소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명확한 이유도 알 수 없는 상벌제도
가해자들은 당당히 잘 살아가고 피해자들만 박해를 받고 위축되어야 하는 성폭력 성추행 성희롱......
우리는 언제까지 ‘그 썩어빠진 것들 그냥 그대로 살라고 냅둬라’라는 국민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걸까요
제가 너무 검찰에 오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모르게 뭔가 튀는 행동은 자제하게 되고,
그저 묵묵히 내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내가 겪는 불의와 폭력에는 눈 감고 입 다물며,
평범하고 힘없는 일개 검사가 무엇을 바꿀 수 있나 체념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제가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검사라는 사실을 잊고 조직의 작은 부품으로 생활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저는 아직도 너무나 검찰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검찰이 조금이나마 달라질 것을 기대하면서 이런 글을 쓰고 있으니 말입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너가 뭐라고 해봤자 검찰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너가 떠들면 그들은 눈깜짝 하지 않고 너를 더 문제 있는 검사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인사에 불만 품고 떠드는 검사 취급이나 할 것이다. 그냥 조용히 있어라........’
저도 그분들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냥 조용히 나 혼자 검찰을 나가면 되지 않을까...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10년전 한 흑인 여성의 작은 외침이었던 Me Too 운동이 전 세상을 울리는 큰 경종이 되는 것을 보면서,
‘과거의 잘못을 단죄하지 않는 것은 미래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이다’라는 Albert Camus의 글을 읽으면서,
아무리 제 존재가 너무나 작고 미미하더라도,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 스스로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내부로부터의 개혁을 이룰 수 있는 아주 작은 발걸음이라도 된다면 하는 소망으로,
미래의 범죄에 용기는 주어서는 안되겠다는 간절함으로 이렇게 힘겹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목소리 내어 이야기하는 검사도, 묵묵히 일만 하는 검사도, 또 소위 코어의 귀족검사도
모두 각자 다른 모습으로 검찰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아무도 우리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미미한 발걸음일망정 한발씩 한발씩 우리 스스로 나아가야만 우리 모두가 원하는 진정한 내부의 정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나에게 일어난 불의와 부당을 참고 견디는 것이 조직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드러내야만 이 조직이 발전해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됩니다.
나는 소망합니다.
우리가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검찰, 진정 정의를 실현하는 검찰로 우뚝 서기를....
저는 아직도 검찰을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희망을 이렇게 품고 있으니 말입니다.
#MeToo, # 검찰인사제도, # 검찰내성폭력
서지현 검사가 자신을 '여성'으로 표현한 일기 형식의 글
#1
‘드르르르륵.....’
여자는 별안간 울리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아이에게서 온 전화다.
“집에 왔어?”
“집에 오면 뭐해요... 또 논술 학원 가야하는데...”
아이 목소리에 힘이 없다.
“왜 논술학원 가기 싫어?”
“논술학원을 다른 날로 바꾸면 안되요? 목요일이 제일 바쁜 날이어서 너무 피곤해요....”
“그래. 바꾸는 건 나중에 의논해보고, 피곤하면 가지 않아도 돼”
힘없이 들릴 듯 말듯 하던 아이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지더니 전화가 ‘툭’ 끊긴다.
여자는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한다. 벌써 5시가 넘었다.
세상에...시간이 이렇게나 되었네....
화들짝 놀라 앞에 펼쳐져 있던 책을 덮으니 제목이 다시금 눈에 들어온다.
‘82년생 김지영’
하아....나보다 10년이나 어려도 여전히 비슷비슷하게 살아가고 있구나...
흐음...난 ‘72년생 박지현’이라는 책이라도 써야하나....
불현듯 아이를 낳았을 때,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그 상상을 초월한 끔찍한 고통의 끝에서 움켜쥐었던
머리끝까지 치솟던 분노와 - 도대체 신은 왜 여자에게 이렇게까지 끔찍한 고통을 주는 것일까, 도대체 왜 아무도 출산의 고통이 이토록 끔찍하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은 것일까 하는 - 내가 이토록 고통 받을 또 하나의 존재를 낳지 않은 것이 너무나 다행이라는 안도감의 기억이 슬며시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간다....
딸을 낳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야.... 세상은 이렇게나 그대로인걸....
10년이 지나도, 그리고 또 10년이 지나도 이 세상은 변하긴 영영 글렀어.
에어콘의 추위를 녹이기 위해 오랜만에 마신 녹차 때문인지 혀끝이 영 쓰다.
아이가 집에 왔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 여자는 황급히 앞에 놓인 책들을 주섬주섬 모아들고 의자에서 일어서다 핑그르르 현기증에 스르륵 주저앉는다....
맞아. 나 조금 전 퇴원했지.....
여자는 그제서야 자신이 머리를 가눌 수 없을 만큼 뱅글뱅글 도는 어지러움에 입사 후 처음으로 1주일씩이나 병가를 내고 입원했다가 조금 전 퇴원했다는 것을 갑자기 떠올린다.
‘개새끼’
혼자서 퇴원 수속을 마친 후, 얼마만인지는 기억도 나지 않게 오랜만에 가져보는 혼자만의 휴식 시간에, 조금 무리해서 동네 서점에 와 앉았었던 여자의 입에서 이제는 익숙해진 욕이 자연스레 튀어나온다.
이전까지 썼던 제일 심한 욕이 ‘거지같은 놈’ 정도였던 여자였지만, 이제는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이 모든 일들을 참아내기 어려워졌다.
이 모든 게 다 그 개새끼 때문이야....
다시 한번 욕을 뱉어내며 앞에 놓인 책들을 전보다는 조심스럽게 모아 들려니 조금 전 읽었던 책의 구절들이 툭툭 갈비뼈를 두드린다.
칫 결국 이 모든 게 그저 참고 침묵하기만 했던 내 잘못이라는 건가....
하지만, 세상이 여전히 이 모양인데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냐고....
여자는 조용히 혼자서 입을 삐죽거렸다. 한동안 잊고 있던 한기에 몸이 파르르 떨려온다.
엄마가 아픈 것 따윈 관심도 없이, 오랜만에 평일에 엄마가 회사에 가지 않은 것을 한없이 좋아하며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여자를 향해 새끼 강아지처럼 폴짝폴짝 뛰어나올 아이 생각에 걸음을 재촉해 보려는데, 아무래도 울렁울렁 여전히 온몸이 후들거린다.
정확한 원인을 모르겠다는 발작성 현기증 때문인지, 병원에서 막 나와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인지, 조금 전 읽었던 책의 내용 때문인지....여자는 알기 어렵다.
여자는 다시 한번 조용히 되뇌인다.
이 모든 게 다 그 새끼 때문이야....
이 모든 게 최근 일주일 이상, 그 놈의 얼굴이 계속해서 뉴스를 도배했기 때문이다.
‘쥐새끼 같은 놈. 언젠가 터질 줄 알았어.....’
얼마 전부터 부쩍 그놈의 소식들이 인터넷에 떠돌기 시작했을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었다.
한동안 자지 못하던 잠을 겨우 자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금 날이 밝을 때까지 하얗게 밤을 지새우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하지만, 여자는 자신이 그렇게 터져버릴 줄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잊기 위해 그토록 노력했다. 용서했다고 생각했다. 복수는 신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여자가 믿고 있던 신은 정의의 신이라고 했으니까......
그렇게 믿는 방법 밖에 없었다.
헤아릴 수 없는 날들을 아무리 밀어내도 떠오르는 그놈의 그 눈빛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수시로 가슴이 조여오고, 누웠다가 발딱발딱 일어나고, 피가 발바닥에서부터 거꾸로 솟구쳐 올랐다.
이게 바로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것이구나...비유적인 표현인 줄만 알았더니...
어렵게 생긴 아이까지 유산됐다. 꽤 안정기에 들어섰다 했었는데...
장자연, 성완종....언젠가 들었던 그런 이름들이 떠올랐다.
‘죽어봤자 밝혀지는 것도 없는데..’라고 너무 가볍게 그들을 입에 올렸던 탓일까...
그놈은 너무나 강하고, 여자는 아무런 힘이 없는 것이 내내 너무나 분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목숨을 던지는 방법밖에 없는 것일까....정말 그 방법 밖에는 없는 것일까..
수도 없이 여자의 머리를 뒤흔든 생각이었다.
여자는 여전히 선함이 악함을 이길 것이라고, 최선을 다해 선하고자 했던 자신의 의지가 틀리지 않았었다고 너무나도 순진하게 믿고 싶었다.
자신이 보아왔던 그 숱한 불의를, 그토록 잔혹한 악의 승리를 마치 한번도 보지 못했다는 것처럼....
그것은 여자에게 불의와 악에 저항하고 선을 수호하려는 강력한 의지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아무런 힘도 어떠한 빽도 없는 여자에게 오직 그렇게 믿는 외에는 달리 스스로를 위안할 방법도 상황을 해결할 묘책도 없어서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계속 가슴을 쥐어 뜯다가는 결국은 마지막 선택을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시신경유두부종이라고 했던가 처음 들어본 발음하기도 어려운 병이 의심된다며 어느 날 갑자기 시력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이 계속해서 귓가를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
잊기 위해 그토록 노력했다. 그것만이 살아낼 수 있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여자의 뇌에는 그 날 그 곳에서의 그놈의 행동들, 그놈의 숨결, 어쩌면 그 술 냄새까지 또렷이 더 또렷이 새겨질 뿐이었다.
장례식장이었다.
별로 친하지 않은 동기였지만 - 부모님을 전부 잃은 여자는 미혼의 여동기가 부친상을 당한 것이 영 안쓰러웠다.
지나친 오지랖이었어...
여자는 두고두고 그것을 후회했다.
원래는 콘서트를 가려고 나선 길이었다.
10월...벌써부터 길가에는 쓸쓸한 나뭇잎들이 나뒹굴고, 아침 저녁으로 얇은 코트라도 걸쳐야 할 정도로 꽤 쌀쌀해지기 시작했는데, 야외콘서트라니 작은 연하늘색 무릎담요까지 준비한 터였다.
함께 지하철을 타고 콘서트장으로 향하던 남편이, 갑자기 그 시간에 있는 어떤 강의가 듣고 싶다고 했다.
동기의 부친상이 영 마음 한켠에 걸렸던 여자는 ‘그럼 나는 장례식장에 갈테니, 당신은 강의를 들으러 가라’고 순순히 가던 길을 돌려 지하철에서 내렸다 두고두고 그 때 그 순간을 후회했다.
왜 그렇게 순순히 돌아섰는지, 왜 콘서트장을 간다고 나서면서 때마침 검은 옷을 입고 나섰었는지....
여자는 두고두고 그날의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엄마 그리고 아빠.....그토록 그녀를 사랑해주었던 그들을 차례로 보낸 후, 여자는 한동안 장례식장에 가지 못했었다.
만삭의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아빠를 보내 드린 지 3년이 넘었건만, 여전히 장례식장은 여자에게 힘든 곳이었다.
가빠지려는 숨을 고르며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얼굴을 알만한 동기는 아무도 없었다.
금요일 부고 소식이 올라왔고 지금은 토요일 오후이니 그럴 법도 하지..
아는 사람도 없는데, 조금만 앉아있다 조용히 일어나야지...
여자가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장례식장에 장관이 들어섰다. 다른 한명의 수행검사와 함께...
페이스북인지 트위터인지도 열심히 한다는 장관을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다. 장관은 언론에서 본 모습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장관은 여자가 앉아있던 테이블의 중앙에 자리 잡았고, 이곳 저곳 삼삼오오 앉아있던 검사인 듯한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그를 향해 모여들었다.
수행검사가 장관 옆에 앉았다. 누군가 조용히 여자에게 그 옆에 앉으라며 여자의 팔꿈치를 밀었다...뭐지? 순간 당황한 여자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리 중 여성은 여자 혼자 뿐이었다
여자는 어느 샌가 떠미는 대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미처 생각할 틈도 없이....
이미 익숙해진 일이었다. 기수 문화가 그리도 엄격한 여자의 회사에서, 여성을 그리도 무시하는 여자의 회사에서, 기수와 상관없이 높은 양반 옆 중앙 좌석에 여성을 앉히는 일은 거의 언제나 있는 일이었다. 여자는 그때 수행검사가 술에 취한 상태였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 그것이 문제였다. 기수상 그곳에 앉을 기수가 아니었다. 왜 도대체 그 자리에 그렇게 아무 저항 없이 앉았던 것일까....그놈이 장관을 수행하고 기자들과 전작을 하고 오는 길이라는 말을 왜 그렇게 흘려 들었을까....
그놈이 자꾸 여자 쪽으로 몸을 기댔다.
마니 취했나......
옆에 있던 장관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 놈을 수행하고 다니는지, 이놈이 나를 수행하고 다니는지 모르겠어 허허허”
모두가 장관을 따라 허허허 웃었다. 콘서트장에 가려고 준비했던 무릎담요를 그놈과의 사이에 놓고 애써 그놈과의 거리를 조금이라도 더 벌리기 위해 식은 땀을 흘리고 있던 여자만 빼고.....
마니 취했나.... 장관은 이 꼴을 보고 하는 말이야 못보고 하는 말이야....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는 여자는 회사에 들어온 이후부터 많은 술 취한 상사와 선배들을 마주 해왔다. 술에 취해 이 정도 기대는 것으로 불쾌감을 표현해서는 예민 떤다고 여자만 손가락질 당할 뿐이다....
빨리 장관이 일어나야 하는데...
언제나처럼 여자는 아랫입술을 꾸욱 깨문다. 어찌 된 일인지 장관은 쉽게 일어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동기가 장관과 꽤나 친밀한 관계였나보다.
장관보다 먼저 일어서 나오는 것이 쉽게 양해되지 않는 회사 분위기를 알기에 적절한 틈을 타 아무도 모르게 빠져 나와야겠다는 생각에 눈치를 보고 있는데, 바로 그때였다. 여자의 허리 쪽에서 무언가 스멀스멀한 감촉이 느껴졌다.
무심히 내려다본 여자의 허리에 그놈의 손이 닿아 있었다.....
설마....땅을 짚다 잘못 닿았겠지...이렇게나 사람들이 많은데...바로 옆에 장관이 앉아 있는데.....
여자는 그놈과의 사이에 놓여있던 무릎담요의 부피를 좀 더 넓히며 옆으로 삐죽삐죽 그놈과의 거리를 넓히기 위해 움직였다.
그런데,
분명 그놈의 손이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움직였다. 어느새 그놈의 손이 그녀의 엉덩이를 더듬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여자는 알 수 없었다.
내가 느끼는 것은 환상일까....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옆에 장관이 앉아 있는데...상식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여자는 그것이 자신의 머릿속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환상인 것만 같았다.
아니 이런 건 환각이라고 해야 하나....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계속해서 하체 쪽에 느껴지는 그 스멀거림이 실제인지 환상인지 여자는 알 수 없었다. 몸을 조금씩 비틀어 조금이라도 그 스멀거림을 피하고, 그놈의 그 손을 떼어놓기 위해 애쓰던 여자 주위의 모든 것이 언제부터인지 부옇게 보이며 느릿느릿 움직였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뇌를 비웃듯 또르르 또르르 떨리기 시작하던 여자의 심장이 견딜 수 없이 요동쳤다.
어떻게 그곳을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언제부터 그곳에 서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여자는 화장실 거울 속에 눈을 질끈 감은 채 몸을 떨며 서있는 여자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있는 힘을 다해 눈을 크게 부릅뜨려 하면 할수록 거울 속 여자는 이를 악물며 눈을 더욱 더 세차게 내리 감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어쩌면 환각이었을지도 몰라...여기는 장례식장이잖아....
분명 환각이었을 거야...여기는 장례식장이잖아...
눈을 떠야지....눈을 떠야 집에 가지.... 집에 가야지....집에 가야 아이를 보지....
‘아이’라는 소리에 거울 속 여자가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여자의 부모님이 꿈결처럼 그렇게 여자의 곁을 홀연히 떠난 후, 여자가 살아있는 단 하나의 이유였다.
아이를 돌보아 줄 일가친척이 아무도 없는 여자에게 이모님들은 유일하게 여자가 회사에 다닐 수 있는 끈이었다.
그런 여자를 비웃듯 어떤 이모님은 애를 데리고 담배연기 자욱한 불법 도박장에 다녔다. 어떤 이모님은 3달 동안 아이에게 맨밥만 먹였다. 어떤 이모님은 알러지가 있는 약을 정량의 5배 이상 들이부어 아이를 쇼크로 잃을 뻔도 했다.
‘친정엄마 없이 애 키우면서 회사 다니는 여자는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여자야’
‘어휴.....내가 나라 하나 팔아먹고 이렇게 살겠어....최소 한 3개는 팔아먹었나봐’ 여자가 종종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만 바라보면 사르르 사르르 행복감이 여자의 목구멍을 간지럽혔다. 세상의 무게에 무너져 내리려 할 때면 아이에게 여자가 겪었던 엄마 없는 아픔을 겪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언제나 말아쥔 여자의 주먹에 불끈 불끈 힘을 넣어주었다.
그래 빨리 집에 가자....아이한테 가자....
서서히 떨림이 잦아들며 여자는 그곳에 두고나온 핸드백과 무릎담요를 떠올렸다. 양손을 힘껏 주고 눈을 애써 부릅뜨고 그제서야 화장실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곳을 들여다보았다. 그놈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금 떨려오는 가슴을 다잡으며 스르르 들어가 그까짓 크게 비싸지도 않은 핸드백과 무릎담요를 챙겨 나오던 여자 앞에 시커먼 그림자가 부딪혔다.
잘못 발이 엉긴 것으로 생각하고 슬쩍 옆으로 몸을 피해 나오려는 여자 앞에 다시금 같은 그림자가 부딪혔다.
그제서야 그림자의 얼굴을 올려다본 여자 눈에 촛점이 반쯤 풀린 채 실실 거리며 여자 앞을 막아서고 있는 그놈의 얼굴이 들어왔다. 와락 풍겨오는 역겨운 술냄새에 그제서야 부옇던 여자의 눈이 여자를 흘겨보다 꾸욱 내리 감으며 코웃음 치듯 중얼거렸다
거봐...모든 것은 현실이었다구....
#3
여자는 내내 남편을 원망했다.
그냥 ‘엉덩이를 만졌다’고 말한 여자에게 남편이 큰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은 채 ‘고소 같은 것을 감당할 수 있겠냐’고 물었을 때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한 것은 여자였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모두의 관심은 상대 여성이 누구인지에 쏠려 그저 흥밋거리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 왔던 것을 수도 없이 봐왔던 터였다.
누구도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상대 여성은 어느새 함께 일하기 불편하고 예민한 여성으로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당하는 것을 봐왔기 때문이었다.
아니 며칠전 청 간부가 “여성들이 검사로서 인정받으려면 술자리에서 친목차원에서 있었던 일에 예민을 떨어서는 안된다. 그런 걸로 예민을 떨어대니 검사로서 인정을 못 받는 것이다”라고 대놓고 연설하는 것을 직접 듣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여자는 자꾸만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그 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좀더 자세히 이야기했더라면 남편은 조금은 더 분노해주었을까....집에 오는 내내 계속 뺨에 눈물이 흘러내렸고, 집에 오자마자 화장실에 뛰어 들어가 변기를 부여잡고 한참을 꾸역꾸역 위액을 쏟아냈다는 것을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라면 남편의 반응이 달랐었을까....
치마 속으로 손이 들어온 것만 아니라면 여성의 엉덩이와 허리를 껴안고 더듬는 것은 그렇게 치욕스럽고 끔찍한 일은 아닌 것일까....
헤아릴 수 없는 혼란이 여자를 휘감았다.
수도 없는 ‘만약에’가 여자의 가슴을 내리찍었다.
만약에 괜한 별로 친하지도 않은 동기에게 그런 오지랖을 보이지 않았더라면...만약에 그날 검은 옷을 입고 집을 나서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강의에 가고 싶다는 남편의 말을 무시하고 계획대로 콘서트장에 갔더라면...
만약에..,....만약에........만약에.......
그리고 만약에....아빠가 살아있었다면.......
중1 반장이던 언니가 반 아이들이 떠들었다는 이유로 대표로 엉덩이에 몽둥이 세례를 당하고 온 날, 아빠가 그 담임에게 전화를 해 고함을 질러댔던 일이 또렷이 떠올랐다.
만약에 아빠가 살아있었다면....만약에 아빠가 살아 있었다면 .....
그렇게 아빠가 떠오를 때마다 여자는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아니다. 이 모든 게 아빠 때문이다.
여자가 아빠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착하고 예쁜 내 딸’이었다.
그렇다. 이 모든 게 아빠 때문이었다.
이 땅에서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는 여자를 착하고 예쁜 딸로 키워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 어떠한 불의도 참아내지 말라고, 그 어떠한 부당함에도 입 다물지 말라고, 욕설을 하고 소리를 질러대며 절대로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네 멋대로 그렇게 살아가라고 그렇게 가르쳐줬어야 했다.....
아니다. 이 모든 게 엄마 때문이다.
5살 6. 25. 동란에 아버지를 잃고, 3살 동생을 등에 들쳐 업은 채 부르튼 발로 먼 길을 걸어 피난을 갔다는 여자의 엄마는 말수가 별로 없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계집애들을 보러오다 변을 당했다'면서 ‘지 아버지 잡아먹은 딸년들’이라고 고모할머니들로부터 수도 없이 구박을 받았다면서도 일년에 한번씩은 꼬박꼬박 고모할머니 댁을 찾아가는 엄마였다.
한번씩 들이닥쳐 폭풍우를 일으키는 할머니나 고모 앞에서도 엄마는 언제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구석을 멍하니 응시한 채 입술만 깨물 뿐이었다.
그렇다. 이 모든 게 엄마 때문이었다.
이 땅에서 여자를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는 참고 또 참는 모습을 보여주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 어떤 불합리도 참아내지 말라고, 여성이라고 무시하거나 업수이 여기는 것은 더더욱 참아내서는 안된다고, 그런 놈들에게는 멱살을 휘어잡고 주먹을 휘둘러줘야 한다고 그렇게 가르쳐줬어야 했다......
부질없는 원망을 하던 여자는 다시금 머리를 세차게 내저었다.
모든 것은 다 내 탓이다. 모든 것은 다 내 잘못이다. 다 내 잘못이다....
그놈이 그 후 회사의 빅2라는 국장 자리까지 꿰차고 수년간 절대 권력을 누려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분명히 사과를 요구했지만, 사과 따위는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대단한 힘을 가지신 분께 사과를 요구했던 것이 얼마나 순진하고 무례하고 어이없는 일이었는지를 안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날의 일을 수많은 사람들이 수군거렸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 그 자리에서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하였다는 듯 그리 웃고 떠들던 그들이...- 그날의 일을 당시의 국장이 나서서 덮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그제서야 납득할 수 없었던 사무감사와 경고와 기수에 맞지도 않게 갑작스레 이루어진 외딴 곳으로의 발령 등등 그 후 여자에게 일어났던 설명되지 않았던 모든 일들의 이유가 갑자기 또렷해진 것이 화근이었다.
모든 것은 다 내 탓이다. 모든 것은 다 내 잘못이다. 다 내 잘못이다....
수없는 시간들을 수많은 밤들을 자기반성, 자체검열, 자아성찰 이딴 것들로 채워가고 있었는데, 그렇게 비틀비틀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는데, 그렇게 꾸역꾸역 순간순간을 버텨내고 있었는데...
외딴 근무지에서 혼자 있다가 갑자기 실명되어버릴 경우에 대비해 혼자서 손의 감각에만 의지해 걸어가는 연습을 해보고, 눈을 감고 휴대전화로 119 또는 남편의 번호를 누르는 연습을 해볼 때도 이제는 눈물 따위 흘리지 않았지 않은가....
그런데 별안간 왜 세상이 그리 뱅글뱅글 돌아버린 것인지...왜 그렇게 와락 무너져 내려 버린 것인지....
#4
평일 이 시간의 거리는 이토록 눈부시구나....
오후 5시가 막 넘어섰는데도 여전히 햇살이 눈부시다. 혀 속은 여전히 쓰다.
따스한 바람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햇살은 휘청거리는 여자의 발걸음을 황홀하게 재촉한다.
햇살을 머금은 채 반짝이는 바람 사이로 한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여자의 머리 속에는 아직도 ‘82년생 김지영’의 내용들이 휙휙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 나에게 ‘82년생 김지영’의 이름 모를 여성처럼 ‘네 탓이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이야기해주었다면 나는 조금 더 쉽게 버텨낼 수 있었을까...
여자는 고개를 내저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모두 여자 탓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국장이 당시 일을 전혀 몰랐을 수도 있어. 너에게 일어난 일들은 네 자신 때문일 가능성이 커. 그게 아니더라도 그렇게 생각해야 네가 더 발전할 수 있어’ 이런 충고도 들었던 터였다.
밝은 옷과 치마를 좋아했던 여자는 어느 샌가 검은 색 바지만 입고 있었다. 치마가 조금만 짧아도 옷의 색상이 조금만 밝아도 ‘네가 이러니 그런 꼴을 당했지’ 어디선가 수근대며 여자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마지막으로 파마를 한 게 언제였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여자의 머리 속엔 뱅글뱅글 돌고 있는 저 눈부신 햇살을 따라 여전히 한가지 생각이 뱅글뱅글 돈다.
누군가 처음부터 내 탓이 아니라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주었다면, 내 삶은 달라졌을까....
임관하자마자 부터였다 아니 임관을 하기도 전이었다.
임관 이틀 전 관사가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이사를 하면서 인사를 간 여자를 청장은 다음날 떠나는 검사들 환송식에 참석시켰다.
식사 후, 청장이 떠나고 2차를 주도하던 해병대 출신이라는 눈이 부리부리한 부장은 별안간 여자에게
‘나는 술 안 먹는 검사는 검사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대생을 싫어한다. 나는 여검사를 싫어한다. 너는 내가 싫어하는 것을 다 갖추었으니 완전 악연 중에 악연이다. 너 같이 생긴 애치고 검사 오래 하는 애 못 봤다. 내가 너 검사 얼마나 하는지 지켜보겠다.'라며 독설을 퍼부어내다가 한마디 덧붙였다. ’아 참 너는 아직 검사도 아니지만....’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처음으로 시작하려는 사회 생활, 처음 보는 사람들에 둘러쌓인 채, 모든 게 어색해 그저 조용히 옅은 웃음만 지으며 앉아있던 여자는 도대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했다. 부장이 여자를 처음 본 것은 불과 2시간 전의 일이었다.
부장이 그다지 취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여자를 더욱 당혹스럽게 해 여자는 대꾸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아랫 입술을 꾸욱 깨무는 외에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여자가 술을 못 마시는 것도, 이대를 졸업한 것도, 여성인 것도 모두 사실이었다.
얼굴이 둥글둥글하고 눈이 작던 부장은 수도 없이 여자에게 이야기했다. ‘검사는 너처럼 공주 같으면 안 돼’
그럴 때마다 여자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한없이 생각해야만 했다.
밥자리에서 부지런히 뛰어다니지 않은 건 아무래도 이상해서였다.
밥을 먹기 전에는 신속하게 숟가락 젓가락과 티슈를 세팅하고, 모든 컵에 물을 따라 서열 순대로 상관과 선배 앞에 대령하고, 밥을 먹으면서도 행여나 비워진 접시나 물컵이 있는지 계속해서 살펴보다가 사라진 음식을 주문해내고 물을 따라야 하는 부지런을 떨어야 하는 것이 여자가 말석이라서 해야 하는 것인지 여성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인지 잘 판단이 서지 않아서였다. 길을 걸을 때도 산을 오를 때도 단 반걸음이라도 윗사람보다 앞서지 않도록 수시로 애써 속도를 조정하며 서열 순대로 걸어가는 모습들이 영 어색해서였다.
그밖에 일적인 면에 있어서 게으름을 부린 적은 없었다. ‘올해부턴 여검사가 백명이 넘었다니...우리 회사 앞날이 큰일이다.....’라며 여자를 쳐다보며 혀를 끌끌 차대는 상관과 선배들의 걱정 어린 말들을 수도 없이 들었던 터였다. ‘나 하나 잘못하면 여검사 전체를 욕 먹게 한다’는 생각에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모욕적이어도 이를 악물어 왔던 터였다.
생각해보면 한때 공주였던 적도 있었던 것만 같아서 -대학에 막 입학해 고등학교 때보다 몸무게가 한껏 빠져 스스로 만족감을 느꼈던 그 때 정도 - 자신도 모르는 새 무엇을 잘못했나....부장 입에 ‘공주’라는 말이 올라올 때마다 여자는 괜시리 어깨가 움츠러 들었다.
얼굴이 작고 호리호리 말랐던 부장은 부임 첫날부터 회식을 했다.
술잔이 얼마나 돌았을까....눈빛이 살짝 흐려진 부장은 여자의 이름을 큰 소리로 또박또박 부르더니 이렇게 말했다.
‘박지현! 나는 여성은 남성의 50프로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너는 여기 있는 애들 50프로야!. 그러니까 나한테 인정을 받으려면 너는 여기 있는 애들보다 2배 이상 더 열심히 해야 해!!!’
여자의 사건을 단 한건도 결재해보지 않은 채 모든 사람 앞에서 ‘너는 여기 있는 애들의 50프로야’라고 확신에 차 말하고 있는 부장보다, 그 옆에서 연신 머리를 끄덕끄덕 하며 ‘옳으신 말씀이야. 새겨들어’라고 말하던 평소 가장 점잖다고 생각하던 바로 윗선배 A의 모습이 여자에게는 더욱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야 너는 여자애가 무슨 발목이 그렇게 굵냐, 여자는 자고로 발목이 가늘어야 한다’라는 등의 헛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대고, 술이 취해 툭 하면 머리나 어깨 등을 때려대던 B선배나, 여자가 있는 자리에서도 틈만 나면 음담패설을 늘어놓던 C선배나, 웃으면 ‘여자가 그렇게 웃음이 헤퍼서 쓰냐’고 나무라고, 웃지 않으면 ‘여자는 안 웃으면 안된다’고 설교를 해대던 D선배에 비해 젠틀한 느낌을 주던 선배였는데....
딸만 둘 있고, 입만 열면 딸들 자랑에 침이 마를 새 없었던 부장은 노래방만 가면 2시간씩 혼자 마이크를 잡고 있다가, 마이크만 놓으면 여자에게 부르스를 추자면서 풀린 눈으로 집요하게 손을 내밀었다.
부장과 주말이면 ‘좋은 곳’을 다녀온 남자 선배들은 월요일 아침이면 여자의 사무실에 모여앉아 ‘부장은 왜 그 여종업원 팬티를 머리에 쓰고 있었냐’는 등의 이야기를 해대며 낄낄거렸다.
그 후로도 많은 일들이 벌어졌고, 많은 말들을 들었지만, 이제는 처음처럼 그것들이 여자의 마음 속 깊이 파고들어 여자를 괴롭히는 일은 자주 없었다.
특별히 여자의 삶을 진심으로 걱정한다거나 남편감을 소개시켜주는 것도 아니면서 수시로 여자가 결혼을 안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에 대해 자기들끼리 논쟁을 벌인다거나, 여자에게 ‘너 정도 나이면 이제는 남편감을 외국에서 찾아보거나 재혼자리를 알아봐야 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내던 말들도 여자의 결혼과 함께 조용히 사라졌다.
다시 한번 부장으로 만난 호리호리한 예전 부장이 회식자리에서 술에 취해 꽤나 오랜 시간 여자의 손을 주물러댈 때, ‘다른 사람들은 이 장면을 못보고 있나, 왜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 손을 주무르는 것은 추행으로 볼 수 없는 것인가’....언젠가의 그날처럼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한참을 생각해야만 했던 그런 일이라던가,
회식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밤이면 여자에게 ‘너는 안 외롭냐? 나는 외롭다. 나 요즘 자꾸 네가 이뻐 보여 큰일이다’라던 E선배 -유부남이었다 -나,
‘누나 저 너무 외로워요, 오늘은 집에 들어가기 싫어요, 저 한번 안아줘야 차에서 내릴 꺼예요’라고 행패를 부리던 F후배 -유부남이었다 -나,
술이 취해 집으로 돌아가다가 ‘에고 우리 후배 한번 안아보자’며 와락 껴안아대던 G선배-유부남이었다-나,
노래방에서 나직한 눈빛으로 여자를 바라보며 ‘도대체 너는 왜 우리 회사에 왔냐’라는 알 수 없는 말을 해대더니, 술도 못 마시는 게 분위기도 못 맞춘다는 말을 피해보려 - 그 나직한 눈빛도 피해야했고 - 열심히 두드린 탬버린 흔적에 아픈 손바닥을 문지르고 있던 여자에게 ‘네 덕분에 도우미 비용 아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던 이름도 기억 나지 않는 부장이나,
‘잊지 못한 밤을 만들어줄테니 나랑 자자’ 따위의 미친 말을 지껄여대더니 다음날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던 F선배- 유부남이었다- 따위가 이따금 있기는 했지만....
그럴 때마다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랫입술을 꾸욱 꾸욱 깨무는 것 뿐이었다.
그 큰 청에 성폭력 사건 전담할 검사가 여자밖에 없다고 하여 만삭상태에서 변태적인 성폭력 사건을 조사해야 할 때도, 나이트클럽에서 여성을 모텔로 떠메고 가 강간을 한 사건에 대해 ‘여성들이 나이트를 갈 때는 2차 성관계를 이미 동의하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강간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부장이나, ‘내가 벗겨봐서 아는데’ 식으로 강간사건에 유달리 관심을 보이는 부장 앞에서도 여자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 것도 없었다.
평생 한번 받기도 어렵다는 장관상을 2번을 받고, 몇 달에 한번씩은 우수사례에 선정되어 표창을 수시로 받아도 그런 실적이 여자의 인사에 반영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여자의 실적이 훨씬 좋은데도 여자가 아닌 남자선배가 우수검사 표창을 받는다거나, 능력 부족으로 여자가 80건이나 재배당받아 사건을 대신 처리해줘야 했던 남자후배가 꽃보직에 간다거나 하는 일이 종종 일어날 때도 여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아랫입술을 꾸욱 깨무는 외에는...
언제부턴가 여자의 저 깊은 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커먼 덩어리가 자꾸만 꿀렁꿀렁 목 밖으로 넘어오려 해 꾸욱 꾸욱 깊은 침도 삼켜내야 하는 일이 잦아졌다.
#5
누군가 처음부터 내 탓이 아니라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주었다면, 내 삶은 달라졌을까....
여전히 여자의 머리 속엔 계속 한가지 생각이 뱅뱅 돈다.
그러다 ‘82년생 박지영‘의 맨 뒤 해설에서엔가 보았던 글이 여자의 머리를 스쳐간다. ’사회가 그랬지만, 그래도 그때그때 부당함을 그냥 넘기지 않고 또박또박 이야기해온 여성들도 있었다‘는 취지의...
역시 모든 것이 내 탓이었나. 아무런 말도 못한 채 그저 꾹꾹 삼키고 또 삼켜냈던 내가 역시나 잘못이었나.....
아직도 집에 도착하려면 한참이나 남았다.
사라진 것 같았던 어지럼이 갑자기 밀려와 여자는 다시금 찬란한 햇살을 따라 빙그르르 돈다.
자신이 돌고 있는 것인지 세상이 돌고 있는 것인지 저 햇살이 돌고 있는 것인지 알아내려 애써 있는 힘껏 눈을 크게 뜨던 여자의 머릿속에 언젠가 들은 듯한, 눈을 세차게 내리감은 나직한 목소리가 여자에게 속삭인다.
딸을 낳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야....딸을 낳지 않은 게 얼마나 얼마나 다행이야....
여자는 언제나처럼 다시금 아랫입술을 꾸욱 깨문다....짭조름한 피냄새가 여전히 쓴 여자의 입속을 적신다. 또 다시 정체모를 검은 덩어리가 뱃속에서 꿀렁거린다.
‘드르르르륵.....’
여자는 별안간 울리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아이에게서 온 전화다.
“집에 왔어?”
“집에 오면 뭐해요... 또 논술 학원 가야하는데...”
아이 목소리에 힘이 없다.
“왜 논술학원 가기 싫어?”
“논술학원을 다른 날로 바꾸면 안되요? 목요일이 제일 바쁜 날이어서 너무 피곤해요....”
“그래. 바꾸는 건 나중에 의논해보고, 피곤하면 가지 않아도 돼”
힘없이 들릴 듯 말듯 하던 아이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지더니 전화가 ‘툭’ 끊긴다.
여자는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한다. 벌써 5시가 넘었다.
세상에...시간이 이렇게나 되었네....
화들짝 놀라 앞에 펼쳐져 있던 책을 덮으니 제목이 다시금 눈에 들어온다.
‘82년생 김지영’
하아....나보다 10년이나 어려도 여전히 비슷비슷하게 살아가고 있구나...
흐음...난 ‘72년생 박지현’이라는 책이라도 써야하나....
불현듯 아이를 낳았을 때,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그 상상을 초월한 끔찍한 고통의 끝에서 움켜쥐었던
머리끝까지 치솟던 분노와 - 도대체 신은 왜 여자에게 이렇게까지 끔찍한 고통을 주는 것일까, 도대체 왜 아무도 출산의 고통이 이토록 끔찍하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은 것일까 하는 - 내가 이토록 고통 받을 또 하나의 존재를 낳지 않은 것이 너무나 다행이라는 안도감의 기억이 슬며시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간다....
딸을 낳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야.... 세상은 이렇게나 그대로인걸....
10년이 지나도, 그리고 또 10년이 지나도 이 세상은 변하긴 영영 글렀어.
에어콘의 추위를 녹이기 위해 오랜만에 마신 녹차 때문인지 혀끝이 영 쓰다.
아이가 집에 왔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 여자는 황급히 앞에 놓인 책들을 주섬주섬 모아들고 의자에서 일어서다 핑그르르 현기증에 스르륵 주저앉는다....
맞아. 나 조금 전 퇴원했지.....
여자는 그제서야 자신이 머리를 가눌 수 없을 만큼 뱅글뱅글 도는 어지러움에 입사 후 처음으로 1주일씩이나 병가를 내고 입원했다가 조금 전 퇴원했다는 것을 갑자기 떠올린다.
‘개새끼’
혼자서 퇴원 수속을 마친 후, 얼마만인지는 기억도 나지 않게 오랜만에 가져보는 혼자만의 휴식 시간에, 조금 무리해서 동네 서점에 와 앉았었던 여자의 입에서 이제는 익숙해진 욕이 자연스레 튀어나온다.
이전까지 썼던 제일 심한 욕이 ‘거지같은 놈’ 정도였던 여자였지만, 이제는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이 모든 일들을 참아내기 어려워졌다.
이 모든 게 다 그 개새끼 때문이야....
다시 한번 욕을 뱉어내며 앞에 놓인 책들을 전보다는 조심스럽게 모아 들려니 조금 전 읽었던 책의 구절들이 툭툭 갈비뼈를 두드린다.
칫 결국 이 모든 게 그저 참고 침묵하기만 했던 내 잘못이라는 건가....
하지만, 세상이 여전히 이 모양인데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냐고....
여자는 조용히 혼자서 입을 삐죽거렸다. 한동안 잊고 있던 한기에 몸이 파르르 떨려온다.
엄마가 아픈 것 따윈 관심도 없이, 오랜만에 평일에 엄마가 회사에 가지 않은 것을 한없이 좋아하며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여자를 향해 새끼 강아지처럼 폴짝폴짝 뛰어나올 아이 생각에 걸음을 재촉해 보려는데, 아무래도 울렁울렁 여전히 온몸이 후들거린다.
정확한 원인을 모르겠다는 발작성 현기증 때문인지, 병원에서 막 나와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인지, 조금 전 읽었던 책의 내용 때문인지....여자는 알기 어렵다.
여자는 다시 한번 조용히 되뇌인다.
이 모든 게 다 그 새끼 때문이야....
이 모든 게 최근 일주일 이상, 그 놈의 얼굴이 계속해서 뉴스를 도배했기 때문이다.
‘쥐새끼 같은 놈. 언젠가 터질 줄 알았어.....’
얼마 전부터 부쩍 그놈의 소식들이 인터넷에 떠돌기 시작했을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었다.
한동안 자지 못하던 잠을 겨우 자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금 날이 밝을 때까지 하얗게 밤을 지새우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하지만, 여자는 자신이 그렇게 터져버릴 줄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잊기 위해 그토록 노력했다. 용서했다고 생각했다. 복수는 신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여자가 믿고 있던 신은 정의의 신이라고 했으니까......
그렇게 믿는 방법 밖에 없었다.
헤아릴 수 없는 날들을 아무리 밀어내도 떠오르는 그놈의 그 눈빛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수시로 가슴이 조여오고, 누웠다가 발딱발딱 일어나고, 피가 발바닥에서부터 거꾸로 솟구쳐 올랐다.
이게 바로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것이구나...비유적인 표현인 줄만 알았더니...
어렵게 생긴 아이까지 유산됐다. 꽤 안정기에 들어섰다 했었는데...
장자연, 성완종....언젠가 들었던 그런 이름들이 떠올랐다.
‘죽어봤자 밝혀지는 것도 없는데..’라고 너무 가볍게 그들을 입에 올렸던 탓일까...
그놈은 너무나 강하고, 여자는 아무런 힘이 없는 것이 내내 너무나 분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목숨을 던지는 방법밖에 없는 것일까....정말 그 방법 밖에는 없는 것일까..
수도 없이 여자의 머리를 뒤흔든 생각이었다.
여자는 여전히 선함이 악함을 이길 것이라고, 최선을 다해 선하고자 했던 자신의 의지가 틀리지 않았었다고 너무나도 순진하게 믿고 싶었다.
자신이 보아왔던 그 숱한 불의를, 그토록 잔혹한 악의 승리를 마치 한번도 보지 못했다는 것처럼....
그것은 여자에게 불의와 악에 저항하고 선을 수호하려는 강력한 의지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아무런 힘도 어떠한 빽도 없는 여자에게 오직 그렇게 믿는 외에는 달리 스스로를 위안할 방법도 상황을 해결할 묘책도 없어서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계속 가슴을 쥐어 뜯다가는 결국은 마지막 선택을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시신경유두부종이라고 했던가 처음 들어본 발음하기도 어려운 병이 의심된다며 어느 날 갑자기 시력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이 계속해서 귓가를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
잊기 위해 그토록 노력했다. 그것만이 살아낼 수 있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여자의 뇌에는 그 날 그 곳에서의 그놈의 행동들, 그놈의 숨결, 어쩌면 그 술 냄새까지 또렷이 더 또렷이 새겨질 뿐이었다.
장례식장이었다.
별로 친하지 않은 동기였지만 - 부모님을 전부 잃은 여자는 미혼의 여동기가 부친상을 당한 것이 영 안쓰러웠다.
지나친 오지랖이었어...
여자는 두고두고 그것을 후회했다.
원래는 콘서트를 가려고 나선 길이었다.
10월...벌써부터 길가에는 쓸쓸한 나뭇잎들이 나뒹굴고, 아침 저녁으로 얇은 코트라도 걸쳐야 할 정도로 꽤 쌀쌀해지기 시작했는데, 야외콘서트라니 작은 연하늘색 무릎담요까지 준비한 터였다.
함께 지하철을 타고 콘서트장으로 향하던 남편이, 갑자기 그 시간에 있는 어떤 강의가 듣고 싶다고 했다.
동기의 부친상이 영 마음 한켠에 걸렸던 여자는 ‘그럼 나는 장례식장에 갈테니, 당신은 강의를 들으러 가라’고 순순히 가던 길을 돌려 지하철에서 내렸다 두고두고 그 때 그 순간을 후회했다.
왜 그렇게 순순히 돌아섰는지, 왜 콘서트장을 간다고 나서면서 때마침 검은 옷을 입고 나섰었는지....
여자는 두고두고 그날의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엄마 그리고 아빠.....그토록 그녀를 사랑해주었던 그들을 차례로 보낸 후, 여자는 한동안 장례식장에 가지 못했었다.
만삭의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아빠를 보내 드린 지 3년이 넘었건만, 여전히 장례식장은 여자에게 힘든 곳이었다.
가빠지려는 숨을 고르며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얼굴을 알만한 동기는 아무도 없었다.
금요일 부고 소식이 올라왔고 지금은 토요일 오후이니 그럴 법도 하지..
아는 사람도 없는데, 조금만 앉아있다 조용히 일어나야지...
여자가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장례식장에 장관이 들어섰다. 다른 한명의 수행검사와 함께...
페이스북인지 트위터인지도 열심히 한다는 장관을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다. 장관은 언론에서 본 모습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장관은 여자가 앉아있던 테이블의 중앙에 자리 잡았고, 이곳 저곳 삼삼오오 앉아있던 검사인 듯한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그를 향해 모여들었다.
수행검사가 장관 옆에 앉았다. 누군가 조용히 여자에게 그 옆에 앉으라며 여자의 팔꿈치를 밀었다...뭐지? 순간 당황한 여자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리 중 여성은 여자 혼자 뿐이었다
여자는 어느 샌가 떠미는 대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미처 생각할 틈도 없이....
이미 익숙해진 일이었다. 기수 문화가 그리도 엄격한 여자의 회사에서, 여성을 그리도 무시하는 여자의 회사에서, 기수와 상관없이 높은 양반 옆 중앙 좌석에 여성을 앉히는 일은 거의 언제나 있는 일이었다. 여자는 그때 수행검사가 술에 취한 상태였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 그것이 문제였다. 기수상 그곳에 앉을 기수가 아니었다. 왜 도대체 그 자리에 그렇게 아무 저항 없이 앉았던 것일까....그놈이 장관을 수행하고 기자들과 전작을 하고 오는 길이라는 말을 왜 그렇게 흘려 들었을까....
그놈이 자꾸 여자 쪽으로 몸을 기댔다.
마니 취했나......
옆에 있던 장관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 놈을 수행하고 다니는지, 이놈이 나를 수행하고 다니는지 모르겠어 허허허”
모두가 장관을 따라 허허허 웃었다. 콘서트장에 가려고 준비했던 무릎담요를 그놈과의 사이에 놓고 애써 그놈과의 거리를 조금이라도 더 벌리기 위해 식은 땀을 흘리고 있던 여자만 빼고.....
마니 취했나.... 장관은 이 꼴을 보고 하는 말이야 못보고 하는 말이야....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는 여자는 회사에 들어온 이후부터 많은 술 취한 상사와 선배들을 마주 해왔다. 술에 취해 이 정도 기대는 것으로 불쾌감을 표현해서는 예민 떤다고 여자만 손가락질 당할 뿐이다....
빨리 장관이 일어나야 하는데...
언제나처럼 여자는 아랫입술을 꾸욱 깨문다. 어찌 된 일인지 장관은 쉽게 일어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동기가 장관과 꽤나 친밀한 관계였나보다.
장관보다 먼저 일어서 나오는 것이 쉽게 양해되지 않는 회사 분위기를 알기에 적절한 틈을 타 아무도 모르게 빠져 나와야겠다는 생각에 눈치를 보고 있는데, 바로 그때였다. 여자의 허리 쪽에서 무언가 스멀스멀한 감촉이 느껴졌다.
무심히 내려다본 여자의 허리에 그놈의 손이 닿아 있었다.....
설마....땅을 짚다 잘못 닿았겠지...이렇게나 사람들이 많은데...바로 옆에 장관이 앉아 있는데.....
여자는 그놈과의 사이에 놓여있던 무릎담요의 부피를 좀 더 넓히며 옆으로 삐죽삐죽 그놈과의 거리를 넓히기 위해 움직였다.
그런데,
분명 그놈의 손이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움직였다. 어느새 그놈의 손이 그녀의 엉덩이를 더듬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여자는 알 수 없었다.
내가 느끼는 것은 환상일까....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옆에 장관이 앉아 있는데...상식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여자는 그것이 자신의 머릿속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환상인 것만 같았다.
아니 이런 건 환각이라고 해야 하나....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계속해서 하체 쪽에 느껴지는 그 스멀거림이 실제인지 환상인지 여자는 알 수 없었다. 몸을 조금씩 비틀어 조금이라도 그 스멀거림을 피하고, 그놈의 그 손을 떼어놓기 위해 애쓰던 여자 주위의 모든 것이 언제부터인지 부옇게 보이며 느릿느릿 움직였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뇌를 비웃듯 또르르 또르르 떨리기 시작하던 여자의 심장이 견딜 수 없이 요동쳤다.
어떻게 그곳을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언제부터 그곳에 서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여자는 화장실 거울 속에 눈을 질끈 감은 채 몸을 떨며 서있는 여자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있는 힘을 다해 눈을 크게 부릅뜨려 하면 할수록 거울 속 여자는 이를 악물며 눈을 더욱 더 세차게 내리 감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어쩌면 환각이었을지도 몰라...여기는 장례식장이잖아....
분명 환각이었을 거야...여기는 장례식장이잖아...
눈을 떠야지....눈을 떠야 집에 가지.... 집에 가야지....집에 가야 아이를 보지....
‘아이’라는 소리에 거울 속 여자가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여자의 부모님이 꿈결처럼 그렇게 여자의 곁을 홀연히 떠난 후, 여자가 살아있는 단 하나의 이유였다.
아이를 돌보아 줄 일가친척이 아무도 없는 여자에게 이모님들은 유일하게 여자가 회사에 다닐 수 있는 끈이었다.
그런 여자를 비웃듯 어떤 이모님은 애를 데리고 담배연기 자욱한 불법 도박장에 다녔다. 어떤 이모님은 3달 동안 아이에게 맨밥만 먹였다. 어떤 이모님은 알러지가 있는 약을 정량의 5배 이상 들이부어 아이를 쇼크로 잃을 뻔도 했다.
‘친정엄마 없이 애 키우면서 회사 다니는 여자는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여자야’
‘어휴.....내가 나라 하나 팔아먹고 이렇게 살겠어....최소 한 3개는 팔아먹었나봐’ 여자가 종종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만 바라보면 사르르 사르르 행복감이 여자의 목구멍을 간지럽혔다. 세상의 무게에 무너져 내리려 할 때면 아이에게 여자가 겪었던 엄마 없는 아픔을 겪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언제나 말아쥔 여자의 주먹에 불끈 불끈 힘을 넣어주었다.
그래 빨리 집에 가자....아이한테 가자....
서서히 떨림이 잦아들며 여자는 그곳에 두고나온 핸드백과 무릎담요를 떠올렸다. 양손을 힘껏 주고 눈을 애써 부릅뜨고 그제서야 화장실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곳을 들여다보았다. 그놈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금 떨려오는 가슴을 다잡으며 스르르 들어가 그까짓 크게 비싸지도 않은 핸드백과 무릎담요를 챙겨 나오던 여자 앞에 시커먼 그림자가 부딪혔다.
잘못 발이 엉긴 것으로 생각하고 슬쩍 옆으로 몸을 피해 나오려는 여자 앞에 다시금 같은 그림자가 부딪혔다.
그제서야 그림자의 얼굴을 올려다본 여자 눈에 촛점이 반쯤 풀린 채 실실 거리며 여자 앞을 막아서고 있는 그놈의 얼굴이 들어왔다. 와락 풍겨오는 역겨운 술냄새에 그제서야 부옇던 여자의 눈이 여자를 흘겨보다 꾸욱 내리 감으며 코웃음 치듯 중얼거렸다
거봐...모든 것은 현실이었다구....
#3
여자는 내내 남편을 원망했다.
그냥 ‘엉덩이를 만졌다’고 말한 여자에게 남편이 큰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은 채 ‘고소 같은 것을 감당할 수 있겠냐’고 물었을 때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한 것은 여자였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모두의 관심은 상대 여성이 누구인지에 쏠려 그저 흥밋거리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 왔던 것을 수도 없이 봐왔던 터였다.
누구도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상대 여성은 어느새 함께 일하기 불편하고 예민한 여성으로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당하는 것을 봐왔기 때문이었다.
아니 며칠전 청 간부가 “여성들이 검사로서 인정받으려면 술자리에서 친목차원에서 있었던 일에 예민을 떨어서는 안된다. 그런 걸로 예민을 떨어대니 검사로서 인정을 못 받는 것이다”라고 대놓고 연설하는 것을 직접 듣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여자는 자꾸만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그 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좀더 자세히 이야기했더라면 남편은 조금은 더 분노해주었을까....집에 오는 내내 계속 뺨에 눈물이 흘러내렸고, 집에 오자마자 화장실에 뛰어 들어가 변기를 부여잡고 한참을 꾸역꾸역 위액을 쏟아냈다는 것을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라면 남편의 반응이 달랐었을까....
치마 속으로 손이 들어온 것만 아니라면 여성의 엉덩이와 허리를 껴안고 더듬는 것은 그렇게 치욕스럽고 끔찍한 일은 아닌 것일까....
헤아릴 수 없는 혼란이 여자를 휘감았다.
수도 없는 ‘만약에’가 여자의 가슴을 내리찍었다.
만약에 괜한 별로 친하지도 않은 동기에게 그런 오지랖을 보이지 않았더라면...만약에 그날 검은 옷을 입고 집을 나서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강의에 가고 싶다는 남편의 말을 무시하고 계획대로 콘서트장에 갔더라면...
만약에..,....만약에........만약에.......
그리고 만약에....아빠가 살아있었다면.......
중1 반장이던 언니가 반 아이들이 떠들었다는 이유로 대표로 엉덩이에 몽둥이 세례를 당하고 온 날, 아빠가 그 담임에게 전화를 해 고함을 질러댔던 일이 또렷이 떠올랐다.
만약에 아빠가 살아있었다면....만약에 아빠가 살아 있었다면 .....
그렇게 아빠가 떠오를 때마다 여자는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아니다. 이 모든 게 아빠 때문이다.
여자가 아빠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착하고 예쁜 내 딸’이었다.
그렇다. 이 모든 게 아빠 때문이었다.
이 땅에서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는 여자를 착하고 예쁜 딸로 키워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 어떠한 불의도 참아내지 말라고, 그 어떠한 부당함에도 입 다물지 말라고, 욕설을 하고 소리를 질러대며 절대로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네 멋대로 그렇게 살아가라고 그렇게 가르쳐줬어야 했다.....
아니다. 이 모든 게 엄마 때문이다.
5살 6. 25. 동란에 아버지를 잃고, 3살 동생을 등에 들쳐 업은 채 부르튼 발로 먼 길을 걸어 피난을 갔다는 여자의 엄마는 말수가 별로 없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계집애들을 보러오다 변을 당했다'면서 ‘지 아버지 잡아먹은 딸년들’이라고 고모할머니들로부터 수도 없이 구박을 받았다면서도 일년에 한번씩은 꼬박꼬박 고모할머니 댁을 찾아가는 엄마였다.
한번씩 들이닥쳐 폭풍우를 일으키는 할머니나 고모 앞에서도 엄마는 언제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구석을 멍하니 응시한 채 입술만 깨물 뿐이었다.
그렇다. 이 모든 게 엄마 때문이었다.
이 땅에서 여자를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는 참고 또 참는 모습을 보여주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 어떤 불합리도 참아내지 말라고, 여성이라고 무시하거나 업수이 여기는 것은 더더욱 참아내서는 안된다고, 그런 놈들에게는 멱살을 휘어잡고 주먹을 휘둘러줘야 한다고 그렇게 가르쳐줬어야 했다......
부질없는 원망을 하던 여자는 다시금 머리를 세차게 내저었다.
모든 것은 다 내 탓이다. 모든 것은 다 내 잘못이다. 다 내 잘못이다....
그놈이 그 후 회사의 빅2라는 국장 자리까지 꿰차고 수년간 절대 권력을 누려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분명히 사과를 요구했지만, 사과 따위는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대단한 힘을 가지신 분께 사과를 요구했던 것이 얼마나 순진하고 무례하고 어이없는 일이었는지를 안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날의 일을 수많은 사람들이 수군거렸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 그 자리에서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하였다는 듯 그리 웃고 떠들던 그들이...- 그날의 일을 당시의 국장이 나서서 덮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그제서야 납득할 수 없었던 사무감사와 경고와 기수에 맞지도 않게 갑작스레 이루어진 외딴 곳으로의 발령 등등 그 후 여자에게 일어났던 설명되지 않았던 모든 일들의 이유가 갑자기 또렷해진 것이 화근이었다.
모든 것은 다 내 탓이다. 모든 것은 다 내 잘못이다. 다 내 잘못이다....
수없는 시간들을 수많은 밤들을 자기반성, 자체검열, 자아성찰 이딴 것들로 채워가고 있었는데, 그렇게 비틀비틀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는데, 그렇게 꾸역꾸역 순간순간을 버텨내고 있었는데...
외딴 근무지에서 혼자 있다가 갑자기 실명되어버릴 경우에 대비해 혼자서 손의 감각에만 의지해 걸어가는 연습을 해보고, 눈을 감고 휴대전화로 119 또는 남편의 번호를 누르는 연습을 해볼 때도 이제는 눈물 따위 흘리지 않았지 않은가....
그런데 별안간 왜 세상이 그리 뱅글뱅글 돌아버린 것인지...왜 그렇게 와락 무너져 내려 버린 것인지....
#4
평일 이 시간의 거리는 이토록 눈부시구나....
오후 5시가 막 넘어섰는데도 여전히 햇살이 눈부시다. 혀 속은 여전히 쓰다.
따스한 바람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햇살은 휘청거리는 여자의 발걸음을 황홀하게 재촉한다.
햇살을 머금은 채 반짝이는 바람 사이로 한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여자의 머리 속에는 아직도 ‘82년생 김지영’의 내용들이 휙휙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 나에게 ‘82년생 김지영’의 이름 모를 여성처럼 ‘네 탓이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이야기해주었다면 나는 조금 더 쉽게 버텨낼 수 있었을까...
여자는 고개를 내저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모두 여자 탓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국장이 당시 일을 전혀 몰랐을 수도 있어. 너에게 일어난 일들은 네 자신 때문일 가능성이 커. 그게 아니더라도 그렇게 생각해야 네가 더 발전할 수 있어’ 이런 충고도 들었던 터였다.
밝은 옷과 치마를 좋아했던 여자는 어느 샌가 검은 색 바지만 입고 있었다. 치마가 조금만 짧아도 옷의 색상이 조금만 밝아도 ‘네가 이러니 그런 꼴을 당했지’ 어디선가 수근대며 여자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마지막으로 파마를 한 게 언제였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여자의 머리 속엔 뱅글뱅글 돌고 있는 저 눈부신 햇살을 따라 여전히 한가지 생각이 뱅글뱅글 돈다.
누군가 처음부터 내 탓이 아니라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주었다면, 내 삶은 달라졌을까....
임관하자마자 부터였다 아니 임관을 하기도 전이었다.
임관 이틀 전 관사가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이사를 하면서 인사를 간 여자를 청장은 다음날 떠나는 검사들 환송식에 참석시켰다.
식사 후, 청장이 떠나고 2차를 주도하던 해병대 출신이라는 눈이 부리부리한 부장은 별안간 여자에게
‘나는 술 안 먹는 검사는 검사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대생을 싫어한다. 나는 여검사를 싫어한다. 너는 내가 싫어하는 것을 다 갖추었으니 완전 악연 중에 악연이다. 너 같이 생긴 애치고 검사 오래 하는 애 못 봤다. 내가 너 검사 얼마나 하는지 지켜보겠다.'라며 독설을 퍼부어내다가 한마디 덧붙였다. ’아 참 너는 아직 검사도 아니지만....’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처음으로 시작하려는 사회 생활, 처음 보는 사람들에 둘러쌓인 채, 모든 게 어색해 그저 조용히 옅은 웃음만 지으며 앉아있던 여자는 도대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했다. 부장이 여자를 처음 본 것은 불과 2시간 전의 일이었다.
부장이 그다지 취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여자를 더욱 당혹스럽게 해 여자는 대꾸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아랫 입술을 꾸욱 깨무는 외에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여자가 술을 못 마시는 것도, 이대를 졸업한 것도, 여성인 것도 모두 사실이었다.
얼굴이 둥글둥글하고 눈이 작던 부장은 수도 없이 여자에게 이야기했다. ‘검사는 너처럼 공주 같으면 안 돼’
그럴 때마다 여자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한없이 생각해야만 했다.
밥자리에서 부지런히 뛰어다니지 않은 건 아무래도 이상해서였다.
밥을 먹기 전에는 신속하게 숟가락 젓가락과 티슈를 세팅하고, 모든 컵에 물을 따라 서열 순대로 상관과 선배 앞에 대령하고, 밥을 먹으면서도 행여나 비워진 접시나 물컵이 있는지 계속해서 살펴보다가 사라진 음식을 주문해내고 물을 따라야 하는 부지런을 떨어야 하는 것이 여자가 말석이라서 해야 하는 것인지 여성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인지 잘 판단이 서지 않아서였다. 길을 걸을 때도 산을 오를 때도 단 반걸음이라도 윗사람보다 앞서지 않도록 수시로 애써 속도를 조정하며 서열 순대로 걸어가는 모습들이 영 어색해서였다.
그밖에 일적인 면에 있어서 게으름을 부린 적은 없었다. ‘올해부턴 여검사가 백명이 넘었다니...우리 회사 앞날이 큰일이다.....’라며 여자를 쳐다보며 혀를 끌끌 차대는 상관과 선배들의 걱정 어린 말들을 수도 없이 들었던 터였다. ‘나 하나 잘못하면 여검사 전체를 욕 먹게 한다’는 생각에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모욕적이어도 이를 악물어 왔던 터였다.
생각해보면 한때 공주였던 적도 있었던 것만 같아서 -대학에 막 입학해 고등학교 때보다 몸무게가 한껏 빠져 스스로 만족감을 느꼈던 그 때 정도 - 자신도 모르는 새 무엇을 잘못했나....부장 입에 ‘공주’라는 말이 올라올 때마다 여자는 괜시리 어깨가 움츠러 들었다.
얼굴이 작고 호리호리 말랐던 부장은 부임 첫날부터 회식을 했다.
술잔이 얼마나 돌았을까....눈빛이 살짝 흐려진 부장은 여자의 이름을 큰 소리로 또박또박 부르더니 이렇게 말했다.
‘박지현! 나는 여성은 남성의 50프로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너는 여기 있는 애들 50프로야!. 그러니까 나한테 인정을 받으려면 너는 여기 있는 애들보다 2배 이상 더 열심히 해야 해!!!’
여자의 사건을 단 한건도 결재해보지 않은 채 모든 사람 앞에서 ‘너는 여기 있는 애들의 50프로야’라고 확신에 차 말하고 있는 부장보다, 그 옆에서 연신 머리를 끄덕끄덕 하며 ‘옳으신 말씀이야. 새겨들어’라고 말하던 평소 가장 점잖다고 생각하던 바로 윗선배 A의 모습이 여자에게는 더욱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야 너는 여자애가 무슨 발목이 그렇게 굵냐, 여자는 자고로 발목이 가늘어야 한다’라는 등의 헛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대고, 술이 취해 툭 하면 머리나 어깨 등을 때려대던 B선배나, 여자가 있는 자리에서도 틈만 나면 음담패설을 늘어놓던 C선배나, 웃으면 ‘여자가 그렇게 웃음이 헤퍼서 쓰냐’고 나무라고, 웃지 않으면 ‘여자는 안 웃으면 안된다’고 설교를 해대던 D선배에 비해 젠틀한 느낌을 주던 선배였는데....
딸만 둘 있고, 입만 열면 딸들 자랑에 침이 마를 새 없었던 부장은 노래방만 가면 2시간씩 혼자 마이크를 잡고 있다가, 마이크만 놓으면 여자에게 부르스를 추자면서 풀린 눈으로 집요하게 손을 내밀었다.
부장과 주말이면 ‘좋은 곳’을 다녀온 남자 선배들은 월요일 아침이면 여자의 사무실에 모여앉아 ‘부장은 왜 그 여종업원 팬티를 머리에 쓰고 있었냐’는 등의 이야기를 해대며 낄낄거렸다.
그 후로도 많은 일들이 벌어졌고, 많은 말들을 들었지만, 이제는 처음처럼 그것들이 여자의 마음 속 깊이 파고들어 여자를 괴롭히는 일은 자주 없었다.
특별히 여자의 삶을 진심으로 걱정한다거나 남편감을 소개시켜주는 것도 아니면서 수시로 여자가 결혼을 안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에 대해 자기들끼리 논쟁을 벌인다거나, 여자에게 ‘너 정도 나이면 이제는 남편감을 외국에서 찾아보거나 재혼자리를 알아봐야 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내던 말들도 여자의 결혼과 함께 조용히 사라졌다.
다시 한번 부장으로 만난 호리호리한 예전 부장이 회식자리에서 술에 취해 꽤나 오랜 시간 여자의 손을 주물러댈 때, ‘다른 사람들은 이 장면을 못보고 있나, 왜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 손을 주무르는 것은 추행으로 볼 수 없는 것인가’....언젠가의 그날처럼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한참을 생각해야만 했던 그런 일이라던가,
회식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밤이면 여자에게 ‘너는 안 외롭냐? 나는 외롭다. 나 요즘 자꾸 네가 이뻐 보여 큰일이다’라던 E선배 -유부남이었다 -나,
‘누나 저 너무 외로워요, 오늘은 집에 들어가기 싫어요, 저 한번 안아줘야 차에서 내릴 꺼예요’라고 행패를 부리던 F후배 -유부남이었다 -나,
술이 취해 집으로 돌아가다가 ‘에고 우리 후배 한번 안아보자’며 와락 껴안아대던 G선배-유부남이었다-나,
노래방에서 나직한 눈빛으로 여자를 바라보며 ‘도대체 너는 왜 우리 회사에 왔냐’라는 알 수 없는 말을 해대더니, 술도 못 마시는 게 분위기도 못 맞춘다는 말을 피해보려 - 그 나직한 눈빛도 피해야했고 - 열심히 두드린 탬버린 흔적에 아픈 손바닥을 문지르고 있던 여자에게 ‘네 덕분에 도우미 비용 아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던 이름도 기억 나지 않는 부장이나,
‘잊지 못한 밤을 만들어줄테니 나랑 자자’ 따위의 미친 말을 지껄여대더니 다음날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던 F선배- 유부남이었다- 따위가 이따금 있기는 했지만....
그럴 때마다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랫입술을 꾸욱 꾸욱 깨무는 것 뿐이었다.
그 큰 청에 성폭력 사건 전담할 검사가 여자밖에 없다고 하여 만삭상태에서 변태적인 성폭력 사건을 조사해야 할 때도, 나이트클럽에서 여성을 모텔로 떠메고 가 강간을 한 사건에 대해 ‘여성들이 나이트를 갈 때는 2차 성관계를 이미 동의하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강간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부장이나, ‘내가 벗겨봐서 아는데’ 식으로 강간사건에 유달리 관심을 보이는 부장 앞에서도 여자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 것도 없었다.
평생 한번 받기도 어렵다는 장관상을 2번을 받고, 몇 달에 한번씩은 우수사례에 선정되어 표창을 수시로 받아도 그런 실적이 여자의 인사에 반영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여자의 실적이 훨씬 좋은데도 여자가 아닌 남자선배가 우수검사 표창을 받는다거나, 능력 부족으로 여자가 80건이나 재배당받아 사건을 대신 처리해줘야 했던 남자후배가 꽃보직에 간다거나 하는 일이 종종 일어날 때도 여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아랫입술을 꾸욱 깨무는 외에는...
언제부턴가 여자의 저 깊은 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커먼 덩어리가 자꾸만 꿀렁꿀렁 목 밖으로 넘어오려 해 꾸욱 꾸욱 깊은 침도 삼켜내야 하는 일이 잦아졌다.
#5
누군가 처음부터 내 탓이 아니라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주었다면, 내 삶은 달라졌을까....
여전히 여자의 머리 속엔 계속 한가지 생각이 뱅뱅 돈다.
그러다 ‘82년생 박지영‘의 맨 뒤 해설에서엔가 보았던 글이 여자의 머리를 스쳐간다. ’사회가 그랬지만, 그래도 그때그때 부당함을 그냥 넘기지 않고 또박또박 이야기해온 여성들도 있었다‘는 취지의...
역시 모든 것이 내 탓이었나. 아무런 말도 못한 채 그저 꾹꾹 삼키고 또 삼켜냈던 내가 역시나 잘못이었나.....
아직도 집에 도착하려면 한참이나 남았다.
사라진 것 같았던 어지럼이 갑자기 밀려와 여자는 다시금 찬란한 햇살을 따라 빙그르르 돈다.
자신이 돌고 있는 것인지 세상이 돌고 있는 것인지 저 햇살이 돌고 있는 것인지 알아내려 애써 있는 힘껏 눈을 크게 뜨던 여자의 머릿속에 언젠가 들은 듯한, 눈을 세차게 내리감은 나직한 목소리가 여자에게 속삭인다.
딸을 낳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야....딸을 낳지 않은 게 얼마나 얼마나 다행이야....
여자는 언제나처럼 다시금 아랫입술을 꾸욱 깨문다....짭조름한 피냄새가 여전히 쓴 여자의 입속을 적신다. 또 다시 정체모를 검은 덩어리가 뱃속에서 꿀렁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