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강》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자! (롬 12:1-2)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습니다. 한 가지만 잘하면 축복된 생애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계의 직업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40만 가지라고 했는데 그 중 한 가지만 기가 막히게 잘하면 기가 막힌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주먹 하나만 잘 돌려도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오래 전에 전설에 복서인 '무하마드 알리'는 '조 프레이저'와의 경기에서 1분에 2억을 벌어들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1초에 300만원씩 번 것입니다.
아나운서나 가수는 좋은 목소리 하나 가지고 출세하고 돈을 법니다. 오래 전에 차두리의 아버지 차범근은 발 하나 가지고 세계에 이름을 날렸습니다. 한 가지만 잘 하면 축복을 받습니다.
프랑스 코냑 지방은 포도주 하나 잘 만들어 세계적인 지방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만든 것을 아버지가 팔고 아버지는 자녀를 위하여 만들어 땅에 파묻는다고 합니다. 그 술은 세계 시장에서 가장 인기 리에 팔리고 있는 상품입니다.
한 가지만 잘 하면 축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들을 축복하실 때에 한 가지만이라도 잘하면 축복을 주십니다. 모든 것을 잘하면 두말할 것도 없이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인간을 연약하여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없습니다.
①거룩한 결단 하나만 잘해도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
▶눅15장을 보면 못된 둘째 아들 탕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단점 투성입니다. ㉠성질이 급했습니다. 아버지가 늙어서 죽을 때쯤이면 자동적으로 유산이 돌아올 텐데 미리 자기에게 주어진 유산을 달라고 하며 자기 몫을 챙깁니다.
㉡탕자는 그 돈 가지고 창기들과 함께 허랑 방탕한 생활을 합니다. 차라리 열심히 사업하다가 실패했으면 동정이라도 갑니다. 탕자는 처음부터 허랑 방탕한 자였습니다.
㉢허비하는 인생, 무절제한 인생으로 살았습니다. 한 푼도 남김없이 써 버렸습니다. 생각 없이 허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은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조차 먹지 못하고 처량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가 거룩한 결단을 합니다. "나는 죄를 졌지만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아들이라고 인정하지 말고 나를 품꾼으로 써 달라고 하자" 자존심을 버리고 결단하고 돌아왔는데 그의 아버지는 상상을 초월한 대접을 했습니다. "너는 죽었다가 살아난 내 아들이다"하고 목욕을 시키고 새 옷을 입히고 금가락지를 끼워주시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②거룩한 생각 하나만 잘해도 복을 받습니다.
난쟁이 삭개오는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볼 것인가? 고민하다가 '그래 뽕나무에 올라가자' 이 생각 하나 잘해 가지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③거룩한 헌신 하나만 잘해도 복을 받습니다.
강문호 목사님은 <한 가지만 잘하면 하나님을 움직인다>는 책에서 ㉠봉사 한 가지만 잘해도, ㉡전도 한 가지만 잘해도, ㉢꽃꽂이 한 가지만 잘해도, ㉣헌금 하나만 잘해도, ㉤구역장 사역 한 가지만 잘해도, ㉥심방 하나만 잘해도, ㉦주일학교 교사 한 가지만 잘해도 ㉧찬양 하나만 잘해도, ㉨기도 한 가지만 잘해도, ㉩청소 하나만 잘해도, ㉪사랑 한 가지만 잘해도 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할/
오늘 본문은 바른 예배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른 예배 하나만 잘 드려도 복을 받습니다. /할/ ◀제목소개!▶
로마서는 크게 세 단계로 분류가 됩니다. '죄'론과 '구원'론과 '생활'론으로 분류해서 기록했습니다. 1-11장까지에서 '죄'론과 '구원'론을 밝힌 사도 바울은 이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가 어떻게 바로 살 것인가? 그 생활 면을 본문에서부터 밝히고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로마서는 믿음을 강요하고 야고보서는 행함을 강요한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로마서가 행위보다는 믿음을 더 강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행함은 무시해 버리는가? 아닙니다. 행위에 있어서도 야고보서 못지 않게 심도 있게 행위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제부터 행위론을 가르치는데 그 첫 번째가 하나님께 대한 예배(1-2)이고, 두 번째가 교회생활로 봉사에 대한 것(3-21)이며, 세 번째가 사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생활면(13-15장)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 대한 바른 예배론입니다.
▶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여기서 '그러므로' 이 접속사는 로마서 전체에서 세 번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아주 중요한 전환점을 말할 때 이 접속사를 섰습니다.
롬5:1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롬8:1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리고 본문에서 사용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고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자들이기에 이제부터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접속사입니다.
본문의 그러므로는 롬1장-11장까지 죄론과 구원론을 통하여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거룩한 성도가 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구원받은 성도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이렇게,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는 결단이 묻어 있는 단어입니다.
▶이제부터 신앙의 윤리 면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곧 구원을 받았으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형제 된 자들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북에는 모든 인민을 가리켜서 형제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형제는 이북에서 말하는 형제와는 근본이 다릅니다. 여기서 형제란 '한 근원에서 나왔단 말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을 가리켜서 하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믿음을 정말 가슴속에 간직한 사람은 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을 형제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한 형제 된 자들입니다. 형제는 핏줄의 관계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권면 한다는 뜻입니다. 지금 바울의 권면은 내던지듯이 강제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비하심을 가지고 권면한다고 말합니다.
강한 명령보다는 자비로운 권면이 더 가슴을 찌릅니다. 예수님 당시에 주의 말씀은 갈릴리바다의 몇 명의 어부들 밖에 먹혀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의 명령은 모든 유대인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나 로마 황제 시저의 명령은 대 로마제국을 흔들어 놓고 전 식민지 백성들을 복종시키는 위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2천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예수님의 말씀은 대 제사장의 명령보다 위력이 있었고, 로마 황제 시저의 우렁찬 명령보다도 몇 만 배 강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보다 위대합니까? 바로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자비하심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지금 자비한 마음으로 형제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도 권면했고, 갈라디아교회에도, 골로새교회에도, 데살로니가교회에도 자비한 마음으로 권면을 했습니다.
①여기 본문에서 우리는 누구인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누구인가?
⑴구원받은 형제들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⑵주의 자비를 힘입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주시는 자비에 덧입어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있습니다.
⑶권면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복 받기를 원하시면 바른 권면을 잘 받아야 합니다.
②바울이 본문에서 무엇을 권면하고 있습니까?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여기서 몸이라고 하는 헬라어는 '소마'인데 이는 '육체'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에는 우리 몸은 자아가 지배하는 집이 있고, 죄가 지배하고, 사탄이 지배하고, 사망이 지배하는 집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의 몸은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거하시는 성령의 전(고전6:19)이 되었고 성령이 지배하고 보호하시는 몸이 되었습니다.
③성경은 몸에 대한 여러 가지 교훈이 많이 있습니다.
롬6:13절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고전6:20절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참 이상합니다. 분명히 내 몸인데 내 몸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사실 내 몸은 내 몸입니다. 그러나 내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내 몸인 때에는 내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듣고, 자고, 자유자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그 생활은 자기중심이 되고 맙니다. 이기적이 되고 극단의 개인주의가 되고 맙니다. 향락에 빠지고 죄에 빠지고 방종하게 됩니다. 성경은 "너는 너의 것이 아니다"고 말합니다.
한국의 젊은이라면 누구나 다녀오는 곳이 있습니다. 어딥니까? 바로 군대입니다. 이것이 내 몸이지만 국가에서 한번 영장을 발부하면 어쩔 수 없이 3년 동안 가정도, 직장도, 사업장도 제쳐놓고 정든 고향을 떠나 군대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비로소 느끼게 된 것은 '이것이 내 몸이지만 내 몸이 아니구나' 내 몸이지만 국가에 속한 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서는 우리의 몸을 값으로 샀다고 말합니다. 지불된 만큼의 구실을 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몸이 아닙니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 붙들린 몸, 즉 속된 표현으로 '하나님께 코가 낀 상태'입니다. 이제 그분의 이끄는 데로 가야합니다. /믿/
④그 몸으로 무엇을 하라고 합니까?
⑴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려라! 기뻐하시는 제사는 믿음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형식과 의식이 아닌 몸과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드리는 예배가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입니다.
⑵거룩한 산 제사를 드려라! 거룩하다는 뜻은 '성결되다, 구분되다, 깨끗하다'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약의 제사는 흠 없는 짐승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흠 없는 짐승 대신 성도의 자신의 심령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바꿔졌습니다.
깨끗한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가 되기 위해 우리의 죄와 허물을 주님께 회개하고 주님의 보혈로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시51:17절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⑶몸을 산 제사로 드려라! 여기서 몸은 단순히 육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부를 가리킵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짐승을 제물로 바치는 것만 예배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배 드리는 자와 바쳐지는 제물이 분리되었습니다.
결국 형식적인 예배 생활로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짐승을 바치고 제물 예배가 되기보다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더 구체적으로 '산몸을 제사로 드려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전에 나와 자신을 드리는 예배요, 둘째는 살아 움직이는 내 자신의 삶 그 자체가 하나님께 바쳐지는 예배가 되라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에만 하나님께 나 자신을 바치는 거룩한 시간을 가질 것이 아니라 생활 전부를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예배 시간만 예배가 아니라 예배를 마치고 교회 문 밖에 나가는 순간부터 또 하나의 새로운 예배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사업가는 사업 그 자체가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그 일 자체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활 그 자체가 하나님께 바쳐지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믿/
⑤산 제사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구약의 성도들은 짐승을 잡아서 죽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몸을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면서 살아갑니다. 산 제사란 우리의 삶을 통해서, 생활을 통해서 드리는 제사를 가리킵니다.
▶어떤 가정에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는 부부집사님 가정에서 일어난 일로, 하루는 부모님이 아들 내외를 불러 놓고 말하기를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고 하니 너희들도 우리가 죽더라도 제사를 드리지 않겠구나? 우리는 죽어서 굶기 싫다."고 합니다. 부부집사는 깜짝 놀랐지만, 그 순간에 성령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아버님이 말씀하시는 제사는 죽은 제사입니다. 저희들이 그것보다도 훨씬 더 좋은 산 제사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후로부터 아들 내외는 더욱 정성을 다해서 부모님을 잘 모셨습니다. 끼니때마다 늘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을 차려 드렸습니다. 철마다 보약도 지어서 드렸습니다. 용돈도 넉넉하게 드렸습니다. 얼마가지 않아서 부모님은 아들 내외를 다시 불러놓고는 "그래, 너의 말이 맞다. 산 제사가 죽은 제사보다 훨씬 더 낫구나. 걱정하지 말고 이제는 마음껏 교회에 다녀라. 이제 우리도 너희들을 따라서 교회 다녀야겠다." /할/
그렇습니다. 산 제사는 우리의 생활로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은 흠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⑴살아있는 영이 드리는 제사입니다.
중생한 사람이 드리는 제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혼이 드리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사람들은 산자 같으나 죽은 자들입니다. 육신은 살았으나 영혼은 죽은 것입니다.
우리의 몸을 드린다는 것은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전 인격적인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갈2: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⑵최고의 것을 드리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은 최고의 것을 드렸습니다. 100세에 얻은 이삭까지도 드렸습니다. 마리아는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재능, 시간, 물질 아낌없이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영국에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아들 4형제가 있으면 첫째는 정치가, 둘째는 군인, 셋째는 학자, 넷째는 목사를 시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맨 못난 것 이것저것 할 수 없으니 목사나 시키자 그런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영국이 쇠퇴해 가는 원인이 된 것입니다.
옛날에 미국인들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았고, 영국 사람들은 자기 자신 제일주의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부강해 졌지만, 영국은 해뜨는 나라에서 해가 지는 나라로 쇠퇴해진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법칙은 30, 60, 100배의 축복입니다.
존번연 목사는 <우리가 덧셈을 하면 하나님은 뺄셈을 하시고 우리가 뺄셈을 하면 하나님께서는 덧셈으로 채워 주신다>고 했습니다. /믿/
⑶산 제사는 온전히 주님께 헌신하는 제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는 것처럼 우리도 주를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헌신이란 말은 일반 세상에서는 별로 사용하지 않는 기독교 전문 용어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사람이 날 때부터 헌신의 요소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드리는 대상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가령 물질 앞에 자신의 전체를 드리면 그 사람은 물질의 노예가 되는 것이고, 명예 앞에, 권력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연히 지나친 경우가 있습니다. 너무 자식에게 빠지면 그 부모는 자식의 종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우리의 귀한 몸을 하나님께 헌신해야 합니다. '크리소스톰' 교부는 산 제사는 <눈은 악을 보지 않고, 혀는 비방의 말을 하지 않고, 손은 죄를 짓지 아니하면 그것 자체가 제사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면 하나님이 더더욱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손은 구제하고, 봉사하고, 기도하고, 입은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그 자체가 바로 산 제사가 된다고 했습니다.
⑥"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어떤 것이 영적 예배입니까?
구약의 성도들은 레위기에 기록된 절차와 의식에 따라서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속죄 제물로 드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우리 자신들이 제사 드리는 제사장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기계적이고 의식적인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영적인 예배를 드립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삶 자체가 예배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있도록 신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 우리가 말, 우리의 행동, 우리의 몸가짐, 심지어는 우리의 얼굴 표정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연속입니다.
예컨대 우리가 찡그리고, 우리가 화를 낸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천사의 얼굴처럼 은혜로운 모습을 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예배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가 바로 영적 예배입니다.
약2:26절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믿음의 생활화! 하나님의 말씀의 생활화! 이것이 참 믿음입니다. /할/ 또 영적 제사는 합당한 봉사, 당연한 섬김이란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합당한 봉사란 주님이 섬김을 보여주셨듯이 우리도 섬겨야 합니다. 섬김은 자신을 낮추어야 남을 섬길 수 있습니다. 남을 진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부모를 섬길 때, 내가 좋아하는 대로 섬기는 것과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것으로 섬기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것, 그것으로 섬겨야 합니다.
예배를 드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기분, 내 감정, 내 생각에 맞추어 내 평안한대로 예배드리는 것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⑦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꼭 고쳐야 할 예배자세가 있습니다.
⑴지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중에 누가 대통령을 만나러 가면서 지각하십니까?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러 오는데 지각하시면 안 됩니다. 적어도 10-20분전에는 오셔서 준비 기도와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⑵복장은 단정히 하는 것이 예절입니다. 새 옷을 입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단정한 자세, 보기 좋은 복장으로 와야 합니다.
⑶헌금은 미리 준비하는 것이 정성을 드리는 것이 됩니다.
⑷좌석에 앉을 때는 앞자리가 축복의 자리입니다.
⑸안내위원, 헌금위원, 성가대원은 정성껏 해야 합니다.
⑹졸지 말아야 합니다. 조는 사람은 마귀가 축복을 빼앗아 갑니다.
⑧록펠러의 어머니의 유언인 신앙 지침 10가지를 소개 해 드립니다.
⑴하나님을 친아버지 이상으로 섬겨라! 아버지가 생계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지만 더 중요한 공급자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⑵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목사님과 좋은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이 축복된 길이기 때문입니다.
⑶주일예배는 본 교회에서 드려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교회에 충성해야 하며 가능한 한 주일 예배만큼은 본 교회에 참석하여 예배드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⑷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이 말은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먼저 구별한 후 나머지를 가지고 필요하면 사용해야 함을 표현한 말입니다.
⑸아무도 원수로 만들지 말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사람들이 거리를 두기 때문에 일마다 장애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⑹아침에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하루를 시작하기 전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이 모든 일에 함께 하여 주실 것을 온전히 믿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⑺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하라! 알게 모르게 계속적으로 짓는 죄를 가능한 빨리 회개하여 죄로 인한 어려움과 고통을 피할 수 있어야 합니다.
⑻아침에는 꼭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려는 귀한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⑼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우라! 그리고 도와준 일에 대해 절대로 나팔을 불면 안 됩니다.
⑽예배 시간에 항상 앞에 앉으라! 예배드리고 말씀 듣는 일에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서 먼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몸은 언제나 마음이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꼬마 아이가 어느 주일 날 그는 교회에 갔다 오더니 얼른 저울 위에 올라섰습니다. 어머니가 그 모습을 보면서 "얘야! 교회 가기 전에 몸무게 달았잖니, 왜 또 달아보니?" 그러자 꼬마가 "예, 주일학교 선생님이 내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된대요. 그래서 기도하면서 내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말씀을 드렸거든요. 그래서 내 몸무게가 얼마나 줄었는지 알아보고 싶어서 저울에 올라갔어요. 그런데 엄마! 이상해요. 하나도 안 줄었네요." 귀여운 말입니다.
잠23:26절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1절에서는 예배생활에 정성을 다하라는 교훈이며, 2절에서는 예배드리는 자의 생활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본문은 세 가지의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①이 세상을 본 받지 말라! ②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자! ③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살자!
①이 세상을 본 받지 말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세상 사람들은 땅엣 것만 생각합니다. 그들은 썩어질 것, 덧없는 것, 일시적인 것만 추구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새로운 마음, 변화를 받은 마음은 다릅니다. 우리는 위엣 것을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영원한 것을 바라보면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면서 살아갑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세대란 어떤 세대인가? 몇 가지 뜻이 있습니다.
⑴변화무쌍한 세상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 사람들이 걸어가는 유행을 가리켜서 한 말입니다. '본받지 말라'는 말은 '유행을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원어의 더 깊은 뜻은 '형식을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유행에 민감합니다. 옷, 머리, 인테리어, 심지어 자동차까지도 그 시대에 유행에 민감합니다. 그러나 유행은 흘러가는 것입니다. 대단한 것이 못됩니다. 어떤 유명인사는 <이 세상 유행을 따라 사는 사람은 흐르는 물에 떠내려가는 물고기와 같다>고 했습니다.
삼상16:7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뽑을 때 사무엘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⑵이 세대란 세상의 권위, 권력, 돈 등등 세상의 힘을 말합니다.
권력을 섬김보다는 지배욕입니다. 세상은 돈 있고, 권력 있고,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으면 소위 출세했다고 합니다. 사람의 눈에는 이런 것들이 대단한 것으로 보여도 하나님의 눈에는 별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가장 값있는 생활은 '얼마나 올바르게 살고 남을 섬기며 사느냐?'입니다.
⑶이 세대란 죄악된 세상을 말합니다.
갈1:4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이 세대를 가리켜 악한세대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보지말고 하나님을 보고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안드로포스'란 말에서 유래되었는데 '위를 보고 사는 자'란 뜻입니다.
히12: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빌2:5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벧전5:7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②변화를 받으라.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여기 변화란 인격과 성격의 변화를 먼저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변화란 거듭남을 의미합니다.
요3:5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변화를 어떻게 받아야 합니까? 고후5: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성령의 역사로 거듭남이 되고 그때부터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격, 인격, 습관, 버릇 등이 고쳐집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변화란 외향적인 외모를 말하지 않습니다. 심령의 변화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라' 또 '변화를 받아라'라는 말은 다른 방향으로 가라는 말입니다. 지금까지는 나 자신을 위해 살아왔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믿/
③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자!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
⑴하나님의 뜻은 선하시다는 의미입니다.
⑵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하나님의 뜻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⑶분별하라는 '도키마조' 시험하여 갈라놓는다는 뜻입니다. 참 진리와 비 진리를 구별하라는 뜻입니다.
⑷하나님의 뜻을 찾는 비결은 무엇인가?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신앙 양심에서 찾아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에서 찾아야 합니다. /할/
⑸성경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예수를 잘 믿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요6:40절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전도해서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딤전2:4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순종하는 삶입니다. 삼상15:22절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다."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삶입니다. 살전5:16-18절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바르게, 공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미가서6:8절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계명을 성실히 지키는 것입니다. 마22:37-40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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