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하나님이 준비하신다[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전도서3장1절]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10. 5. 19:11

091129 하나님이 준비하신다  설교집Ⅵ <얼굴과 얼굴로> 2-14

성경본문

6.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창세기 22:7-14)

 

여러분, <내려놓음>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몽골에 가서 선교하시는 이용규선교사님이 어떻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역을 하게 되었는지에 관하여 감동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어보니 그 분은 서울대 사학과 대학원을 졸업하신 후에 하버드 대학원으로 진학을 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하게 됩니다. 이제까지 공부하던 전공과는 다른 것을 공부하다 보니 너무 힘이 들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학교를 가려고 길을 나섰는데 지나가는 차를 보며 차라리 차에 부딪히면 합법적으로 병원에서 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었답니다. 하버드 대학이 얼마나 어려운 곳입니까. 그러나 그가 그렇게 어렵게 공부를 마치고 졸업을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중앙아시아 한복판에 있는 몽골에 선교사로 보내셔서 지금 아주 새로운 선교사역을 펼치고 계십니다.

인생에는 시험이 있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 빨리 고등학교만 졸업했으면 했습니다. 제가 수학을 못해서 시험 때만 되면 몸서리를 쳐서 대학만 가면 수학은 안 하겠지 하는 바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에서도 교양수학이 있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에 수학시험 치를 일은 없었습니다만 깨달은 것은 죽는 그날까지 시험은 다양한 얼굴로 오더라는 것입니다. 시험을 피하려고 하지 마세요. 어떻게 그 시험을 극복할 것인가. 더 나아가서 어떻게 시험을 즐길 것인가 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오늘 읽은 성경본문은 이해하기 어려운 난제 중 대표적인 성경말씀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그것도 백세에 낳은 귀한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할 수 있습니까? 번제란 소나 양의 멱을 따서 피를 뿌리고 그 몸통을 각을 떠서 불에 태우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이방백성들이 우상에게 최고의 제물로 자기 맏아들을 바치는 악한 일을 절대로 따라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왜 아브라함에게 이런 주문을 하시는 것인지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거부감이 일어납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에 따라 주시는 시험이 다 다릅니다. 어린아이들이 시험 때문에 고민하지만 초등학교 1, 2학년 시험문제를 살펴보면 우리는 한눈에 알 수 있죠. 하지만 그들에게는 태산 같은 문제입니다. 능력에 따라 시험의 강도가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믿음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시험의 강도도 달라집니다. 교회에서 성수주일을 하라고 하지요. 그것도 다 믿음의 문제입니다. 종종 예배를 거르면서 놀러 간다면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건 분명합니다. 십일조만 해도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수입의 십 분의 일만이 아니고 목숨부터 다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 의미를 살려서 십 분의 일만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우리가 십 분의 일을 내어드릴 때에 우리 삶이 그것으로 인하여 심각한 경제적인 위기에 부딪치지 않고 교회공동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유지될 수 있다 하여 정하신 것입니다.

능력과 믿음에 따라서 시험의 강도는 다르지만 목적과 본질은 같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의뢰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에게는 겪을 수 있는 시험 중에 가장 큰 시험을 주신 것입니다. 고대사회에서 제물을 잡아 바치던 문화를 따라서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큰 우상은 무엇입니까? , 권력, 아브라함 같이 자식인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우리에게 찾으시는 겁니다.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고 신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부모, 형제 혈연관계로 이 세상에 살지만 결국 우리의 죽음은 하나님과의 단독적인 만남입니다. 언젠가는 나 홀로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거지요. 이 부분이 해결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시험을 잘 대비할 것이냐.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헬라적인 방법이 있고, 히브리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헬라 사람들, 그리스 사람들, 철학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문제가 주어졌을 때 일단 그 문제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습니다. 먼저 의심부터 합니다. 이게 철학의 방법입니다. 일단 나와 분리시켜 이리저리 궁리를 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적인 방법, 유대사람들의 방법은 다릅니다. 받아들이고 시작합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면서 생각합니다. 결정적으로 헬라 사회는 사실상 신이 없는 다신교 사회이고 히브리사람들의 삶 속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하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 두 가지 방법의 결정적 차이점은 하나님을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과 나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서양의 분석적이고 합리적인 방법과 동양의 전통적이고 수용적인 방법의 차이를 구분하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방법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최고의 지혜자라 일컬음을 받았던 솔로몬이 전도서 3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범사에 때가 있다. 우리 삶 속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고 기쁠 때가 있고 슬플 때가 있다. 우리는 삶의 다양한 모습 속에 수고하며 삽니다. 그것 때문에 마음에 시달림이 있어요. 안타까움이 있어요. 그러나 성경을 읽어보니 그것은 하나님이 다 그렇게 하신 거예요. 인생으로 하여금 세상 살면서 땀 흘리게 하신 거예요. 그러나 헛되이 수고하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  아름답게 하셨어요. 다만 사람이 그것을 측량할 수 없게 하셨어요. 우리는 알 수 없어요. 그것을 알기 원해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어요. 구체적인 것은 알 수 없어요. 그러기에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오늘 말합니다. 우리로 그것을 알지 못하게 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땀 흘리고 수고하며 사는 인생이기에 수고하며 살아야 할 것이고 아름다운 일을 도모해야 할 것이고 기쁨을 누리며 살아야 할 것이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야 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일만 하면 됩니다. 오늘 우리는 땀 흘리고 수고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믿으면서 기뻐하면서 선을 도모해 가면서 감사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면 순종하면서 생각해야 합니다. 집에서 책을 펴놓고 열심히 용어를 외워가며 축구 배우는 사람을 보셨습니까? 운동장에서 공 하나 놓고 뛰어다니다 보면 축구를 배우게 되는 겁니다. 운동장에서 배우는 겁니다. 신앙을 우리의 좁은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것입니다. 한걸음씩이라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헌신이라는 것이 갑자기 부름 받고 아프리카로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주일예배만 열심히 나오던 사람이 수요예배를 나온다면 이것은 엄청난 헌신입니다. 그러던 사람이 은혜를 받아 새벽기도를 나온다면 더 큰 헌신입니다. 십일조를 하려면 너무 아까운 마음이 있었는데 믿음으로 했다면 이것이 헌신입니다.

에베르스트 산도 첫걸음부터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한걸음 내디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헌신을 찾으시지만 갑자기 무리한 헌신을 바라시진 않습니다. 한걸음씩 나아가세요. 예배에 항상 늦던 분이라면 이제 조금 더 서두르세요. 그게 헌신입니다.

오늘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하나밖에 없는 아들, 백세 되어 얻은 아들을 하나님께서 찾으십니다. 시험이라는 것이 쉬운 것이 어디 있습니까?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원리를 알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준비했습니다. 나귀에 안장을 얹고 하인들과 아들을 데리고 출발했어요. 의심에 빠지지 않도록 먼저 자신에게 준비를 시켰습니다. 축구시합을 보다 보면 안타까워 선수들을 향해 욕을 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들어가 뛸 수는 없지요. 아무리 내 마음이 불붙고 뜨거워도 훈련하지 않은 사람은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쓸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안타까운 마음만 가지고 있지 훈련은 없습니다. 그게 우리의 실상입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떠났습니다. 사흘 길을 갑니다. 그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겠습니까.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 사흘 길을 일부러 두신 겁니다. 아브라함이 어느 방향으로 믿음을 이끌어 갈 것인지를 지켜보신 거지요. 뒤돌아보지 않고 사흘 길을 묵묵히 걸어갑니다. 하나님의 산에 가까워 왔을 때 하인들에게 얘기합니다. ‘너희들은 여기에서 머물러 있어라. 내가 내 아들과 함께 가서 예배하고 내 아들과 함께 돌아오리라.’ 함께 돌아오리라. 믿음의 말을 했어요. 주위의 사람들에게 믿음의 말을 했어요. 그리고 올라갑니다. 장작과 불을 들고 칼을 들고 올라갑니다. 아들이 묻습니다. ‘아버지, 여기 나무도 있고 불도 있고 칼도 있는데 양은 어디 있지요?’ 가슴 아픈 질문입니다. 이에 아들아,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아들에게 얘기했어요.

그런데 이것은 아브라함이 배짱 있게 얘기한 것이 아닙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이미 경험한 것이 있습니다. 백세에 아들을 낳는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이미 경험했어요. 로마서 4 17절에서 22절 말씀을 보니 그 사건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백세가 되어 죽은 것 같은 몸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생명을 주시는 것을 경험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실지는 모르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1, 믿음의 사람들을 소개하는 믿음장을 보면 오늘 이 사건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아브라함은 죽은 자도 다시 살리실 줄을 믿었다. 하나님이 명령하셨으니 틀림없이 불에 던져 죽게 될지라도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배짱을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약속하신 사실을 사실대로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시지도 않았는데 내가 내 용기를 가지고 높은 데서 뛰어내리면서 하나님 나를 살려주세요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말씀을 통해서 약속하신 것을 받아들이고 따라가는 것이 믿음이지요.

우리 주위에 보니 암에 걸려 종말을 기다리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심리학자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암을 발견했을 때 사람들의 심리변화가 있습니다. 깜짝 놀라겠지요. 그리고는 믿을 수 없어 이 병원 저 병원에 가서 확인을 계속합니다. 의심합니다.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을 때 분노가 일어납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가족을 위해 이 시간까지 열심히 일한 것밖에 없는데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분노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아무리 분노해도 하나님께서는 아무 말씀 안 하십니다. 체념할 때까지 아무 말씀도 안 하십니다. 기운이 다 떨어지고 체념하고 절망하고 좌절합니다. 좌절도 바닥이 있습니다. 주위에 사랑하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하나하나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몸을 입고 살아가는 인간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게 믿음은 아닙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런 반응을 보이면서 세상을 떠나가게 되지요. 이제 그것을 어떻게 믿음으로 정리할 것이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대학 1학년 때 바로 아래 동생이 고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교회 고등부 회장이어서 여름 수련회 답사차 신탄진 매포에 갔다가 비가 많이 내려서 범람한 강에 들어가다 모래구덩이에 빠져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그때는 통신이 안 좋을 때여서 집에서 연락을 받았을 때는 벌서 세상을 떠난 후였죠. 부랴부랴 기차를 타고 현장으로 갔습니다. 동생의 죽음을  겪으면서 느낀 것은 동생의 죽음이건만 안타까워할 뿐 모든 상황을 믿음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지 못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을 후회하고 부끄러워했습니다. 죽은 동생에게 미안했습니다. 갑자기 우리에게 일이 닥칠 때 평소에 믿음으로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어려운 일들 뿐만이 아니고 나 자신의 죽음까지도 준비할 수 없습니다. 준비해야 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시험을 겪는 우리들에게 놀라운 말씀을 해주십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신다.’ 아브라함이 산꼭대기에 올라갔을 때 무엇을 발견합니까? 양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양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셨어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바라보고 기대했던 사건이 그대로 일어난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드라마틱한 장면을 봅니다. 아브라함은 산 이쪽으로 아들을 끌고 올라가고, 하나님은 산 저쪽에서 양을 끌고 올라오십니다. 시간 스케줄에 딱 맞게 끌고 올라오세요. 산 정상에서 비로소 발견합니다. 정상에 서기 전까지는 하나님이 어떻게 준비하시는지 건너편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늘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가 마지막 순간까지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항상 그렇게 하세요.

여러분 어제가 Idul Adha’ 아니었습니까? 이슬람 사람들의 최대 명절입니다. ‘Hari Raya Korban’ 이라고 해서 희생제물을 바치는 날입니다. 놀랍게도 그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스마엘을 하나님 앞에 바치러 왔을 때 알라가 양을 준비했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최대 명절입니다. 왜냐, 우리 신앙생활에 이만한 사건이 없거든요. 이것을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온전한 신앙인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 죄를 해결하는, 가장 고귀한 희생제물로 삼으신 사건의 유비類比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위해서는 양을 준비하셨지만 오늘 우리를 위해서는 하나밖에 없는 자기의 아들을 준비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죄를 씻기 위해서 고행하기도 하고 금식하기도 하고 가족과 세상을 떠나 도를 닦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방법으로 구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 우리는 불완전하지요. 우리는 한 순간 하늘에 올라간 것 같다가도 그 다음날에는 저 밑바닥으로 쳐지는,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변하는 사람들이에요. 이렇게 불완전한 우리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구원은 불완전한 구원입니다. 그것으로 구원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히 평안이 없습니다. 이단들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할까요? ‘당신은 특별히 선택 받은 사람이다. 여기에서 요구하는 모든 것을 이룰 때 구원 받을 수 있다.’ 처음에는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구원이 언제 결정되느냐 하면, 죽는 그 순간 그가 이제까지 땀 흘리고 수고한 그 노력을 저울에 달아보아 구원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대 이집트 사회에서 사람이 죽으면 죽음의 신 앞에서 살았을 때의 선행과 악행을 저울에 달아보아 천국과 지옥을 결정한다는 이론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한없는 사랑으로 그 아들을 주셨어요. 그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선물로 받는 순간이 우리 구원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십니다. 우리와 자녀들을 위해서 준비하시고 온갖 좋은 것으로 준비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놀라운 은혜는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할 때마다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우리가 분명 결혼했어요. 싸워도 부부입니다. 미워해도 부부입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인생이 되려면 연애할 때만 예쁜 아내가 아니라 날마다 내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상대를 보는 눈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죠. 상대가 바뀌어야 내 마음이 만족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철부지 입니다. 내 마음이 열리고 뜨거워지고 생각이 풍성해질 때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이 다 소중하고 남편이 귀하고 아내가 귀하고 자식이 귀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신다. 만남의 축복을 통하여 모든 만남 속에 그것이 때로는 시험으로 보일지라도 그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들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