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하늘문을 여는 교회[진리를알지니 진리가너희를 자유케하리라]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10. 7. 12:31

100131 하늘 문을 여는 교회  설교집Ⅵ <얼굴과 얼굴로>

3[눈을 열어 주소서]-21

성경본문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요한계시록 4:1-5)

 

제가 재작년에 서울에 나갔을 때 실로암안과병원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김선태 목사님을 만나 뵈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얼굴이 밝은 분 정말 처음 봤어요. 그분은 시각장애인이시거든요. 눈이 안 보이시는 분이 얼마나 밝게 웃으시면서 이야기를 하시는지 오히려 제가 눈이 먼 것 같더라고요. 내 얼굴에 과연 저렇게 밝은 빛이 있는가? 그분과의 짧은 만남이 도전이 되었습니다.

그분이 쓴 책을 읽어 보았습니다. <땅을 잃고 하늘을 찾은 사람>입니다. 그분은 6.25때 폭격으로 부모님이 돌아가셨어요.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들과 함께 불발탄을 만지다가 터져가지고 다 죽고 자기는 눈이 멀었어요. 열 살짜리 어린아이가 하나밖에 없는 친척을 찾아서 서울을 떠나 물어물어 고모 집에 찾아 들어갑니다. 겨우 그 집에 찾아 들어갔는데 고모는 아이를 보는 순간 아니 네가 여기 왜 왔니?’ 첫날부터 박대했어요. 고모의 시댁식구들도 하나같이 재수 없게 왜 저런 아이가 우리 집에 들어왔을까?’ 경기도 양평에 있던 그 집도 피난을 갈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어느 날 밤에 어른들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를 잠결에 깨면서 듣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저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없으니 내일 아침 밥에 양잿물을 비벼 먹여가지고 애는 죽이고 가야겠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혼비백산해서 도망쳐 나옵니다. 그 길로 거지가 됩니다. 서울과 부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거지로 살아갑니다. 저는 그 책을 읽으면서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 불쌍하고 비참할 수가 있나! 어려운 사람을 따뜻하게 돌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예전에 우리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습니까? 재수 없다고 하면서 쫓아내지 않았습니까? 그는 자그마한 희망을 붙들고 살아갑니다. 그가 거지생활을 참 오래했는데 거지에겐 무기가 있대요. 첫째는 깡통, 잃어버리면 밥 못 얻어먹잖아요. 둘째는 깡다구, 세 번째는 배짱, 네 번째는 끈기, 그런데 이분이 터득한 게 있어요. 이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거예요. 겨울은 거지에게 있어서 지옥이라는 거예요. 여름은 그나마 지낼만한데 겨울은 너무 견디기 어려운 거예요. 6.25때 겨울이 얼마나 추웠겠어요. 아궁이를 끌어안고 자면 좋겠는데 아궁이는 왕초 몫이에요. ‘어떻게 하면 왕초가 될 수 있을까? 힘이 세야만 왕초가 될 수 있을까? ‘ 왕초가 되는 방법을 알았어요. 자기 것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왕초가 돼요. 그래서 벌어온 돈도 나눠주고 먹을 것도 나눠주고 드디어 왕초가 된 거예요. 거지의 무기 또 하나는 사랑과 인정이더라. 그러나 거지생활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너무나 비참한 생활이었지요.

그런데 놀라운 구원의 길이 있었어요. 눈 멀기 전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 따라서 교회를 한번 나갔어요. 교회를 갔더니 친구들이 모여서 찬송을 하고 선생님들이 따뜻하게 맞이해주고 격려해주는 게 너무 좋았어요. 그때 마음에 딱 하나 기억해 둔 게 있어요.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우리가 어려움과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하신다고 하는 거예요. 이 한마디를 기억하고 있었어요. 이제 거지가 되고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면서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거예요. ‘하나님 어서 나를 이곳에서 건져주세요.’ 그러면서 마음에 작정한 게 있어요.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예배하리라.’ 했던 거예요. 주일이면 교회를 갑니다. 자기가 동냥한 돈 중에서 제일 깨끗한 것을 준비해 갑니다. 그런데 동냥하러 온 줄 알고 동냥주고 쫓아내는 교회도 있고 또 지저분하고 더러우니까 마지못해서 뒤에 앉으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아니하고 깡통을 끌어안고 하나님 나를 구원해주세요.’ 하고 간절히 예배를 드린 거예요.

그가 수많은 만남을 경험했는데 잊을 수 없는 한 가지 사건을 이야기해요. 전라도 어느 지역을 다니다가 헛간 같은 곳에 들어가 잠을 자고 그 다음날 일어났는데 몸이 가려운 거예요. 며칠을 긁으면서 다녔는데 이게 낫질 않아요. 옻이 옮은 거지요. 깊이 파고 들어간 거예요. 너무나 아프고 견딜 수가 없어요. 고름이 나기 시작했고 만지면 살이 쑥쑥 들어가고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나 기가 막히고 안타까워서 양지바른 나무 아래 앉아서 깡통을 끌어안고 엉엉 울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할머니가 찬송을 부르면서 지나가는 거예요. 이 거지 아이를 보고는 아이고, 이걸 어쩌나! 이런 불쌍한 애가.’ 이 거지 소년이 할머니에게 울면서 얘기하는 거예요. 할머니가 같이 손을 붙들고 울면서 그 아이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꼭 너를 도와주실 꺼다.’ 하고 떠나가셨는데 그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그런데 한 두 시간 지났을 때 할머니가 다시 돌아오셨어요. ‘아이고, 너 아직 여기 있었구나 내가 집에 가 있는데 네 생각이 떠나질 않아서 내가 도저히 마음이 괴로워서 그대로 있을 수 없어서 아! 이건 하나님이 우리 집에 보내신 천사로구나 하고는 지금 달려왔단다. 우리 집에 가자.’ 그 소년을 데리고 가서 닭 삶은 물에 목욕을 시키면서 20일 동안 정성껏 간호해줍니다. 얼굴과 팔의 고름을 입으로 다 짜주었어요. 20일만에 깨끗이 낫게 되었어요. 아이가 다 회복이 되니까 할머니가 말하기를 얘야, 내 얘기 좀 들어봐라, 내가 아들 하나 있는데 지금 전쟁 통에 나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전혀 소식이 없구나. 내가 늙어 힘이 없어서 밭떼기가 조금 있지만 혼자 농사를 지을 수 없어서 남에게 소작을 주어 먹고 살고 있단다. 내가 너를 도와주고 싶지만 도저히 여력이 없구나. 그러나 내가 한가지 약속할게. 너를 위해서 죽는 날까지 기도해주겠다.’ 그 일을 이분이 평생 잊지 못해요.

그 후 장애인시설에 들어갔습니다만 거기도 어둠의 세상이에요. 어려운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도망 나와서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거기에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어요. 하나님 정상인들이 다니는 학교에 날 보내주세요.’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셨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장신대를 들어가서 공부하고 계속 미국유학을 가서 학위를 받고 돌아오셔서 지금은 자기와 같이 눈 먼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실로암안과병원을 수십 년 동안 섬기고 운영해 오셨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놀랬어요. 그 전쟁 통에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죽는데 눈먼 거지아이가 추운 겨울에 얼어 죽으면 그저 안됐구나 하고 끝났을 텐데 그 참혹한 세월에도 하나님께 간구하고 예배 드리고자 하는 사람을 구별하시고 들어쓰셔서 하나님이 오늘도 살아계셔서 구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는 것을 이렇게 보여주실 수가 있는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여러분 이게 바로 교회의 은총이에요.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자에게 교회는 그의 어머니다라고 했어요. 그래서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찬송과 기도를 듣다가 태어나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입으며 자라나고, 장성하여 교회에서 평생을 보내다가 많은 성도들의 찬송을 들으면서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에요. 교회는 어머니라는 거예요.

에밀 브루너 Emil Brunner 라는 신학자의 <교회에 대한 오해>라는 글이 있습니다. 잘 들으셔야 돼요. 교회는 교육이 있으나 교육기관은 아니다. 교회는 구제를 하지만 구제기관은 아니다. 교회 안에 친교가 있지만 친교기관이 아니다. 교회는 여러 가지 신비한 사건들이 있지만 신비기관이 아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다. 알고 보면 다른 일은 교회가 할 수도 있지만 교회가 안 하더라도 다른 기관들도 하고 있어요. 교회만이 할 수 있는 본질적인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만나되 하나님께서 보이신 예수 십자가의 사건과 그 사건에 드러난 사랑을 알고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거예요.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계시록 4장의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였던 요한이 늙어서 핍박을 당하고 외딴 섬에 갇혀 있습니다.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하나님께서 그에게 환상을 보여주신 거예요. 먼저 예수님을 만나게 하셨어요. 예수님의 변모된 모습을 봤어요. 젊은 시절에 따라다니던 예수님이었지만 그분과는 또 다른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을 만났어요. 예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여시고 하늘의  비밀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보면 이 땅의 여러 교회들의 모습을 얘기해요. 열심히 노력하고 사랑 받는 교회도 있고 문제를 안고 있는 교회도 있어요. 교회마다 칭찬을 들을 것이 있고 책망을 받을 것이 있어요.

이 땅의 여러 교회들의 모습을 보여주신 다음 오늘  본문 4장에 성령의 감동 속에서 저를 하늘로 불러 올리셔서 하늘의 모습을 보여주시는데 하늘의 교회를 보게 하셔요. 그곳에 보좌로 표현된 하나님이 계셔요. 우리가 읽어도 잘 알 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모습을 보석이라든지 무지개라든지 진주라든지 이런 것으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어요. 언어가 부족해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 어제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영원히 계실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고백해요. 또 하나님에 대해서 뭐라고 고백하느냐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지으신 분이시다.’ 성경을 계속해서 읽어보면 모든 만물들이 하나님을 예배해요. 천국에 가면 우리가 할 일이 예배하는 일이에요. 그래서 이 땅에 살면서도 예배의 감격이 없고 재미가 없다면 천국 가는데 큰 문제에요. 그 예배는 어떤 예배냐? 이제까지 혹시라도 억지로 드리는 예배였다면 그 이미지를 지우셔야 돼요. 그런 예배가 아니에요. 사랑이에요.

제가 대학 시절 연애를 할 때 다방에 들어가서 얘기를 했는데 아침 10시에 들어가다가 밤 10시에 나왔어요. 그러니 주인이 얼마나 눈총을 주었겠어요. 돈은 없는데 자꾸 눈총을 줘가지고 차를 한 잔 더 시켰지요. 그래도 시간이 언제 갔는지 모를 정도로 아쉬웠어요. 그거 사랑 아니겠어요. 하늘의 예배의 비밀은 사랑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어떻게 드러나고 있느냐? 어린양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베푸시는 구원이 바로 하나님의 불붙는 사랑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러므로 오늘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은 오늘도 이렇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고 하는 거예요. 여기는 터미널이에요. 지금 우리의 몸은 이 땅에 있지만 적어도 이 시간은 하늘 문이 열리고 하늘과 우리가 하나 된 시간이에요. 하나님이 우리 예배를 받으시고 하늘에 있는 많은 천군천사와 성도들이 우리와 같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이에요. 그걸 알아야 되죠.

칼 바르트 Karl Barth 라고 하는 유명한 신학자는 예수님은 세 번 오신다그랬어요. 사람의 몸을 입고 한번 오셨어요. 종말 마지막 심판할 때 재림주로 오실 거예요. 그러나 또 하나는 뭐냐? 성령으로 교회 가운데 오신다. 지금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신다. 보이지 아니하는 영으로 함께 하신다. 영으로 함께 하시니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오늘 전 세계에서 예배 드리는 모든 곳에, 모든 시간에, 함께 하신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냐?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셨던 모습을 통해서 교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첫째 예수님은 성전에서 말씀을 전하시고 또 장터에 가셔서 사람들을 만나시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눈먼 자의 눈을 열어주시고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신 것이지요.

첫째는 성전이에요. 하나님을 어디에서 만나야 할 것이냐? 예배하는 가운데 말씀 속에서 만나는 거예요. 하나님은 인격이셔요. 신사숙녀는 대화 속에서 서로 약속하고 받아들이잖아요. 이게 인격이잖아요. 우리가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고 순종할 때 다음 단계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거예요. 우리가 자기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말씀을 듣다가 기도응답을 받는 것, 그게 가장 제대로 된 거예요.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할 때 백성들이 즐겁게 들었다는 구절이 나와요. 목사로서는 이게 고민이에요.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즐겁게 들을 수 있을까? 여러분 식당에 많이 가시잖아요. 맛있는 집을 찾아가서 먹는 음식도 맛있지만 원초적으로 입 짧은 사람한테는 당해낼 방법이 없는 거예요. 입맛이 좋아야 뭐든지 다 아멘이지요. 거지생활을 한 김선태 목사님이 꿀꿀이죽 얘기를 하시던데 저도 어린 시절에 꿀꿀이죽을 봤습니다만 그걸 먹다 보면 별게 다 걸리거든요. 거지가 그런 걸 가리겠어요. 그것도 없어서 못 먹는데. 어떤 시간, 어떤 장소든지 하나님이 응답하신다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주 건강한 사람이에요. 성전에서 말씀을 듣다가 응답을 얻는 거예요.

또 하나 예수님은 장터에서 사람을 만나셨어요. 교회가 문이 닫히면 안 돼요. 문이 활짝 열려야 돼요. 세상과 소통해야 돼요. 세상과 소통하려면 문화를 알아야 돼요. 문화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늘을 살아가도록 주신 선물이에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주신 귀한 것들이에요. 그것을 귀하게 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거예요.

또 하나 세상을 이끌어가는 열려있는 생각이 필요해요. 실로암의 소경이야기가 요한복음에 나오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말합니다. ‘저 사람이 눈먼 것은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자기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이게 세상의 판단기준이에요. 일이 실패했을 때, 망했을 때, 저게 누구의 죄 때문이냐? 여기서 끝나버려요.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세요. ‘아니다 저를 통하여 오늘 하나님이 영광을 드러내시려고 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믿는 사람들의 생각이에요. 교회가 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는 비밀이에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난날의 상처와 아픔과 실패가 있었더라도 오늘 내가 예수 안에서 새롭게 은혜를 발견한다면 지난날의 실패는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었다, 이렇게 해석되는 것이지요. 이게 바로 예수님의 공간의식이에요.  거룩한 자리가 따로 있지 않아요. 그분이 계시는 곳이 거룩한 곳이에요. ?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여러분 예수를 믿는 사람이 가는 곳이 거룩한 곳이에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걸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일과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어요. 얼마 전 삼성전자의 부사장이 자살을 했더라고요. 일류대학을 나오고 그 많은 박사 중에서도 최고급 두뇌로 인정받아서 삼성에서 몇 사람 최고 대우를 받는 펠로우 fellow 로 초고속 승진을 한 사람이었는데 자살했어요. 이유가 뭐냐? 그에게 주어진 기대와 업무과제가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견딜 수 없다 해서 우울증으로 고생하다가 죽었어요. 오늘날 나라가 발전하고 사회가 발전하고 기업이 발전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만 그 뚜껑을 열고 보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어요. 낮과 밤의 리듬이 다 깨졌어요. 예수님은 낮에는 나아가서 성전에서 말씀을 전하시고 밤에는 돌아와서 동산에서 쉬셨다 그랬어요. 이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삶의 리듬이에요. 이것을 깨뜨리면 돈은 많이 벌었으나 자기 목숨하고 맞바꾼 거예요. 여러분 삶을 정리하세요. 늦은 밤까지 TV 보지 말고 정리를 하세요. 여러분 몸도 생각하세요. 우리의 시간을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쉬어야 해요.

그러나 남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을 예수님은 가지고 계셨어요. 그게 바로 새벽이었어요. 새벽에 일어나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다. 원래 인간에게 24시간 인체 바이오리듬이 있어요. 새벽시간에는 영이 가장 충만한 시간이에요. 그 시간에 하나님을 더 깨끗하게 만날 수 있는 거예요. 그 시간에 하나님의 음성을 더 밝게 들을 수 있는 거예요. 그 시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우리는 낮이고 밤이고 아주 힘 있게 자신 잇게 살아갈 수 있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하셨다 하셨어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어요. 사명을 받았어요. 한번의 경험으로 그치지 않고 이것이 일상 속에 들어오도록 날마다 새벽에 조용한 곳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Jesus CEO 최고경영책임자 예수> 라는 책에 보면 예수님의 40일 광야생활은 그저 굶고 견디며 참았다가 아니에요. 3년 공생애의 설계도를 만들고 그 계획을 준비해 놓고 출발한 사건입니다.

여러분은 하루를 아침에 계획하고 준비해 놓고 출발합니까? 일어나기가 바쁘게 허둥지둥 회사에 나가야 한다면 그건 이미 실패한 거예요. 그날 문제가 여러분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말거예요. 미리 준비하고 오늘 있을 일들을 내 손에 다 쥐고 하나씩 중요한 것부터 판단하고 정리해서 다스려야지요. 만물의 주인공답게 하나님께 받은 지혜로 하루를 계획하고 여유있게 출발해야지요. 이게 새벽의 비밀이에요. 예수님은 늘 고백하시지요. ‘아버지께서 늘 나와 함께 하시고 내가 지금 하는 일을 기뻐하신다.’ ?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시기에. 그러므로,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159절에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가 있고, 지혜가 있고,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다. 그것만이 새 시대를 준비하는 우리 각 사람들이 붙들어야 될 하나님의 약속이요, 축복이요, 은혜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