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민 목사 성경칼럼 (Facebook)

[스크랩] 사도행전 24:10-23 “양심의 소리를 듣는 이유”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8. 30. 06:45


사도행전 24:10-23 “양심의 소리를 듣는 이유”

24:16
이것으로(부활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1.
사람만이 사람답게 살고자 합니다. 어느 짐승이 생긴 대로 살겠다고 결심하거나 이보다 나은 존재가 되겠다고 스스로 성찰하고 고민하겠습니까?

2.
왜 사람은 자신을 들여다봅니까?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자기는 누구입니까? 왜 인간은 때로 자신을 객관화시켜서 마지 제삼자처럼 바라봅니까?

3.
인간은 대체 어떻게 해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될 때까지 방황하는 것입니까? 왜 분명한 답을 얻을 때까지 그토록 평안하지 않은 것입니까?

4.
생명은 나로부터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나로부터 비롯되지 않은 탓입니다. 인간만이 그 근원을 생각하는 유전적 소인을 지녔습니다.

5.
그 유전자가 깊이 각인된 곳이 마음입니다. 그 마음은 상상할 수 없이 광대하고 헤아릴 수 없이 깊습니다. 나 혼자서는 실체를 다 알 수 없습니다.

6.
하나님은 그 마음에 길잡이를 주셨습니다. 셰르파처럼 동반자를 주셨습니다. 흔히 양심이라고 부릅니다. 양심은 일면 상식이고 일면 도덕입니다.

7.
바울이 가이사랴 법정에서 양심을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부활과의 연관입니다. 죽지 않는 생명, 영원한 생명과 불변의 기준을 연결한 것입니다.

8.
바울은 지금 죽음이 인생의 끝이라면 어떻게 살건 상관이 없겠지만 부활이 진실이라면 결코 마음 내키는 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증언합니다.

9.
복음은 영생의 소식이고, 영생의 소식은 부활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부활은 인간의 모든 통념과 일상의 기준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습니다.

10.
부활이 없다면, 그래서 영생이 없다면, 그래서 육신의 생명이 전부라면, 인간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 이하로 사는 지름길입니다.

11.
부활이 있다면, 그래서 영생이 사실이라면. 그래서 육신의 생명이 전부가 아니라면, 인간은 해서는 안될 일이 있고 양심을 꼭 살펴야만 합니다.

12.
세상이 부활에 냉소적인 까닭은 한가집니다. 양심에 부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웃습니다. “죽으면 끝인데 있기는 뭐가 있다는 거야?” 그렇게 양심의 소리에 귀를 막았던 사람들이 죽음의 문턱에서 가장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출처 : 삶과 신앙
글쓴이 : 스티그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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