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데살로니가전서 강해(15) Ⅳ.디모데의 파송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8. 13. 21:12

"Ⅳ.디모데의 파송"
1.디모데 파송의 이유와 목적
데살로니가전서 3장 1~5절
석원태 원로목사


Ⅳ. 디모데의 파송(살전 3:1-13)

 

1. 디모데 파송과 그 이유(살전 3:1-5)

교회를 향한 전도자 바울의 애정은 그가 살아가는 전 생존의미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되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도에서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당하여 신변에 큰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그때 그곳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 밤에 이웃 도시 베뢰아로 피신하게 되었다. 거기서도 바울은 복음을 전했다. 성난 유대인 무리들은 바울이 베뢰아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거기까지 몰려와서 소동을 일으켰다.
다시 형제들은 바울을 바다까지 가게 하여 아덴으로 피신을 시켰다. 이때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베뢰아에 더 머물고 있었다. 바울은 자기를 도와 아덴까지 피신 시켜준 형제들에게 실라와 디모데를 아덴으로 속히 내려오도록 하라고 부탁한 바 있다(행 17:13-16).

지금 바울은 아덴에 머무는 어간에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파송한다고 하였다(살전 3:1-2). 그렇다면 그 후에 베뢰아에 있던 실라와 디모데가 바울의 명대로 아덴에 내려와서 바울과 합류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이 아덴에서 합류한 이후, 바울이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냈던 것으로 생각된다. 왜 바울은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냈는가?

1) 교회를 향한 바울의 애정이 그 동기였다.

데살로니가 3장 1절로 2절 상반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라고 하였다.
지금 바울의 가슴은 자신이 직접 데살로니가 교회를 방문하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 차 있으나 사탄이 그 길을 막았다고 하였다(살전 2:18). 그래서 견디지 못하고 참다못하여 데살로니가에 자기를 대신하여 디모데를 보낸다고 하였다. 가고 싶은 마음을 참다못하여 내린 대안이 디모데를 자기 대신 보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여기에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전도자 바울의 애정과 관심과 염려를 엿볼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밭에 종자를 파종한 농부가 그 다음 결과에 대하여 궁금하고 애타는 마음으로 관심을 가지고 그 밭에 가보고 싶어 하는 마음과 같다고 할 것이다.
부모가 자식의 소식을 알고 싶어 하는 것같이, 선생이 두고 온 제자의 소식을 알고 싶어 함같이, 바울은 환난 중에 복음을 받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뒷소식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참다못하여’ 자기를 대신해서 디모데를 보낸다고 하였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 5절에 「이러므로 나도 참다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보내었노니…」라고 하였다.
교회를 향한 전도자의 애끓는 애정의 모습이다. 바로 이것이 디모데를 파송하는 동기가 된 것이다.

2) 보냄 받은 디모데는 어떤 사람인가?

데살로니가전서 3장 2절에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라고 하였다.
그는 두 가지 경우의 말을 사용하여 디모데를 소개하였다.

 

(1) 첫째로 「우리 형제」라고 하였다.
바울은 ‘우리 형제’라는 말을 크리스천의 대명사처럼 자주 사용하였다. 그는 디모데를 개인적으로 말할 때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 「믿음의 아들 디모데」, 「참아들 디모데」라고 하였다(딤전 1:2, 딤후 1:2). 그런데 여기서는 그리스도인의 일반적 공동체 일원으로 ‘형제’라고 불렀다.
예수님은 참형제, 참부모에 대하여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하였다(마 12:46-50).
바울은 디모데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영통 가족임을 나타내는 의미로 ‘형제’라고 불렀다. 이것은 이미 주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과의 친밀한 관계성을 나타내는 의미이기도 하며, 바울과 디모데와의 친밀한 관계를 나타내고 있는 의미도 된다.

 

(2) 둘째로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하였다.
여기 ‘일꾼’이란 말 ‘디아코노스’(δι?κονο?)는 ‘집사’라고 번역되기도 하였다(딤전 3:8, 12). ‘일하는 자’, ‘섬기는 자’를 뜻했다.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하였다. ‘그리스도 복음의 일꾼’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말함으로 그가 복음을 맡은 공인으로서 얼마나 충성된 종이었던가를 알려 준다.
적어도 디모데는 바울의 사상과 뜨거운 가슴과 주의(主義)를 대신할 수 있는 형제요 일꾼이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이 그를 보고 만날 때 곧 바울을 대신할 만한 자로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자였던 것이다.

3) 디모데를 파송한 이유와 목적은 무엇인가?

데살로니가전서 3잘 2절 중반절에 「이는」이라고 함으로 디모데 파송의 이유와 목적을 말하고 있다.

(1) 첫째로 저희를 굳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 2절 중에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라고 하였다.
여기 ‘굳게 하다’(στηρ?ζω)는 ‘고정하다’, ‘확립하다’, ‘튼튼한 기초를 세우다’ 등의 뜻이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실 때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2)고 하신 경우에도 사용되었다.
성도를 굳게 세우는 것은 전도자의 임무 중의 하나이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을 때 유대인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데 되었던 일이 있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그를 성밖으로 내던져 버렸다. 그런데 얼마 후, 그의 제자들이 바울을 둘러서서 어찌할 줄 모르고 있을 때 주님의 기적으로 벌떡 일어나게 되었다. 아마도 그때 그 자리에 루스드라의 청년 디모데가 함께 있어 그 현장을 목도한 듯하다. 그때도 바울은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권면한 바 있다(행 14:19-23).

이렇게 전도자는 환난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믿음에 굳게 서 있으라고 권면하는 사람이다. 양떼들은 자신들이 만난 여러 가지 환난의 경우들에서 저들의 영적 지조를 지키고 신앙에 ‘굳게 서 있으라’고 권면하는 지도자를 만날 때 행복하다. 그래서 하나님의 공동체가 주 안에서 든든히 서 가게 되는 것이다. 결코 하나님의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 환난의 세상에서 주님의 양떼들에게 무관심하거나 그들을 방목하거나 방임해서는 안 된다. 양떼들의 신앙을 굳게 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양떼들을 위해 자신을 대신하여 디모데를 보낸 것이다.

(2) 둘째로 저희 믿음을 위로하기 위함이었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 2절 중에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라고 하였다.
‘믿음에 대하여’라 함은 ‘믿음을 위하여’라고 하는 의미이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를 보기를 심히 원했다고 하였다. 그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저희에게 나눠 주어 저희를 견고케 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롬 1:11).
믿음을 위하여 위로함은 단순한 위안을 주는 것이 아니라, 환난 중에도 신앙을 성장케 하기 위한 강력한 격려나 권면 등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마른 정원에 물을 주어 초목이 새 힘을 얻어 자라게 함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디모데를 자기 대신 데살로니가에 보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3) 셋째로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 3절 중에 「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여기 ‘요동하다’(σα?νω)라는 말은 ‘개가 꼬리를 흔들며 살랑거리다’라는 뜻인데, 이는 데살로니가 교인의 믿음을 흔들어 놓기 위해서 사탄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저들에게 거짓으로 아첨하고 회유하고 희롱하는 내용을 말함이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 5절 중에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일러니」라고 함도 같은 뜻이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경우 무서운 유대주의자들일 것이다. 결코 믿음으로만 구원받음이 아니고,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꼬리를 흔드는 작태를 말한다.
오늘날 교회 중에도 여러 유형의 시험하는 자들이 있다. 로마가톨릭을 위시하여 성경의 영감을 불신하는 온갖 유의 자유주의, 감각을 왕으로 섬기는 신비주의, 또한 교회 안에 들어오는 온갖 유의 미신적 무속신앙, 그리고 교회 밖의 권력의 박해, 세속의 유혹, 발달된 첨단과학문명… 등 실로 우리 앞에서 개처럼 꼬리치면서 알랑거리는 사탄의 주구들이 형용키 힘들 정도로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대신하여 디모데를 보내는 세 번째 이유와 목적을, 저들로 하여금 환난 중에도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교회 앞에서 꼬리를 흔들면서 살랑거리는 사탄의 작전에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디모데를 보낸다고 하였다.
그리고 다시 바울은 부가적으로 설명하기를 3절 하반절에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인 된 그때부터 여러 유의 환난을 당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적 뜻이 있다는 말이다. 예수 믿는 믿음 때문에 「이것을 당하게 세웠다」는 것이다. 곧 여러 유의 환난과 핍박, 고난, 세상의 냉대와 조소, 그리고 시련 등을 당하도록 하나님께서 섭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이미 데살로니가에서 예수 믿는 신자인 너희들이 친히 알고 있는 일이라고 말하였다(살전 3:3b).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너희가 예수 믿으면 환난을 당하게 된다고 미리 말(예언)했다고 하였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 4절에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더니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고 하였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3장 5절에 「이러므로 나도 참다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일러니」라고 하였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신앙의 환난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걱정하고 염려했다. 그래서 참다못하여 디모데를 보낸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바울의 영감에서 환난과 신자(교회)와의 문제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 환난과 신자(교회)와의 문제에 대한 소론(所論)

(1) 먼저 환난은 예수 믿는 기독 신자의 영적 성화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섭리적 고난임을 깨달아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 3절에 「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환난은 기독신자인 우리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하나의 분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은 신자가 된 우리를 성화시키심에 있어 필수적으로 환난을 허락하신다. 그것은 신앙연단이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고 하였다.
마태복음 5장 11-12절에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고 하였다.
사도행전 14장 22절에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로마서 5장 3-4절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하였다.
로마서 8장 35절과 38-39절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하였다.
로마서 12장 12-13절에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하였다.
고린도후서 1장 4절에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라고 하였다.
고린도후서 7장 4절에 「내가 너희를 향하여 하는 말이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라고 하였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하였다.
베드로전서 1장 7절에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베드로전서 2장 21절에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하였다.
베드로전서 4장 12-13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빌립보서 1장 29절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하였다.
마태복음 10장 17절에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고 하였다.
마태복음 16장 24절에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더니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살전 3:4)고 하였다.
신자가 예수 때문에 여러 종류의 환난과 고난을 받을 때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고(마 10:19-20, 벧전 4:14), 자기 신앙의 성장을 체험하게 되고, 주를 사랑함을 체험하게 되고, 축복을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영생에 이르게 된다(벧전 1:7-9). 그러므로 신자들이 예수 때문에 당하는 환난은 우연이 아니고 필연이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여 정금같이 나오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이다(욥 2:10).

(2) 하나님은 신자들이 환난을 대처하게 하기 위하여 교회에 지도자(복음 전도자)를 세우셨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영적 성장, 곧 믿음의 성화를 위하여 디모데를 보내었다고 했다. 즉 디모데로 하여금 바울을 대신하여 ① 저들의 믿음을 굳게 하고, ② 저들의 믿음에 대하여 위로하고, ③ 환난 중에도 요동치 않게 하려 하여 보냈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성령과 말씀을 통하여 당신의 교회들을 보양하신다. 그 성령과 말씀은 그가 세우신 교회의 지도자들을 붙잡고 우리에게 역사하심을 보게 된다. 양들에게는 목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를 위하여 세워진 영적 지도자의 사명은 실로 중대하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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