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데살로니가전서 강해(17) 디모데 파송의 결과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8. 13. 21:14

"Ⅳ.디모데의 파송"
디모데 파송의 결과
데살로니가전서 3장 6~10절
석원태 원로목사


Ⅳ. 디모데의 파송(살전 3:1-13)

 

1. 디모데 파송과 그 이유(살전 3:1-5)

2. 디모데 파송의 결과(살전 3:6-10)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교회)들을 너무 보고 싶었다. 참다못하여 바울은 자신을 대신하여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냈다. 바울이 디모데를 데살로니가에 보낼 때 상당히 긴장된 상태에서 보냈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 도시 사람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반대하고 교회를 괴롭히는 「괴악한 사람들」(행 17:5)이 성도(교회)들을 핍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행 17:5, 9, 13).
그런데 디모데가 데살로니가에 갔다 와서 전한 소식은 바울에게 놀라운 영적 환희를 얻게 하는 결과를 가져다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디모데를 보내놓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바울이 데살로니가를 다녀온 디모데를 통해 얻게 된 결과는 무엇인가?

1) 디모데는 기쁜 소식을 갖고 왔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 6절에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라고 하였다.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가지고 왔다고 하였다.
① ‘너희 믿음’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을 가리킨다. 복음을 믿는 믿음의 도를 가리킨다. 구원의 확신을 가리킨다. 역시 바울이 들은 ‘믿음의 소문’(살전 1:8-9),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요동치 않는 ‘믿음의 고백’(살전 2:13-14)을 가리킨다.
② ‘너희의 사랑’이라고 하였다.
저들은 하나님의 교훈대로 형제 사랑에 뜨거웠다(살전 4:9). 그것은 사랑의 수고였다(살전 1:3). 이렇게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뜨거운 형제애의 소식을 가지고 온 것이다.
③ 전도자를 사모하는 마음이었다.
그것은 이심전심의 마음이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그들의 얼굴 보기를 원하고 그들을 주 예수 앞에서의 자랑이요 면류관이라고 생각했듯이, 데살로니가 교회도 자기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고 떠난 전도자들을 간절히 사모하고 보고 싶어 한다는 소식이었다.
실로 데살로니가에 갔다가 돌아온 디모데가 전한 이 소식은 전도자 바울에게 큰 영적 환희요 기쁨의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바울은 아덴에서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낸 후 고린도로 가서 자기가 보낸 디모데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중 이렇게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2) 바울이 받은 위로이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 7절에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고 하였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과 사랑, 그리고 전도자들에 대한 깊은 애정 때문에 기쁨을 얻었을 뿐 아니라 이러한 기쁨의 소식이 전도자(바울)들이 당하는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위로를 받았다고 하였다.

여기 중대한 감동이 있다. 교인 때문에 전도자가 위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전도자 바울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 있다고 하였다. ‘궁핍’은 주로 육체적 결핍, 즉 생활고를 말한다. 먹고, 입고, 사는 문제였다. 그는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 항상 눌림을 받은 것이다. 그 이유는 일정한 장소에 머물지 않고 복음 전도를 위하여 이동하고 있는 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환난’은 사람들로 말미암은 외부 세력의 위험을 말한다. 바울을 끈질기게 따라 다녔던 유대주의자들을 위시하여 헬라적 우상숭배주의자, 그리고 정치적으로 로마권력의 상징인 황제숭배주의자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바울이 고린도에 있을 때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다」(고전 2:3)고 하였다. 교중에서의 도전뿐 아니라 밖에서부터 오는 온갖 종류의 박해의 정체들 때문에 환난 속에 있었다.
그런데 바울은 디모데가 가져온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 때문에 ‘위로’를 받았다고 하였다.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살전 3:7b)고 하였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겪고 있던 자신의 육체적 궁핍과 정신적 환난 가운데서 데살로니가에서 온 저들의 믿음의 소식, 사랑의 소식, 그리고 바울 자신을 간절히 보기를 원한다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애정 때문에 오히려 ‘위로’를 받고 있다고 한 사실이다.

양들이 목자를 위로하는 경우가 아닌가!
자식들이 부모를 위로하는 경우, 제자가 스승을 위로하는 경우, 병졸이 상관을 위로하는 경우가 있다. 실로 이런 경우 부모나 스승이나 상관은 살맛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궁핍과 환난은 아랑곳하지 않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과 사랑과 애정의 소식 때문에 ‘위로’를 받았다고 하였다. 자신이 겪은 여러 가지 고난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3) 바울의 격려가 있었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 8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고 하였다.
여기 ‘너희’란 말은 강조적이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두고 한 말이다. ‘주 안에’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상태를 말함이다. ‘굳게 섬’은 정립을 이름인데, 그리스도 안에서 확고부동한 신앙으로 흔들리지 않음을 뜻한다. 이방인의 유혹과 유대주의자들의 박해 속에서도 굳게 신앙파수가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주 안에 굳게 섬’은 자력이나 타력이 아닌 완전 그리스도의 은혜만으로 견고하고 안정된 신앙정립을 뜻한다.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고 함은 그리스도인의 전 삶에 평안과 행복이 넘침을 의미한다.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① 첫째 부활의 삶을 살게 되고, ② 승리적 성화생활의 부단한 진보를 가리킨다.
자식이 잘되면 부모가 산다는 말은 바로 부모의 행복을 의미함이다. 신자가 주 안에 굳게 서게 되는 일은 목회자의 생기 넘치는 행복이다.

4) 모든 기쁨으로 넘치는 감사와 간구가 있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 9-10절에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바울을 대신한 디모데의 데살로니가 방문의 결과, 디모데는 바울에게 기쁜 소식을 가져 왔다. 그 결과 바울은,
① 먼저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였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 9절에 「우리 하나님 앞에서」라고 하였다. 그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 때문이었다고 생각하였다.
② 충만한 기쁨을 가져왔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 9절에 「모든 기쁨으로 기뻐한다」고 하였다. 일체의 기쁨이다. 영육의 기쁨이다. 온갖 내용의 기쁨이다.
③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보은적 마음이 충만하였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 9절 하반절에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라고 하였다. 이 말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전도자가 하나님을 향한 보은적 열정을 나타내고 있는 내용이다.
④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하여 간절히 간구하였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 10절에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교회를 향한 주야의 간구, 간절한 간구였다. 저들의 얼굴을 보기 위한 간구이고, 또 저들을 만나게 되면 저희 믿음 생활에 보충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하게 채우려 함’은 마치 그물(마 4:21)이나 그릇(롬 9:22)을 수리하고 정비하여 준비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단어이다.

우리는 이 본문 중에서 디모데를 통하여 나타낸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바울의 목자적 심정을 읽을 수 있다. 교회를 향한 그의 깨끗하고 소박한 애정이라든지, 사랑의 근심이라든지, 아낌없는 도움의 마음이라든지, 교회 때문에 일어나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의 발로라든지, 교회를 보고 싶어 하는 또 보충해 주고 싶어 하는 막을 수 없는 목자적 심정이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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