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데살로니가전서 강해(26) 예수 재림의 시기와 대망②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8. 13. 21:22

"교리적 교훈 - 그리스도의 재림"
- 예수 재림의 시기와 대망②-
데살로니가전서 5장 1~11절
석원태 원로목사

2.교회를 향한 교훈(살전 4:1-5:28)

Ⅰ. 실천적 성화생활-더욱 많이 힘쓰라(살전 4:1-12)
Ⅱ. 교리적 교훈-그리스도의 재림(살전 4:13-5:11)
1. 예수 재림과 부활(살전 4:13-18)

2. 예수 재림의 시기와 대망 ② (살전 5:1-11)
1) 주 재림의 날은 여러 성경에서 여러 가지로 묘사하고 있다.
2) 불신자들에게는 도적같이 홀연히 임한다고 하였다.
3) 그러나 신자(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돌연한 사건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4)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라고 하였다(살전 5:6-11).

이 부분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는 자의 윤리적 삶의 규정을 언급하고 있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로서 어두움 속에서, 즉 밤중에 살면서도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는 깨어 있는 대망의 삶을 언급하고 있다. 말하자면 낮에 속한 자, 빛의 아들들의 대망적 삶을 말하고 있다.
(1)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하라고 하였다.
데살로니전서 5장 6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고 하였다.
여기 ‘다른 이들’이란 불신자들을 지칭함이다. 저들을 가리켜 다 영적으로 캄캄함 속에서 아무 것도 모르고 깊은 잠에 빠져 사는 자들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빛의 아들, 낮의 아들들은,

① 깨어 있으라고 하였다.
여기 ‘깨어’(γρηγορέο)라는 말은 밤잠을 자지 않고 깨어 성을 지키는 파수꾼을 가리키는 비상한 군사술어이다. 영적 각성을 촉구하는 말이다. 잠자는 자는 아무런 느낌도, 감각도 모르고 활동도 없는 상태에 있는 자다. 성경은 이런 각성에 대하여 크게 언급하고 있다.
마태복음 24장 42-43절에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고 하였다.
마태복음 25장 13절에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하였다.
마가복음 13장 34-37절에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고 하였다.
요한계시록 3장 2-3절에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고 하였다.
요한계시록 16장 15절에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다.

② 근신하라고 하였다.
여기 ‘근신’(νήφωμεν)은 깨어 있는 결과 나타나는 ‘정신 차림’을 뜻한다. 이는 알코올 중독 상태에서 벗어나는 경우에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세속적 방탕함에서 벗어나는 경우를 가리킴이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전서 5장 7절 말씀처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기」 때문이다. 자고 취하는 것은 이 세상 어두움의 아들들의 일이다. 밤은 자는 시간이고, 연락과 방탕에 빠지는 시간이다(롬 13:13). 영적 무관심과 방종, 안일에서 깨어 근신하라고 한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는 낮에 속하였고, 낮의 아들들이요, 빛의 아들들이기 때문이다.

③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라고 하였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8절에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고 하였다.
‘흉배’란 호신용으로 가슴 부위에 붙이는 수놓은 헝겊조각을 말한다.
이사야 선지자도 「의로 호심경을 삼으시며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며…」(사 59:17)라고 말한 바 있다. 여기서 ‘호심경’이란 갑옷의 가슴 쪽에 붙이는 호신용 구리조각으로서 ‘호심경을 삼는다’는 것은 ‘방어함’를 뜻한다.
바울은 이 서신 처음에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살전 1:3)를 언급하였다. ‘믿음’은 구원의 은혜이다. ‘사랑’은 믿음에서 나는 행위, 곧 선행이다. 그리고 ‘소망’은 내세를 바라보는 힘이다. 그런데 본문에 ‘소망의 투구’라고 하였다. ‘투구’는 원수의 화살을 막아내는 안전을 위한 방어망이다. 그러니 속(안)으로는 믿음으로 무장하고, 밖으로는 사랑으로 무장하고, 위로는 소망의 투구 곧 내세를 바라는 대망으로 무장함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주 재림 신앙과, 그 신앙에서 나오는 사랑과, 그 신앙과 사랑의 결말을 내다보는 소망의 삶으로 무장함을 뜻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믿음, 소망, 사랑을 언급한 바 있다. 이것은 신자들의 생존의 필수적인 휴대품과 같다고 하였다. 그래서 항상 있어야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중에 제일이 ‘사랑’이라고 함은 믿음과 소망은 현재의 삶에서 응용하기 때문이다(고전 13:13). 그러므로 믿음과 사랑의 흉배, 곧 호심경과 소망의 투구는 주 재림을 대망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기본적인 무장이요 덕목이 된다. 이것이 낮의 아들들, 빛의 아들들의 삶에 언제나 균형 잡혀 있어야 한다. 특히 이것이 흉배와 투구라고 하는 군사적 용어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주 재림을 대망하는 삶은 영전(靈戰) 행위와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과 사랑의 흉배, 구원과 소망의 투구는 이 세상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자랑이요 영예요, 자존이 된다.

(2) 이제 그 이유, 곧 깨어 있어야 하고, 근신해야 하고,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써야 할 큰 이유가 있다고 하였다(살전 5:9-10).
데살로니가전서 5장 9-10절은 앞 절에서 언급한 그 이유를 말한다.

① 첫째 이유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9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 ‘우리를 세우심’이란 기독신자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하신 바를 가리킨다. 그것은 ‘노하심’, 곧 정죄와 심판, 멸망이 아니라 예수로 말미암는 구원을 얻게 함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소망의 투구를 써야 한다. ‘얻게 하다’란 말은 ‘소유한 것’, ‘보존된 것’, ‘취득한 것’ 등의 의미인데 우리가 그리스도의 구원을 소유하게 된 사실을 가리킨다.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된 것을 뜻한다.

② 둘째 이유는 우리를 항상 예수와 함께 살게 하려는 것 때문이라고 하였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0절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얻어진 우리의 구원 때문에 이제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 것이다.
더 확실히 말하자면 여기 ‘깨든지’라고 함은 신자가 그리스도의 ‘재림 시까지 살아있든지’라고 하는 말이다. ‘자든지’라고 함은 ‘이 세상을 떠나 내세에 가 있든지’라고 하는 말이다. 즉 재림 시까지 살아 있든지, 떠나서 내세에 가 있든지 간에 마지막 날에는 모두 다 부활의 몸을 받아 그리스도와 영세무궁토록 함께 살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 것이다. 즉 우리가 빛의 아들로, 낮의 아들로 깨어 근신하고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는 삶을 살아야 될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여 자기의 소유로 삼아 그와 함께 영생 불사의 복을 누리기 위함이라고 한 것이다.

이제 이 부분의 결론은 5장 11절에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고 하였다.
‘피차 권면하라’는 말은 서로의 위로함을 뜻함이다. ‘덕을 세운다’은 말은 ‘건축함’을 의미함인데, 하나님의 교회의 성숙과 성화를 의미한다.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고 함은 이미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잘하고 있는 그대로 계속 그렇게 진행하라는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11절 부분에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사도의 영감의 내용은 분명하다. 주 재림의 날은 주의 날이다. 때와 시기에 대하여는 알 수 없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밤에 도적같이, 잉태된 여인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갑자기 돌발적으로 일어날 대사건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신자 된 우리에게는 그것이 돌발적인 사건이 될 수가 없다. 신자 된 우리는 다 낮의 아들이요 빛의 아들이기 때문에 주 재림에 대한 예언의 빛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신자들처럼 자지 말고 깨어, 근신하고,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는 대망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 이유는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자든지 깨든지 항상 자기와 같이 영원히 살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서로 위로하고, 교회를 세워가는 데 진력해야 한다고 하였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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