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데살로니가전서 강해(27) 주 재림, 대망의 교회 생활①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8. 13. 21:23

"교리적 교훈 - 그리스도의 재림"
- 주 재림, 대망의 교회 생활①-
데살로니가전서 5장 1~11절
석원태 원로목사

2.교회를 향한 교훈(살전 4:1-5:28)

Ⅰ. 실천적 성화생활-더욱 많이 힘쓰라(살전 4:1-12)
Ⅱ. 교리적 교훈-그리스도의 재림(살전 4:13-5:11)
1. 예수 재림과 부활(살전 4:13-18)
2. 예수 재림의 시기와 대망(살전 5:1-11)


3. 주 재림, 대망의 교회 생활(살전 5:12-22)

바울의 영감인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부터 5장 11절까지의 부분에서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계된 교훈들을 언급하였다.
이제 다시 그리스도인의 종말론적인 실제적 삶을 언급하고 있다. 바로 이런 유의 삶들이 깨어 있는 실천적 생활강령이 된다고 하였다.
이 부분은 여러 면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부분은 대인관계(對人關係)의 생활이다(살전 5:12-15). 둘째 부분은 대신관계(對神關係)의 생활이다(살전 5:16-18). 셋째 부분은 대성령관계(對聖靈關係)의 생활(살전 5:19), 넷째 부분은 대예언관계(對豫言關係)의 생활(살전 5:20), 다섯째 부분 대범사관계(對凡事關係)의 생활 등이다

첫째, 대인관계(對人關係)의 생활(살전 5:12-15)

1) 교역자 대 교인 간의 생활이다(살전 5:12).

교인들은 교역자, 곧 교회의 지도자에 대하여 알아주라고 하였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2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라고 하였다.
여기 ‘안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내용적으로, 실제적으로 잘 알아준다는 말이다. ‘인정’하라는 말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1) 수고를 알아준다는 것이다(살전 5:12).
여기 ‘수고’는 데살로니가전서 1장 3절에 나오는 ‘사랑의 수고’가 가리키는 것과 같다. 그것은 ‘고난도 감수하면서 일함’을 말한다. ‘수고’(κοπι?ω)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벧전 5:1)을 의미하였다. 그것은 교역자들이 양을 위하여 쏟는 희생적 고난을 뜻함이겠다.
① 말하자면 영적 자아의 비명 같은 것이다.
고린도전서 2장 3절에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 하였다. 또 고린도후서 11장 28절에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 함과 같은 것이다.
② 해산의 고통이다.
고린도전서 4장 15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 함과 같은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7절에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처럼 양육하는 수고와 같은 것이다. ③ 대신 부채를 계산함과 같은 것이다.
히브리서 13장 17절에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고 하였다.
④ 중매꾼의 수고와 같은 것이다.
고린도후서 11장 2절에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라고 하였다.
⑤ 잘되기를 원하는 축원의 기도이다.
요한삼서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하였다.

(2) 주 안에서 다스리는 수고를 알아줌이다(살전 5:12).
이것은 교회의 영적 질서를 위하여 안팎으로 수고하는 것이다. 양을 위하여 공격과 방어를 하는 수고이다. 이단들의 외적 침략을 방어하고 공격하며, 교회의 안녕과 질서를 규모 있게 유지하기 위하여 애쓰는 수고함이다.
여기 ‘다스린다’라는 말 아르코(?ρχω)는 책임을 지고, 앞장선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결코 어떤 자세를 취함이 아니고, 모범적인 ‘본’(표준)이 되는 행동을 가리킨다. 또한 그것은 무력이나 권력이나 재력이나 어떤 문벌의 힘이 아닌 그리스도의 은혜의 힘으로 다스리는 영적 통치이다. 신행(信行)이 일치를 이루는 책임적 행동을 가리킨다. 그래서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린다」고 하였다. 그것은 참으로 힘들고 어렵기 때문이다.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 καλο? ? ποιμεν)적 다스림이다.

(3) 권하는 자들을 알아줌이다(살전 5:12).
여기 ‘권함’은 사실상 설교를 가리킨다. ‘누-테툰-타스’(νουθετο?ντα?)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심성과 이성에 올바른 분별력을 넣어주는 자란 뜻이다. 이 용어는 바울의 설교에서만 나타나는 용어이다(행 20:31, 롬 15:14, 고전 4:14, 골 1:28, 3:16, 살전 5:14, 살후 3:15).
여기에 쓰인 ‘권함’은 일반적으로 쓰이는 권면, 호소, 위로, 격려, 훈계를 뜻하는 ‘파라칼레오’(παρακαλ?ω)가 아니다. 본문의 ‘권함’은 상담과 교육을 통하여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 ‘교정시킨다’는 의미이다. 사랑과 이해와 친절을 가지고, 상담과 실제적 교육을 통하여 바로 잡음을 의미함이다.
그럼에도 넓은 의미에서 이 말씀은 목사의 설교사역 부분에 속하고 있다. 디모데후서 4장 2절의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는」 사역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종 된 사명감으로 실행하는 것이다(갈 1:10). 스펄전(C. H. Spurgeon)은 ‘죄를 책망하지 않는 목사는 곧은 낚시질을 하는 목사이다.’라고 하였다. 교인들은 이러한 목양사역, 곧 수고하고 주 안에서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인정(알아줌)하라고 하였다.
자녀는 부모가 자식들에게 무엇을 하는 자임을 인정하고, 학생은 선생이 학생들에게 무엇을 하는 자임을 인정하고, 백성들은 통치자가 백성들에게 무엇을 하는 자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럴 때 그 가정과 나라와 교육은 자리를 잡게 된다.

(4) 가장 귀히 여겨야 한다고 하였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3절에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고 하였다.
이 말의 본 뜻은 참된 가치의 내용을 알고 존경한다는 뜻이다. ‘최상의 존경’을 뜻한다. 그것은 ‘주의 사랑 안에서’라고 하였다. 신앙적 존경이고, 영적 존경이고, 인격적 존경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2-13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라」고 하였다.
히브리서 13장 17절에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고 하였다.
순복하되 즐거움으로, 기쁨으로, 감심으로 순복함이 존경하는 자의 마음이요 태도이다.
교회가 지도자(목자)들에게 수고하고 다스리며 권하는 자임을 알아주고(인정), 또 주 사랑 안에서 그 지도자를 존경함은 바로 그 지도자들이 받은 사명이 중대하기 때문이다. 즉 영혼의 목자로서의 사역을 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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