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데살로니가전서 강해(31) 주 재림, 대망의 교회 생활⑤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8. 13. 21:25

"교리적 교훈 - 그리스도의 재림"
- 주 재림, 대망의 교회 생활⑤-
대신(對神)관계의 생활 : 범사에 감사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석원태 원로목사


2.교회를 향한 교훈(살전 4:1-5:28)

Ⅰ. 실천적 성화생활-더욱 많이 힘쓰라(살전 4:1-12)
Ⅱ. 교리적 교훈-그리스도의 재림(살전 4:13-5:11)
1. 예수 재림과 부활(살전 4:13-18)
2. 예수 재림의 시기와 대망(살전 5:1-11)
3. 주 재림, 대망의 교회 생활(살전 5:12-22)

첫째, 대인관계(對人關係)의 생활(살전 5:12-15)

1) 교역자 대 교인 간의 생활이다(살전 5:12).
2) 신자 대 신자 간의 생활이다(살전 5:13b-14).
3) 신자 대 불신자의 생활이다(살전 5:14b-15).

둘째, 대신관계(對神關係)의 생활(살전 5:16-18)

1) 「항상 기뻐하라」(살전 5:16)고 하였다.
2)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고 하였다.

3)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고 하였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였다.
‘범사’란 말은 ‘주어진 모든 상황’을 뜻한다. 이 서신의 수신자였던 데살로니가 교회는 외적으로 핍박과 환난에 직면하고 있었다(살전 3:4). 신자들의 감사는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이 유익하고 만족하다고 생각할 때는 감사하고, 그렇게 못할 때는 감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것은 이해타산을 따라 나타내는 이기적 심사이다.
왜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가? 그것은 사실상 전천후(全天候)의 감사이다.

(1)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살전 5:18).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감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어려운 명령을 내리지 않고 감사하라고 하였다.
성경에는 수많은 명령이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지고 있다. 그 어느 것 하나도 우리에게는 거절할 수가 없는 것들이다. 예컨대 십계명 같은 것은 그 대표적인 예가 된다. 그 모든 것들은 무거운 짐이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기본적인 예가 되고, 또 그 모든 명령이 우리에게 복이 되기 때문이다. 그 명령 중에 감사하라고 하는 명령이 있다.
그 하나님은 우리 삶 전체에 감사를 받으실 근원이 되신다.
그 중에도 먼저 그가 우리를 창조한 사실은 감사의 동기가 된다. 우리는 우연의 존재가 아니고 어떤 진화적 산물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흙으로 사람의 육체를 만드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사람이 생령이 되게 하셨다(창 2:7).
그가 이러한 창조활동을 하시기 전에 삼위 하나님의 기뻐하신 합의가 있었다. 우리(삼위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합의하였던 것이다(창 1:26).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존재의 근원이 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우리를 구속하신 주체이셨다. 그가 우리를 사랑했다. 그 증거로 죄에 빠진 우리를 위하여 그 아들 예수를 보내어 우리 죄를 대속하게 하였다(막 10:45). 우리가 연약할 때, 우리가 경건치 아니했을 때,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그가 그 아들 예수를 보내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게 하심으로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다(롬 5:6-8).

그래서 사도 베드로도 소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나그네들을 향하여 편지할 때 그 첫머리에 「찬송하리로다」라고 하였다. 다른 말로 ‘감사하자’고 제의하였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3-4)고 하였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사를 명하시는 분이시다. 그가 우리 존재의 근원이시고, 우리 구속의 근원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편 50편 14절에는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자」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감사’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유지하는 첩경이 된다.

(2) 그는 우리 삶 전체를 합동으로 유익하도록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하였다.
우리는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의 한평생 여로를 다 알고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이 세상에서의 한평생 삶은 오직 하나님 그분밖에 알 자가 없다. 그래서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하였다. 우리의 전 삶은 하나님 그 분의 뜻 안에서 자주장된다고 하였다. 그 과정에는 「모든 것」(all thing)이 매개되어 있다. ‘모든 시대’, ‘모든 공간’, ‘모든 사물, ‘모든 일’, ‘모든 사건’이 포함되어 있다. 즉 천상의 모든 것, 천하의 모든 것, 금세의 모든 것, 내세의 모든 것, 우리 삶의 표면적인 모든 것, 이면적인 모든 것, 모든 크고 작은 사건의 원인, 진행, 결과, 그리고 모든 성공, 모든 실패, 모든 기쁨, 모든 슬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모든 것,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 모든 광명, 모든 흑암, 모든 선, 모든 악, 모든 환난, 모든 불행, 모든 고통, 모든 종류의 이별, 모든 종류의 질병과 죽음까지 포함된다.
비, 바람, 눈, 얼음, 바다, 강, 시내, 봄, 여름, 가을, 겨울, 전쟁, 평화, 생로병사, 강함, 약함, 지식, 무식, 남자, 여자, 부모, 자식, 가정, 국가, 세계, 직장, 재물이 다 포함된다.
선한 일뿐 아니라 악한 일, 성공뿐 아니라 실패도, 영예뿐 아니라 치욕도, 건강뿐 아니라 허약함도, 이득뿐 아니라 손실도 모두 포함된다. 선하다고 하는 모든 것, 악하다고 하는 모든 것까지 다 포함된다.
이 모든 유들은 하나님 자신의 주권적 섭리와 역사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즉 성도들에게는 이 모든 것들을 조정하여 선을 이루는 궁극적 목적의 수단으로 하나님이 전용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그의 선하신 목적이 무엇인가?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심」(롬 8:30)에 있다. 이 위대하신 하나님 자신의 주권적 통치와 섭리 아래에 있는 신자는 그 어떤 경우, 그 어떤 일에도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신 하나님 자신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나라고 하는 존재가 내 뜻대로 스스로 존재했고, 또 내 뜻대로 스스로 인생길을 가는 자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작정 속에 있는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 나타날 때 우리는 감사로 대처해야 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에게 온 그 어떤 것도 결과적으로는 선을 이루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성경에 나타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을 통하여 익히 알 수 있다. 결코 성도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들 때문에 낙심하거나 슬퍼할 자들이 아니고, 오히려 그 모든 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자들인 것이다.
욥은 그에게 주어진 부에 대하여 감사했을 뿐 아니라, 그에게 허락된 죽음의 환난에 대해서도 감사했다(욥 1:20-21). 다윗은 성공뿐 아니라 살인과 불륜의 어둠에 대하여도 찬양과 회개로 하나님께 감사했다(시 51: ). 베드로는 그의 연약 때문에 세 번이나 주를 부인했으나 오히려 그것 때문에 자신은 연약한 존재임을 깨달아 회개하고 재기했다(마 26:75).

(3) 무엇보다도 성도들은 말할 수없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감사한다.
고린도후서 9장 15절에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하였다.
고린도후서 4장 15절에는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이라고 했다. 바울서신에는 그의 감사가 넘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세운 여러 교회들이 믿음에 굳게 서고 은혜 가운데 든든히 서 가고 있는 교회의 부흥에 대하여 감사를 계속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은혜란 ‘형용할 수 없는 경외감’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 앞에 쉬지 않는 감사를 할 수 있는 힘은 주님의 교회가 왕성케 되는 일이다. 초대교회 신자들의 뜨거운 감사, 범사의 감사는 여러 지역에서 흩어져 살아가는 ‘형제’들의 건투와 교회들의 소식들 때문이었다. 교회 부흥에 대한 감사는 성도들의 특색이다.
야곱도 요셉도 임종 시에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하였다(창 5:24). 이 말의 큰 뜻은 사람의 일은 끝나지만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역사는 그침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역사존재의 궁극적 의미는 세상 속에서 전개되는 하나님의 구속사 때문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구속사가 전개되는 현장인 것이다.

(4) 감사함이 우리에게 큰 복이 되기 때문이다.
악인에게는 감사가 없다. 불신자들에게 있는 감사는 그 전부가 기복적이다. 자기를 위한 감사이다. 우상에게, 조상에게, 사람에게 감사하는 것은 그 전부가 자기를 위한 감사이다. 그러나 진정한 감사의 대상은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감사는 사람의 인생 된 본래를 찾아내는 질 좋은 감사이다.
하나님의 존재와 구속과 그의 선하심에 감사함은 지음 받은 사람의 본래적 실존이다. 그런 감사는 모든 실망과 낙담과 자포자기를 이기게 한다. 심지어 사망의 위험 앞에서도 승리(부활)의 감사를 하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5:57)고 하였다. 감사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받은 큰 복이다. 그 감사의 표현이 예배로, 연보로, 선행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범사의 감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b)고 결론을 맺고 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감사’, ‘범사에 감사’라고 한 것이다.
토마스 어스킨(Thomas Erskine)은 ‘신약에서 종교는 은혜요, 윤리는 감사이다.’라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감사 없는 기쁨은 천한 웃음에 지나지 않고, 감사 없는 기도는 날개가 부러져 올라갈 수 없는 날개짓과 같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범사의 승리요, 범사의 축복이요, 범사의 성공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대신관계(對神關係)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이것이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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