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데살로니가전서 강해(33) 주 재림, 대망의 교회 생활⑦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8. 13. 21:26

"교리적 교훈 - 그리스도의 재림"
- 주 재림, 대망의 교회 생활⑦-
신자 대 성령관계

데살로니가전서 5장 20절
석원태 원로목사


2.교회를 향한 교훈(살전 4:1-5:28)

Ⅰ. 실천적 성화생활-더욱 많이 힘쓰라(살전 4:1-12)
Ⅱ. 교리적 교훈-그리스도의 재림(살전 4:13-5:11)
1. 예수 재림과 부활(살전 4:13-18)
2. 예수 재림의 시기와 대망(살전 5:1-11)
3. 주 재림, 대망의 교회 생활(살전 5:12-22)
첫째, 대인관계(對人關係)의 생활(살전 5:12-15)
둘째, 대신관계(對神關係)의 생활(살전 5:16-18)
셋째, 신자 대 성령 관계(살전 5:19)

넷째, 신자 대 예언(성경) 관계(살전 5:20)

데살로니가전서 5장 20절에 「예언을 멸시치 말고」라고 하였다.
여기 「예언을 멸시치 말라」는 말씀에 대해 칼빈(J. Calvin)은 “‘예언’이 성령의 은사들 중에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성령을 소멸치 말라’는 말과 ‘예언을 멸시치 말라’는 말을 동일하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1) 구약의 예언과 다른 예언
여기 ‘예언’(προφ?τη?)은 구약의 경우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것을 선포하고 또 그 뜻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매체역할을 한 것을 말한다. 저들은 그 예언활동을 위하여 전 인생을 바친 자들이다.
그러나 신약의 경우 ‘예언’은 구약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우선 신약 초대교회 시대는 구약의 예언이 예수님이 오시고,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미 성취되어 성령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탄생되고, 선교활동이 맹렬히 일어나고 있을 때였다. 그러므로 신약의 경우 ‘예언’은 성취된 예언(구약)에 대한 선교영역에 속하는 예언 은사였다.

2) 선교시대(교회설립시대)의 예언 은사
그럼에도 신약교회 시대에 예언활동이 빈번히 나타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예컨대 빌립 집사의 네 딸이 처녀로 있으면서 ‘예언자’로 활동하고 있었음을 보게 된다(행 21:9).
또한 아가보라고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할 것을 예언한 경우이다(행 21:10). 아가보는 바울의 미래에 대해서「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행 21:11)고 예언하였다.
고린도전서 14장 1절에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하였다.
초대 교회에 주신 여러 은사들 중에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의 은사를 주셨다고 하였다(고전 12:10). 그래서 이 시대의 예언자들은 ‘사도’ 다음 가는 권세와 존귀를 받은 듯하다. 고린도전서 12장 28절에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때는 성경(기록)이 완성되기 이전이다. 그리고 교회가 선교로 말미암아 세워지고 있는 아직 유아기였다. 그래서 장로와 집사 등과 같은 교회의 직분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다. 하나님은 교회가 선지와 사도의 터 위에 세워졌다고 하였다. 이것은 구약의 예언과 신약교회 설립의 기초 멤버가 된 사도들을 가리킨다. 그 터는 예수 그리스도이셨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는 모퉁이 돌이 되셨다고 하였다(엡 2:20).
그런데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엡 2:20)고 하였다.「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간다」(엡 2:21)고 하였다. 그렇다면 사도들의 영감에 의해서 선포된 말씀 위에 그 말씀의 전파를 위하여 여러 가지 은사들을 그 수단으로 주신 것이다. 사도들이 선포한 말씀을 통해서 믿는 자들이 발생하고(롬 10:17), 그 말씀을 믿는 자들을 통하여 교회가 형성되고(행 2:22), 그 형성된 교회 안에 움직이는 신자들에게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를 주셔서 복음을 전하는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이렇게 사도적 복음선포에 기초하고, 그 복음전파의 수단으로 여러 가지 은사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요긴한 은사가 ‘예언’하는 은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본문의 경우에 「예언을 멸시치 말라」(살전 5:19)는 바울의 영감은 사도들로 말미암는 계시의 예언(말씀)은 전달하는 또 다른 하나의 작은 예언을 말하는 것이다.

3) 이 예언 은사의 현대적 의미
오늘의 교회, 곧 성경영감이 완성되고, 교회가 조직이 되고, 복음 선교의 모체로서 자리 잡은 경우에 ‘예언’이란 교회가 공적으로 성경말씀을 선포하고 성경예언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핸드릭슨(Hendrikson)은 말하기를 “…교회가 초창기에는 완전한 성경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 당시 교회는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것처럼 광범위한 기독교 문서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기독교 찬송 역시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숫자적으로 교회는 미미한 상태였다. 더욱이 교회는 모든 방향에서 경멸과 조롱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특별한 지지와 은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때까지 교회에 특별한 지원과 은사들을 제공해 주셨다. 이 은사들 중에 하나가 예언하는 은사였다.”라고 하였다.
그의 이러한 말은 성경이 기록되기 이전, 사도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성령의 은사와 오늘날 완전한 특별계시를 소유한 교회에 주시는 은사에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방언보다 예언을 더 귀하게 여겼다. 그 이유는 예언이 교회를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4장 4절에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라고 하였다. 그래서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전 14:19)고 하였다.
문제의 초점은 ‘예언의 본질’은 ‘말씀은사’인데, 그것은 오늘 완성된 특별계시의 집성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신구약 66권의 특별계시의 예언으로 개인과 가정과 교회가 국가, 세계의 장래를 언제든지 충분히 깨달을 수가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가리켜 ‘더 확실한 예언의 등불’이라고 한 것이다. 그것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라고 하였다(벧후 1:19-21).
아마 추측하건대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예수 재림’이라고 하는 기상천외의 복음(말씀)을 선포하였다. 이 예언의 설교에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 재림을 전도했을 것이다. 그런 과정에 하나님이 특별한 은사의 영이 그 재림의 복음을 전하는 수단으로 예언하는 힘을 주었을 것이다.
문제는 예수 재림 사건은 실로 위대한 예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크고 위대하고 확실한 진리의 예언이다. 결코 멸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을 결코 멸시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성경의 예언은 ① 그 자체가 진리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진리이다. ② 믿는 자의 구원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③ 반드시 성취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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