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데살로니가후서 강해(2) 당연한 감사와 기도①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8. 13. 21:28

"당연한 감사와 기도①"
마땅히 감사할 이유
데살로니가후서 1장 3~4절
석원태 원로목사

  Ⅰ. 고난과 위로(격려)(살후 1:1-12)

  1. 문안(살후 1:1-2)

  2. 당연한 감사와 기도(살후 1:3-12)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은 '당연하다'는 말을 쓰고 있다. 그것은 사도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항상 감사'함이 당연하다는 말이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3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전도자의 교회를 향한 감사가 필연적인 책임이요 또한 의무와 같은 것이라는 말이다. '항상 감사함'이 당연하다고 말하였다. 멈출 수 없고, 멈출 줄 모르는 감사의 계속을 의미한다.

  1) 당연한 감사의 이유

  (1) 성장하는 믿음 때문이라고 하였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3절 중에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라고 함에 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3절에서는 「믿음의 역사」를 감사한 바 있다.
  저들은 바울의 데살로니가 전도를 통하여 세 가지 내용의 복음을 받았다.
  그 하나는,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 성취로 오신 분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구속 성취를 위해 오신 예수님은 필연적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부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세 번째는 나사렛 예수가 기름 부음 받은 자 곧 메시야라고 하였다(행 17:2-3).
  바울의 이러한 복음 강론은 세 안식일(행 17:2) 간 계속되었다. 저들은 이 짧은 3주 어간에 바울로 말미암아 증거된 복음을 받았다. 이 말은 저들이 복음을 받을 때 그것을 믿었다는 것이다. 그후 저들은 주를 본받는 자(살전 1:6)가 되고, 또 모든 믿는 자의 본(살전 1:7)이 되고, 또 저들의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다고 하였다(살전 1:8).
  그런데 데살로니가후서의 기록에 와서도 그러한 저들의 믿음이 자라고 있음에 감사하였다. 저들의 믿음은 들음에서 났다(롬 10:17). 그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출발하였다(롬 10:17). 그 믿음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엡 2:8)이었다.
  자라나는 믿음은 산 믿음이고, 움직이는 믿음이고, 창조하고 생산하는 믿음이다. 신앙의 성장은 ① 하나님 축복의 역사이다. 고린도전서 3장 6절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라고 하였다. ② 또한 믿음의 성장은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함에 있다고 하였다. 베드로전서 2장 2절에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③ 그런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하였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라고 하였다. 어린 자식의 성장이 부모를 기쁘게 함은 당연하다. 이러한 신앙의 성장에 바울은 '당연한 감사'를 함이 마땅하다고 한 것이다.

  (2) 서로 사랑함의 풍성함 때문이라고 하였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3절 중에 다시 말하기를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라고 하였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복음 전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 것이다. 로마 교회를 향한 바울의 영감을 따르면, 그 아들 예수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자기 사랑을 확증했다고 하였다(롬 5:8).
  저들은 죄인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함께 그 사랑을 받은 형제끼리 사랑했다고 하였다.
  저들 사랑에 특별한 표현을 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그것은,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모든 신자들이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함께 나누는 사랑을 뜻함이다. 결코 편을 갈라 그룹끼리 사랑함이 아니고,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라고 하였다. 그 누구도 이 사랑을 주고받음에 빠지거나 제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로 사랑함'이라고 한 사실이다. 서로 보살피고 아껴주고 위해 주는 형제애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는 뜻이다.
  이것은 처음 교회, 즉 예루살렘 교회가 공유한 사랑의 축복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지닌 축복이고, 힘이고, 자랑이다. 교회가 함께 공유하는 사랑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의 생명 가운데 하나이다.
  서로 기도하고, 서로 구제하고, 서로 돌아보고, 서로 희생하고, 서로 기뻐하고, 서로 아픔들을 함께 나누는 사랑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하여 기도할 때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살전 3:12) 하시기를 간구한다고 하였다.
  ② 또한 「사랑함이 풍성함」이라고 하였다.
  결코 결핍된, 부족한 사랑이 아니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공유했던 사랑은 실로 풍성했다고 하였다. 마치 요셉이 풍년 7년 동안에 애굽 창고에 곡식들을 가득히 저축해 놓았다가, 흉년 7년 어간에 그 곳간의 문을 열고 전 애굽과 세계를 풍성하게 먹임과도 같은 부요였다.
  그 이유는 교회가 사용하는 풍성한 사랑은 그 사랑의 넓이와 깊이와 높이가 끝이 없는 그리스도의 한없는 사랑의 공급을 받기 때문이다.
  집을 떠난 둘째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내다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 주었다. 그리고 살진 소를 끌어다가 잡고 잔치하였다. 풍성한 잔치였다. 이 비유는 풍성한 기쁨, 풍성한 즐거움, 풍성한 용서와 사랑의 아버지를 보여 주고 있다(눅 15:22).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눔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속죄사랑을 나누고 축복의 사랑을 전달함에 언제나 풍성해야 한다. 바로 구제의 풍성, 전도의 풍성, 선교사역의 풍성을 향유해야 한다.
  사도는 이렇게 데살로니가 교회의 풍성한 사랑, 곧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한 사랑」 앞에 마땅히 감사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교회를 향한 전도자의 당연한 감사였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3절에는 「사랑의 수고」라고 하였는데 본문에서는 '사랑의 풍성함'이라고 하였다.

  (3) 내세를 바라보는 인내의 소망 때문이라고 하였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4절에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고 하였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복음을 받을 때부터 사탄의 책동을 받는 유대인들의 분노와 소요와 소동을 인하여 시달렸다. 그래서 본문은 「모든 핍박과 환난」이라고 하였다. 그럼에도 저들에게는 「인내와 믿음」을 가졌다고 했다.
  이 사실은 저들에게 있는 복음의 소망, 곧 구원의 소망 때문이었다. 의의 소망 때문이었다. 내세를 바라보는 소망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저기를 바라보는 소망, 이 세상에서 저 세상을 바라보는 소망 때문이었다. 저들에게는 이 소망 때문에 참는 '인내의 믿음'이 생기게 된 것이다.
  골로새서 1장 5절에는 「하늘에 쌓아둔 소망」 때문이라고 하였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 14:22)고 하였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가진 내세소망의 인내로 인하여 전도자들은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친히 자랑」하고 있다고 하였다. 저들의 환난을 이기는 인내의 소망이 복음전도자들에게 자랑거리가 되었다고 하였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해서도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빌 4:1)라고 흥분되게 사랑을 표현하였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감사함이 당연하고 마땅하다고 하였다. 그것은 저들에게 있는 성장하는 믿음, 서로 함께 하는 풍성한 사랑, 그리고 인내의 소망 때문이라고 하였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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