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데살로니가후서 강해(3) 당연한 감사와 기도②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8. 13. 21:29

"당연한 감사와 기도②"
교회를 향한 위로와 격려
데살로니가후서 1장 5~10절
석원태 원로목사


  Ⅰ. 고난과 위로(격려)(살후 1:1-12)

  1. 문안(살후 1:1-2)

  2. 당연한 감사와 기도(살후 1:3-12)
  1) 당연한 감사의 이유(살후 1:3-4)

  2) 교회를 향한 위로와 격려(살후 1:5-10)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사도의 두 번째 편지는 교회를 향한 전도자의 마땅하고 당연한 감사로 시작되었다. 그것은 자라나는 믿음과 풍성한 사랑, 그리고 인내의 소망 때문이라고 하였다.
  지금 사도는 데살로니가후서 1장 5-10절 부분에서 지상에 자리잡은 교회가 고난을 당하는 그 목적적 내용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1장 5절에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에 있다고 하였다.
  왜 교회는 환난을 당하는가? 또 교회는 어떻게 그러한 환난 가운데도 흔들릴 줄을 모르고 인내의 소망을 갖게 되는가? 사도는 이 사실을 통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기도하고 있다.

  (1) 불의한 핍박은 장래 하나님 심판의 표라고 했다(살후 1:5).
  데살로니가후서 1장 5절에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라고 하였다.
  여기 '이는'이라고 함은 1장 4절에 나타난 교회를 향한 이 세상의 '모든 환난과 핍박'을 가리킨다.
  교회가 예수 신앙과 복음 증거 때문에 이 세상 불의한 자들에게 억울하게 핍박과 환난을 당할 때 그 고난과 환난을 감수하면서 생각하기를 이것은 장래 하나님 심판의 예조적인 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컨대 일제 신사참배 박해가 극에 달했을 때 평양감옥에 투옥되어 있던 고 한상동 목사님은 일제의 멸망을 직감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한국의 해방과 투옥된 성도들의 출옥을 예감하고 거기에서 신학교를 세울 예상까지 했다고 하였다.
  물론 여기 본문의 심판은 국부적이고 일시적인 심판이 아니고, 주님 재림하실 때 꼭 한 번만으로 완전히 악을 끝내버릴 종말의 심판을 가리킨다. 공의의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불의한 자들이 교회를 핍박함을 보고 이것은 저들이 심판받을 표라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2) 신자 자신들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인정을 받게 되는 표가 된다는 것이다(살후 1:5).
  '하나님 나라'(τἦς βασιλείας θεοὖ)는 '하나님의 자기 통치'를 가리킨다. 말하자면 '천국'과 '천국운동' 곧 '교회운동'을 뜻한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5절 중에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으리니」라고 하였다.
  십자가의 도(道)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지만 곧 심판의 표가 된다. 그러나 구원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였다(고전 1:18). 마치 신자에게는 십자가가 구원의 표가 됨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교회가 받는 핍박과 고난, 환난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심판받을 표가 되고, 신자들에게는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하늘 시민 됨의 표가 된다는 것이다. 성도(교회)들은 하나님 소유됨의 표도 된다(벧전 1:9).

  (3) 하나님의 상선 벌악(賞善 罰惡)의 심판이 있다고 하였다(살후 1:6-10).
  그는,
  ①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 있다고 하였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6절에 「너희로 환난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7절에 「환난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공의는 공명정대함을 알려 준다. 불의한 악인들에게는 결국 환난의 고통, 곧 '심판'으로 보복하시고, 주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는 '안식'으로 보상하신다고 하였다.
  여기 '안식'(ἄνεαιν)이란 '휴식', '자유', '풀림', '평안히 펴짐' 등의 의미인데, 기독신자들이 하나님께서 악인을 심판하신 최후에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영원한 평강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공의는 '악인에게 환난의 심판'으로, 성도에게는 '안식의 보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선 벌악의 원리는 전 성경에 가득 차 있다. 그래서 기독교 2000년 역사 가운데는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가 수난받는 교회에 위로와 힘과 소망이 되었던 것이다.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이 경북 의성감옥에서 고생할 때였다고 한다. 일본 고등계 형사들이 아무리 취조를 하고 압력을 가해도 주 목사님은 자기가 믿는 신앙을 굽히지 않으셨다. 그런데 제일 고통스러운 고문은 저들이 잠을 자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잠 못 자는 고통은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이라고 하였다.
  밤낮으로 교대하며 형사들이 주 목사님을 감시하고 취조하던 어느 날 밤 2시경에 제일 높은 형사가 또 주 목사님을 취조하러 들어왔을 때였다. 갑자기 주 목사님은 그 형사를 볼 때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에게 묻기를 "○○형사! 나와 당신은 언젠가 한 번은 주님 심판대 앞에 서야 할 날을 피할 수 없을 것인데 그때 주님이 나에게 묻기를 '주 목사, 왜 당신은 감옥에서 잠을 못 자는 고통을 받았는가?'라고 물으실 때 나는 당신들이 나를 잠 못 자게 한 이 고통을 이야기할 것이오. 그런데 그때 주님이 또 당신들에게 '왜 주 목사를 잠자지 못하도록 했느냐?'고 물르실 때 어떻게 대답할 것이오?"라고 질문하였다.
  그 순간 그를 고문하던 형사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나 버렸다고 하였다. 그 이후부터 주 목사님에게 잠을 안 재우는 고문은 없어져 버렸다고 하였다. 주 목사님은 최후의 날에 실현될 하나님의 살아 있는 공의로운 심판을 내다보았던 것이다.
  순교자 '퀴도 디부레이'는 그의 손에 채워진 수갑의 그 쨍강 하는 소리를 즐거운 노래 소리로 느꼈고, 사형 집행을 위해 호출되었을 때 마치 연회장에 초청받아 가는 기분으로 들어갔다고 하였다. 그도 하나님의 살아 있는 최후 공의의 심판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② 하나님의 공의로서 상선 벌악과 관계된 네 가지 내용을 살펴보자.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믿는 자에게 '안식'의 보상을, 박해자, 곧 악인들에게는 고통의 심판(환난)을 더하는 것이다.
  첫째,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언제 있을 것인가?
  데살로니가후서 1장 7절에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현재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행 2:33, 34, 롬 8:34, 골 3:1, 히 8:1, 12:2, 벧전 3:22). 스데반 집사는 순교하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행 7:55-56). 사도행전 1장 11절에는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하였다. 하늘로부터 그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오실 것이라고 하였다. 불꽃 중에 나타나신다고 하였다. 이는 그의 재림이 불심판임을 알려 준다. 히브리서 12장 29절에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고 하였다.
  이러한 주님의 우주적 심판은 두 번째이고 또 마지막이다. 창세 이후로 노아시대 홍수 심판이 있었고, 그 두 번째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이루어질 불심판이다(창 6-7장, 벧후 3:6-7, 10-12). 둘째, 그 공의로운 불심판을 받을 대상은 누구인가?
  데살로니가후서 1장 8절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라고 하였다.
  여기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일반 불신자, 곧 이방인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대적한 유대인들이다. 칼빈은 이들도 결국 불신자들이라고 하였다.
  셋째, 그 공의로운 심판은 어느 정도인가?
  데살로니가후서 1장 9절에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공의로운 심판 형벌의 내용을 알려 준다.
  ⓐ 그 형벌은 주의 얼굴을 떠나고 그 힘의 영광을 떠나는 것이다. '주의 얼굴'은 주님의 축복을 의미한다(시 11:7, 17:15, 마 18:10, 히 12:14, 계 22:4). 그것은 큰 불행이고 캄캄함이다. '그의 힘의 영광'은 주님의 구원의 능력이다. 이것을 떠난다고 함은 주님 구원의 능력을 입지 못함을 가리킨다. 구원의 능력을 떠남은 곧 멸망이 된다.
  ⓑ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 된다고 하였다. 그 형벌은 영원하다는 사실이다. 마태복음 25장 46절에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고 함과 같은 것이다. 지옥은 영생하는 고통의 장소이다. 그래서 영벌(永罰)이라고 하였다. 결코 '영혼 멸절설'이 아니고, 영원히 생존의식이 계속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3장 12절에 「꺼지지 않는 불」, 마태복음 25장 41절에 「영영한 불」, 유다서 1장 13절에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이라고 하였다. 누가복음 16장 24절에는 「불꽃 가운데서 고민」한다고 하였다.
  넷째, 그 공의로운 심판의 결과는 영화로운 것이라고 하였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10절에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불꽃 중에 나타나서 불신자들에게 영벌을 주신다고 하였다. 이제 그 반대로 성도들은 사람의 사람 된 제일의 본분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곧 주님이 강림하실 때 성도들에게는 영광을 얻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었다. 성도들은 주의 구원의 은총과 그의 성덕을 찬양하게 된다.
  그리고 신자들은 주님의 구원을 놀랍게 여겨 찬양을 드린다고 하였다. 그것은 전도자들의 복음 증거가 저희에게 믿어진 결과라고 하였다.
  중대한 것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바울의 위로와 격려이다. 예수 복음 신앙 때문에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을 감수하는 자들에게 주신 위로와 격려이다. 그 중심 내용은 하나님은 선을 행한 신자들에게 안식의 보상을, 교회를 도전하고 박해한 자들에게 환난의 고통을 더하신다고 하는 상선 벌악으로 위로하고 격려하였다.
  살아 있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주님 재림 시'에 있을 것이고, 그 심판은 불꽃 중에 임하는 불심판이 될 것이고, 불신자들에게는 그것이 영벌이 될 것이고, 신자들에게는 영화로운 날이 될 것이라고 한 것이다. 말하자면 오늘의 고난을 장차의 영광으로 위로하고 격려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만이 미래의 종교가 아닌가! 그래서 부루스(Bruce)는 '믿는 자들의 공동체는 하나님의 걸작품이다.'라고 하였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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