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데살로니가후서 강해(4) 당연한 감사와 기도③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8. 13. 21:29

"당연한 감사와 기도③"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
데살로니가후서 1장 11~12절
석원태 원로목사


  Ⅰ. 고난과 위로(격려)(살후 1:1-12)

  1. 문안(살후 1:1-2)

  2. 당연한 감사와 기도(살후 1:3-12)
  1) 당연한 감사의 이유(살후 1:3-4)
  2) 교회를 향한 위로와 격려(살후 1:5-10)

  3)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살후 1:11-12)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당연한 감사'라고 하였다. 바울은 고난당하는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그리스도의 최후 재림과 그 영광으로 위로하고 격려하였다. 그리고 저들이 다시 오실 주님 재림의 날을 예비하기에 합당한 인격자들이 되기를 기도하였다.

  그가 교회를 향하여 올린 기도는,

  (1) 항상 기도하고 있다고 하였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11절에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이라고 하였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3절에는 '항상 감사'한다고 하였다. 이 말은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정기기도나 무시기도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바울은 이미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고 한 바 있다.

  (2) 두 가지 내용의 기도였다.
  첫째는 성도들이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11절 중에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① '미리 정하신 자'들을 부르신 것이다(롬 8:30). ② 목적적 부르심이었다.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기 위함이었다(롬 8:30). ③ 그것은 언제나 유효한 부르심이었다. 그것은 결코 거절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 부르심이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시작과 진행과 마침이 시종여일하시다는 말이다. ④ 물론 전능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
  둘째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모든 선을 기뻐하기를 기도하였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11절 하반절에 「…모든 선을 기뻐함과…」라고 하였다.
  여기 '모든 선'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나타나는 여러 유의 '착한 마음과 행실'을 의미한다. 그것은 주님께서 주신 마음이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3장 13절에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고 하였다. 또 갈라디아 교인들에게도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고 한 경우도 있다.
  이는 악을 기뻐함의 반대이다. 악을 기뻐함은 사탄의 마음이다. 부모를 향한 공경, 형제를 향한 사랑과 희생과 봉사는 선이다. 그 형제를 향한 사랑과 희생과 봉사의 정체는 형제들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태(胎) 신자, 해산(解産) 신자, 양육(養育) 신자, 제자(弟子) 신자를 만드는 일들을 기뻐하게 되는 것이다. 주의 일을 기뻐함은 선을 기뻐함이 된다.
  셋째는 믿음의 역사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기를 기도하였다.
  역시 데살로니가후서 1장 11절 하반절에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라고 하였다.
  '믿음의 역사'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될 수 없는 일이다. 믿음으로 시작하고, 진행하는 모든 일들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을 입어야 성취할 수 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교회 봉사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헌신의 삶속에서 이것들을 경험하고 있다. 믿음의 역사는 선을 이루기 위한 신령한 노력을 의미한다.
  '믿음의 역사'는 이론적이고 의식적이고 개념적인 것이 아니고, 실제적이고 행동적인 것이다. 그것은 체험적인 것이다.
  '믿음의 역사'는 행동하는 신앙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취하는 것이다. 우리는 30년이 넘는 경향교회의 여러 사역들에서 이 사실들을 체험하였다.
  우리는 '선교'라고 하는 선한 일을 기뻐하였다. 고려신학교를 돕는 일, 개척교회들을 돕는 선한 일들을 기뻐했다. 성전건축이라고 하는 산더미 같은 큰 짐을 서로가 짊어지는 것을 기뻐하였다. 그것은 믿음이고, 믿음의 역사였다. 결국 결과적으로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성취들을 보는 데 함께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하나님 나라 운동이 이루어져가고 있다.
  그래서 '믿음의 역사'는 정적인 것이 아니고 동적인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마음으로, 입으로만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움직이는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렇게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저들이 주의 부르심에 합당한 자가 되기를 기도하였고, 모든 선을 기뻐하고 믿음의 역사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취하기를 기도하였다.
  말하자면 교회가 받은 영적 사명의 진행과 그 성취를 위해서 기도하였다. 교회라고 하는 하나님의 나라 공동체의 진보를 위해서 기도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예수님의 일이었고, 교회가 부름받은 축복이었다.

  (3) 바울 기도는 목적적이었다.
  그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예수의 이름이 영광을 받게 함이라고 하였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12절에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라고 하였다.
  '우리 하나님', '주 예수'라고 하였다. 성부와 성자로 말미암는 은혜대로, 주의 이름이 교회 중에서 영광되기를 기도하였다. 참으로 중대하고 의미 있는 기도이다.
  교회는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찬양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특수한 공동체이다.
  그 이유는,
  ① 하나님이 자기 아들 예수의 피로 교회를 사신 것이기 때문이다(행 20:28).
  말하자면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집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기둥과 터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기 때문이다(딤전 3:15).
  ② 예수는 교회의 머리요 몸이고 우리는 그의 지체이기 때문이다(엡 1:23, 골 1:18).
  ③ 교회는 예수로 말미암아 구속되고, 속죄은총을 입은 자들이 모인 탕감받은 자들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룩한 시온 산의 천성교회의 찬양의 주제가 어린양의 피에 있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계 7:10)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결코 사람(인물) 중심이나 업적 중심이나 다른 어떤 세속적 영광이 중심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그 이름과 구원의 즐거움을 전파함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둘째는 성도들이 주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12절 하반절에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다.
  이는 주님의 영광을 더 높이는 자가 주 안에서 받는 축복의 상급이다. 주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게 될 때 성도들도 함께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 이유는,
  ① 저들이 주님과 함께 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예수 자신이 십자가의 희생으로 만드는 생명의 걸작이기 때문이다.
  ② 그것은 주께서 허락하신 영예로운 축복이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1장 15절에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최후통치를 뜻한다. 11장 17절에도 주님께서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와 함께 교회도 이 세상에서 1000년 동안 왕노릇하고, 영원한 천국에서도 세세토록 왕노릇하게 된다고 하였다(계 20:4, 22:5). 바울도 디모데에게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딤후 2:12)라고 하였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도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라고 하였다. 주의 이름, 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개인이나 교회는 주 안에서 주와 함께 금세와 내세에서 영광을 얻게 된다고 하였다. 바울은 이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있다고 하였다.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는 '항상' 하는 기도라고 하였다.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또한 교회가 모든 선을 기뻐하고 믿음의 역사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기를 기도하였다. 그 기도의 목적은 교회 중에 주의 이름의 영광이 드러나고, 또한 그 안에서 교회도 영광을 얻기를 기도하였다. 실로 전도자의 전부는 교회가 잘 되는 것이다. 교회가 잘 된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작정한 구원의 본수가 충만하여 가는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주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하나님 나라의 왕성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영광이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메모 :